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이란 무엇인가
— 흔들리는 세상에서 붙드는 미래 (설교문)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소망”이라는 말을 다시 붙듭니다. 믿음과 사랑은 자주 이야기되지만, 소망은 이상하게도 자주 ‘막연한 기대’ 정도로 축소되곤 합니다. 사람들은 소망을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소망에는 ‘바람’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소망은 단순한 바람이 아닙니다. 감정의 일시적 상승도 아니고, 현실이 힘드니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낸 낙관도 아닙니다. 성경의 소망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미래가 이미 지금 우리의 삶을 붙들고 있다는 확신이며, 그 미래가 현실을 견디게 하고 방향을 정해 주는 능력입니다.
성경은 소망을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정의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은 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벧전 1:3). 여기서 소망은 “산 소망”입니다. 죽은 기대가 아닙니다. 현실이 부서질 때 함께 무너지는 꿈이 아닙니다. 산 소망은 살아 계신 하나님, 부활하신 그리스도에게 뿌리를 둔 소망입니다. 그러므로 소망은 상황이 좋아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부활의 사실에서 시작됩니다. 성도의 소망은 결국 “부활의 현실성”을 붙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소망은 무엇을 바라보는 것입니까? 성경의 소망은 단지 내 개인의 성공이나 건강이나 장수를 향한 희망사항에 머물지 않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돌보십니다. 그러나 성경의 핵심 소망은 하나님 나라의 완성, 그리스도의 재림,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그 안에서의 완전한 회복입니다. 로마서 8장에서 바울은 우리가 탄식하며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합니다. 곧 우리 몸의 속량(롬 8:23), 피조세계의 해방(롬 8:21),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광 가운데 드러나는 것입니다. 소망은 단지 “이 세상에서 잘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시작하신 구원의 역사가 마침내 완성되는 것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구분이 필요합니다. 성경의 소망은 ‘가능성’에 걸려 있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희망은 대개 가능성에 근거합니다. 상황이 좋아 보이면 희망이 커지고, 상황이 나빠 보이면 희망이 줄어듭니다. 그러나 성경의 소망은 가능성이 아니라 약속에 근거합니다. 약속은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약속하신 분이 신실하시면, 가능성이 낮아 보여도 소망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히브리서는 말합니다.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히 10:23). 소망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심리적 에너지라기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우리 마음에 낳는 안정입니다.
그리고 소망은 “미래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의 소망은 미래를 향해 있지만, 그 미래가 현재에 침투합니다. 우리는 흔히 소망을 “언젠가”라고 미룹니다. 그러나 성경은 소망이 지금 우리의 삶을 빚는다고 말합니다. 로마서 5장에서 바울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고 말합니다(롬 5:3-4). 소망은 환난이 끝난 다음에 생기는 보상심리가 아니라, 환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나를 빚고 계신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힘입니다. 그래서 소망은 고난을 지워버리는 마술이 아니라, 고난을 통과하게 하는 방향감각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소망과 믿음은 어떻게 다릅니까? 믿음은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께 현재를 맡기는 것입니다. 소망은 그 하나님이 약속하신 미래를 바라보며 그 미래에 현재를 맞추는 것입니다. 믿음이 “하나님이 참되시다”라는 관계적 신뢰라면, 소망은 “그 참되신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실 결말이 있다”는 종말론적 확신입니다. 믿음이 현재의 손이라면, 소망은 미래의 시선입니다. 그러나 둘은 분리되지 않습니다. 믿음은 소망을 낳고, 소망은 믿음을 지탱합니다. 소망이 흐려지면 믿음은 곧 ‘당장의 성과’에 매달리게 되고, 믿음이 약해지면 소망은 ‘꿈’ 수준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그럼 소망은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까? 성경은 소망을 “기다림”과 연결합니다.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롬 8:24-25)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핵심은 “참음(ὑπομονή, 휘포모네)”입니다. 소망은 성급한 사람에게 낯설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에게 익숙합니다. 소망은 ‘빨리’ 해결되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소망은 시간이 걸려도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확신으로 기다릴 힘을 줍니다.
