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주일 감사 예배 대표 기도문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 12:2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지혜로 통치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저희에게 새해를 허락하시고 첫 주일 예배로 드리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꿈처럼 멀게 느껴졌던 새해가 다시 저희들에게 다가왔습니다. 이 감격을 어찌 다 찬양하며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첫 주일 예배로 하나님께 나아가니 믿음으로 드리는 우리의 예배를 받아주옵소서.

그동안 코로나로 인해 암울한 2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잠깐이며 사라질 것이라 여겼지만 벌써 2년이 지났습니다. 올해도 어찔 될지 알 수 없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압니다. 세상은 어둡고 암울하다 해도 하나님은 언제나 저희들의 손을 붙잡고 인도하고 계심을. 이제 주님과 동행함으로 모호함 속에서 앞으로 힘 있게 전진하게 하옵소서.

우리는 밝음에 희망이 있음을 믿지 않습니다. 세상의 풍요와 발전에 소망이 있지 않습니다. 오직 우리의 보호자요 생명이신 하나님께 있음을 믿습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주님을 의지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지금까지 선한 길로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 올해도 성실하신 하나님 인도하심을 믿습니다. 세사의 헛된 것들을 의지하거나 그들의 유혹에 속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를 진리의 길, 생명의 길, 소망의 길로 인도하실 이는 하나님이심을 믿고 주님과 함께 365일 동행하게 하옵소서.
새로운 일꾼들이 임명되었습니다. 자비의 하나님, 올해도 주님을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수고할 이들에게 복을 더하여 주사 그들의 삶이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하게 하옵소서. 사람의 능력이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이 계서 주신 힘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감당하게 하옵소서. 때로는 마음이 맞지 않아 마음이 상하기도 하고 헌신자들이 부족하여 힘들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때마다 주님께서 붙들어 주셔서 능히 감당할 수 있도록 그들을 붙들어 주옵소서.

담임목사님을 붙잡아 주옵소서. 주의 말씀을 성도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늘 기도하며 말씀을 연구합니다. 주여! 우리 교회가 말씀으로 충만해지기를 원합니다. 목사님께 성령 충만을 허락 하사 사람의 지혜나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살아계신 말씀을 가감 없이 선포하게 하옵소서.

부교역자들에게도 동일한 은혜를 부어주사 맡겨진 사명을 능히 감당하게 하옵소서. 물질적 어려움으로 궁핍하지 않도록 주님께서 채우사 능히 사명 감당하게 하옵소서. 사사로이 마음이 들뜨거나 우울하지 않도록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아멘.



성탄절 예배 대표 기도문


성탄절 대표기도문
아기 예수 탄생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눅 2:13-14


주님을 경배합니다.

영원토록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셔서 사망과 죄에서 고통 받던 이들을 구원하심을 감사드립니다. 가장 높은 곳에 계시지만 가장 낮은 말구유에서 누이심으로 소망 없는 자들과 비천한 자들까지 친구 삼아 주신 긍휼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성탄절을 맞아 주님의 이름을 높이며 찬양하오니 받아 주소서.

성탄절을 맞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온 세상에 향기되어 퍼져 나가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동방 박사들이 드렸던 황금과 유향과 몰약이 되게 하소서. 가장 귀하고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을 드리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과 동행하게 하소서

자비의 하나님, 저물어가는 2021년 한 해를 끝자락에 있습니다. 지금도 코로나 확진자는 계속하여 늘어납니다. 지칠 줄 모르는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의 일상을 제한시키고, 답답한 시간을 보내게 합니다. 그러나 시간은 흘러 다시 한 해가 저물고 또 다른 한 해가 점점 다가옵니다. 

그러나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주님을 신뢰하기를 원합니다. 두려움과 걱정으로 하루를 보내지 않고 살아계신 하나님만을 높이며 찬양하게 하옵소서. 광야의 길을 걸으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원토록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되게 하소서. 주의 말씀과 동행함으로 세상의 분주함과 탐욕과 어지러움을 벗어나 분주함 속에서 평안을, 시끄러움 속에서 고요함을 느끼게 하소서.


나라를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대한민국을 사랑하사 선진국의 반열에 오르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일제강점기과 육이오 전쟁으로 말미암아 폐허가 된 우리나라가 반세기 만에 한강의 기적과 초고속 성장을 통해 세계 속의 강대국 반열에 올라서게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온 세계는 한류열풍에 휩싸여 한국 앓이를 하고 있습니다. 모든 나라와 민족들이 한국에 오고 싶어합니다. 이 모든 기적이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입니다.


한국교회를 위한 기도

복된 자리에 올라서게 하신 하나님, 이제 한국교회가 깨어 세계의 나라와 민족과 방언들에 주의 복음을 힘차게 전하게 하소서. 진정한 부와 번영은 육신적인 것이 아니라 영혼의 부함이며, 믿음의 부유함인 것을 온 세상이 알게 하소서. 

한국교회가 낮고 천한 곳에 태어나신 예수님을 본받아 소유와 물질을 자랑하지 않고, 부와 명예를 자랑하지 않고 오직 낮아짐과 겸손함을 배우게 하소서. 손을 벌려 가난한 자들의 손을 잡아주고, 고통 받고 힘들어 하는 이웃들을 돌보는 자들이 되게 하소서. 스스로 낮은 자리에 처해 그들의 눈 높이에 맞춰 함께 마음을 나누게 하소서.


가치 있는 인생을 살게 하소서.

2021년이 저물어 갑니다. 歲不我與(세불아여)라 했습니다. 시간은 우리를 기다리지 않습니다. 헛되이 시간을 보내지 않게 하시고, 가장 아름답고 가치 있는 일에 투자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타인을 원망하며 불평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감사하며 찬양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날마다 예수님처럼 자기를 부인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나를 살지 않고 타인을 위해 살고, 소유와 성공을 위해 달려가지 않고 가난한 자들의 친구가 되고, 연약한 자들의 보호자가 되기를 갈망하게 하소서.


예배를 위한 기도

복된 성탄절 예배를 주님께 드립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는 주님, 오늘 강력한 은혜를 부어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믿음으로 눈으로 보게 하옵소서. 코로나로 인해 칸타타는 준비하지 못했지만 작은 특송을 주님께 올려드리니 받아 주시고, 말씀 전하시는 목사님께 성령의 능력을 더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일대표기도문 12월 셋째 주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셔서 소망 없는 자들을 사랑하사 영생을 얻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못하실 것이 하나 없고, 모든 것을 기쁘신 뜻대로 행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깊고 높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믿음으로 주님을 예배 하오니 받아 주옵소서.


보호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지난 한 주간 저희를 사랑하사 지켜 주시고 보호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시며, 작은 것 하나에도 사랑과 긍휼을 베푸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며, 긍휼의 아버지입니다. 우리가 고통당할 때 아파하시고, 가난한 자들을 긍휼히 여기시며, 아픈 이들은 치료하십니다.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아시오니 언제나 동행하여 주시고, 광야의 길을 가는 동안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이 되게 하소서.

성탄 거리와 대표기도문


환우를 위한 기도

코로나가 잠잠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다행히 이전보다 덜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많은 성도들이 함께 예배드리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근심과 걱정 가운데 하루를 보내는 이들을 붙들어 주시옵고, 병환으로 인해 아파하는 성도들을 긍휼히 여겨 주소서. 치유를 갈망하며 병실에서 하나님을 찾고 구할 때에 하늘에서 그들의 신음소리를 들으시고, 응답하여 주옵소서. 친히 말씀을 사람을 창조하시고 빚으신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면 그들을 치유할 수 있습니다. 그들을 긍휼히 여기사 건강한 몸으로 퇴원할 수 있도록 은혜 베풀어주옵소서.

가난한 자들을 위한 기도문

가난한 이들의 많습니다. 모두가 부유한 시대라고 말하지만 아직도 허기를 때우기 위해 하루하루 벅찬 삶을 살아야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들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도우심의 손길이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교회와 성도들도 어려움 당한 이들에게 긍휼과 사랑의 손길을 내밀어 복을 함께 나누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기를 원합니다.

가정이 회복되게 하옵소서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자비로운 주여, 긍휼을 베푸사 하나님의 선한 능력이 온 가정에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부모와 자녀들이 갈등하는 가정에 평화와 화평의 은혜가 임하고, 오해와 편견이 사라지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사이가 되게 하소서. 서로의 욕망으로 인해 일어난 모든 갈등이 넉넉한 마음과 사랑으로 화목한 가정으로 변화되게 하소서.

내년 목회 일정 속에 함게 하소서.

내년을 기대하며 기도합니다. 내년은 어떤 주제와 성구로 힘차게 달려 가야할까요? 담임목사님을 통해 주시는 목회 비전과 꿈을 온 성도가 한 마음으로 받고 사랑하게 하시고, 서로 연합하여 아름다운 일을 이루어가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열심히 달려가는 한 해가 되게 하옵소서.

성탄절 기도문

이번 주 토요일은 2021년 성탄절입니다. 죄많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주님을 기대합니다. 낮고 천한 모습으로 가난한 가운데 살아 가셨던 평화의 주님을 묵상하게 하옵소서. 거짓과 가식을 버리고 겸허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주님을 위해 살아가게 하옵소서.

나만을 위해 살았던 이기적 삶을 버리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삶을 살게 하옵소서. 진리를 위해 살고, 공의를 행하여,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배를 위한 기도

능력의 되신 하나님, 오늘도 주님의 말씀을 기대합니다. 믿음으로 주님께 나온 주의 백성들을 보시고 선하신 능력과 사랑으로 충만하게 채워 주시옵소서. 말씀 전하시는 목사님께 성령으로 함께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일대표기도문 2021년 12월 둘째주

 


12월 대표기도문

자비하시고 존귀하신 하나님 아버지을 찬양합니다. 인간의 그 어던 언어로도 다 설명할 수도 없고 표현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12월 둘째 주일 하나님께 나와 예배합니다.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주님을 예배하길 원합니다. 오직 주님께 영광 돌리는 시간 되게 하옵소서.

한 주 동안 하나님과 사람에게 지었던 모든 죄를 회개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지 못하고 거짓을 말하고 악행한 모든 것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른다 다짐하고 다시 결단하지만 연약한 육신은 종종 넘어집니다. 사랑의 주님, 오늘도 우리의 회개를 받아 주사 용서하여 주옵소서.

12월 둘째주 주일로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사랑의 주님 시간이 또 흘러 2021년 12월 둘째 주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붙잡고 싶으나 붙잡을 수 없고,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어야 하지만 이 또한 아쉬운 마음이 가득합니다. 우리가 시간을 지나오면서 하나님 앞에 약속했던 모든 것을 다 이루게 하옵소서. 사람과의 모든 관계가 다시 회복 되기를 원합니다. 사랑의 주님, 저희를 사랑하사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가득한 시간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갈등하고 걱정하지만 하나님께서 도우시고 인도하신다면 어떤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들게 하소서.

거룩하신 하나님, 오늘은 성서주일로 지킵니다. 아둔하고 어리석은 저희를 사랑하사 하나님의 자녀 삼으시고,  생명의 말씀을 저희에게 허락하심을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사로잡아 통치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무엇으로 위로를 얻으며, 무엇으로 소망을 얻겠습니까? 오직 주의 생명의 말씀 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헛된 것을 바라지 못하고 오직 영원한 생명이신 주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고 실천하기에 열심을 내게 하소서. 모든 성도들이 한 마음으로 함께 말씀을 읽고 묵상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하는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을 기대합니다.

대강절 셋째 주일입니다. 어두운 세상 속에 친히 강림하셔서 생명의 빛을 비춰 주신 예수님을 기다립니다. 이 세상은 소망 없고 어둠과 악이 횡횡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보며 기대합니까?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은 메시아야 다윗의 동네에서 태어난다는 것을 이미 알았지만 어느 누구도 예배하지 않았고, 경배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머나먼 타국에서 온 동방 박사들은 어린 아기 예수를 경배하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 경배했습니다. 우리 또한 동방박사들처럼 오직 예수님만을 사랑하고 경배하게 하옵소서. 세상의 헛된 거짓을 바라지 않고 오직 낮고 천한 모습으로 모든 사람들을 위해 살아갔던 주님을 볻 받게 하옵소소서.

주님을 닮아가게 하소서.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그동안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았는지 되돌아 보기를 원합니다. 남은 시간동안 세상의 헛된 것들을 바라지 않고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기를 원합니다. 화려한 것이 가치있는 것이 아닙니다. 크고 웅대한 것이 바른 것이 아닙니다. 진리는 단순하고 명료하며, 사랑은 인간의 이해를 넘어 실천됩니다. 사랑의 주님, 우리를 향하신 그 놀라운 사랑을 우리가 본 받기를 원합니다.

예배를 위한 기도

주의 말씀을 사모하여 이곳에 나온 주의 백성들에게 크신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영혼에 말씀의 갈함이 없게 하시고, 성령의 충만을 허락하사 하나님을 사랑하며 높이게 하소서. 말씀 전하시는 목사님께 하늘의 능력을 덧입혀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로마서 장별 요약

 로마서 개요


로마서 1장 요약

그리스도의 종으로 소개하며 문안한다. 복음에 대해 설명한다. 로마에 방문하고 싶었으나 가지 못했던 이유를 말한다. 하나님께서 하나님게 순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진로할 것이라 경고한다.

로마서 2장 요약

하나님의 심판은 보편적으로 임할 것이다. 율법이 있지만 율법을 지키지 않는 유대인도 벌하고, 율법 없이 악을 행하는 이방인에게도 임한다. 율법을 의지하는유대인의 헛된을 강조한다. 율법은 지키지 않으면 필요가 없고, 진정한 할례자는 육신의 할례가 마음의 할례이다.

로마서 3장 요약

유대인에게 특권이 있다. 그들은 미등ㅁ의 조상들이 있고,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셨다. 하지만 하늘 아래 의인은 단 한 명도 없다. 오직 하나님의 의로 의롭다 함을 받을 것이다. 사람이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은 율법에 있지 않고 믿음이다.

로마서 4장 요약

아브라함은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다. 아브라함이 무할례시에 의롭다함을 받았으며, 은혜에 속하기 위함이다. 이처럼 우리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믿음을 가지고있다.

로마서 5장 요약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았으니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우리가 연약할 때, 죄인 되었을 때, 원수되었을 때 구원을 받았다. 아담의 죄로 모든 사람이 죽은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모든 사람이 생명을 얻었다.

로마서 6장 요약

그렇다고 은혜를 더하려고 죄를 더할 수는 없다. 우리의 옛사람은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 이제는 하나님을 위한 의의 병기가 되어야 한다.

로마서 7장 요약

남편 있는 여인은 남편이 살아있는 동안 남편에게 매인다. 하지만 남편이 죽으면 자유의 몸이 된다. 이처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더 이상 율법에 얽매이지 않는다. 하지만 육신에 있는 우리는 마음에 원하는 선을 행하지 않고 악을 행한다.

로마서 8장 요약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우리는 죄에서 해방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고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다. 성령은 우리를 위해 간구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주셨다.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다.

로마서 9장 요약

육신의 자녀와 영의 자녀를 비교한다. 육신의 자녀는 하갈의 자녀이며, 영의 자녀는 약속으로 태어난 사라의 자녀이다. 은혜는 하나님의 약속으로 주어진다. 하나님은 긍휼로 이방인들을 부르실 것이다.

로마서 10장 요약

믿음은 들에서 난다. 그러므로 전하는 자들이 이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이 필요하다. 그 말씀은 아주 가까이에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멀리 있지 않고 바로 우리가 전하는 복음의 말씀이다.

