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란 무엇인가

 믿음이란 무엇인가 

— 보이는 것을 넘어 약속에 서는 삶 (설교문)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너무 익숙한 단어 하나를 다시 붙들고자 합니다. 바로 “믿음”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신 분도 “믿음으로 산다”는 말이 막연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믿음이 감정인지, 결단인지, 지식인지, 혹은 어떤 분위기인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성경이 말하는 믿음의 본질을 분명하게 정리하고, 그 믿음이 성도의 삶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설교로 풀어 드리고자 합니다.


성경은 믿음을 단순한 낙관주의로 말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잘 될 거야”라는 긍정의 자기암시가 아닙니다. 믿음은 내가 원하는 결과를 끌어오는 주문도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이용’하는 기술이 아니라, 하나님께 ‘의탁’하는 관계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 속에서 약속에 몸을 싣는 행위이며, 그 약속이 내 눈앞의 현실을 넘어선다 해도 하나님이 참되시다는 사실에 내 존재를 걸어 버리는 결단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은 믿음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며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히 11:1). 여기서 “실상”으로 번역된 말은 헬라어로 ὑπόστασις(휘포스타시스)인데, 어떤 것을 ‘받쳐주는 실체’ 혹은 ‘토대’를 가리킬 때 쓰입니다. 믿음은 공중에 떠 있는 기대감이 아니라, 삶 전체를 지탱하는 바닥입니다. 그리고 “증거”로 번역된 말은 ἔλεγχος(엘렝코스)로, 법정에서 제시되는 확증, 혹은 마음을 설득하는 확실한 논증을 뜻하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믿음은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이 현실보다 더 깊은 실재임을 붙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은 무엇을 ‘믿는’ 것입니까? 성경은 믿음의 대상이 분명하다고 말합니다. 믿음은 내 가능성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믿음은 내 마음의 강도를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크기를 따지기 전에 먼저 물어야 합니다. “내가 붙든 대상이 누구인가?” 믿음은 대상이 바뀌면 전혀 다른 것이 됩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구원을 낳지만, 자기 자신을 향한 믿음은 결국 자기 숭배로 흐르고 맙니다.


성경에서 믿음의 핵심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17절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말합니다(롬 10:17). 믿음은 공기의 변화나 감정의 고조에서 생기지 않습니다. 믿음은 말씀이 귀에 들려 마음을 꿰뚫고, 결국 내 삶의 방향을 바꾸는 데서 생깁니다. 그러니 믿음이 약하다고 느끼는 날은 마음을 더 세게 다잡기보다, 말씀 앞에 더 정직하게 서야 합니다. 믿음의 근육은 내 의지의 반복이 아니라 말씀의 공급으로 자랍니다.


성도 여러분, 믿음에는 지적 요소가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믿는지 알아야 합니다. 아무 내용도 없이 “그냥 믿습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지식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야고보서가 경고하듯이 귀신들도 하나님이 한 분이신 줄 믿고 떠는 수준의 ‘정답’이 있을 수 있습니다(약 2:19). 믿음은 단지 옳은 교리를 머리에 담는 것이 아니라, 그 교리가 내 삶을 움직이도록 내어 맡기는 것입니다. 믿음은 “나는 알고 있다”가 아니라 “나는 맡긴다”입니다.


성경이 보여 주는 믿음은 언제나 ‘행동’을 포함합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으로”라는 표현을 반복하면서, 믿음이 실제 삶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증언합니다. 믿음으로 노아가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를 받아 방주를 준비했고(히 11:7), 믿음으로 아브라함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습니다(히 11:8).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들이 완벽한 정보와 확실한 지도를 가지고 움직인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믿음은 모든 불확실성이 제거된 뒤에야 출발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불확실성 한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참되시기에 한 걸음 내딛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너무 자주 “확신이 100%인 상태”로 오해합니다. 그래서 흔들리면 “내게 믿음이 없다”고 단정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믿음이 흔들림과 싸우는 과정임을 보여 줍니다. 어떤 아버지가 귀신 들린 아들을 두고 예수님께 나아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막 9:24). 이 고백은 믿음이 없는 고백이 아니라, 믿음의 정직한 모양입니다. 믿음은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가 아니라 “나는 흔들리지만 주께 붙든다”입니다. 믿음은 자기 확신이 아니라, 주님께 매달리는 신뢰입니다.


그러면 믿음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바울은 믿음을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자리에서 설명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습니다(롬 5:1). 여기서 믿음은 ‘공로’가 아닙니다. 믿음은 ‘손’과 같습니다. 선물이 주어질 때, 손은 선물을 만들어내지 않습니다. 손은 그 선물을 받습니다. 믿음은 구원을 성취하는 힘이 아니라, 구원을 받는 통로입니다. 우리가 믿기 때문에 예수님이 구원자가 되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구원자이시기에 우리가 믿음으로 그분께 결합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8-9절도 분명합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엡 2:8-9). 믿음조차도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의 영역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자랑이 아니라 감사로 흐릅니다. “내가 믿어서 구원받았다”는 말이 우리를 우쭐하게 만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종교적 자기의입니다. 참 믿음은 언제나 나를 낮추고, 그리스도를 높이며, 은혜를 크게 만듭니다.


