인내란 무엇인가

 인내란 무엇인가, 그리고 왜 인내하는가 

— 고난 속에서 하나님이 빚으시는 성도의 힘 (설교문)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인내”라는 단어를 붙듭니다. 인내는 흔히 소극적인 성품, 참고 버티는 성격, 혹은 어쩔 수 없어서 견디는 태도로 오해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내를 “약한 자의 미덕”처럼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인내는 전혀 다릅니다. 성경의 인내는 소극적 체념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끝까지 서 있는 능동적 믿음입니다. 인내는 상황에 굴복하는 태도가 아니라, 상황 위에서 하나님께 붙들린 삶의 자세입니다.


성경에서 인내로 번역되는 중요한 단어는 ὑπομονή(휘포모네)입니다. 이 단어는 단순히 “참는다”는 뜻을 넘어, 무게 아래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버텨 선다’, ‘끝까지 견딘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전쟁터에서 진지를 지키는 병사처럼, 휘포모네는 자리를 지키는 힘입니다. 인내는 도망가지 않는 용기이며, 포기하지 않는 신앙의 지속성입니다. 그러므로 인내는 약함이 아니라 강함입니다. 인내는 감정이 아니라 결단이며, 기질이 아니라 신앙의 열매입니다.


그렇다면 인내는 어디에서 옵니까? 성경은 인내가 인간의 타고난 성격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인내는 성령의 열매 가운데 하나입니다(갈 5:22, 오래 참음). 즉 인내는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빚어 가시는 성품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본래 급한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신앙의 여정 속에서 점점 더 깊은 인내를 배우게 됩니다. 인내는 “원래 성격이 그렇다”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빚고 계시는가”의 문제입니다.


성경은 인내가 믿음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가르칩니다. 야고보서 1장은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 1:3-4)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순서입니다. 시련이 인내를 낳고, 인내는 성숙을 낳습니다. 다시 말해 인내는 신앙의 부산물이 아니라, 성숙으로 가는 필수 과정입니다. 인내 없는 성숙은 없습니다. 빨리 자란 나무는 뿌리가 얕고, 얕은 뿌리는 작은 바람에도 쓰러집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빨리 키우시기보다, 깊이 뿌리내리게 하십니다. 그 과정이 바로 인내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우리를 인내의 길로 이끄십니까? 첫째, 인내는 우리를 하나님께 더 깊이 의존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인내가 필요 없는 삶은 사실상 하나님 없이도 관리 가능한 삶입니다. 그러나 인내의 자리에 들어가면, 인간의 힘과 계산이 한계를 드러냅니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께 매달리게 됩니다. 인내는 우리를 교만에서 건져내는 도구입니다. 내가 할 수 없는 시간을 통과하면서, 우리는 “주님이 아니시면 나는 설 수 없습니다”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인내는 인간의 자립심을 무너뜨리고, 하나님 의존을 세웁니다.


둘째, 인내는 우리의 동기를 정결하게 합니다. 고난이 없을 때는 내가 왜 신앙생활을 하는지 스스로도 분명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축복이 계속되면,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인지, 하나님의 선물을 사랑하는 것인지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인내의 시간은 우리의 동기를 드러냅니다. 아무 보상도 없어 보이는 자리에서도 하나님을 붙드는가, 아니면 손익 계산이 맞지 않으면 떠나는가. 인내는 신앙의 순도를 시험합니다. 그래서 인내는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신앙을 진짜로 만들어 주는 시간입니다.


셋째, 인내는 성도의 성품을 형성합니다. 로마서 5장은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고 말합니다(롬 5:3-4). 여기서 “연단”은 검증된 성품을 뜻합니다. 인내는 우리를 단단하게 만듭니다. 감정에 따라 흔들리지 않게 하고, 상황에 따라 신앙이 좌우되지 않게 합니다. 인내를 통과한 사람은 말이 가벼워지지 않고, 판단이 성급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시간 속에서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인내는 사람을 깊게 만듭니다.


넷째, 인내는 소망을 지켜 줍니다. 소망은 기다림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린다고 말합니다(롬 8:25). 인내 없는 소망은 금세 조급함으로 바뀌고, 조급함은 실망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인내는 소망을 보호합니다. 인내는 “아직이지만, 반드시”라는 신앙의 언어를 가능하게 합니다. 인내는 하나님의 시간표를 존중하는 태도입니다. 우리는 빨리 끝내고 싶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더 깊이 빚으시기 위해 시간을 사용하십니다.