로마서 11장 요약

이스라엘은 순종하지 않고 선지자들을 오히려 죽이기까지 했다. 그들은 구원 받지 못하고 오히려 이방인들이 구원 받는다. 하나님은 유대인들을 시기나게하기 위해 그러신 것이다. 원가지를 아끼지 않으니 이방인도 아끼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교만하지 말라.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이방이 구원을 얻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오묘하고 깊은 지혜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로마서 12장 요약

너희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마음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다. 서로 사랑하고 기도에 힘쓰며,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로마서 13장 요약

각 사람은 권세자들에게 순종하라.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 율법의 완성은 사랑이다. 사랑하면 모든 계명을 행한 것과 같다. 이제는 빛의 갑옷, 그리스도의 옷을 입으라.

로마서 14장 요약

믿음이 연약한 자를 받고 비판하지 말라.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라. 비판하지 말고, 오히려 형제를 넘어지게 하거니 거치게 하지 말라.

로마서 15장 요약

믿음이 강한 자는 믿음이 약한 자를 받아라. 자신을 기쁘게 하지 말고 이웃을 기쁘게 한다. 서로 받아라. 서로 긍휼히 여기라. 나는 주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을 것이다. 오직 주의 이름을 듣지 못한 곳에 복음을 전할 것이다. 로마에도 가고 싶었지만 여러번 막혔다.

로마서 16장 요약

마지막으로 바울은 많은 이들을 소개하며 문안한다. 선한 데는 지혜롭고 악한 데는 미련하라. 

주일대표기도문 11월 둘째주

경배의 기도

존귀와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서 일주일 동안 살아가게 하시고 거룩한 주일을 허락하신 예배의 자리로 불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성실하신 은혜와 사랑으로 저희의 모든 삶은 안전함과 평안한 삶이 되는 믿습니다. 날마다 주님을 바라보며 의지하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온 성도들이 한 마음과 한 뜻으로 주님을 예배드리오니 받아 주옵소서.


회개의 기도

풍성하신 하나님, 저희는 주님께 많은 사랑과 은혜를 받았음에도 성실하지 못하고 실신하시 못했습니다. 주님을 더욱 사랑하지 못하고 세상을 향해 나아갔음을 고백합니다. 사랑의 주님, 이 시간 저희를 긍휼히 여기시고 사랑하사 하나님을 바라보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이제는 거룩한 언어, 천상의 언어를 사용하며, 하나님을 기쁘게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빛의 자녀들처럼 살아가게 하옵소서.



수능생을 위한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저희를 사랑하사 붙드시고 사랑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이번 주 목요일에 수능 시험이 있습니다. 사랑의 주님, 지금까지 수능을 위해 수고하고 애쓴 수험생들을 마지막까지 흔들리지 않도록 붙잡아 주시옵소서. 수고한대로 복을 주시는 하나님, 마음에 여러 생각과 갈등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수험생들의 생각과 마음을 지켜 주심으로 수능을 마치는 그 시간까지 붙들어 주시옵소서. 위하여 함께 수고하고 마음 써 왔던 부모들에게 함께 하사 좋은 성적 거둘 수 있도록 함께 하시고, 영육 간에 강건함을 더하사 능히 감사의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위드 코로나의 신앙을 위한 기도

위로 코로나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인원 제한 없이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이고 예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가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스스로 조심하지 않으면 언제 더욱 악화되어 이전보다 더 좋지 않은 상황이 될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세포와 바이러스 하나까지 통제하시고 지키시는 분이시지만 나태하고 게으른 삶을 기뻐하지는 않습니다. 주어진 환경 속에서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성실히 행하게 하시고, 주어진 법 테두리 안에서 바른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코로나를 위해 수고하고 애쓰는 의료진들과 공무원들에게도 건강을 허락하셔서 하나님의 도우심 속에서 맡은 일을 잘 감당하게 하옵소서.


성숙한 믿음의 삶을 살게 하소서

살아계신 하나님,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로 이 한해가 거의 저물어 갑니다. 이제 한 달 반만 지나면 한해는 마무리 되고 새로운 한 해가 시작이 됩니다. 사랑의 주님, 지금까지 저희들을 인도하시고 붙들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을 따라 날이 갈수록 시간이 흐를수록 주님을 더욱 사랑하고 의지하는 삶이되기를 원합니다. 성숙한 삶과 신앙의 도를 따르게 하시고, 하나님의 높으신 사랑을 알고 서로 사랑하며 헌신하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언어에 있어서 빛의 자녀들다운 언어를 사용하게 하시고, 행위에 있어서 주신 계명을 따라 거룩하고 사랑의 언어로 채워 주시옵소서.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소유하기보다 나누기를 즐겨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서로 사랑하게 하소서

차가운 날씨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올 겨울은 유난히 추울 것이라는 보도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차가운 날씨가 계속 되지만 저희는 성령의 불로 충만하게 하시고, 서로 뜨겁게 사랑함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게 하옵소서. 하나님은 저희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언제나 주의 사랑을 따라 함께 긍휼로 사랑으로 연대하는 교회 되게 하옵소서. 나보다 타인을 먼저 생각하며 주님을 닮아가게 하소서.


말씀  선포하시는 목사님께 성령 충만 주옵시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크신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우리 가운데 역사하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일 대표기도문 11월 첫째 주


경배의 기도

만물을 창조자의 주관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도 거룩한 주일을 맞아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할 수 있는 귀한 은혜를 허락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생각하고 묵상하며 묵상 할수록 찬양하지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오늘이 시간도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시고, 주님만을 바라보는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회개의 기도

 지난 한 주간 주님 앞에서 거룩하지 못한 모든 행실을 회개합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충만함에도 불구하고 늘 저희들은 부족한 것처럼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잘 왔습니다.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 걱정과 두려움이 속에서 하나님의 채우심을 열심히 있습니다.


간구의 기도


새로운 한 달을 더 얘기하라고 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주어진 11월 달도 하나님과 동행하며 늘 주님을 위하여 살아가는 삶이되기를 원합니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11월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달려 와도 모든 시간들을 중요 앞에 내려 갖고 우리의 삶을 성찰하는 시간 되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향하신 놀라운 은혜와 기적들 감사하며 찬양하는 시간들로 채워 주시옵소서. 


부족하면 원망이 보다 있는 것에 감사하며 이루지 못한 것에 갈등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이루신 것들을 감사하는 한 달이 되기를 원합니다. 계획한 것들이 이루지 못한 것들 남겨진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서 위로 가게 하시고 하나님 앞에 서울에 있던 것들을 다 갚아 나가는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11월에는 총회가 있습니다. 각 기관 총회를 주님께서 붙잡아 주시옵시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시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주 일꾼들을 잘 뽑을 수 있도록 저희들에게 믿음과 지혜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그동안 수고한 모든 기관장들과 임원들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여 주시옵시고, 그들의 수고가 하나님의 제단 앞에 상달되는 하나님의 귀한 체험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위드 코로나가 시작되었지만 아직도 많은 확진 자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자비하신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콜 나가사키 물러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비를 베풀어 주사 예배가 속히 평상시대로 진행될 수 있도록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코로나를 위하여 수고하는 위정자들과 의료진들을 붙들어 주시옵소서 그대로 정신과 육체를 강건하게 하여 주사 이번 위기 속에서 잘 이겨 나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계절이 무르익어가는 있습니다. 남겨진 시간 우리가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모든 관계와 만남을 통해 하나님께서 복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지나간 시간들을 원망하지 않고 주어진 시간들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들을 감사하며 찬양하는 시간들로 채워 주시옵소서.


 많은 것을 소유하게 보다 자기 자신을 비워내고 많은 것을 얻기보다 많은 것을 내려놓는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소유의 욕망을 버리고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예배 가운데 역하실 하나님을 기대합니다. 말씀 선포하시는 목사님께 능력을 더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씨 뿌리는 자의 비유, 마태복음 3:3-9, 18-23

씨뿌리는 비유 또는 네 밭의 비유는 마태복음 13장에 소개되는 7가지 비유 중 첫 번째 비유이며, 가장 유명한 비유이다. 비슷한 비유가 마가복음 4:1-9,누가복음 8:4-8에 기록되어 있다. 복음서마다 관점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필자는 마태복음을 중심을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본 비유를 풀이하고자 한다.


1. 비유의 개요


비유는 비유론에서 자세히 다룰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간략하게만 다룬다. 먼저 비유의 목적 두 가지다. 첫 번째는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나라을 계시하는 측면이다. 감추려는 것이 먼저가 아니다. 감추려면 말하지 않으면 된다. 말하는 것은 알리려는 것이 우선이다. 그러므로 본 비유는 알아듣지 못하는 이들이 우선이 아니라 예수를 따르는 이들을 위한 것이다. 16절과 23절은 비유의 목적이 ‘듣고 깨닫는 것’에 있음을 분명히 한다.


13:16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13:23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두 번째는 감추기 위함이다. 너무나 상반된 이야기지만 이것 역시 분명하다. 14-15절은 이사야 6:9-10을 인용하여 계시의 말씀이 감추어졌음을 말한다. 누구에게 말씀을 감출까? 당연히 완악하고 교만한 자들이다. 의도적 감춤이 아니다. 그들의 교만과 완악함이 명백히 드러나 진리에 눈감는 것이 더 옳다. 이 부분은 좀더 논의가 필요하다 후에 다시 다룰 것이다.


이제는 다른 측면에서 비유의 목적을 알아보자. 35절에서는 시편 78:2을 인용하여 창세로부터 감추어진 것을 드러내려는 목적이 있다고 말한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지금 예수가 의도한 것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다. 즉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구속 경륜이다. 너무 멀리간 것이 아니랴는 의문을 제기할지 모르나 비유의 목적 자체가 하나님의 나리의 비밀을 깨닫고 그나라에 동참하게 하려는 것임을 안다면 극단적 해석으로서 하나님의 구속, 즉 복음에 동참하라는 해석은 적절하다. 깨달음은 하나님의 나라에 이미 들어왔다는 것을 의미하며, 자라고 열매 맺음으로 비유의 목적을 이루는 것이다. 우리는 마태복음 13장을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동참의 관점에서 읽어야 하고, 씨앗은 말씀이며, 열매 맺음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는삶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비유 안으로 들어가 보자.


2. 비유 해석


예수는 집에서 나가 바닷가에 앉으신다. 큰 무리가 모여들자 예수는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무리는 해변에 앉아 듣는다. 그 첫 번째 비유가 씨 뿌리는 농부의 비유이다.


비유의 전제


농부는 씨를 뿌린다. 네 가지 형태의 땅이 소개 된다. 씨가 떨어진 곳은 길 갈, 흙이 얕을 돌밭, 가시떨기, 좋은 밭이다. 농부의 의도를 생각해 보자. 네 가지 형태의 땅은 네 밭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현대의 주석가나 목사들이 착각하는데, 농부는 길 가에 씨를 뿌리지 않는다. 돌 위에도 뿌리지 않는다. 그런 바보 같은 농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러한 일은 빈번하게 일어난다. 왜냐하면 농부가 원하지 않지만 씨를 뿌리다보면 길 가에도 떨어지고, 돌 위에도 떨어지고, 밭의 구석인 풀이 많은 곳에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그런 곳에 씨를 뿌리지 않음에 주의해야 한다. 바로 이 부분이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는 무리들이다. 


농부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이들이 좋은 땅이 아닌 다른 땅의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세 땅은 오직 마지막 ‘좋은 땅’을 설명하기 위한 보조 장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으로 말하면 좋은 땅은 세 가지 나쁜 땅의 요소를 제거한 상태 또는 가지고 있지 않는 상태라고 해야 옳다. 이렇게 생각하면 비유의 목적은 대중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나라에 동참하는 이들을 위한 것임을 직감한다. 비유는 대단히 종말론적 계시다. 비유는 종말론적으로 읽어야 한다. 씨 뿌리는 비유 외에 나머지 6개의 비유는 실제적으로 종말에 대해 말한다. 유일하게 본 비유만 결과론적이다. 그렇기에 종말론적이다. 첫 번째 비유는 나머지 6개의 비유를 이끌며, 포괄한다.


길 가에 떨어진 씨앗


씨는 말씀이다.(19절) 씨를 뿌리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계시, 즉 복음을 말한다. 그렇다면 씨를 뿌리는 자는 예수일 것이고, 이후 말씀을 전하는 전도자나 사도들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씨를 뿌림으로 시작한다. 말씀을 전함으로 시작한다.


처음 씨앗은 길 가에 떨어진다. ‘더러는’은 ‘의도치 않음’을 말한다. 어쩔 수 없이 씨앗이 길 가에 떨어진다. 그런데 길 가에 떨어진 씨앗을 새가 와서 먹어 버린다. 19절에서 길 가에 떨어진 씨앗을 설명한다.


마 13:19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


한 구절을 공식화할 필요는 없지만 이 비유 안에서 의미있게 해석할 부분이 있다. 먼저는 길 가는 의도치 않는 사람들이고, 그들은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하는 자들이다. 이때 그들 안에 뿌려진 말씀이 깨닫지 못하도록 곧바로 악한 자가 와서 말씀을 가져가 버린다. 이것은 말씀에 대한 망각이다. 말씀을 보존하지 않음으로 결국 깨닫는 기회까지 박탈당한다. 이 비유의 전체 결론이기도 하지만, 이곳에 드러난 것은 말씀이 자라는 첫 번째 적합성인 감추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천국의 비밀은 감추어져야 한다. 오직 그것을 아는 사람만이 그것을 은밀하게 간직한다. 감추어짐은 보호 또는 보존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첫 번째 길 가와 같은 사람은 말씀을 간직하지 않고 방치한다.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진 씨앗


씨앗이 두 번째 떨어진 곳은 돌밭으로 알려진 곳이다. 마태는 ‘흙이 얕은’을 추가하며 돌밭의 의미를 도드라지게 한다. 그러니까 이곳은 씨앗이 발화해도 잘 자랄 수 없는 땅이란 뜻이다. 실제로 팔레스타인의 많은 밭은 돌밭이다. 흙이 많지 않아 종종 씨앗이 빨화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새싹이 말라 죽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이른 비가 적절한 시기에 내리지 않으면 그 해 농사는 거의 망쳤다고 과언이 아니다.


이 씨는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 곧 넘어지는 자다.(20-21절) 흔하게 냄비 신앙이라고 부른다. 이 해석의 중심은 ‘뿌리’다. 농부의 관점에서 보면 뿌리가 내리는 흙의 부재다. 흑은 씨앗이 발화하도록 온도와 습도를 제공하며, 자라면 흔들리지 않도록 지탱하게 한다. 결국 돌밭은 계속하여 신앙을 지속할 수 없는 외부적 환경을 말한다. 정리되지 않는 외부적 환경으로 인해 신앙이 무너진다.


가시떨기 위에 떨어진 씨앗


가시 떨기는 명확하게 세상에 대한 염려와 재물에 대한 유혹이다.(22절) 개간되지 않은 밭이나 잡초가 제대로 제거되지 않을 경우 이러한 일이 발생한다. 처음 씨앗이 뿌려지고 발화될 때는 무리가 없다. 오히려 다른 곳보다 빠르다. 하지만 계속해서 자라지 못한다. 돌밭이 외부적 요인에 대한 것이라면 가시 떨기는 내부적 요인을 말한다. 발화는 했으나 더 이상 자리지 못한다. 이 씨앗은 발화되고 자라는 것은 그리 문제가 없으나 ‘결실’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결국 아무런 의미가 없는 발화이고, 자람이다.


이들은 삶의 우선순위가 절대적으로 잘못되어 있는 사람이다. 좋은 땅 이외의 모든 땅이 그렇지만 특히 이 땅은 더욱 그렇다. 항상 생각하는 것이 성공과 재물이다. 걱정하고 근심하고, 초초해 한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뢰가 없다는 것이 드러난다. 겉으로는 신앙이 좋은 것 같고 겸손해 보이지만 열매 맺지 못한다. 수많은 핑계와 이유가 있다. 결국은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까지 피곤하게 하고 넉더운 시킨다.