이 지점에서 성도 여러분이 자주 겪는 시험이 드러납니다. 우리는 소망을 “당장 바뀌는 현실”과 연결시키려 합니다. 그래서 기도했는데 현실이 더 어려워지면 “내 소망이 무너졌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소망은 현실의 그래프를 따라 오르내리는 것이 아닙니다. 소망은 현실의 파도 위에 떠 있는 얇은 배가 아니라, 하나님 약속이라는 깊은 닻을 내린 배입니다. 파도가 치면 배는 흔들립니다. 그러나 닻이 깊으면 떠내려가지 않습니다. 성도의 소망은 흔들릴 수는 있어도, 끊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소망의 근거가 내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경은 소망을 “영혼의 닻”이라고 부릅니다. 히브리서 6장은 우리가 가진 소망을 두고 영혼의 튼튼하고 견고한 닻 같아서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히 6:19)라고 말합니다. 닻은 배를 정지시키는 도구입니다. 폭풍이 오면 배는 닻을 내립니다. 닻은 바람을 이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떠내려가지 않게 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소망이 그렇습니다. 소망은 문제를 즉시 제거하는 능력이 아니라, 문제 속에서도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지 않게 하는 안전장치입니다. 성도는 소망으로 붙들려 있습니다. 현실이 나를 떠밀어도, 소망이 나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면 소망은 우리 삶에서 어떤 열매를 맺습니까? 첫째, 소망은 정결을 낳습니다. 요한일서 3장은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 3:3)라고 말합니다. 소망은 단지 “좋은 미래를 기다리는 마음”이 아니라, 그 미래에 합당한 삶으로 현재를 정돈하게 합니다. 우리는 종종 “나는 소망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현재의 습관과 선택은 세상과 다를 바 없이 흐트러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소망은 삶을 정화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완성될 것을 믿는 사람은 그 나라의 가치로 오늘을 살아가려 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소망은 담대함을 낳습니다. 소망이 있는 사람은 모든 것을 잃을까 두려워 움츠러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소망은 ‘최종적으로 잃을 수 없는 것’을 붙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유업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다고 베드로는 말합니다(벧전 1:4). 그러므로 세상에서 손해를 보아도, 사람에게 버림을 받아도, 현실의 문이 닫혀도, 성도는 전부를 잃은 사람이 아닙니다. 소망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소망은 성도를 겁쟁이가 아니라 순례자로 만듭니다. 순례자는 길에서 손해를 볼 수 있으나 길의 끝을 알고 있습니다.
셋째, 소망은 위로를 낳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에서 바울은 죽음 앞에 낙심하는 성도들을 향해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살전 4:13)고 말합니다. 여기서 바울은 “슬퍼하지 말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슬픔을 금지하지 않습니다. 다만 “소망 없는 슬픔”이 되지 않게 하려 합니다. 성도의 슬픔은 눈물이 있지만 절망이 아닙니다. 장례의 자리에서도 우리는 부활의 소망을 말합니다. 그것은 감정의 부정이 아니라, 죽음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는 신앙입니다. 그래서 소망은 눈물을 마르게 하기보다, 눈물이 절망으로 굳어지지 않게 합니다.
넷째, 소망은 사랑을 지속시키는 힘이 됩니다. 사랑은 오래 가기 어렵습니다. 관계의 현실은 거칠고, 사람은 상처를 주고받습니다. 그러나 소망이 있는 사랑은 버티는 사랑이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사람을 새롭게 하시고 교회를 거룩하게 하시며 결국 모든 것을 회복하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서로의 현재만 보고 포기하기 쉽지만, 소망은 “하나님이 이 사람을 어디까지 빚어가실지”를 보게 합니다. 소망은 사랑의 연료가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소망은 어떻게 자라납니까? 첫째, 소망은 복음의 사실을 반복해서 들을 때 자랍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다시 오심은 소망의 기초입니다. 둘째, 소망은 고난을 통과하며 정련됩니다. 환난이 인내를, 인내가 연단을, 연단이 소망을 이룬다고 했습니다(롬 5:3-4). 고난은 소망을 없애는 것 같지만, 오히려 참 소망과 거짓 소망을 분리합니다. 셋째, 소망은 예배 가운데 강화됩니다. 예배는 현실에서 잠시 도피하는 행사가 아니라, 현실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다시 보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을 크게 볼수록, 소망은 단단해집니다. 넷째, 소망은 공동체 안에서 전염됩니다. 낙심한 이에게 소망의 말을 건네고, 서로의 간증을 듣고, 함께 기도할 때 소망이 살아납니다.
마지막으로 성도 여러분, 소망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우리는 천국이라는 장소를 소망하지만, 그 천국의 본질은 주님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소망하지만, 그곳의 영광은 하나님이 친히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것입니다(계 21장). 그러므로 소망은 어떤 추상적 미래가 아니라, 인격이신 주님을 향한 기다림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잊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그 약속은 오늘 우리의 마음을 지탱합니다.
그러니 오늘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소망을 감정으로 측정하지 마십시오. 어떤 날은 마음이 어둡고, 기도해도 빛이 잘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망은 마음의 밝기가 아니라, 약속의 확실성에 달려 있습니다. 소망을 잃었다고 느끼는 날에는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줄이고, 약속하신 하나님을 다시 바라보십시오. 주님은 신실하십니다. 그분은 시작하신 일을 끝까지 이루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소망은 그분의 손에서 결코 끊어지지 않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불안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도의 삶에는 다른 리듬이 있습니다. 흔들려도 떠내려가지 않는 리듬, 눈물이 있어도 절망하지 않는 리듬, 실패가 있어도 끝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리듬이 있습니다. 그것이 소망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미래가 지금 우리의 현재를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산 소망이 우리를 살게 합니다. 이 소망을 붙들고 오늘도 믿음으로 걸어가며, 사랑으로 섬기며, 인내로 기다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