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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4장 강해

 사도행전 4장


개요

성전에서 예수님의 부할을 전하던 사도들을 발견한 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이 사도들을 붙잡아 옥에 가둡니다. 이튿날 그들은 사도들을 불러 누구의 이름으로 하느냐고 묻자 베드로는 예수의 이름으로 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전하지 못하도록 경고하고 돌려 보냅니다.


사도행전 4장은 교회의 시작 이후 공권력의 첫 저항에 부딪히는 내용입니다. 그들은 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싫어 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결국 자신들의 욕망을 위하여 진리를 부정하고, 진실을 거절하게 됩니다.


구조

  • 1-4절 옥에 갇힌 사도들
  • 5-12절 베드로의 변증
  • 13-22절 공회의 경고
  • 23-31절 신자들의 기도
  • 32-37절 신자들의 생활


사도행전 4장 강해


1-4절 붙잡힌 사도들


사도들을 붙잡은 사람들의 정체


사도들이 복음을 전할 때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 사두개인들이 들이 닥쳤습니다. 그들은 예수의 부활을 전하는 두 사도가 너무 싫었습니다. 사도들을 잡으러 온 이들은 사두개인으로 대표되는 인물들로 친로마적 정치꾼들입니다. 사두개인들은 죽음 이후 부활을 믿지 않는 현세 주의자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죽이라고 외친 주범들이기도 합니다. 참으로 기이한 것은 평민 출신의 바리새파는 철저히 율법을 지키고 끊임없이 새롭게 해석하여 부활을 믿은 반면 유대교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잡은 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은 부활도 영적인 것도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왜 요즘 유대인들이 우리 눈에 보기에 거의 무신론자와 비슷해 보이는 가는 이러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남자의 수가 오천이나 되었어라(4절)


당시에 사람의 숫자는 성인 남자가 기준이었습니다. 그들은 어린아이와 여자들은 숫자에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숫자 개념은 유대인뿐 아니라 모든 세계가 통용되는 일반적인 방법입니다. 하지만 숫자에 들어가는 기준은 조금 다릅니다. 고대 세계에서 숫자는 전쟁에 나갈 수 있는 숫자지만 유대인들은 성전에 들어갈 수 있는 개념입니다. 율법에도 20세부터 60세까지의 남자는 속전으로 매년 50세겔을 내야 했습니다. 남자의 숫자 오천은 적어도 3배수를 하면 일만오천 명 정도로 보입니다.


5-12절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공회가 모였습니다. 관리들과 장로들, 서시관들로 표현합니다. 이들은 대부분 사두개인들이 친로마적 정치인들입니다.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대제사장 문중이 모두 참여합니다.

무슨 권세로


사도들에게 던진 첫번째 심문은 '무슨 권세'로 부활을 전하느냐는 것입니다. 이렇게 묻는 이유는 자신들이 성전의 책임자고 통제할 권리가 있는데 도대체 누구로부터 허락을 받고 복음을 전하느냐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곧바로 응답합니다. 베드로는 예수의 부활을 언급하면 그 예수가 부활하였고, 그 이름으로 병자를 고쳤다고 말합니다.


베드로는 시편 118편 22절을 인용하여 건축자의 버린 돌이 곧 예수 그리스도이며, 그가 결국 집 모퉁이 머릿돌이 되었다고 선언합니다. 집의 기초이자 완성은 머릿돌입니다. 모든 역사의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12절)


건축자의 버린 돌


성경 안에서 '건축자'는 하나님이십니다. 하지만 사도행전 4장 안에서 건축자는 유대인 관리들로 보입니다. 하지만 두 가지 모두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께 버림 받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버림은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간섭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의 관리 또한 건축자 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을 죽기까지 한 장본인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핵심은 건축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머릿돌에 있습니다. 모든 건물은 기초이자 완성은 머릿돌에 있습니다. 머릿돌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건물의 크기가 정해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머릿돌은 네 축에 들어가는 모퉁이돌을 말하며, 기둥의 힘을 받치는 가장 크고 단단한 돌을 말합니다. 즉 기초석이자 건물의 크기를 결정하는 것이 모퉁이돌입니다.


13-22절 공회의 결정


베드로의 담대한 변증에 모두가 놀랍니다. 그들은 베드로는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지만 예상외의 답변에 뒤로 물러납니다. 그들은 서로 의논합니다. 누가는 그들이 변명한 여지가 없음을 분명히 합니다. 왜냐하면 베드로의 말을 사실이며, 치유를 받은 사람이 곁에 있기 때문이고, 이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공회는 명백한 사실 앞에서도 진리를 거절합니다. 오히려 베드로에 경고하고 다시는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 명합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담대하고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면 반박합니다. 성령 받은 자의 모습입니다. 진리를 위해 뒤로 물러서지 않는 베드로의 모습을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우리를 각성 시킵니다.