좋은 땅에 뿌려진 씨앗


좋은 땅은 농부가 의도한 땅이다. 적당한 습기가 있고, 흙이 있고, 영양분이 있는 땅이다. 돌이나 잡초가 없는 순수한 땅이다. 이 땅은 오직 씨앗을 위해 존재하고, 씨앗이 발화하고 자라는 데 최적화된 땅이다. 이런 땅에 떨어진 씨앗은 최적의 상태에서 잘 자라고 열매를 맺는다. 이 비유의 목적은 바로 열매다. 열매는 백 배, 육십 배, 삼식 배 맺는다.


고린도전서 장별 요약 및 강해

고린도전서 1장

교회 안에 분쟁이 있다. 누구는 바울에게, 누구는 아볼로에게, 누구는 게바에게 소속했다고 한다. 나는 세례를 베풀려고 한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다. 십자가의 구원 얻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고린도전서 2장

나는 십자가에 못 박힌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전하지 않는다. 우리가 전하는 지혜는 세상의 지혜가 아니라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다. 이 지 혜는 세상의 통치자들이 알지 못했다. 성령으로 하나님의 깊은 것을 통달하고, 우리는 성령께서 가르치신 지혜로 한다. 욕에 속한 사람은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 한다.


고린도전서 3장

너희가 아직 육신에 있어서 서로 분쟁한다. 서로 나는 누구에게 속했다 하는 것은 육신에게 속한 것이다. 나는 심고 아볼로는 물을 주나 자라게 하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일한대로 상을 받을 뿐이다. 우리는 터 위에 세우는 사람들이다. 마지막 날에 불로서 공적이 드러난다. 너희는 하나님의 성진인 것과 성령이 너희 안에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이 세상의 지혜는 어리석은 것이다. 너희는 다 그리스도의 것이다.


고린도전서 4장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알아라. 맡은 자의 구할 것은 충성이다. 너희는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우리에게 배운 것으로 대적하지 말라. 하나님은 사도인 우리를 수많은 고통에 빠지게 했고,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게 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가 많지 않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으로 너희를 낳았다.


고린도전서 5장

너희 안에 음행이 있다 들었다.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어 주었다. 작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진다. 유월절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 되셨다. 유월절을 지킬 때는 악한 누룩으로 하지 말고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


고린도전서 6장

성도가 세상 앞에서 서로 고발하지 말라. 왜 교회가 세상에서 경히 여김을 받느냐. 교회가 세상의 판단을 받아서는 안 된다. 너희는 서로 속이고 불의를 행한다. 불의 한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 창녀와 합한 자는 창녀와 한 몸이 된다. 너희는 그리스도께서 사신 하나님의 것이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린도전서 7장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결혼한다. 남편은 아내에게 의무를 다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의무를 다하라. 기도할 틈 외에는 분방하지 마라. 미혼이나 과부는 결혼하지 마라.  믿지 아니한 자를 갈라서도 되나 남편이 같이 살기를 원하면 버리지 마라. 각각 부르심을 입은 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하지만 결혼하면 서로에게 얽매인다. 결혼을 하든 안 하든 주안에서 하라.


고린도전서 8장

우상 제물에 대해 지식으로 하지 말고 사랑으로 행하라. 오직 하나님만 신이라고 생각하는 지식이 있다 하지만 연약한 자들이 있다. 우상에 대한 습관으로 양심이 더러워진다. 너의 자유가 연약한 자를 넘어지게 하지 마라.


고린도전서 9장

일한 자는 먹을 권리가 있다. 성전을 섬기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온 것으로 먹는다. 사도로 영의 것을 심고 육의 것으로 거둘 수 있다. 하지만 나의 권한을 쓰지 않을 것이다. 


고린도전서 10장

조상들은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를 지났다. 모세에 속하여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았다. 신령한 반석에서 음료를 마셨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광야에서 죄를 짓고 죽었다. 이런 일들은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를 깨우치기 위함이다.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우상 숭배는 귀신과 교제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1장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듯 너희는 나를 본 받으라.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다. 여자는 머리를 가려 남자를 욕되게 하지 말라. 만찬을 나눌 때 서로 나누지 말라.


고린도전서 12장

교회에 안에 많은 은사가 있다. 하지만 모두 성령에게 온다. 한 성령으로 다양한 은사가 나온다. 그러니 다른 은사라고 서로 헐뜯지 말고 무시하지 말라. 교회는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영광을 얻는다.(26절) 너희는 더 큰 은사를 사모하라.


고린도전서 13장

사랑의 우월성을 역설한다.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해도 사랑이 없으면 의미 없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고 시기하지 않고 자랑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사랑이 제일이다.


고린도전서 14장

예언하기를 힘쓰라. 일만 방언보다 한 마디의 예언이 교회에 덕을 세운다. 교회는 질서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 아니다. 모든 것을 질서 있게 하라.


고린도전서 15장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 나셨다. 수많은 증인들이 있다. 게바에게 보였고, 열두 제자와 오백여 형제에게 보였다.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였다. 부활이 없으면 우리의 믿음도 헛것이다.


고린도전서 16장

연보에 대한 가르침.

매주 첫날에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 따로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마케도냐를 지나 고린도에 가고 싶다. 하지만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머물 계획이다. 너희는 남자답게 강건하라. 아굴라와 브리스가에게 문안한다. 바울은 친필로 편지한다. 그리스도의 은혜가 함께 하기를


성경의 정의와 목적

 1. 정의, 성경이란?

성경을 대할 때 무엇보다 우리는 성경이 무엇이냐라는 정의부터 내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만약 성경이 논문이라면 논문 읽기 방식으로 읽어야하고, 소설이라면 소설을 읽듯 읽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어떻게 정의해야할까요? 저는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 성경은 역사이다.

극도로 보수적인 사람이라면 역사라는 표현을 싫어합니다. 무조건 '하나님의 말씀이다'로 정의하고 싶어합니다. 물론 맞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 동시에 역사입니다. 그 역사는 이스라엘의 역사이며, 또한 세상의 역사이며, 또한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구속사입니다. 성경에는 세상의 창조와 인간의 타락, 그리고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2)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이다.

두 번째는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라는 점입니다. 계시는 드러낸다라는 뜻이죠, 성경은 종종 계시를 묵시라는 단어로 번역하는데 모두 동일한 의미입니다. 계시로 번역된 헬라어 아포카립시스(Ἀποκάλυψις)는 베일을 벗기다는 뜻입니다. 숨겨진 것이 드러난다는 뜻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긔 계시로서 숨겨진 하나님의 뜻과 의도, 목적 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은 계시입니다.

3) 성경은 문학이다.

'성경은 문학이다'라는 정의보다는 하나님의 계시가 '문학'의 장르를 통해 계시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문학이란 말속에는 인간의 사유와 사고의 방식이 담겨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성경에 대한 정의는 이 정도만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성경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것이며, 하나님은 역사와 문학적 방법으로 성경을 기록하게 함으로 하나님의 숨겨진 의도를 드러낸 계시입니다.


2. 성경의 목적

그렇다면 우리는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다양한 방법 또는 관점에서 읽을 필요가 있지만 몇 가지의 관점으로 대할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기

가장 먼저 갖어야할 마음의 자세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편지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자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의 모든 부분을 우리가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편지를 보냈다는 사실을 가지고 읽어야 합니다. 즉 부정적인 마음이 아니라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2) 구원의 목적

성경을 우리에게 주신 목적 중의 하나는 바로 구원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을 알고 구원에 이르게 되는 지혜를 얻게 될 것을 말합니다.

  • 디모데후서 3장 15절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3) 경건의 목적

성경은 구원 뿐 아니라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을 통해 의를 교육하려는 목적이 있습니다. 의는 바름과 공의를 뜻합니다. 즉 이 땅에서 무엇이 바르고, 무엇이 옳은 지를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담긴 성경을 통해 우리는 진정한 경건에 이르게 됩니다.

  • 디모데후서 3장 16절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4) 지혜의 목적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지혜를 얻게 됩니다. 성경의 많은 곳에서 성경을 통해 지혜를 얻는다 말합니다.

  • 잠언 1:1 다윗의 아들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잠언이라
  • 잠언 1:2 이는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
  • 잠언 1:3 지혜롭게, 공의롭게, 정의롭게, 정직하게 행할 일에 대하여 훈계를 받게 하며
  • 잠언 1:4 어리석은 자를 슬기롭게 하며 젊은 자에게 지식과 근신함을 주기 위한 것이니
  • 잠언 1:5 지혜 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할 것이요 명철한 자는 지략을 얻을 것이라
  • 잠언 1:6 잠언과 비유와 지혜 있는 자의 말과 그 오묘한 말을 깨달으리라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며, 하나님은 지혜로 세상을지으셨고, 또한 주의 계명을 따를 때 지혜로운 삶을 삽니다.

  • 시편 111장 10절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라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훌륭한 지각을 가진 자이니 여호와를 찬양함이 영원히 계속되리로다
  • 시편 119장 98절 주의 계명들이 항상 나와 함께 하므로 그것들이 나를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나가면서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묵상함을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참된 지혜를 얻게 됩니다. 우리이 삶은 오직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지혜를 얻습니다.

창세기 12장

 1. 창세기 12장 개요

창세기 12장은 성경의 시대 구분이나 창세기 안에서의 역사나 매우 중요한 분기점이 되는 장이다. 일반적으로 창세기 1-11장까지를 창조시대로 규명하고, 12장부터는 족장시대로 구분한다. 11장에도 아브람이 등장하지만 명확한 구분은 12장에서 시작된다. 창세기 11장에서 흩어진 바벨 공동체 안에서 아브라함을 불러냄으로 시작한다. 마치 무에서 유를 불러내시고, 어둠에서 빛을 내게 하시고, 물속에서 마른땅을 부르시는 창조적 능력과 흡사하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생명의 약속이며, 새로운 것의 '있게 함'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창세기 12장 서론 부분을 읽을 때 하나님의 창조적 능력이 어떻게 사용되는가를 봐야 한다. 이제 들어가 보자.

창세기 12장 구조

1-12절 하나님이 소명과 순종하는 아브람

13-20절 기근과 애굽에서 당한 일


2. 주해

1-12절 하나님이 소명과 순종하는 아브람

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하나님이 아브람을 부르신다. 앞의 '너의' 소유격은 이후의 문장을 이끈다. '너의 고향' '너의 친척'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고 명하신다. 떠남은 분리이며 관계없음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기 위한 첫 번째 조건으로 '떠남'으로 제시한다. 떠나지 않고 도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너의'라는 표현은 지금까지 아브람이 쌓아 놓은 명성, 부, 권위, 관계 등을 벗어나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버리로 혈혈단신으로 가라는 말은 아니다. 아브라함은 부유하며 많은 재산을 가지고 가나안에 도착한다. 물론 이후 더 많은 재물을 얻기를 하지만. 1절은 '너는 독립적인 존재가 되라'라는 뜻이다.

소명은 존재를 규명하고, 존재를 한계 짓는다. 부르심으로 모호한 것이 사라지고 삶의 방향과 목적, 그리고 방식까지 정확하게 정해진다.

*아버지의 집
성경에서 아버지의 집은 다양성을 가지고 있지만 보호와 권위, 그리고 기업을 잇는다는 의미를 포괄적으로 가지고 있다. 아버지를 떠나는 아버지의 집을 떠남과 같다. 이 말은 아버지의 보호를 벗어나 유랑한다. 또는 처량한 신세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또한 아버지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 전체를 뜻하기도 한다.

  • 창세기 20장 13절 하나님이 나를 내 아버지의 집을 떠나 두루 다니게 하실 때에 내가 아내에게 말하기를 이 후로 우리의 가는 곳마다 그대는 나를 그대의 오라비라 하라 이것이 그대가 내게 베풀 은혜라 하였었노라
  •  창세기 50장 8절 요셉의 온 집과 그의 형제들과 그의 아버지의 집이 그와 함께 올라가고 그들의 어린 아이들과 양 떼와 소 떼만 고센 땅에 남겼으며

창세기 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2절을 약속이다. 큰 민족, 이름, 복.이 된다. 민족은 후손이고, 이름은 11장에서 사람들이 '우리들의 이름을 내자'라는 울림이다. 히브리어 셈은 이름이란 뜻인데, 노아의 아들 셈과 11장의이름(셈), 그리고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약속한 이름(셈)은 다분히 언어유희적이다. 창세기 기자는 유명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란 사실을 강조한다.

이후 모세오경은 12장 2절의 주석과도 있다. 때로는 실패한 듯보이고, 때로는 막막해 보이지만 결국 모세오경이 끝날 즈음 거대한 민족이 탄생하고, 아브라함의 이름이 존귀케 되며, 아브라함은 복의 사람이 된다. 하지만 지금은 시작이고 내일이 보지 않는다.

창세기 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복을 준다'는 표현이 다시 등장한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복을 내리고, 저주하는 자에게 저주를 내린다'고 약속하신다. 아브람을 축복하는 자가 누구일까? 또한 저주하는 자는?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고, 하나님을 거절하는 자들이다. 아브람은 말씀에 순종하는 자이기에 아브람은 곧 하나님이다.
  • 마태복음 10장 25절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
이러한 맥락은 아브람이 이 땅에서 왕 같은 제사장처럼 살아갈 것을 말한다. 아브람과 하나님은 다르지 않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자신의 이름을 주었다. 마치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런 것처럼.

아브람으로 인해 땅을 복을 받는다. 아담의 창조와 타락 역시 이 부분을 강조한다. 아담으로 인해 땅이 복을 받고 저주를 받는다. 소명자들은 이땅의 운명을 지고 간다.

창세기 12: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아브람은 곧 실행에 옮긴다.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다'는 표현은 굉장히 특이하다. 번역은 '따라갔다'라고 했지만 히브리어는 '걷다' '동행하다'의 뜻인 '할라크'이다. 이 단어는 히브리어에서꼭 외어 두어야 할 단어다. 에녹이 하나님께 동행(할라크)한 것처럼 아브라함 역시 하나님을 따랐고(할라크) 하나님과 동행(할라크)한다.

조카 롯도 함께 아브람과 동행한다. 아브람이 권유한 것인지를 확실치 않으나 결국 하나님을 따르는 삶을 함께 동참한다. 롯의 시작은 이처럼 아름답지만 결국 믿음의 길에서 벗어난다.

아브람이 소명을 길을 떠날 때 그의 나이는 75세였다.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니었음에도 기꺼이 그 길을 걸었다. 하란에서 떠났다는 표현도 염두에 두자. 후에 이 부분을 다시 언급할 것이다.

창세기 12:5-6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아브람은 아내 사래와 조카 롯을 데리고 가나안에 도착한다.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란 표현은 아브라함이 하란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는 것과 그가 성공한 삶을 살았다는 뜻을 의미한다. 하지만 성공적인 삶이라 할지라도 아브라함은 그곳에 안주하지 않고 믿음의 모험을 떠났다. 

1절에서 '보여줄 땅'에서 5절에서는 '가나안 땅'으로 구체화되었다. 믿음의 삶이란 처음에 모호함과 불투명만이 가득하지만 하루하루 순종의 삶을 통해 구체화된다는 점을 망각하면 된다. 우리는 모든 알고, 모든 것을 이해하고 시작하려 하지만 믿음의 삶은 그렇지 않다. 지금 내가 아는 작은 계명에 순종할 때 더 크고 원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룰 수 있다.

