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머릿돌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머릿돌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사도행전 4장 강해

 사도행전 4장


개요

성전에서 예수님의 부할을 전하던 사도들을 발견한 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이 사도들을 붙잡아 옥에 가둡니다. 이튿날 그들은 사도들을 불러 누구의 이름으로 하느냐고 묻자 베드로는 예수의 이름으로 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전하지 못하도록 경고하고 돌려 보냅니다.


사도행전 4장은 교회의 시작 이후 공권력의 첫 저항에 부딪히는 내용입니다. 그들은 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싫어 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결국 자신들의 욕망을 위하여 진리를 부정하고, 진실을 거절하게 됩니다.


구조

  • 1-4절 옥에 갇힌 사도들
  • 5-12절 베드로의 변증
  • 13-22절 공회의 경고
  • 23-31절 신자들의 기도
  • 32-37절 신자들의 생활


사도행전 4장 강해


1-4절 붙잡힌 사도들


사도들을 붙잡은 사람들의 정체


사도들이 복음을 전할 때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 사두개인들이 들이 닥쳤습니다. 그들은 예수의 부활을 전하는 두 사도가 너무 싫었습니다. 사도들을 잡으러 온 이들은 사두개인으로 대표되는 인물들로 친로마적 정치꾼들입니다. 사두개인들은 죽음 이후 부활을 믿지 않는 현세 주의자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죽이라고 외친 주범들이기도 합니다. 참으로 기이한 것은 평민 출신의 바리새파는 철저히 율법을 지키고 끊임없이 새롭게 해석하여 부활을 믿은 반면 유대교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잡은 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은 부활도 영적인 것도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왜 요즘 유대인들이 우리 눈에 보기에 거의 무신론자와 비슷해 보이는 가는 이러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남자의 수가 오천이나 되었어라(4절)


당시에 사람의 숫자는 성인 남자가 기준이었습니다. 그들은 어린아이와 여자들은 숫자에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숫자 개념은 유대인뿐 아니라 모든 세계가 통용되는 일반적인 방법입니다. 하지만 숫자에 들어가는 기준은 조금 다릅니다. 고대 세계에서 숫자는 전쟁에 나갈 수 있는 숫자지만 유대인들은 성전에 들어갈 수 있는 개념입니다. 율법에도 20세부터 60세까지의 남자는 속전으로 매년 50세겔을 내야 했습니다. 남자의 숫자 오천은 적어도 3배수를 하면 일만오천 명 정도로 보입니다.


5-12절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공회가 모였습니다. 관리들과 장로들, 서시관들로 표현합니다. 이들은 대부분 사두개인들이 친로마적 정치인들입니다.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대제사장 문중이 모두 참여합니다.

무슨 권세로


사도들에게 던진 첫번째 심문은 '무슨 권세'로 부활을 전하느냐는 것입니다. 이렇게 묻는 이유는 자신들이 성전의 책임자고 통제할 권리가 있는데 도대체 누구로부터 허락을 받고 복음을 전하느냐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곧바로 응답합니다. 베드로는 예수의 부활을 언급하면 그 예수가 부활하였고, 그 이름으로 병자를 고쳤다고 말합니다.


베드로는 시편 118편 22절을 인용하여 건축자의 버린 돌이 곧 예수 그리스도이며, 그가 결국 집 모퉁이 머릿돌이 되었다고 선언합니다. 집의 기초이자 완성은 머릿돌입니다. 모든 역사의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12절)


건축자의 버린 돌


성경 안에서 '건축자'는 하나님이십니다. 하지만 사도행전 4장 안에서 건축자는 유대인 관리들로 보입니다. 하지만 두 가지 모두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께 버림 받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버림은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간섭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의 관리 또한 건축자 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을 죽기까지 한 장본인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핵심은 건축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머릿돌에 있습니다. 모든 건물은 기초이자 완성은 머릿돌에 있습니다. 머릿돌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건물의 크기가 정해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머릿돌은 네 축에 들어가는 모퉁이돌을 말하며, 기둥의 힘을 받치는 가장 크고 단단한 돌을 말합니다. 즉 기초석이자 건물의 크기를 결정하는 것이 모퉁이돌입니다.