23-31절 함께 기도하다


두 사도는 놓임을 받고 함께 하는 동료들에게 갑니다. 성전에서 행한 기적과 당한 일을 보고합니다. 그리고 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고백


그들은 먼저 하나님께 대해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대주재시며,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신 분입니다. 주재는 헬라어로 데스포테스(δεσπότης) 주관자란 뜻으로 주인과 통치자의 의미를 포괄합니다. 창조주요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심을 명백히 합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고백이 필요합니다. 
 

분노하는 열방


이제 시편 2편을 인용하여 하나님께 대항하는 이방민족들과 군왕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유대지도자들로 변했다고 말합니다. 겉으론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고 제사장이지만 하나님을 대적하는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입니다. 헤롯과 본디로 빌라도는 예수님을 정치적으로 죽인 원흉들입니다. 참으로 그들은 자신의 정치적 야욕과 욕망을 위해 '이스라엘 백성과 합세하여 하나님께서 기름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27절)를 대적했습니다. 얼마나 어리석고 어리석은 일인지요.


하나님의 권능을 보이소서


이제 사도들인 하나님의 권을 나타내도록 간구합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2.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고, 
  3. 표적과 기사가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소서.
사도들의 기도는 예수님이 행하신 것을 그대로 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작은 예수 살아갑니다. 사도행전은 오순절을 통해 성령의 강림이 이루어지고, 그 성령을 받은 자들은 땅 끝까지 이르러 부활의 증인이 됩니다. 증인은 '권능'을 갖고 말씀을 전하고, 치유하고, 표적과 기사를 행합니다. 성전 미문에서 앉은뱅이를 일으킨 사건도 그렇고, 그로 인해 부활의 주님을 증언하는 사도들의 삶을 통해 드러납니다.


진동하더니


기도를 마치자 모인 곳이 진동했습니다. 구약에서 진동은 하나님의 현현과 능력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셨다는 다른 표현입니다.


32-37절 물건을 통용하다.


이곳에 초대교회 특징 세 가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 세 가지는 한 마음이 되고, 증언하며, 나누는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1) 한 마음의 공동체


욕심은 생각을 갈리게 합니다. 욕망을 서로를 헐뜯게 합니다. 하지만 성령 안에서 모든 것이 하나입니다. 진리를 사랑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한 마음을 품게 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 교회가 하나임을 강조하며, 한 성령에 대해 언급합니다. 그 중 일부입니다.

  • 고전 12:7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 고전 12:8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 고전 12:9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 고전 12:10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 고전 12: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2) 증언하는 공동체

33절에서 사도들은 공회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공동체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안에 참 생명이 있고, 진정한 소망이 있다면 당연히 전해야 합니다.


3) 나누는 공동체


초대교회는 놀라웠습니다. 그들은 서로 문건을 서로 통용하여 자기의 재물을 자기 것이라 말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사도들은 부활을 증거했습니다. 사도행전 안에서 증거 또는 증인은 1:8의 성령 충만의 결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밭과 집을 팔아 교회 가져왔습니다. 이때 구브로 출신 레위족 바나바가 재물을 바칩니다.

교독문 2. 시편 2편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그들을 놀라게 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란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1-8)



시편 2편은 메시아 시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땅의 대리 왕을 통해 세상을 통치 하겠다는 하나님의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시온은 예루살렘의 다른 이름이며, 실제로 예루살렘 안에 작은 바위 언덕이라고 합니다. 시온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고자 하시고자하는 하나님의 의지와 뜻이 담긴 표현입니다.


시편 2편

1. 시편 2편 개요

 시편 2편 구조

1-3절 열왕들의 연합

4-6절 하나님의 비웃음과 선언

7-9절 시온의 왕

10-12 아들과 화해하라

2. 시편 2편 주해

1-3절 열왕들의 연합

시편 2:1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למה רגשו גוים ולאמים יהגו־ריק׃

시편 2편을 하나님의 놀람으로 시작한다. '아니 어떻게 된 일인가?'의 뜻이다. 이유는 나라가 분노하고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기 때문이다. 그들의 헛된 일이란 2-3절에서 설명된다. 먼저는 여호와와 그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는 것이며,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는 것이다. 신약적 관점으로 보면 하나님의 통치와 영향력으로 읽을 수 있다. 하지만 다윗시대의 관점으로 읽는다면 이스라엘의 통치권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 에돔과 모압, 암몬이 반역을 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들은 온전치 못하고, 본문을 분명하게 해석하기는 쉽지 않다.