세겜 땅은 후에 에브라임 지파의 것이 된다. 야곱의 딸인 디나가 강간을 당한 곳이기도 하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후에 [성서지리-세겜]에서 다룰 예정이다.
  • 창세기 48:21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또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
  • 창세기 48:22 내가 네게 네 형제보다 세겜 땅을 더 주었나니 이는 내가 내 칼과 활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니라
출애굽 후에 가나안을 정복한 후 요셉의 뼈를 세겜에 묻는다.
  • 여호수아 24장 32절 또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가져 온 요셉의 뼈를 세겜에 장사하였으니 이곳은 야곱이 백 크시타를 주고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자손들에게서 산 밭이라 그것이 요셉 자손의 기업이 되었더라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이 구절을 처음 읽을 때 정말 놀랐다. 아무렇지 않게 넘어갔지만 어느 순간 알 수 없는 답답함이 밀려왔다. 하나님의 약속의 땅이라고 왔는데 그 땅은 빈 땅도 아니고,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곳도 아니었다. 그곳에는 그곳의 땅 주인이 따로 있었다. 아브람은 평생은 나그네로 살아가야 했다. 이 부분에대해서는 히브리서 기자가 잘 표현한다.
  • 히브리서 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 히브리서 11:9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 히브리서 11:10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창 12:7-9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가나안 땅에 도착하자 하나님이 다시 나타나셔서 약속을 하신다. 이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신다는 것이다. 분명 '네 자손'이라고 했다. 아직 없는, 태어나지 않은 아들을 하나님은 미리 말씀하신다. 아브라함이 이 약속을 들었을 때 얼마나 설렜을까? 

아브람은 약속을 믿고 그곳에 제단을 쌓는다. 굳이 예배로 번역하지 않아도 아브람의 믿음이 얼마니 대단한가를 잘 보여준다. 그는 하나님을 경험한 후 그대로 멈추지 않고 예물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를 표했다. 제사는 공짜가 아니다. 자신 소유의 일부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양이나 염소 한마리를 현재 돈으로 환산하면 적어도 20-50만 원 정도 가격이다. 요즘이라면 매주마다 이런 예물을 가지고 간다면 아마 폭동이 일어날 것이다.

13-20절 기근과 애굽에서 당한 일


창세기 12:10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놀라운 설명이다. 약속에 땅에도 기근은 온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에 형통만 존재할 거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어쩌면 믿음 이후 더 가정이 어렵고 힘들 수도 있다. 기근을 통해 아브람은 생존 방법을 찾아야 했다. 결국 그는 애굽을 선택한다. 이 부분 역시 안타깝다. 처음 당하는 일이라 어쩔 수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왜 기도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 일로 말미암아 아브람은 큰 어려움에 처한다.


창세가 12:11-13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그의 아내 사래에게 말하되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 하니라


이 부분은 놀랍도 못해 경악스럽다. 물론 현대인의 관점으로 말이다. 아브람은 사래에게 당신을 빼앗으려고 자신을 죽일 수 있다고 말하며, 차라리 먼저 누이라고 거짓말 하겠다고 말한다. 후에 이삭도 부전자전이라고 그대로 따라 한다.
  • 창세기 26장 7절 그 곳 사람들이 그의 아내에 대하여 물으매 그가 말하기를 그는 내 누이라 하였으니 리브가는 보기에 아리따우므로 그 곳 백성이 리브가로 말미암아 자기를 죽일까 하여 그는 내 아내라 하기를 두려워함이었더라


창세기 12:14-17 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이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바로의 고관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서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이끌어들인지라 이에 바로가 그로 말미암아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얻었더라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결국 아브람이 걱정한 일이 그대로 이루어진다. 사실 이 부분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몇 권의 창세기 주석을 봐도 딱히 동의할만한 설명을 못한다. 사래의 얼굴이 검은색톤의 이집트 인에게 하얗게 보여 이쁘게 보였을 것이라는 황당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곳도 있다. 탈북자들이 한국에 내려와 남자의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다고 한다. 그들이 보기에 너무 젊어 보인다고 한다. 잘 먹고 잘살아서? 아니면 사래가 동안이라서? 알 길은 없다. 다만 그렇다는 것이다.

사래가 얼마나 예뻤던지 애굽 사람들이 수근거리 시작했고, 그 소문이 바로에게까지 들린다. 결국 바로가 사래를 데려간다. 대신 사래이 오빠?인 아브람에게 많은 선물을 준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바로의 집에 재앙을 내린다. 아브람은 철저히 하나님께서 보호하신다.


창세기 12:18-20 바로가 아브람을 불러서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느냐 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 내가 그를 데려다가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라 하고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와 함께 그의 아내와 그의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


깜짝 놀란 바로는 바로 아브람을 불러 야단을 친다. 왜 거짓말을 했냐고. 결국 바로는 재앙을 겪고 나서야 아브람을 내보낸다. 후에 출애굽 사건과 너무나 닮지 않았는가. 지중해 근안에 큰 기근이 오자 야곱의 가족이 요셉의 도움으로 애굽으로 내려가고 430년 후에 모세를 통해 열 가지 재앙이 일어나고 결국 애굽을 나온다. 그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많은 재물을 가지고 나온다.
  • 출애굽기 12:35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하여 애굽 사람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매
  • 출애굽기 12:36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사 그들이 구하는 대로 주게 하시므로 그들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

믿음의 길은 순탄하지만 않다. 때로는 폭풍우도 있고, 사막을 만나기도하고, 목마름과 갈증이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마침내 약속하신 것들을 이루실 것이다. 믿음의 사람들은 어떤 환경에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한다.

사도행전 장별 요약

 1. 사도행전 개요

사도행전의 누가의 작품이며, 누가복음 이후 사도들의 생애를 중심으로 복음이 어떻게 세상에 퍼져 나가는가를 보여준다.

예수의 천상통치와 유대인과 예루살렘이라는 특별화에서 사마리아와 땅끝까지라는 보편화로 넘어간다. 초기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관원들과 사도들, 기존의 유대종교지도자들과의 갈등이 기록된다. 하지만 12장에서 헤롯의 핍박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온 세계로 퍼져 나가는 계기가 만들어지면서 급속하게 이방에 전파된다. 바로 이 즈음에 바울의 등장과 함께 13장이 시작된다. 9장에서 다메색 도상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난 후 바울은 잠시 사라진다. 13장에서 공식적으로 등장하면서 선교여행이 시작된다. 이후 바울은 적어도 3번의 전도 여행을 한다.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올라가 서원을 행해다 유대인들에게 붙들려 결국 로마행을 한다. 사도행전은 바울에 로마에 도착한 이야기로 막을 내린다.


2. 사도행전 장별요약

사도행전 1장

데오빌로에게 전에 쓴 글에 대해 이야기한 다음,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라 말한다.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예수는 하늘로 승천한다. 두 천사가 나타나 본 그대로 오리라 말한다. 제자들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들어가 기도하고 죽은 가룟 유다를 대신할 사도로 맛디아를 뽑는다.


사도행전 2장

오순절 날에 성령이 임하고 다른 방언으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큰 일을 전한다. 사람들을 놀라면서 새술에 취했다고 놀린다. 베드로가 일어나 구약 성경은 인용하며 예수의 부활을 논증한다. 사람들이 마음에 찔림을 받고 삼천 명이 제자가 되기로 한다.


사도행전 3장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 성전 미문에 앉아 있는 못 걷는 사람을 고친다. 베드로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6절) 말하면서 오른손을 잡이 이끌아 곧 일어나 걷는다. 사람들이 놀라자 베드로는 솔로몬 행각에서 설교한다.  베드로는 구약을 인용하여 너희들이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셨다고 말한다. 


사도행전 4장

예수가 부활했더 설교한 베드로가 싫은 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은 그들을 잡아 가둔다. 누가는 그날 설교를 듣고 오 천명이 예수가 제자되었다고 말한다. 이튿날 모인 관로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사도들에게 예수가 죽었다 살았나다는 설교를 하지 말라 협박한다. 하지만 사도들은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20절)고 말한다. 놓임을 받은 사도들은 공동체로 돌아가 기도한다. 사람들은 서로 물건을 통용하고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눈다. 요셉이라하는 바나바가 소개된다.


사도행전 5장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거짓말하여 죽임을 당한다. 사도들이 기적을 일으키고 수많은 사람이 모인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사도들이 부활을 전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와 그들을 다시 가둔다.. 이번에 공회를 열어 재판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베드로는 이번에도 역시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30절)리셨다고 말한다. 화가 난 사람들이 사도들을 죽이려 하자 가말리엘이 일어나 이성적으로 말하여 풀려난다. 그들은 풀어주면서 채찍질하여 다시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금한다. 사도들은 능욕을 오히려 기뻐하고 성전에서나 집에서나 예수는 그리스도라 전한다.


사도행전 6장

제자들이 폭발적으로 많아지만 헬라파 유대인들이 구제에서 빠졌다며 원망한다. 사도들은 도저히 모든 일을 감당할 수 없어 지혜와 성령이 충만한 일곱 집사를 추천하여 뽑는다. 스데반이 복음을 전하다 공회에 붙들려 간다.


사도행전 7장

7장은 60절까지 이어지는 기난긴 장이며 모두 스데반의 설교이다 설교의 핵심은 이스라엘은 한 번도 하나님은 제대로 섬긴 적이 없다 말한다. 이스라엘의 전 역사를 개론적으로 소개하면서 그러한 결론에 도달한다. 결국 화가난 군중들은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인다. 이 때 사울이 스데반의 옷을 지켰다.


사도행전 8장

사울(바울)이 핍박에 앞장선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붙잡아 옥에 가둔다. 더는 예수의 제자들을 두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 산헤드린 공회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곳곳으로 흩어진다. 하지만 흩어진 그곳에서 복음을 전한다. 빌립은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하고 침례를 준다.


사도행전 9장

바울에 다메섹으로 가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바울은 완전히 돌아선다. 베드로가 중풍병자를 고치고, 죽은 도르가를 살린다. 베드로의 기적들은 공생애 기간 동안 예수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 있다.


사도행전 10장

이야기는 바울을 떠나 고넬료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환상을 통해 베드로를 청하라라는 계시를 받고 욥바에서 베드로를 청한다. 고넬료가 보낸 종이 도착하기 전 베드로는 기도 중에 환상을 본다. 환상을 부정한 짐승을 잡아 먹으러나는 하나님의 음성과 환상이었다. 베드로는 그럴 수 없다고 말하지만 고넬료의 집에 가서야 환상의 의미를 깨닫는다. 고넬료의 집에서 설교할 때 성령이 임한다.


사도행전  11장

이방인들에게 성령이 임한 모습을 보고 베드로가 놀라 예루살렘에 갔을 이 사실을 알린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성령을 우리가 막을 수 없다며 말하며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안디옥의 많은 사람들이 모여 교회가 만들어진다.


사도행전  12장

헤롯이 유대인들을 기쁘게 하려고 야고보 사도을 잡아 죽인다. 베드로까지 잡으려 했으나 뮤거절 기간이 잡이 옥에만 가둔다. 밤에 천사에 잠자는 베드로를 깨워 탈옥 시킨다. 헤롯이 연설을 하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아 충에게 먹혀 죽임을 당한다.


사도행전  13장

드디어 성령이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 전도자로 보낸다. 이미 그 전에도 많은 사람들이 필요에 따라 전도했다. 하지만 이번은 매우 공식적이며, 성령의 주도하에 일어난 선교여행이다.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에서 전도한다. 아쉽게도 이때 요한(마가)이 그들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린다. 비시디옥 안디옥에서 바울을 전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믿는다. 하지만 유대인들 두 사람을 배척하여 바울은 발의 티끌을 털고 이고니온으로 간다.


사도행전  14장

이고니온에 두 사도가 왔다는 소식을 들은 유대인들이 몰려와서 다른 유대인들을 선동하여 악감을 품게 한다.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하다 발을 쓰지 못하는 사람을 걷게 한다. 사람들이 바나바를 제우스라 하고, 바울을 헤르메스라 말하며 신으로 모시려 한다. 하지만 두 사도가 만류한다. 얼마 후에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온 유대인들이 바울을 발견하고 돌로 쳐 죽인다. 그런데 바울이 다시 일어나 성으로 들어간다. 다시 안디옥으로 돌아가 이방인들이 복음을 받았다고 전한다.


사도행전  15장

첫 번째 예루살렘 공의회가 열린다. 많은 이야기들이 오가지만 결국 이방인들은 율법이나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선언한다.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은 것과 피를 멀리하라 권하는 수준으로 정하고 편지하게 한다. 2차 선교여행이 시작된다. 이때 바나바가 다시 요한(마가)을 데려가자 하지만 바울은 1차 여행 때 중도 포기한 사람을 데려갈 수 없다 말하고 심하게 다툰다. 결구 바나바는 요한을 데리고 떠나고,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각자의 길을 떠난다.


사도행전  16장

바울이 실라를 데리고루스드라에 이른다. 여기서 디모데를 만난다. 어머니가 유대인고로 디모데를 유대인으로 인정받는다. 바울이 환상을 보고 마케도냐로 건너간다. 최초로 아시아를 너머 유럽으로 들어간다. 빌립보에 이르러 귀신들린 여자아이에게서 귀신을 쫓아낸다. 이 일로 화가 난 주인이 사람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실라를 옥에 가두게 한다. 두 전도자는 밤이 되자 옥중에서 찬양한다. 그때 갑자기 옥 터가 진동하며 옥문이 열린다. 깜짝 놀란 간수가 자결하려 하자 바울이 아무도 도망가지 않았으니 참으라고 한다. 깜짝 놀란 간수가 "선생들이어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묻자 바울은 그 유명한 말을 한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며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31절)

이후 바울과 실라는 풀려나 빌립보를 떠난다.


사도행전  17장

빌립보를 떠난 바울과 실라는 암비볼리와 아볼리니아를 거쳐 데살로니가에 도착한다.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전한다. 많은 이들이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설교를 듣고 받아 들이지만 유대인들이 싫어하여 두 사람을 영접한 영접한 야손의 집에 들어가 소란을 피운다. 그들은 바울과 실라가 없자 야손과 다른 사람들을 잡아 가이사가 아닌 다른 왕 예수를 전한다고 거짓 고소한다.  형제들이 바울과 실라는 뵈레아로 보낸다. 다시 아덴(아테네)으로 가서 당시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과 변증하며 예수의 부활을 증언한다.


사도행전  18장

바울은 에덴을 떠나 고린도로 향한다. 그곳에서 로마를 떠나온 아굴라와 그의 아내 브리스길라를 만난다. 잠깐 헤어졌던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와서 고린도에서 바울과 합류한다. 고린도에서 디도 유스도를 만나 들어간다. 그의 곁에 유대인인 회당이 있다. 하나님이 꿈에 바울에게 나타나 두워하지 말고 복음을 전하라 말한다. 바울이 안디록으로 내려간다. 아볼로가 처음 등장하여 에베소서 복음을 전한다.


사도행전  19장

바울이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한다. 2년 동안 에베소에 머물면서 두란도 서원에서 열심히 복을 전하여 에베소 주변에 수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 들인다. 복음을 받은 사람들이 고가의 마술책을 모아 불태운다. 이때 에베소의 은장색 데메드리오가 바울 때문에 장사가 안 되자 사람들을 선동하여 고발한다. 하지만 서기장이 정식으로 재판을 청구하라 말하고 해산시킨다.


사도행전  20장

소란이 잠잠해지자 바울은 다시 에베소의 제자들을 불러 권면한 후 마케도냐로 향한다. 아마도 빌립보 등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한 듯하다. 다시 헬라로 내려가 석 달(3절)을 머물다 수리아로 가려 했으나 유대인들이 훼방을 놓자 다시 마케도냐로 갈 계획을 세운다. 배를 타고 드로아로 가서 떡을 떼교 교제한다. 그날 바울이 밤늦게 강론하자 창틀에 앉아 듣던 유두고가 졸다가 떨어져 사망한다. 사람들이 놀라자 바울이 가서 그를 살려 준다. 드로아를 떠나 멜레도로 향한다.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을 초청하여 권면한다. 이후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떠난다.


사도행전  21장

밀레도에서 배를 타고 고스, 로스, 바다라, 베니게로 향한다. 마지막으로 두로에 상륙한다. 두렝서 이레를 머문다. 이곳에서 제자들이 바울을 찾아와 성령의 감동으로 예루살렘에 가지 말 것을 청한다. 성령이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큰 고난이 있을 거라 알려준다. 하지만 바울은 다시 떠난다. 두로를 떠나 돌레마이에 이른다. 예루살렘에 도착한 바울은 야고보를 만나러 간다. 야고보와 예루살렘 장로들에게 지금까지 자신이 행하고 겪었던 일들을 다 전한다.  하지만 이때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했다는 이야기는 전해 듣고 바울에게 따지는 이들도 있었다. 바울은 오해를 풀고 서원을 행한다. 그런데 하필이면 성전에서 서원을 행하던 바울을 발견한 유대인들이 난동을 부린다. 이 일로 천부장이 들려와 바울을 보호한다.