믿음은 또한 “인격적 신뢰”입니다. 성경의 믿음은 어떤 사상을 믿는 것만이 아니라, 인격이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믿음을 ‘예수님을 믿는다’(πιστεύω εἰς, 피스튜오 에이스)라고 말할 때, 단순히 어떤 내용을 받아들인다는 뜻을 넘어 “그분 안으로 들어간다”는 방향성을 포함합니다. 믿음은 그리스도에게로 이동하는 것입니다. 내 삶의 중심이 옮겨지는 것입니다. 나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삶의 권위 구조를 바꿉니다. 무엇이 옳은지 판단하는 최종 기준이 내 감정과 계산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이 됩니다.


이제 믿음이 삶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구체적으로 보겠습니다. 믿음은 첫째, 두려움을 다루는 방식입니다. 두려움은 미래가 불확실할 때 올라옵니다. 그런데 믿음은 미래를 내 손에 넣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두려움이 사라져서 평안한 것이 아니라, 두려움이 있어도 하나님께로 피난하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가 말한 것처럼 환난 날에 내가 주께 피하리이다(시 57:1). 믿음은 현실의 폭풍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폭풍 속에서도 하나님이 피난처이심을 선택합니다.


둘째, 믿음은 순종으로 드러납니다. 우리는 순종을 ‘의무’로만 받아들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순종은 사랑과 신뢰의 열매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그분의 말씀을 따르는 것입니다. 순종은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한 거래가 아니라,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확신에서 나오는 반응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칠 때, 그의 마음은 잔혹한 종교적 결단이 아니라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실 것이라는 신뢰에 놓여 있었습니다(창 22장, 히 11:17-19 참조). 믿음은 이해가 끝난 뒤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를 넘어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순종 가운데서 이해가 따라오기도 합니다.


셋째, 믿음은 고난을 해석하는 눈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고난이 없다는 말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믿음의 길에는 시험과 연단이 동반됩니다. 베드로전서는 믿음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다고 말합니다(벧전 1:7). 믿음은 고난을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는 증거로 읽지 않고, “하나님이 나를 다듬고 계신다”는 과정으로 읽습니다. 물론 이것은 감상적 해석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보십시오. 가장 버려진 것 같은 순간에 하나님은 가장 깊은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고난을 단번에 제거하는 힘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이 선을 이루신다는 약속을 붙드는 힘입니다(롬 8:28).


넷째, 믿음은 공동체를 세웁니다. 믿음은 개인의 마음속에서만 맴도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서로를 붙드는 끈이 됩니다. 우리는 서로의 믿음을 북돋우고, 지친 이의 손을 잡아 주고, 넘어지는 이를 다시 일으켜 세웁니다. 바울은 같은 믿음을 따라 한 몸을 이루었다고 말합니다(엡 4장). 믿음은 ‘나 혼자 견디는 힘’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버티는 은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믿음을 자라게 할 수 있습니까? 첫째, 말씀 앞에 반복적으로 자신을 세워야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롬 10:17). 둘째, 기도로 하나님께 마음을 여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믿음은 자기 확신이 아니라 하나님 의존입니다. 셋째, 작은 순종을 통해 믿음이 실제 삶에 뿌리내리게 해야 합니다. 믿음은 생각으로만 자라지 않고, 선택과 행동으로 자랍니다. 넷째, 믿음의 선배들과 성도들의 증언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셨는지 듣는 것은 우리 믿음의 시야를 넓혀 줍니다.


마지막으로, 믿음의 가장 깊은 자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믿음은 결국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고 말합니다(히 12:2). 믿음은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기술이 아니라, 예수님을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나의 믿음이 얼마나 강한지 측정하는 데 마음을 빼앗기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 믿음이 붙들고 있는 분이 누구신지를 보십시오.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히 13:8). 우리의 감정은 오르내리지만, 그분의 신실하심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니 오늘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믿음은 현실 도피가 아닙니다. 믿음은 현실을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다시 읽는 용기입니다. 믿음은 불안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불안 속에서도 하나님께로 가는 사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완벽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넘어져도 다시 주님의 손을 붙잡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길 끝에서 우리는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나를 끝까지 붙드셨다고, 내가 믿음을 지킨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를 지켜 주셨다고.


주님께서 오늘 우리 각 사람의 마음에 믿음을 새롭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바라는 것들의 실상,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로서의 믿음이, 단어가 아니라 삶이 되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그 믿음으로 오늘도 한 걸음 걸어가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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