누가는 사도들이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당한 일을 회상하며, 함께 기도하는 장면에서 시편 2편을 끌고 온다.

  • 행 4:25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하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 행 4:26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리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의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 행 4:27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세하여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슬러
  • 행 4:28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헤롯과 빌라도가 합하여 하나님께 종 예수를 거스른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도행전 4장은 산헤들린, 즉 유대인들이 예수 믿는 이들을 핍박한 상황 아래 아래 있다. 그렇다면 26절에서 '세상의 군왕들과 관리'들을 산헤드린을 말할 것이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시편 2편을 다시 읽는다면 세상과 이방은 문자적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의 이스라엘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실제로 시편뿐 아니라 많은 구약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하고 대적하는 이들에게 이방인과 같은 존재로 그리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여기서 문자적으로 나라와 민족을 구분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분노는 하나님께 계명에 순종하는 것에대한 부당함이다. 죄인들은 항상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에 대한 분노가 서려 있다. 왜 우리가 당신(하나님)에게 순종해야 하지?라는 불만으로 가득한다. 고대에나 지금에나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이러한 분노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불순종이자 반역이다.

시편 2: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יתיצבו ׀ מלכי־ארץ ורוזנים נוסדו־יחד על־יהוה ועל־משיחו׃

2절은 1절의 구체적인 해석이자 행위이다. 그들은 이제 '나선다' 앞으로 나아가서 뭔가 일을 꾸미고 있다. 

나서며

번역에는 분명히 드러나지 않지만 히브리 원어는 '나선다'는 '아짜브'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기록되어 있다. 이 구조를 이후의 모든 내용이 이 동사가 끌고 간다는 뜻이다. 주동사로서 역할을 하는 것이다. 히브리어에서 뭔가를 강조할 때 항상 중요한 동사를 앞세운다. '아짜브'는 '서다'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왕들과 권련자들이 서서 회의를 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서다'라는 표현은 긴박성과 의지를 드러낼 때 사용된다.

  • 창세기 28장 13절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 출애굽기 34장 5절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에 강림하사 그와 함께 거기 서서 여호와의 이름을 선포하실새

나서며 서로 꾀하여

'꾀하다'라는 히브리어는 '하사드'라는 히브리어로 '서로 말하다' '서로 조언하다'라는 뜻이다.  서로라는 말에도 유의해 보자. 이들은 누군가에 의해 강압적으로 모인 것이 아니라 자원한 것이다. 스스로 원하여 모인 것이다. '서로'는 이 점을 분명히 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즐겁고 행복하다. 그들은 이것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은 자를 대적하며

그들의 분노의 대상이자 벗어나야할 대상이다. 여호와라는 단어가 이방인이나 대적을 향할 때는 심판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시편 기자는 의도적으로 엘이 아닌 여호와를 등장시킴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암시하고 있다. 

시편 2:3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

ננתקה את־מוסרותימו ונשליכה ממנו עבתימו׃

2절이 생각과 언어의 문제였다면 3절은 실제적 행위의 문제로 넘어간다 .매우 짧고 간략하지만 핵심이 들어가 있다.

그들의 맨 것, 그의 결박

시편 2편 안에서 맨 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을 말한다. 이들은 탐욕과 악을 즐기고 싶은데 하나님의 계명을 그것을 금지 한다. 그러므로 그것들을 끊고 싶어한다. 맨 것과 결박이란 표현은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그들의 해석이라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시편 1편에서 의인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한다. 하지만 이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자신들을 구속하는 존재로 말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계명을 지믕로 여기는 것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신다.

  • 미가 6:3 이르시기를 내 백성아 내가 무엇을 네게 행하였으며 무슨 일로 너를 괴롭게 하였느냐 너는 내게 증언하라

4-6절 하나님의 비웃음과 선언

두 번째 연은 하나님의 선언이다. 1-3절이 사람들의 작당과 모의, 그리고 선언이라면 이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비웃음으로 시작하며,  시온의 왕으로 세웠다고 선언하신다. 1절과 4절과 5절 초반에 대응하고, 2-3절은 5-6절에 대응한다.
사람들의 분노가 하나님의 진노로 바뀌고, 사람의 꾀와 모의가 하나님의 비웃음과  선언으로 대체된다.