사도행전  22장

바울은 천부장의 허락을 받고 유대인들에게 변명한다.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부활한 예수를 만났고, 자신은 하늘의 뜻을 받고 행한다고 말한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더 흥분하여 소리지르고, 옷을 벗고 바울을 죽이라고 한다. 천부장이 채찍질을 하려고 하자 바울은 자신을 로마시민이라 밝히고 정식재판을 요구한다. 천부장은 바울이 로마시민임을 알고 두려워한다.(29절) 천부장은 이튿날 결박을 풀고 산헤드린 공회를 소집한다.


사도행전  23장

바울은 천부장의 호의를 받으며 산헤드린 앞에서 자신의 소견을 명확히 밝힌다. 변증을 마무리하면서 자신을 바리새인으로 소개하며 이 사건은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6절)로 심문을  받는다고 밝힌다. 그러자 산헤드린 안에 부활을 믿는 바리새파와 믿지 않는 사도 개인 간의 논쟁이 일어난다. 바울을 죽이려 맹세한 자들이 사십 명이 된다. 천부장은 바울을 가이사라 벨릭스에게 보낸다.


사도행전  24장

닷새 후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장로들과 변사를 데리고 와서 바울을 고소한다. 바울은 그에대해 다시 부활의 소망 때문에 심문을 받는다고 말한다. 벨릭스 총독은 사건 자체가 종교적인 별 의미가 없어 바울은 보호하기 위한 조처로 바울을 다시 옥게 가둔다. 하지만 별다른 구속을 하지 않고 자유롭게 둔다.


사도행전  25장

이년 후에 벨릭스가 물러나고 베스도가 후임 총독으로 온다. 부임 후 사흘 후에 베스도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자 기다렸다는 듯이 예루살렘의 대제사장들과 귀족들이 바울을 풀어 달라고 한다. 그들은 길에 매복했다 바울을 죽이려는 계획이었다. (3절)  가이사랴로 내려온 베스도는 바울을 재판석에 부른다. 바울은 자신이 죄가 없다고 말하고 가이사에게 호소한다.(11절) 로마시민이 가이사에게 상소하면 지방에서 재판하지 못하고 로마에 이송되어 재판을 받게 된다. 결국, 바울은 가이사랴를 떠나 로마로 이송될 것이다. 로마로 떠나기 전 헤롯 아그립바와 버니게 앞에서 바울이 자신을 소개한다.


사도행전  26장

베스도 앞에서 바울이 변명한다. 26장은 전체가 바울의 변증이다. 지금까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말하고, 베스도에게 복음을 전한다. 유대교를 잘 아는 아그립바에게 바울은 선지자를 언급한다. 그러자 놀란 아그립바가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라고 말한다.(28절) 바울은 이야기를 마치고 다시 감옥으로 돌아간다. 왕과 총독은 아무런 죄가 없지만 가이사에게 호소하여 로마로 압송한다고 말한다.


사도행전  27장

바울의 로마 압송이 시작된다. 하지만 가는 길에 풍랑으로 배가 깨진다. 


사도행전  28장

폭풍으로 배가 깨져 죽을 지경에 이르지만 겨우 바다에서 구출되어 밀레도 섬에 오른다. 그곳에서 불을 피우다 뱀이 바울을 물지만 죽지 않는다. 원주민이 깜짝 놀라 바울을 신으로 숭배하려 하지만 그러지 말라 만류한다. 보블리오라는 높은 신분의 사람이 바울을 영접하고 사흘 동안 머물게 한다. 그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있는 것을 보고 바울이 안수하여 낫게 한다. 바울은 다시 배를 타고 로마로 들어간다. 로마에 도착에 바울 옥에 갇히지만, 출입이 자유로운 곳이다. 로마에서도 복음을 전한다는 이야기로 사도행전은 마무리된다.

목사가 글쓰기 실력을 높이는 방법

1. 글 못쓰는 목사들


목사들은 전체적으로 글을 잘 못쓴다. 목사들은 자의든 타의든 글을 써야하고 쓸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목사는 왜 그렇게 글을 못쓰는 것일까? 이유는 단 하나. 배우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승리해야합니다. 어떤 상황에도 믿음을 가지고 승리합니다.

뭐 이정도 수준의 글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또 하나 치명적인 약점, 어디서 많어 본 듯 예화를 가져와서 글 속에 집어 넣는것이다. 너무나도 뻔한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이러한 창의성 없는 글이 글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목사들이 글을 못 쓰는 이유는 배우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다른 하나는 목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렇게 글을 써도 누구나 읽어 줄 거라 생각한다. 정말 심각한 수준이다. 

그렇다면 목사들이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답도 정말 간단하다.
글쓰기를 배워라!
글을 많이 써라!
교만한 마음을 버려라!
자꾸 가르치려 들지 마라!
이 말이 저 말이고, 저 말이 이 말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말 중요하다. 글쓰기를 배워야 한다.

2. 글을 잘 쓰기 위한 기본 연습들


1) 일기 쓰기

나는 항상 글쓰기를 배우려는 이들에게 가장 글쓰기를 배우고 싶다면 일기부터 쓰라고 한다. 일기를 쓰다보면 글을 결국 쓰게 된다. 일기는 다양한 폭을 가지고있어서, 개인적인 감정이나 여행, 관찰, 사색 등의 주제로 다양한 글을 쓸 수 있다는 점에서 최고의 방법이다.

2) 주제를 정해서 글을 써보기 주기적으로

글을 배워 가면서 항상 글쓰기가 뭔지를 제대로 배우러면 쓰는 것이다. 쓰지 않고 글쓰기를 배우는 방법은 없다.
목사는 설교자이기 때문에 수많은 설교를 해야한다. 설교는 대단히 논증적이다. 일종의 증명이자 주장이다. 설교를 명료하게 잘하기 위해서는 주제를 정하고 글쓰기를 해보기를 추천한다. 

3) 책을 많이 일어라

목사의 글쓰기는 한계가 있다. 일반글을 쓰기 힘들다. 하지만 목회적 관점에서 다독이는 글을 쓰고 싶다면 그런 글을 많이 읽어야 한다. 다른 목사들은 어떤 주제로, 어떤 형식으로 글을 쓰는지를 읽고 배워야 한다.

4) 검열을 받아라

처음부터 검열 받으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느 수준이 되면 반드시 글쓰기을 잘 하는 이들에게 배워야 한다. 

3. 글은 곧 자신이다.

글은 자신이다. 무엇을 어떻게 쓰든 글은 자신이다. 하지만 글을 쓰지 않아면 생각이나 이성이 명료화되지 못한다. 글은 쓰면 쓸수록 늘고, 이성과 생각의 틀도 잡혀 간다. 물론 좋지 않을 수도 있지만. 결국 글을 많이 쓰고, 많이 연습해야 늘게 된다.




마태복음 13장 일곱 가지 천국 비유

마태복음의 주제는 ‘하나님의 나라’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표현은 거의 사용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천국(τῆς βασιλείας τῶν οὐρανῶν)’를 사용한다. 마태는 유난히 ‘하늘’이란 단어를 좋아하는 것 같다. 13장에는 천국에 대한 7가지 비유가 등장한다.

① 씨뿌리는 비유

② 가라지의 비유

③ 겨자씨의 비유

④ 누룩의 비유

⑤ 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

⑥ 진주 장사의 비유

⑦ 그물의 비유


1-4는 생물과 관련된 비유이고, 5-7은 무생물이다. 여기서 5-6은 보화에 대한 비유이고, 마지막 7번째 비유는 그물로 물고기를 가르는 비유이다. 가장 많은 부분은 첫 번째 씨 뿌리는 비유이지만 점진적으로 종말으로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모든 비유는 종말론적이다. 7가지 비유에서 말하고 싶은 핵심은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임했으니 너희들이 그것을 취하라는 것이다. 지금이 종말의 때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비유는 철저히 종말론적이다.


종말론적 삶을 살아가면서 사람들은 천국을 얻기 위해 어떤 대가를 지불해야하고, 어떤 방식의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이제 7가지 비유를 간략하게 살펴보자.


1. 씨 뿌리는 비유

마태복음 13:1~9, 13:18~23

씨 뿌리는 비유는 마지막 땅인 좋은 땅에 대한 것이다. 이전의 세 밭은 바르지 않은, 잘못된 땅이다. 네 밭이라는 표현은 옳지 않다. 농부는 길 가에 씨를 뿌릴 만큼 어리석지 않다. 하지만 씨를 뿌리다보면 씨는 길 가에, 돌 위에, 가시덤불에 떨어지기 마련이다. 이런 곳에 떨어진 씨앗을 결국 열매를 맺지 못한다. 




2. 곡식과 가라지의 비유

마태복음 13:24~30, 13:36~43

가라지의 비유는 상당히 신화적으로 읽힌다. 하지만 농사를 지어본 이들이라면 가라지의 비유가 얼마나 현실적인지를 알 것이다. 분명히 벼만 뿌렸지만 얼마가지 않아 수많은 피와 잡초들이 나기 시작한다. 농부가 의도하지 않은 것들이다. 종이 와서 가라지가 자라는 것을 보고 뽑자고 한다. 하지만 주인은 가리지를 뽑다가 곡식도 뽑히게 될지 모르니 그대로 두라고 한다. 하지만 마지막 때에 추수할 때 가라지를 먼저 뽑아 묶어 불사를 것이다. 현재가 전부가 아니다. 이 비유는 철저히 종말론적 비유이다. 하지만 지금여기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종말론적 시각을 가져야 함을 일러준다. 가라지가 흥황하는 지금 여기의 현실은 암담하기만 하다. 하지만 마지막 날에 하나님은 세상을 새롭게 할 것이다.


3. 겨자씨의 비유

마태복음 13:31-32

겨자는 히브리인들에게 ‘가장 작다’는 표현의 하나이다. 우리나라의 깨알처럼 작다는 표현과 비슷하다. 처음 하나님의 나라는 작고 보잘 것 없지만 결국에는 장대하게 될 것을 이야기한다. 아무리 작아도 생명이 있다면 발화할 것이고, 결국 거대하게 부풀려 질 것이다.




4. 누룩에 관한 비유

마태복음 13:33

누룩은 섞여진다. 아무도 모르게. 감추어진 존재로 있지만 사람들도 모르는 사이에 부풀어 오를 것이다. 이것이 교회다. 교회는 세상 속에서 누룩처럼 살아간다. 하지만 어느 순간 세상을 뒤집어엎을 것이다.


5. 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

마태복음 13:44

하나님의 나라는 우연히 발견된다. 그렇지 않은가. 사람의 수고와 노력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하나님의 나라는 숨겨져 있다. 하지만 그것을 발견할 때는 그 기쁨을 말로 형언하기 힘들다. 우리는 발견이란 단어 속에서 가치에 대한 인식이 들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보화인지 돌덩이인지 모른다면 진정한 기쁨도 없으며, 자신의 소유를 팔지 않을 것이다. 영원한 가치를 안다면 그는 곧 자신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 밭을 살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남는 장사이기 때문이다.


6.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의 비유

마태복음 13:45-46

마태복음 7:7에서 주님은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좋은 진주장사는 밭의 감추인 보화의 비유처럼 가치에 대한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구하는 자는 받는다’는 응답의 원리가 전제되어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찾는 자들에게 결국 드러날 것이다.



7. 그물의 비유

마태복음 13:47-50

마지막 그물 비유는 확실히 종말에 관한 경고다. 마지막 때가 되면 하나님은 모든 종류의 사람들을 가를 것이다. 어떤 사람은 우편에, 어떤 사람은 좌편에 모이게 한다. 그리고 죄인은 영벌에, 의인은 영생을 선물로 준다.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

 1. 성경 해석이란 무엇인가.

성경 해석을 암호 풀 듯 풀거나 고대문서 푸는 정도로 생각하면 안된다. 물론 전문 과정으로 들어가면 히브리어와 아람어, 헬라어를 공부하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해야 하지만 성경을 해석하는 것은 그런 것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말씀을 대하라.

먼저 해석이란 의미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한다는 마음으로 성경을 읽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또한 순종의 마음으로 읽어야 한다.

영적으로 대하라.

영적이라함은 이상한 신기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의 가치와 기준을 넘어서 하나님 나라의 기준과 관점을 가지라는 말이다. 영적은 성령의 인도함에 따라 말씀을 깨닫는 것을 말한다.

적용을 위하여 읽으라

너무 성급하게 적용으로 나아가면 안 되지만 결론은 적용이어야 한다. 히브리어로 '들어라'(쉐마)는 '귀로 들어라'는 뜻도 있지만 '순종하라'는 뜻이기도 하다. 히브리즘은 '듣다'와 '행하다'가 하나로 묶여 있다.

2. 성경 해석의 원리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성경 해석 원리는 세 가지다. 하나는 언어적, 둘째는 역사적, 셋째는 신학적 해석이다. 세 가지는 따로따로 구분학기는 했지만 분리되는 것은 아니다.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책에 따라 언어적 부분을 강조할지, 역사적인 부분을 강조할지, 신학적 부분을 강조할지는 상황 속에서 판달해야 한다. 이제 세 가지 원리를 알아보자.

언어적 해석

언어적 해석법은 기록된 언어를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구약은 히브리어이고, 신약은 헬라어로 기록되어 있다. 가끔 다른 언어가 일부 섞여 있지만 두 언어가 대부분이다. 한글은 한글만의 독특한 문법적 특징이나 용례가 있듯 히브리어도 마찬가지다. 히브리어의 경우 동사가 우선시 되며, 만약 동사가 문장의 가장 앞으로 나온 문장은 동사가 강조되어 있고, 문장 전체를 이끄는 역할을 한다.

평행 법이나 반복법 등 다양한 히브리어의 특징을 이해하는 것이 좋다. 만약 히브리어를 모른다면 그러한 일차적 분석은 어쩔 수 없으니 넘어가야 한다. 번역된 문장 안에서 최대한 바르게 해석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1)문맥적 해석, 2) 문자적 해석, 3) 문법적 해석을 사용한다.


역사적 해석

역사적 해석은 역사적 맥락에서 해석하라는 말이다. 비근한 예로 형수취수제와 같은 제도를 지금도 옹호한다면 어떻게 될까?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또 다른 예로 바울이 여자가 교회에서 머리를 가리라는 말 역시 역사적 맥락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성경은 역사 안에서 기록된 글이며, 문자와 문화를 통해 계시 되기 때문이다.


신학적 해석

신학적 해석은 성경의 기록 목적과 의도에 맞게 해석하라를 뜻이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고, 하나님은 어떤 일을 행하시고 등등에 맞게 해석을 해야 한다. 하지만 과도한 신학적 해석은 매우 위험한 해석법이다. 전체적으로 균형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시편 2편

1. 시편 2편 개요

 시편 2편 구조

1-3절 열왕들의 연합

4-6절 하나님의 비웃음과 선언

7-9절 시온의 왕

10-12 아들과 화해하라

2. 시편 2편 주해

1-3절 열왕들의 연합

시편 2:1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למה רגשו גוים ולאמים יהגו־ריק׃

시편 2편을 하나님의 놀람으로 시작한다. '아니 어떻게 된 일인가?'의 뜻이다. 이유는 나라가 분노하고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기 때문이다. 그들의 헛된 일이란 2-3절에서 설명된다. 먼저는 여호와와 그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는 것이며,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는 것이다. 신약적 관점으로 보면 하나님의 통치와 영향력으로 읽을 수 있다. 하지만 다윗시대의 관점으로 읽는다면 이스라엘의 통치권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 에돔과 모압, 암몬이 반역을 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들은 온전치 못하고, 본문을 분명하게 해석하기는 쉽지 않다.