13-22절 공회의 결정


베드로의 담대한 변증에 모두가 놀랍니다. 그들은 베드로는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지만 예상외의 답변에 뒤로 물러납니다. 그들은 서로 의논합니다. 누가는 그들이 변명한 여지가 없음을 분명히 합니다. 왜냐하면 베드로의 말을 사실이며, 치유를 받은 사람이 곁에 있기 때문이고, 이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공회는 명백한 사실 앞에서도 진리를 거절합니다. 오히려 베드로에 경고하고 다시는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 명합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담대하고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면 반박합니다. 성령 받은 자의 모습입니다. 진리를 위해 뒤로 물러서지 않는 베드로의 모습을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우리를 각성 시킵니다.


23-31절 함께 기도하다


두 사도는 놓임을 받고 함께 하는 동료들에게 갑니다. 성전에서 행한 기적과 당한 일을 보고합니다. 그리고 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고백


그들은 먼저 하나님께 대해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대주재시며,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신 분입니다. 주재는 헬라어로 데스포테스(δεσπότης) 주관자란 뜻으로 주인과 통치자의 의미를 포괄합니다. 창조주요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심을 명백히 합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고백이 필요합니다. 
 

분노하는 열방


이제 시편 2편을 인용하여 하나님께 대항하는 이방민족들과 군왕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유대지도자들로 변했다고 말합니다. 겉으론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고 제사장이지만 하나님을 대적하는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입니다. 헤롯과 본디로 빌라도는 예수님을 정치적으로 죽인 원흉들입니다. 참으로 그들은 자신의 정치적 야욕과 욕망을 위해 '이스라엘 백성과 합세하여 하나님께서 기름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27절)를 대적했습니다. 얼마나 어리석고 어리석은 일인지요.


하나님의 권능을 보이소서


이제 사도들인 하나님의 권을 나타내도록 간구합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2.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고, 
  3. 표적과 기사가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소서.
사도들의 기도는 예수님이 행하신 것을 그대로 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작은 예수 살아갑니다. 사도행전은 오순절을 통해 성령의 강림이 이루어지고, 그 성령을 받은 자들은 땅 끝까지 이르러 부활의 증인이 됩니다. 증인은 '권능'을 갖고 말씀을 전하고, 치유하고, 표적과 기사를 행합니다. 성전 미문에서 앉은뱅이를 일으킨 사건도 그렇고, 그로 인해 부활의 주님을 증언하는 사도들의 삶을 통해 드러납니다.


진동하더니


기도를 마치자 모인 곳이 진동했습니다. 구약에서 진동은 하나님의 현현과 능력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셨다는 다른 표현입니다.


32-37절 물건을 통용하다.


이곳에 초대교회 특징 세 가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 세 가지는 한 마음이 되고, 증언하며, 나누는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1) 한 마음의 공동체


욕심은 생각을 갈리게 합니다. 욕망을 서로를 헐뜯게 합니다. 하지만 성령 안에서 모든 것이 하나입니다. 진리를 사랑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한 마음을 품게 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 교회가 하나임을 강조하며, 한 성령에 대해 언급합니다. 그 중 일부입니다.

  • 고전 12:7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 고전 12:8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 고전 12:9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 고전 12:10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 고전 12: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2) 증언하는 공동체

33절에서 사도들은 공회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공동체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안에 참 생명이 있고, 진정한 소망이 있다면 당연히 전해야 합니다.


3) 나누는 공동체


초대교회는 놀라웠습니다. 그들은 서로 문건을 서로 통용하여 자기의 재물을 자기 것이라 말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사도들은 부활을 증거했습니다. 사도행전 안에서 증거 또는 증인은 1:8의 성령 충만의 결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밭과 집을 팔아 교회 가져왔습니다. 이때 구브로 출신 레위족 바나바가 재물을 바칩니다.

내 블로그 목록

추천 게시물

2024년 9월 29일, 주일 대표기도문

주일 낮 예배 대표기도문 믿는 자들의 위로와 희망이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9월의 마지막 주일, 저희를 주님의 거룩한 존전 앞에 불러 주셔서 예배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변화하는 계절 속에서도 변함없이 저희를 지키시고 인도하시는 주님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