시편 2:4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하늘에 계신은 신적 존재를 말한다. 군왕과 관원들은 땅에 있다. 그들의 모의와 계획이 아무리 높아도 하늘에 이르지 못한다. 인간의 지혜보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능하다.

  • 고전 1: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인간의 지혜는 하나님의 비웃음 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시편 2:5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그들을 놀라게 하여 이르시기를

인간들의 분노는 하나님이 자신들을 통치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반항이다. 하나님의 진노는 인간의 부당한 분노에 대한 정의과 공의다. 인간의 분노는 탐욕적이고, 이기적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인간의 진노를 정죄한다.


시편 2:6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왕을 세우신다. 그러니까 반역자들이 하나님의 통치를 벗어나려는 모의에 대한 분명한 선언으로, 오히려 더욱 강력한 통치를 할 것임을 선언한다. 그는 이 땅을 다스리는 왕이 될 것이다.
왕이 세워진 장소는 시온이다. 시온은 거룩한 산으로 표현된다. 원래 이곳은 성전이 세워진 작은 돌산이었다. 예루살렘에 거대한 바위산 위에 성전과 다윗의 성이 세워져 있다.


7-9절 시온의 왕

이제 세 번째 연으로 넘어간다. 세 번째 연은 시온에 왕을 세우시고, 그가 어떻게 통치할 것인가를 설명하나.

시편 2:7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하나님은 시온의 왕을 양자로 입양한다. 고대 세계에서 정통성을 가지려면 그는 신의 아들이어야 한다. 로마의 황제를 비롯하여 고대의 수많은 왕들은 조서를 내리거나 율령을 반포할 때 '나는  ~~신의 아들이다.'를 선언한 후 시작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자신의 아들로 입양한 적도 없고 선포한 적도 없다. 오직 이스라엘의  왕만이 하나님의 전정한 아들이다. 신약에서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 소개되며, 예수를 믿는 자들 역시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

  • 마태복음 3장 17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 마태복음 4장 6절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 마태복음 5장 45절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사역은 곧 이 땅에서 왕임을 선언하는 것이다. 예수는 왕이며, 그리스도인 역시 왕으로 소개된다. 예수는 이 땅에서 왕적 능력으로 사단의 세력과 싸우며 귀신을 몰아낸다. 그리스도인 역시 예수의 이름으로 사단의 세력과 싸운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의 공격 무기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 에베소서 6장 17절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 히브리서 4장 12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시편 2:8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내게 구하라

'내게 구하라'는 응답을 약속한다. 모든 권한이 하나님께 있음을 말한다. 다른 의미에서 구하지 않으면 주지 않는다는 뜻도 포함된다. 믿음은 능동적이어야 한다. 생명이 있다면 생존의 욕구가 있고, 성장의 갈망이 있듯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선한 갈망을 가져야 한다. 영적 갈망은 거듭난 자의 본성이다.

  • 누가복음 11장 10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이방 나라를 .. 주리니
모든 세계를 갈망해야 한다. 이것은 야망이 아니다. 온 땅에 충만하여 다스리라는 소명이다. 세상의 어느 곳도 불의과 악이 있어서는 안 된다. 모든 나라와 민족들이 하나님을 섬길 때까지, 땅 끝까지 복음을 증거해야 한다.

시편 2:9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통치의 도구는 철장이며, 방식을 깨뜨림이다. '질그릇 같이'는 쉽게, 아주 쉽게 부순다는 뜻이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들은 아무 것도 아니다. 그들을 철장의 질그릇처럼 부서질 것이다.

  • 요한계시록 2장 27절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 요한계시록 12장 5절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 요한계시록 19장 15절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그들을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10-12 아들과 화해하라

이제 마지막 경고 또는 권고다. 

시편 2:10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받을지어다

다시 군왕들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경고다. 그들을 지혜를 얻어야 한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알고, 어떻게 처신해야 바른 성공적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시편 2:11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그들이 배워야 할 교훈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고 떨며 즐거워해야 한다. 이질적인 세 표현은 경외라는 단어에 들어가 있다. 하나님을 얕잡아 보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의로운 자들에게 복을 주니, 너희들이 의롭다면 즐거워해야 한다. 하지만 불의한 자들은 하나님을 싫어할 것이다.


시편 2:12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그의 아들은 시온의 왕이다. 입맞춤은 화해의 인사다. 만약 화해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가 급하게 그들에게 임하여 그들을 멸망시킬 것이다. 여기서 '길에서'라는 표현은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급작스러운 상황이다.
결론은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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