누가는 사도들이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당한 일을 회상하며, 함께 기도하는 장면에서 시편 2편을 끌고 온다.

  • 행 4:25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하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 행 4:26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리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의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 행 4:27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세하여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슬러
  • 행 4:28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헤롯과 빌라도가 합하여 하나님께 종 예수를 거스른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도행전 4장은 산헤들린, 즉 유대인들이 예수 믿는 이들을 핍박한 상황 아래 아래 있다. 그렇다면 26절에서 '세상의 군왕들과 관리'들을 산헤드린을 말할 것이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시편 2편을 다시 읽는다면 세상과 이방은 문자적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의 이스라엘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실제로 시편뿐 아니라 많은 구약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하고 대적하는 이들에게 이방인과 같은 존재로 그리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여기서 문자적으로 나라와 민족을 구분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분노는 하나님께 계명에 순종하는 것에대한 부당함이다. 죄인들은 항상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에 대한 분노가 서려 있다. 왜 우리가 당신(하나님)에게 순종해야 하지?라는 불만으로 가득한다. 고대에나 지금에나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이러한 분노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불순종이자 반역이다.

시편 2: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יתיצבו ׀ מלכי־ארץ ורוזנים נוסדו־יחד על־יהוה ועל־משיחו׃

2절은 1절의 구체적인 해석이자 행위이다. 그들은 이제 '나선다' 앞으로 나아가서 뭔가 일을 꾸미고 있다. 

나서며

번역에는 분명히 드러나지 않지만 히브리 원어는 '나선다'는 '아짜브'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기록되어 있다. 이 구조를 이후의 모든 내용이 이 동사가 끌고 간다는 뜻이다. 주동사로서 역할을 하는 것이다. 히브리어에서 뭔가를 강조할 때 항상 중요한 동사를 앞세운다. '아짜브'는 '서다'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왕들과 권련자들이 서서 회의를 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서다'라는 표현은 긴박성과 의지를 드러낼 때 사용된다.

  • 창세기 28장 13절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 출애굽기 34장 5절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에 강림하사 그와 함께 거기 서서 여호와의 이름을 선포하실새

나서며 서로 꾀하여

'꾀하다'라는 히브리어는 '하사드'라는 히브리어로 '서로 말하다' '서로 조언하다'라는 뜻이다.  서로라는 말에도 유의해 보자. 이들은 누군가에 의해 강압적으로 모인 것이 아니라 자원한 것이다. 스스로 원하여 모인 것이다. '서로'는 이 점을 분명히 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즐겁고 행복하다. 그들은 이것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은 자를 대적하며

그들의 분노의 대상이자 벗어나야할 대상이다. 여호와라는 단어가 이방인이나 대적을 향할 때는 심판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시편 기자는 의도적으로 엘이 아닌 여호와를 등장시킴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암시하고 있다. 

시편 2:3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

ננתקה את־מוסרותימו ונשליכה ממנו עבתימו׃

2절이 생각과 언어의 문제였다면 3절은 실제적 행위의 문제로 넘어간다 .매우 짧고 간략하지만 핵심이 들어가 있다.

그들의 맨 것, 그의 결박

시편 2편 안에서 맨 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을 말한다. 이들은 탐욕과 악을 즐기고 싶은데 하나님의 계명을 그것을 금지 한다. 그러므로 그것들을 끊고 싶어한다. 맨 것과 결박이란 표현은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그들의 해석이라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시편 1편에서 의인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한다. 하지만 이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자신들을 구속하는 존재로 말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계명을 지믕로 여기는 것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신다.

  • 미가 6:3 이르시기를 내 백성아 내가 무엇을 네게 행하였으며 무슨 일로 너를 괴롭게 하였느냐 너는 내게 증언하라

4-6절 하나님의 비웃음과 선언

두 번째 연은 하나님의 선언이다. 1-3절이 사람들의 작당과 모의, 그리고 선언이라면 이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비웃음으로 시작하며,  시온의 왕으로 세웠다고 선언하신다. 1절과 4절과 5절 초반에 대응하고, 2-3절은 5-6절에 대응한다.
사람들의 분노가 하나님의 진노로 바뀌고, 사람의 꾀와 모의가 하나님의 비웃음과  선언으로 대체된다.

시편 2:4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하늘에 계신은 신적 존재를 말한다. 군왕과 관원들은 땅에 있다. 그들의 모의와 계획이 아무리 높아도 하늘에 이르지 못한다. 인간의 지혜보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능하다.

  • 고전 1: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인간의 지혜는 하나님의 비웃음 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시편 2:5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그들을 놀라게 하여 이르시기를

인간들의 분노는 하나님이 자신들을 통치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반항이다. 하나님의 진노는 인간의 부당한 분노에 대한 정의과 공의다. 인간의 분노는 탐욕적이고, 이기적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인간의 진노를 정죄한다.


시편 2:6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왕을 세우신다. 그러니까 반역자들이 하나님의 통치를 벗어나려는 모의에 대한 분명한 선언으로, 오히려 더욱 강력한 통치를 할 것임을 선언한다. 그는 이 땅을 다스리는 왕이 될 것이다.
왕이 세워진 장소는 시온이다. 시온은 거룩한 산으로 표현된다. 원래 이곳은 성전이 세워진 작은 돌산이었다. 예루살렘에 거대한 바위산 위에 성전과 다윗의 성이 세워져 있다.


7-9절 시온의 왕

이제 세 번째 연으로 넘어간다. 세 번째 연은 시온에 왕을 세우시고, 그가 어떻게 통치할 것인가를 설명하나.

시편 2:7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하나님은 시온의 왕을 양자로 입양한다. 고대 세계에서 정통성을 가지려면 그는 신의 아들이어야 한다. 로마의 황제를 비롯하여 고대의 수많은 왕들은 조서를 내리거나 율령을 반포할 때 '나는  ~~신의 아들이다.'를 선언한 후 시작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자신의 아들로 입양한 적도 없고 선포한 적도 없다. 오직 이스라엘의  왕만이 하나님의 전정한 아들이다. 신약에서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 소개되며, 예수를 믿는 자들 역시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

  • 마태복음 3장 17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 마태복음 4장 6절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 마태복음 5장 45절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사역은 곧 이 땅에서 왕임을 선언하는 것이다. 예수는 왕이며, 그리스도인 역시 왕으로 소개된다. 예수는 이 땅에서 왕적 능력으로 사단의 세력과 싸우며 귀신을 몰아낸다. 그리스도인 역시 예수의 이름으로 사단의 세력과 싸운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의 공격 무기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 에베소서 6장 17절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 히브리서 4장 12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시편 2:8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내게 구하라

'내게 구하라'는 응답을 약속한다. 모든 권한이 하나님께 있음을 말한다. 다른 의미에서 구하지 않으면 주지 않는다는 뜻도 포함된다. 믿음은 능동적이어야 한다. 생명이 있다면 생존의 욕구가 있고, 성장의 갈망이 있듯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선한 갈망을 가져야 한다. 영적 갈망은 거듭난 자의 본성이다.

  • 누가복음 11장 10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이방 나라를 .. 주리니
모든 세계를 갈망해야 한다. 이것은 야망이 아니다. 온 땅에 충만하여 다스리라는 소명이다. 세상의 어느 곳도 불의과 악이 있어서는 안 된다. 모든 나라와 민족들이 하나님을 섬길 때까지, 땅 끝까지 복음을 증거해야 한다.

시편 2:9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통치의 도구는 철장이며, 방식을 깨뜨림이다. '질그릇 같이'는 쉽게, 아주 쉽게 부순다는 뜻이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들은 아무 것도 아니다. 그들을 철장의 질그릇처럼 부서질 것이다.

  • 요한계시록 2장 27절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 요한계시록 12장 5절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 요한계시록 19장 15절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그들을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10-12 아들과 화해하라

이제 마지막 경고 또는 권고다. 

시편 2:10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받을지어다

다시 군왕들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경고다. 그들을 지혜를 얻어야 한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알고, 어떻게 처신해야 바른 성공적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시편 2:11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그들이 배워야 할 교훈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고 떨며 즐거워해야 한다. 이질적인 세 표현은 경외라는 단어에 들어가 있다. 하나님을 얕잡아 보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의로운 자들에게 복을 주니, 너희들이 의롭다면 즐거워해야 한다. 하지만 불의한 자들은 하나님을 싫어할 것이다.


시편 2:12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그의 아들은 시온의 왕이다. 입맞춤은 화해의 인사다. 만약 화해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가 급하게 그들에게 임하여 그들을 멸망시킬 것이다. 여기서 '길에서'라는 표현은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급작스러운 상황이다.
결론은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다.

마태복음 2장 동방박사의 방문

 1. 마태복음 2장 개요

마태복음 2장의 예수의 탄생과 동방박사들의 방문이 소개된다. 동방박사들이 가고 난 후 헤롯이 베들레헴 주변의 두살 아래의 아이들을 학살하는 하는 사건을 소개한다. 이후 헤롯이 죽자 아들 아켈라오가 다시 유대의 왕이 되자 요셉은 가나안에 머물기를 두려워하여 갈릴리 나사렛 동네로 돌아간다. 2장은 아래와 같이 분석했다.

  • 1-12절 동박박사들의 경배
  • 13-18절 헤롯의 유아학살사건
  • 19-23절 애굽에서 갈릴리로


2. 강해

1-12절 동박박사들의 경배

  • 마태복음 2:1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 마태복음 2: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 마태복음 2:3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 마태복음 2:4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으니
  • 마태복음 2:5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 마태복음 2:6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 마태복음 2:7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 마태복음 2:8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 마태복음 2:9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 마태복음 2:10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 마태복음 2:11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 마태복음 2:12 그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헤롯 왕 때에

2장은 헤롯 왕때에 시작한다. 헤롯은 이두매 사람으로 마카비 시대에 에돔 지역에 사람던 사람들을 강제적으로 할례를 시켜 반유대화 시킨 사람들이다. 당시 이두매 사람들은 유대인들을 부러워하는 동시에 적대시했다. 자신들의 열등한 신분을 만회하기 위해 온갖 비열한 방법을 사용했다. 아버지 헤롯이 로마에 돈을 주고 입지를 다지고, 헤롯대제가 유대지역의 왕위를 받게 된다. 신약에 등장하는 헤롯들이다. 헤롯 안티파터 1-2세는 등장하지 않고 아켈라오 세대는 이름만 몇 번 등장한다. 헤롯 아그립바1세가 예수가 '여우'라 부른 사람이다. 아그립바로 번역된 헤롯은 헤롯 아그립바 2세로 사도행전 바울과 이야기한다. 마태복음 2장은 헤롯대제를 말한다.

헤롯 안티파터 1세

헤롯 안티파터 2세

헤롯대제(예수님 탄생)

아켈라오-헤롯 안디바-빌립2세

헤롯 아그립바1세(공생애 기간)

헤롯 아그립바2세(바울, 사도행전)

헤롯 왕 때라는 표현은 로마의 식민지 아래의 암울한 시대적 배경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다윗의 후손이 아닌 이두매인에의해 지배 당하는 유대인들의 목자 없는 시대이다. 헤롯 안에는 이두매인들의 열등감과 자신의 왕위를 지키기 위하여 잔인하게 가족들까지 학살하는 폭력성이 공존하는 인물이었다.


동방박사들의 방문

동방막사는 마고스(μάγος)인데 현대의 과학자, 인문학자, 천문학자, 사제 등이 조합된 인물이다. 이러한 조합은 중세까지 엄격하게 분리되지 않았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이르러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말한다.

동방 박사들의 말은 헤롯과 예루살렘을 소동케했다. 이미 헤롯 왕이 엄연히 있는데 유대인의 왕에게 경배하러 왔다는 소식은 경악스러운 것이었다. 소동하다는 표현은 트랏소(ταράσσω)마태복음 14:12에서 괴성을 지르고 미친듯이 날뛰는 상태를 말한다.


선지자로 기록된 바

헤롯은 곧 댜제사장고과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묻는다. 그러자 그들은 너무나 쉽게 미가 5:2을 인용하여 베들레헴이라 말한다. 베들레헴은 다윗의 고향이다.

  • 마태복음 2:6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 미가 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마태복음의 인용은 70인경에서 가져온 것이다. 70인경 미가 5:2과 마태복음을 비교하면 완전히 일치하지 않고 응용하여 변형했음을 알 수 있다.

  • LXX διὰ τοῦτο δώσει αὐτοὺς ἕως καιροῦ τικτούσης τέξεται καὶ οἱ ἐπίλοιποι τῶν ἀδελφῶν αὐτῶν ἐπιστρέψουσιν ἐπὶ τοὺς υἱοὺς ισραηλ
  • 마 2:6 Καὶ σύ, Βηθλέεμ γῆ Ἰούδα, οὐδαμῶς ἐλαχίστη εἶ ἐν τοῖς ἡγεμόσιν Ἰούδα· ἐκ σοῦ γὰρ ἐξελεύσεται ἡγούμενος, ὅστις ποιμανεῖ τὸν λαόν μου τὸν Ἰσραήλ.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예수의 탄생을 성경이 이미 기록하고 있고, 예언했음에도 그들은 아무도 관심이 없다. 심지어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을 찾아 경배하러 갈 때도 아무도 동행하지 않는다. 율법을 가지고 있고, 성경을 가지고 있지만 사용하지 않는, 존중하지 않는 이들을 발견한다.


헤롯의 술수

헤롯은 자신을 가장한다. 그는 동방박사들에게 만약 찾거든 자신에게도 말하여 자신도 경배하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는 과연 거짓의 사람이며 악의 사람이다. 그는 후에 자신의 왕위를 지키기 위해 죄없는 수많은 아이들을 학살할 것이다.


동방박사들의 경배

박사들이 예루살렘을 나와 베들레헴으로 향할 때 다시 별이 그들을 인도한다. 성경 안에서 별은 종종 하나님의 천사나 그와 비슷한 신적인 존재들을 표현할 때 사용된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R.T 프랜스는 별의 뜨고 짐은 사람의 운명과도 상관이 있음을 잠깐 언급하고 지나간다. 분명 의미 있는 일이나 여기서는 그냥 넘어가자. 별은 베들레헴의 마구간으로 인도했을 것이다. 그곳에 아기 예수가 태어나 뉘어져 있었다.

박사들은 아기 예수를 발견하고 경배한다. 가져온 보배 함을 열어 황금, 유향, 몰약을 예물로 드린다. 황금은 왕권을, 유향은 제사장직을, 몰약은 십자가의 죽음을 상징한다고 한다. 좀 너무 과한 해석이다. 이러한 해석은 어디에도 지지를 받지 못한 이후의 교부들이 헬라 적 전통 아래에서 해석한 것이다. 당시 헬라의 신이나 왕들에게 경배할 때 황금과 몰약을 드리는 것이 예의라고 한다. 이유야 어떻든 세 가지 예물은 당시로써 최고의 가치를 지는 사치품과 고가품이었다. 박사들은 아기 예수를 왕으로 경배했고, 예물도 왕에게 드리는 예물을 드린 것이다.

박사들의 경배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찰스 스펄전은 본문을 강해하면서 동박 박사들이 치렀을 무한한 희생을 강조한다. 그들은 수천 Km을 걸어왔다. 여행이 위험했던 시기에 그 길은 목숨을 담보로 한 위험한 여행이었다. 또한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것을 예수에게 드렸다. 최고의 경배이다. 그러나 진작 경배해야 할 유대인들은 아무도 경배하지 않았다. 요한복음은 1:11이 참으로 가슴에 와 닿는다.

  • 요한복음 1: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동방박사들은 꿈에서 헤롯에게 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고향으로 돌아간다.