다섯째, 인내는 그리스도를 닮게 합니다. 예수님의 삶은 인내의 삶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즉시 심판하실 수 있었지만, 십자가의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히브리서는 예수님께서 자기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셨다고 말합니다(히 12:2). 예수님의 인내는 무기력이 아니라, 구속을 향한 능동적 순종이었습니다. 성도의 인내는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는 것입니다. 인내는 십자가의 형태를 띱니다. 그러나 그 인내의 끝에는 부활의 영광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내는 패배가 아니라, 승리를 향한 과정입니다.


그렇다면 인내는 실제 삶에서 어떻게 나타납니까? 인내는 단지 큰 고난의 순간에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인내는 반복되는 일상, 바뀌지 않는 관계, 더디게 열리는 문, 계속되는 기도 제목 속에서 드러납니다. 인내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인내는 하루하루의 선택 속에서 길러집니다. 오늘도 하나님을 신뢰하기로 선택하는 것, 오늘도 포기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 오늘도 원망 대신 기도로 나아가는 것, 이것들이 모여 인내가 됩니다.


인내는 감정을 억누르는 기술이 아닙니다. 성경의 인내는 감정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시편을 보십시오. 시편 기자는 슬퍼하고, 분노하고, 탄식합니다. 그러나 그 감정 속에서도 하나님께로 나아갑니다. 인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말하면서도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인내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하나님 앞에 머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내는 무감각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포기하지 않는 끈질김입니다.


또한 인내는 공동체적 성품입니다. 성경은 서로 오래 참으라고 권면합니다(엡 4:2). 인내는 혼자서만 배우는 덕목이 아니라, 사람 사이에서 연습됩니다. 가족 안에서, 교회 안에서, 직장과 관계 속에서 우리는 인내를 배웁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는 참 잘 기다리지만, 사람 앞에서는 쉽게 폭발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인내는 하나님 앞과 사람 앞이 분리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오래 참으셨듯이, 우리도 서로에게 오래 참는 것이 복음에 합당한 삶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내를 방해하는 가장 큰 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조급함과 비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시간표보다 세상의 속도를 더 신뢰할 때가 많습니다. 다른 사람의 결과를 보며 나의 과정을 무가치하게 여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각 사람을 다른 길로 인도하십니다. 인내는 남의 시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시계를 보는 훈련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늦지 않으십니다. 다만 우리의 조급함이 하나님의 섭리를 “늦다”고 느끼게 만들 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인내를 배울 수 있습니까? 첫째,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십시오. 인내는 약속 위에 서야 지속됩니다. 둘째, 기도로 마음을 하나님께 열어 두십시오. 인내는 혼자 버티는 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은혜입니다. 셋째, 작은 순종을 계속하십시오. 인내는 큰 결단보다 작은 충성의 반복에서 자랍니다. 넷째, 믿음의 공동체 안에 머무르십시오. 혼자 있을수록 포기는 쉬워지고, 함께 있을수록 인내는 가능해집니다.


마지막으로 성도 여러분, 인내의 목적은 단지 “끝까지 버텨서 살아남는 것”이 아닙니다. 인내의 목적은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빚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과만을 원하시는 분이 아니라, 과정을 통해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분입니다. 인내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허락하시는 훈련입니다. 그 훈련은 때로 아프고, 길고, 답답합니다. 그러나 그 길 끝에서 우리는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그 시간이 나를 망가뜨린 것이 아니라, 나를 만들었다”고.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인내는 패배자의 미덕이 아닙니다. 인내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의 용기입니다. 인내는 포기가 아니라, 끝까지 붙드는 믿음입니다. 인내는 침묵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머무는 충성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시간 속에 있다면, 그것이 헛된 시간이 아님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은 그 시간 속에서 지금도 여러분을 빚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인내의 길 끝에서, 하나님은 반드시 선한 결말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인내로 믿음을 지키고, 인내로 소망을 붙들며, 인내로 사랑을 지속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끝까지 견딜 수 있는 은혜를 더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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