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상한 마음을 품으시고 부르시는 주님 앞에 엎드립니다. 주님, 우리 성도 중에 깊은 우울과 무기력 속에서 숨 쉬는 것조차 버겁게 하루를 견디는 이가 있음을 주님은 아십니다. 사람의 말로는 닿지 않는 어둠,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운 슬픔, 눈물이 마르지 않는 마음의 밤을 주님께서도 아시고, 그 한가운데까지 찾아오시는 하나님이심을 믿고 간구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으로 천지를 지으시고 무(無)에서 유(有)를 부르신 능력의 주님께서, 지금 이 연약한 심령 위에도 창조의 빛을 비추어 주옵소서. “빛이 있으라” 하시던 주님의 음성이 이 마음의 깊은 골짜기에도 울려 퍼지게 하시고(창 1:3), 혼돈과 공허를 질서와 소망으로 바꾸시는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옵소서. 우리 안에 갇힌 생각의 미로, 반복되는 자책과 절망의 파도, 이유 없는 두려움 속에서도 주님은 여전히 살아 계셔서 “내가 너를 붙들리라” 말씀하시는 분이심을 믿습니다(사 41:10).
아버지 하나님, 이 고통이 단순한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과 몸과 영혼이 함께 지치는 긴 싸움임을 주님 앞에 솔직히 고백합니다. 그러니 주님, 정죄하는 소리와 비교하는 시선에서 그 영혼을 지켜 주옵소서. “믿음이 약해서 그렇다”는 말로 더 무거운 짐을 얹지 않게 하시고, 교회가 주님의 마음으로 품어 안는 피난처가 되게 하옵소서.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시는 주님(사 42:3), 그 자리에 그대로 임하셔서 오늘도 꺼져가는 불씨를 살려 주옵소서.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신비를 이 시간 붙듭니다. 주님, 우리 구주 예수께서는 영광의 길만 걸으신 분이 아니라, 멸시와 조롱을 받으시고(사 53:3), 겟세마네에서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하실 만큼 깊은 고뇌를 통과하신 분이십니다(마 26:38). 십자가 위에서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부르짖으시며 버림받은 듯한 어둠을 몸소 겪으셨습니다(마 27:46). 그러므로 주님, 지금 이 성도가 느끼는 버려진 것 같은 고독, 이해받지 못하는 외로움, 마음의 깊은 탄식이 결코 주님께 낯선 것이 아님을 믿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아픔을 멀리서 관찰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 고통의 자리로 내려오셔서 함께 짊어지신 참된 대제사장이십니다(히 4:15).
주님, 예수님의 상처로 우리가 나음을 얻습니다(사 53:5). 이 “나음”이 단지 감정의 순간적 기분 전환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치유가 영혼과 관계와 삶의 결을 새롭게 하는 회복임을 믿습니다. 당장 환해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오늘은 한 걸음도 못 내딛어도 괜찮습니다. 다만 주님, 이 성도가 절망의 끝에서 생명의 손을 놓지 않게 하옵소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하신 예수님의 초청이(마 11:28), 책 속의 문장이 아니라 오늘 이 사람의 심장에 실제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마음이 병든 날에는 기도조차 나오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말이 끊기고, 성경을 펼 힘도 없고, 찬양이 멀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에도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신다 하셨사오니(롬 8:26), 지금 이 성도의 말 없는 한숨과 눈물과 침묵을 주님 앞에 기도로 받으시고, 성령의 위로로 덮어 주옵소서. 주님, 밤이 길어도 아침을 만드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하신 약속을(시 30:5) 이 성도의 시간 위에 이루어 주옵소서.
또한 주님, 우리에게 필요한 도움을 겸손히 받게 하옵소서. 의사의 손길, 상담자의 지혜, 적절한 치료와 휴식, 곁에서 함께 걷는 동역자의 사랑을 하나님이 예비하셨음을 믿게 하시고, 도움을 받는 일을 부끄러움으로 여기지 않게 하옵소서. 엘리야가 지쳐 쓰러졌을 때 주님은 책망보다 먹이시고 재우시며 다시 길을 걷게 하셨나이다(왕상 19:5-8). 주님, 이 성도에게도 필요한 쉼을 허락하시고, 일상의 작은 리듬을 회복하게 하시고, 오늘 하루의 숨 한 번, 식사 한 끼, 햇빛 한 줄기 속에서도 하나님의 돌보심을 맛보게 하옵소서.
하나님, 관계의 상처가 우울을 더 깊게 만들 때가 있습니다. 오해와 단절, 말로 남은 흉터들이 마음을 더 어둡게 합니다. 주님, 먼저 이 성도의 마음을 보호해 주시고, 안전한 울타리를 세워 주옵소서. 비난과 냉소의 화살을 막아 주시고, 믿음의 공동체가 조급한 해결책을 던지기보다 함께 울어주는 자리, 함께 기도하는 자리, 함께 있어주는 자리가 되게 하옵소서(롬 12:15). 주님, “내가 결코 너를 버리지 아니하고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 말씀을(히 13:5) 이 성도의 마음 깊은 곳에 새겨 주옵소서.
그리고 주님,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이 고난의 신비를 완성하심을 믿습니다. 십자가는 끝이 아니었고, 무덤은 마지막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죽음을 이기셨고, 절망의 문을 소망의 문으로 바꾸셨습니다(고전 15:55-57). 그러므로 하나님, 이 성도가 지금은 “왜”를 다 이해하지 못해도, “그럼에도” 주님을 붙들게 하옵소서. 믿음은 강한 감정이 아니라, 흔들리는 손으로라도 주님의 옷자락을 붙드는 은혜임을 알게 하옵소서. 주님, 작은 믿음에도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막 9:24), 이 성도의 연약한 고백을 받으시고 끝까지 붙들어 주옵소서.
마지막으로 간구합니다. 주님, 오늘 이 성도의 삶에 자살의 생각, 극단의 충동, 자신을 해치려는 유혹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막아 주옵소서. 그 마음에 생명의 경계선을 세워 주시고, 위급할 때 즉시 도움을 요청할 용기와 길을 열어 주옵소서. 우리가 함께 손잡고 지키게 하시고, 교회가 사랑으로 보호하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의 생명은 주님의 것이며, 주님은 죽음이 아니라 생명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요 10:10).
이 모든 간구를, 고난의 자리에서 우리와 함께 우시고 마침내 부활로 우리를 일으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