13-18절 헤롯의 유아학살사건

박사들이 떠난 후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애굽으로 피난하게 한다. 우리는 이 부분에서 누가복음을 조금 비교할 필요가 있다. 누가복음에는 예수의 부모가 아기 예수를 성전에 데려가 할례를 받게하는 장면이 나온다. 16절을 보면 헤롯이 죽인 아이들의 나이는 '두살 아래'이다. 이것은 헤롯의 아이 학살 사건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적어도 2년 정도가 흘렀다는 말이다. 요셉이 아기 예수를 데리고 애굽으로 내려간 때는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랐을 시기일 것이다. 최소한 100일은 지나지 않았을까 추측할 수 있다. 더 늦었을 수도 있다. 하여튼 요셉은 헤롯의 칼을 피해 애굽으로 피신한다. 마태는 즉각적으로 요셉의 피신은 출애굽 사건과 결부 시킨다.

야곱의 때에 가나안에 엄청난 기근이 찾아온다. 마침 애굽에 야곱의 잃어버린 아들 요셉이 총리로 있으면서 곡물을 저장한다. 이후 야곱의 가족들은 애굽으로 내려가 400년이 넘도록 그곳에 머문다. 때가 되자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불러 내신다.  마태가 인용한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는 구절은 호세아 11:1이다.

  • 호세아 11장 1절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거늘

호세아 11:1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불쌍히 여겨 그들은 애굽에서 불러내 자녀 삼으셨지만,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싫어하는 장면 속에 등장한다. 결국 그들을 앗수르에 줄 것이라 말씀하신다. 마태는 호세아의 구절을 통해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는 동시에  고통 당하는 백성들을 구원하시겠다는 결의도 드러내신다.

우린 여기서 한 가지에 주목해야 한다. 이스라엘 역사는 가나안의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피신한다. 하지만 마태가 인용한 부분을 출애굽 사건이며, 출애굽에서의 유아학살사건과 헤롯의 유아학살 사건을 동일시한다. 모세는 그 살육의 현장을 벗어나 애굽에서 빠져나온다. 하지만 요셉은 학살사건이 가나안에서 일어났고 반대로 애굽으로 피신한다. R.T 프랜스는 결정적 결함으로 보지만, 이건 역설이다. 즉 안식의 땅이요 축복의 땅인 가나안이 애굽이 되어 버린 것이다. 헤롯은 출애굽 시대의 포악한 바로와 동일시된다. 영적인 애굽은 바로 팔레스타인 땅이다.


라마의 통곡

마태는 헤롯의 학살 사건을 예레미야 31:15에서 인용하여 통곡의 기원을 살핀다. 베들레험에서 통곡은 베냐민의 어머니 라헬의 슬픔과 통곡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창세기 35장에서  벧엘에서 제단을 쌓고 내려오면서 에브랏(베들레헴) 근처에서 베냐민을 낳으면서 난산을 한다. 결국 베냐민을 낳고 라헬은 죽음을 맞이한다. 하지만 예레미야는 라헬의 통곡을 라마의 통곡으로 바꾸어 설명한다.

라마는 베냐민 지파에 속하는 장소이다. 이들은 기원전 586년 바벨론에 의해 멸망을 하고 포로로 끌려가게 된다. 이때 라마에 포로들이 모여 손발이 묶여 바벨론으로 끌려간다. 바벨론은 모든 사람을 끌고 가지 않고 건장하고 젊은 사람들, 왕족과 귀족들을 끌고 갔다. 남겨진 건 힘없고 나이 든 사람들이었다. 즉 대부분은 연로한 부모들이었다. 자식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모습을 보면 부모들을 자녀를 잃은 슬픔에 통곡을 한 것이다. 예레미야는 당시의 사건을 라헬의 통곡에서 가져다 사용했다.


학살사건은 정말 있던 것일까?

주석이나 인터넷 자료를 찾아보면 헤롯의 유아학살 사건에 대해 대단히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이유는 성경 이외의 어떤 문헌에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의 의심을 충분히 공감하지만 많이 어리석다. 우린 이렇게 질문할 수 있다. 외부의 문헌은 모든 것을 기록할까? 절대 아니다. 우리가 일기를 쓴다고 생각해보자. 그럼 하루에 일어난 모든 일을 다 기록할까? 아니다. 그럼 왜 다른 외부 문헌에 유아학살사건이 기록되어있지 않다하여 그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단정하는 것일까?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이다. 차라리 일어났는지 일어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라고 하는 것이 더 정직한 표현이 아닐까?


19-23절 애굽에서 갈릴리로

2장 종결부는 짧게 언급된다. 헤롯이 죽자 요셉은 다시 유대로 돌아 온다. 하지만 아들 아켈라오가 다시 왕이 되자 목숨의 위협을 느끼고 꿈에 지시를 받아 갈릴리 돌아간다. 마태는 선자가의 기록을 따라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는 말로 마무리 한다. 

문제는 구약성경 어디에도 나사렛이란 단어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원어적 의미로 살펴야 한다. 

나사렛(Ναζαρέτ)이라 단어는 신약에서 12번 정도 언급된다.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나사렛이 히브리어 네체르(사 11:1)를 직역한 것으로 추측한다. 하지만 이 단어가 과연 헬라어 나사넷과 같은 의미인지는 알 길이 없다. 또한 네체르와 지명인 나사렛이 어떻게 동일시되었는지도 상당히 모호하다. 2천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당시의 의미를 파헤치기는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현대인들이 이해하지 못한 의미가 당시에는 충분히 통용되었을 것이다. 

마태복음 1장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와 탄생

 1. 마태복음 1장의 개요

마태복음의 주제는 '하나님의 나라'이다. '나라'는 '왕국'을 뜻한다. 마태복음 1장은 예수님의 족보(기원)와 탄생을 설명하여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한다. 족보는 다윗의 후손으로서 왕으로 드러내고, 탄생은 사람의 성이 아닌 성령에 의해 탄생했음을 말한다. 족보는 모두 14라는 숫자에 맞춰져 있으며, 다윗을 드러낸다. 1장의 구조는 1-17절까지 족보, 18-25절까지는 탄생 설화를 말한다.

  • 1-17절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 18-25절 성령에 의한 잉태와 탄생


2. 강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마 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아브라함과 다윗은 유대인들에게 두 가지 기원자이다. 아브라함은 이스라엘의 민족의 기원자이며, 다윗은 국가로서의 진정한 왕을 뜻한다. 다윗의 후손이란 구절을 통해 알듯이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며, 이스라엘은 다윗의 후손을 통해 통치 된다고 믿는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정통성은 다윗의 후손인가 아닌가로 결정된다.

다윗언약(The Davidic Covenant) 

다윗 언약은 삼하 7:1-17까지의 내용이며, 가장 핵심적인 구절은 16절이다.

  • 삼하 7:16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나님은 다윗에게 사울처럼 왕위를 주고 뺏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뺏지 않겠다고 하신다. 이후의 모든 왕들, 정통성을 오직 다윗의 후손일 때 가능하다. 북이스라엘이 정통성을 상실한 이유는 성전을 버린 것도 있지만 첫 왕인 여로보암이 다윗의 후손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카비 시절 왕은 레위지파 제사장들이었다. 이후 헤롯도 이두매인이기에 다윗의 후손에 대한 열망은 신약시대의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그렇기 때문에 마태는 가장 먼저 예수 그리스도가 다윗의 후손임을 밝히고 시작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된 것이다.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1아브라함 - 2이삭- 3야곱 - 4유다(다말) - 5베레스 - 6헤스론 - 7람 - 8아미나답 - 9나손 - 10살몬(라합) - 11보아스(룻) - 12오벳 - 13이새 - 14다윗

  • 마태복음 1:2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 마태복음 1:3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 마태복음 1:4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 마태복음 1: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 마태복음 1:6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나그네 인생

첫번째 단계의 14대는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가나안에서 애굽까지의 여정을 그린다.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부름을 받고 가나안으로 향한다. 가나안에 지내면서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는다. 족장세대로 일컬어지는 가나안 방랑 생활은 이후의 모든 신앙의 정체성을 제공한다. 신약 성경 역시 '나그네'에 대한 개념을 가져와 적용합니다. 이스라엘이 나그네라는 점과 나그네를 잘 대접하는 것이 신자의 모습이라 말한다.

  • 사도행전 7장 6절 하나님이 또 이같이 말씀하시되 그 후손이 다른 땅에서 나그네가 되리니 그 땅 사람들이 종으로 삼아 사백 년 동안을 괴롭게 하리라 하시고
  • 디모데전서 5장 10절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혹은 자녀를 양육하며 혹은 나그네를 대접하며 혹은 성도들의 발을 씻으며 혹은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혹은 모든 선한 일을 행한 자라야 할 것이요
  • 히브리서 11장 13절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 베드로전서 1장 17절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서 나와 하란에서 오래 거주했다. 그리고 다시 가나안으로 들어갔다. 인생 자체가 방랑의 세월이다. 이삭은 아브라함이 백 세가 되어 낳은 아들이며 아무런 형제도 없이 홀로 지내다 리브가와 결혼한다. 이삭은 마흔에 결혼하여 예순에 에서와 야곱을 낳는다. 리브가는 불임의 여성이었다. 야곱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애굽에서 숨을 거둔다. 이들은 장막에 거하면서 평생을 살았던 사람들이다.

다말과 라합, 그리고 우리야의 아내

우리야의 아내 즉 밧세바는 두 번째 14대로 넘어가지만 주의하여 볼 만한 이름들이다. 중요한 사실은 이 여인들은 모두 가나안 여인들이라는 점이다.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는 헷족속이다.
  • 사무엘하 11장 3절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그가 아뢰되 그는 엘리암의 딸이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니이까 하니
모두 여인들이 이방인이란 점과 정상적인 과정이 아니라는 점도 기이하다. 일반 왕의 족보라며 감히 이런 사실을 숨겼을 것이다. 다말은 시아버지와 그걸 했고, 라합은 창기였다. 밧세바는 정말 믿음의 여인이었을까? 그럼 왜 아무런 말도 없이 다윗에게 갔을까? 낮은 신분을 버리고 왕후가 되고 싶은 욕망의 여인은 아니었을까? 충분히 가능하다. 사실, 예수의 족보는 결코 깨끗한 족보가 아니다. 그런데 왜 이런 사실까지 숨기지 않고 적나라하게 공개하는 것일까?

다윗부터 바벨론 포로까지

요시야 때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다. 우리는 족보가 정확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 족보에는 구약에 기록된 인물 중에 몇 명이 빠져있다. 마태는 이러한 누락을 의도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1다윗(밧세바, 우리아의 아내)-2솔로몬-3르호보암-4아비야-5아사-6여호사밧-7요람-8웃시야-9요담-10아하스-11히스기야-12므낫세-13아몬-14요시야

  • 마태복음 1:6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 마태복음 1:7 솔로몬은 르호보암을 낳고 르호보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사를 낳고
  • 마태복음 1:8 아사는 여호사밧을 낳고 여호사밧은 요람을 낳고 요람은 웃시야를 낳고
  • 마태복음 1:9 웃시야는 요담을 낳고 요담은 아하스를 낳고 아하스는 히스기야를 낳고
  • 마태복음 1:10 히스기야는 므낫세를 낳고 므낫세는 아몬을 낳고 아몬은 요시야를 낳고
  • 마태복음 1:11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에 요시야는 여고냐와 그의 형제들을 낳으니라

다윗부터 요시야까지는 왕국 시대다. 모세에 의해 출애굽과 광야 시절을 보내고, 여호수아가 인도하며 요단강을 건너 7년 정복 전쟁을 치른다. 이후 사사 시대가 시작된다. 그리고 사울이 왕이 되고, 다윗이 이스라엘 2대 왕이 된다. 이후 솔로몬이 왕이 되고, 솔로몬의 우상숭배로 인해 나라는 북과 남으로 갈라진다. 북 왕국은 기원전 722년에 앗수르에 망하고, 남유다는 기원전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고 포로로 끌려간다. 여기까지의 역사적 배경이 두 번째 열네 대의 의미다.

이 시대는 기간적으로는 50년이 조금 넘는 기간이지만 성경 안에서 굉장히 중요한 시기다. 구약 성경의 4/4의 역사적 배경 시기다. 이 시기는 망각의 시간이다. 약속의 땅에서 도착한 이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를 구현한 것인가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하지만 결론은 실패다. 성공하지 못했고, 결국 죄를 짓고 멸망 당한다. 족보의 의미에서 본다면 소망없는 이스라엘이다. 인간의 역사는 정말이지 소망이 없다.

바벨론에서 그리스도까지

  • 마태복음 1:12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에 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고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낳고
  • 마태복음 1:13 스룹바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리아김을 낳고 엘리아김은 아소르를 낳고
  • 마태복음 1:14 아소르는 사독을 낳고 사독은 아킴을 낳고 아킴은 엘리웃을 낳고
  • 마태복음 1:15 엘리웃은 엘르아살을 낳고 엘르아살은 맛단을 낳고 맛단은 야곱을 낳고
  • 마태복음 1: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1여고냐 - 2스알디엘 - 3스룹바벨 - 4아비훗 - 5엘리아김 - 6아소르 - 7사독 - 8아킴 - 9엘리웃 - 10엘르아살 - 11맛단 - 12야곱 - 13요셉(마리아) - 14그리스도

이 시기의 포로의 시기다. 잠깐 독립하긴 했지만 다윗의 후손이 왕이 된 적은 없는 시기다. 북왕국는 포악한 앗수르의 정책으로 인해 안전히 파괴되어 역사에서 사라진다. 후에 섞인 민족들이 사마리아를 중심으로 공동체를 형성하지만 정통성을 상실한다.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바벨론은 이주 정책을 펴기를 했지만 대단히 자유로웠다. 한 곳에서 정착하도록 촌을 형성하게 했고, 포로지만 자유민처럼 공적으로 일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다니엘과 세 친구처럼.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가나안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에스라나 느헤미야, 역대기에 기록론 족보와 이름들은 이런 배경속에서 귀향한 자들을 추켜 세우는 일종의 칭송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18-25절까지는 예수의 탄생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리아에 대한 요셉의 의로운 행위에 초점이 맞추어져있다.

  • 마태복음 1: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 마태복음 1:19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 마태복음 1: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 마태복음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 마태복음 1:22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 마태복음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 마태복음 1:24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 마태복음 1:25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요셉과 마리아는 약혼한 사이다. 그런데 마리아가 잉태했다는 사실을 요셉이 듣게 된다. 약혼은 이미 결혼한 사이로 본다. 그렇기 때문에 요셉에게 마리아의 임신은 충격 그 자체였다. 그는 차마 죽일 수 없어서 조용히 혼인 관계를 끊으려 한다. 하지만 바로 이때 천사가 나타나 요셉에게 마리아의 임신 정체를 밝힌다.  마리아는 성령으로 잉태되었고, 하나님께서 예수를 통해 세상을 구원할 것임을 밝힌다. 환상을 본 것이다. 이제 환상과 현실 사이에 놓여 있다. 요셉은 어떻게 했을까? 그는 결정적 순간에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환상을 선택한다.

하나님의 구속사는 하나님께서 이루시지만 홀로 행하시지 않고 사람들을 사용하신다. 참으로 놀라운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연약하고 흠 많은 사람들을 사용하시며 그들의 결단과 헌신을 기꺼이 받아 주신다.


마태는 예수의 탄생을 이사야의 예언에서 끌고 온다.
  • 마태복음 1장 23절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 이사야 7장 14절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임마누엘은 히브리어도 동일하다. 임마누엘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이다. 예수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한다. 요한은 이 이미지를 가져와 예수의 성육신에 적용한다.

  •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여기에 '거하신다'는 헬라어 스케노-(σκηνόω)는 '장막을 치고 살다(live in a tent)'는 뜻으로 광야에 장막에 거하시던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이것이 임마누엘의 뜻이다.

나가면서

은혜의 족보

족보의 이야기는 예수 그리스도가 왕임을 분명해 보여준다. 하지만 흠 많은 족보다. 아니 부끄러운 족보다. 숨기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그럼에도 왜 숨기지 않을까? 그것은 '은혜'라는 단어 외는 해석할 방법이 없다.

성취하시는 하나님

족보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여 예수까지의 약 2200년의 기나간 세월을 관통한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건과 사연이 있었을까? 말로 다 못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위중한 시대속에서 하나님의 약속이 취소되지 않도록 모든 것들을 통치하시고 만들어 가신다.

요셉의 헌신

요셉은 마리아가 앉은 문제는 떠안는다. 그가 아무리 성령에 의해 잉태되었다고 주장한들 믿을까? 요셉은 환상을 따를 것인지 세상의 방법대로 처리할 것인지 갈림길에 섰다. 결국, 그는 하나님의 환상을 따랐다. 홀로 그곳에 그 길을 가기로 했다. 믿음의 길은 고독한 것이다. 아무리 설명해도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요셉의 위대한 바로 여기에 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버렸다. 기꺼이. 그는 진정 고독한 왕과 같다.


요나서 개요 및 장별 요약

 1. 요나서 개요

요나서의 저자는 요나로 알려져 있지만 확실치가 않습니다. 요나서의 주제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불타는 사랑입니다. 겉으로는 이방인인 니느웨 백성들을 사랑하는 하나님이 모습을 보여주지만 내면에는 이방인을 이토록 사랑한다면 이스라엘백성들은 얼마나 더 사랑하겠느냐는 하나님의 반문이 담겨 있습니다.

요나서는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B.C. 793-753년) 때에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여로보암 2세 때 북이스라엘은 권력의 공백기로 인해 부흥기를 맞이했습니다. 남쪽의 애굽도, 동쪽의 앗수르도 자체적인 문제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어 다른 나라에 힘을 쏟지 못했습니다. 여러보암 2세는 이것을 기회로 삼아 주변국들은 정복했고, 경제적으로 흥황기를 이루었습니다.

이러한 흥황은 독이되어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부인하고 죄를 짓는 기회로 삼고 말았습니다. 요나는 북이스라엘의 죄악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심판이 멀지 않았음을 직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때 요나는 니느웨로 보내심으로 악한 죄인들까지도 회개하면 용서하신다는 메시지를 줍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회개하지 않았고, 결국 기원전 722년 앗수르에의해 멸망 당하게 됩니다.  니느웨는 앗수르의 제2의 수도와 같은 거대한 도시입니다.

2. 요나서 장별 요약

요나 1장

하나님이 요나를 부르신다. 요나에게 앗수르의 제2의 수도인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지 않고 동쪽인 니느웨가 아니라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려고 욥바로 향한다.

욥바에 가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가 있었다. 즐거운 마음으로 배에 올라탄다. 하지만 얼마가지 않아 엄청난 폭풍이 몰려오고 위기에 놓인다. 사람들은 각기 자신이 믿는 신을 부르지만 폭풍은 잠잠해 지지 않는다. 그러다 제비를 뽑아보자 제안한다. 그런데 제비는 배 밑창에서 자던 요나에게 뽑힙니다.

요나는 자신이 히브리 사람이고, 여호와를 섬기지만 계명에 불순종해 도망가고 있다고 말한다. 자신을 바다에 던져야 폭풍이 잠잠해질 것일 말한다. 하지만 뱃사람은 착한 건지 던지지 않고 계속 노를 저어 육지로 향한다. 하지만 배가 거의 파손될 지경에 이르자 결국 요나를 바다에 던진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바다는 잠잠해진다.

요나 2장

요나는 바다에 빠져 물고기 뱃속에 갇힌다. 요나는 그곳에서 삼일밤을 보내면서 하나님께 기도한다. 요나의 기도는 4절과 9절이 핵심이다. 비록 여호와께 쫓겨났을지라도 성전을 향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것을 믿고 기도한다. 결국 구원은 여호와께 있음을 고백하며 기도를 마친다. 기도를 마치자 물고기가 요나를 육지에 토한다.

2장 기도문에는 중요한 성전 신학이 담겨있습니다. 솔로몬은 성전을 봉허하면서 포로가 되어 타국에서 성전을 향해 기도하며 응답해 달라고 기도한다. 다니엘도 성전을 향해 기도했다. 결국 회개하고 돌이키게 하신하는 하나님의 선함이 담겨있다.

  • 왕상 8:33 만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주께 범죄하여 적국 앞에 패하게 되므로 주께로 돌아와서 주의 이름을 인정하고 이 성전에서 주께 기도하며 간구하거든
  • 왕상 8:34 주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시고 그들의 조상들에게 주신 땅으로 돌아오게 하옵소서

요나 3장

물고기가 요나를 육지에 토하자 하나님의 말씀 다시 임한다. 내용은 동일하다.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라 하신다. 요나는 순종한다. 요나는 니느웨 성읍에 들어가 40일이 지나면 이 도시가 멸망하고 말한다.  그러자 갑자기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한다. 심지어 왕도 그 쇠를 듣고 회개하고 전 국민에게 금식을 선포한다. 일사불란하게 모두가 회개에 동참한다. 기이할 정도로. 하나님께서 그들의 모습을 보시고 용서하신다.

3장의 핵심은 이방인의 회개도 받으시는 하나님이 소개된다. 솔로몬의 봉헌 기도에는 이방인의 기도까지 응답해 달라고 기도한다.

  • 왕상 8:43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이방인이 주께 부르짖는 대로 이루사 땅의 만민이 주의 이름을 알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처럼 경외하게 하시오며 또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을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줄을 알게 하옵소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지만 모든 민족과 나라의 하나님이시기도하다. 이 사실을 잊으면 안된다. 요나서는 모든 나라의 하나님이심을 선포한다.

요나 4장

요나가 이 사실을 알고 성을 낸다. 차라리 자신을 죽여달라고 기도한다. 요나는 하나님의 은혜롭고 자비로움을 비아냥거리듯이 말하며 이럴 줄 알고 다시스로 도망갔다고 말한다. 즉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들을 용서하신다는 것을 안 것이다. 요나는 기도를 마치고 성읍 동쪽에 초막을 짓고 앉아 성이 망하기를 기대한다. 하나님은 요나를 교훈하신다. 초막에 박넝쿨이 자라게 하여 시원하게 해준다. 그런데 갑자기 벌레가 나타나 덩굴을 먹게 한다. 해가 뜨자 죽을 것만 같다. 요나는 다시 투덜거리며 죽겠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요나가 박넝쿨을 아낀 것처럼 나도 이 니느웨 사람들을 아낀다고 말한다.

성경을 읽는 자세

 성경이란?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성경은 무엇인가입니다. 너무나 생각없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라고 답하지만 그렇게만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한 것들이 있습니다. 진심으로 그렇게 정의하신 분 가운데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처럼 읽을까요? 조선시대 임금 앞에서 신하들처럼 말입니다. 그럼 한 시간도 못 견디고 다 도망가고 말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단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읽는 것은 다양하고 복잡한 과정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결론적으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다'라고 생각했다면 그 다음 우리는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성경을  어떤 마음으로 읽어야 하는가?

성경을 읽을 취해야할 마음의 자세입니다.

1. 경건한 마음으로 읽어야 합니다.

경겅한 마음이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기도하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마음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이시며, 선의 시작이며, 선을 가르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전지전능한 분임을 안다면 당연히 경배와 사랑을 돌려 드려야 합니다.

2. 경청하는 마음으로 읽어야 합니다.

두 번째 마음 자세는 경철입니다. 경철은 주의를 기울이고 마음을 다해서 듣는다는 뜻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으면서 아무렇게나 읽으려 하지만 잘못된 방법입니다. 마음을 집중에서 읽어야 합니다.

3. 지성을 충분히 활용해야 합니다.

성경을 읽으면 누군가는 영적으로 읽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영적으로로는 성령으로 읽어야 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성령으로 읽는다는 것이 도대체 뭘까요?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체로 성경을 문자적으로 읽는 것을 성령으로 읽는다고 오해합니다. 성경은 문자자체를 너머 많은 은유와 비유, 문학적 방법을 사용하고 서술합니다. 성경을 읽을 때는 우리에게 있는 지성을 충분히 활용하여 읽어야 합니다.

4. 주의해서 읽어야 합니다.

'주의해서 읽는다'는 말은 자세히, 꼼꼼히 읽으라는 말입니다. 건성건성 읽지 말고 꼼꼼히 읽어 자세히 읽으라는 말입니다. 역사적 배경, 단어, 구절, 문맥 등을 잘 살펴보고 읽어야 합니다. 

성경을 읽는 방법

먼저 성경은 정독해야 합니다

가장 기초적이고 중요한 원리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좋은 곳만 골라 읽어서는 안 됩니다. 음식도 내가 좋아하는 것만 먹으면 편식이 되고 영양의 불균형을 가져와 건강에 문제를 일으키듯 성경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성경은 골고루 읽어야 합니다.
성경을 정독한다는 말은 '통독'의 의미와 천천히 읽기를 포함합니다. 정독은 어느 일정 부분을 빠뜨리지 말고 잘 이해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꾸준히 읽어야 합니다. 다른 책은 모두 읽지 않아도 되고, 모두 읽을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읽기 편하든 어렵든 모두 읽어야 합니다.

둘째, 성경은 매일 주기적으로 읽어야 합니다.

이 부분은 쉬운듯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매일 몇 장씩이라도 꾸준히 읽는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밥을 매일 먹아야 힘이 나듯 하나님의 말씀도 가능한 매일 꾸준한 양을 읽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매일매일 읽어야 잘못된 생각을 교정하고, 악한 생각들을 밀어내고 마음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채울 수 있습니다.

셋째, 평생 읽어야 합니다.

평생은 죽을 때가지 말하니다. 매일, 평생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함으로 우리는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매일의 양식인 동시에 평생의 양식이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한꺼번에 읽어서 끝내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어떤 한 시절, 나이대에 읽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매일 말씀하시고, 또한 평생 말씀하십니다. 성경 읽기를 꾸준히 할 때 바른 영성과 믿음을 소유하게 됩니다. 성경을 읽지 않으면 우리는 잘못된 생각에 사로 잡히고, 그른 생각에 빠져들 수 도 있습니다.

성경을 읽음으로 얻는 유익

그렇다면 성경을 읽음으로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요?

첫째, 하나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성경은 말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이며, 세상의 창조와 운행의 방법 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인류의 타락과 구속의 방법이 담겨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음으로 하나님을 발견하고 세상원리를 배우게 됩니다.
  • 시편 19:8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둘째, 구원을 얻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어떻게 사랑하셨는지를 소개합니다. 성경을 읽음으로 우리는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구원을 얻게 됩니다.
  • 디모데후서 3장 15절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셋째, 지혜를 얻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을 창조하고 통치하는 수단입니다. 그렇기에 세상의 그 어떤 지식과 지혜보다 탁월합니다.
  • 시편 19:7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넷째, 마음의 평안과 기쁨을 얻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 우리안에 기쁨이되고, 평안이 찾아옵니다.
  • 시편 19:8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 예레미야 15:16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

결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을 때는 우리의 이성과 믿음을 활용하여 읽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 다양한 유익이 있습니다. 이러한 유익을 통해 우리는 영적을 성숙하게 되고, 하나님과 친밀하게 지낼 수있습니다.

기도란 무엇인가?

기도란 무엇인가 이미지


아마 그 어떤 기독교 교리보다 더 어려운 것이 기도에 대해 정의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성경적 원리에 의해 기도가 무엇인지를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기도의 기원

기도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아브라함 때에 이미 하나님께 간구하는 이야기가 등장한 것으로 볼 때 이미 오래전부터 기도는 종교의 한 부분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러한 기도의 근원은 인간에 본성에 속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에덴동산에서부터 아담과 하와는 죄를 짓고나서 하나님을 피해 숨었습니다. 그러니까 타락 이전에는 하나님의 임재가 그들 가운데 있을 때 교제했다는 말이 됩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본다면 기도는 인간의 한 속성으로 봐야 마땅합니다. 즉 인간이 가진 종교성은 기도하는 것과 분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2. 성경에 나타난 다양한 기도자들


그렇다면 성경에 소개되는 기도자들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봅시다. 여기서는 모호하게 표현되는 부분은 제외하고 명확하게 기도라는 의식이나 단어가 등장하는 부분을 언급합니다. 먼저 아브라함까지는 기도하는 장면이나 기도한다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삭 아이를 위해 기도하다

성경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기도는 이삭이 아이를 낳지 못해 기도한다는 내용입니다. 리브가와 결혼한 이삭은 리브가가가 아이를 낳지 못하고 그녀를 위해 하나님께 간구합니다.(창25:21) 그러자 리브가가 아이를 잉태하는데 쌍태입니다. 에서와 야곱이 그들의 아들들입니다. 얼마 동안 기도했는지 정확하지 않으나 이삭은 40에 결혼했고, 에서야 야곱을 낳을 때는 60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최소 15년 이상은 기도했다는 말이 됩니다.


야곱, 얍복강의 간구

두 번째 등장하는 유명한 기도는 야곱이 에서를 만나기 직전 얍복강에서 드린 기도입니다. 야곱은 하나님께 복을 구함으로 야곱에서 이스라엘이 되고 에서의 손에서 구원을 얻습니다.


모세의 기도, 백성을 위해 간구하다

모세의 기도는 많기 때문에 어느 한 사건을 주목하기 힘듭니다. 중요한 것은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할 때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서 중보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백성들 때문에 힘들어 하나님께 원망하기도 합니다. 모세의 사역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모세.아론.훌의 합심기도

출애굽의 과정에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기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비록 모세가 기도하기 하지만 모세 혼자만의 기도라고 보기는 힘들어 따로 구분합니다.

출애굽기 17장 12절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가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한 사람은 이쪽에서, 한 사람은 저쪽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한나의 기도

사무엘상 1장

자식을 낳지 못하는 한나가 하나님께 구함으로 사무엘을 얻는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의 시대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명한 기도로 유명합니다.


솔로몬의 성전 봉헌기도

열왕기상 8장

성전을 마무리한 솔로몬은 하나님께 성전 봉헌기도를 드립니다. 이 기도는 성전에 관련된 그 어떤 기도보다 길고 자세합니다. 또한 앞으로 전개될 기도의 방향과 특징을 잘 보여주는 기도입니다.


엘리야의 기도, 하늘에서 불을 내리다

바알을 섬기던 이스라엘을 향해 엘리야는 기도하여 하늘의 문을 닫고, 다시 기도하여 하늘의 문을 열어 비를 내리게 합니다. 바알의 선지자들을 바알의 집이라 일컫는 갈멜산에 불러 누가 진정한 신이 누구인지 내기를 합니다. 엘리야는 하늘에서 불을 내려 바알의 선지자들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죽이자 비가 내립니다.


히스기야의 기도, 15년을 더 살다

열왕기하 20장

병에 걸린 히스기야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죽을 병에서 나아 15년을 더 살게 되는 내용입니다. 간절히 구하는 히스기야를 위해 하나님은 응답합니다.


예레미야의 기도

예레미야 1장

예레미야는 생애 전체가 기도의 삶이기 때문에 어느 특정 부분을 고르시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소명에 관련된 기도는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레미야 1장에서 하나님께 부름을 받은 예레미야는 소명에 대한 깊은 두려움으로 힘들어 합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모태에 짓기 전부터 택정했음을 알리고, 그 입술에 하나님의 말씀주어 나라를 세우기도 무너뜨리기도하는 권세를 줍니다.


에스라의 기도, 거룩을 위해 기도하다

에스라 9장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이 또 다시 이방여인들과 결혼하자 깊은 슬픔에 빠진 에스라 자신과 조상과 당시 민족을 위해 기도합니다. 기도를 마친 후 이방 여인을 쫓아냅니다.


예수, 게세마네의 기도

신약에서 예수님의 기도를 빼 놓을 수 없습니다. 비록 고통스럽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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