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2장

 1. 창세기 12장 개요

창세기 12장은 성경의 시대 구분이나 창세기 안에서의 역사나 매우 중요한 분기점이 되는 장이다. 일반적으로 창세기 1-11장까지를 창조시대로 규명하고, 12장부터는 족장시대로 구분한다. 11장에도 아브람이 등장하지만 명확한 구분은 12장에서 시작된다. 창세기 11장에서 흩어진 바벨 공동체 안에서 아브라함을 불러냄으로 시작한다. 마치 무에서 유를 불러내시고, 어둠에서 빛을 내게 하시고, 물속에서 마른땅을 부르시는 창조적 능력과 흡사하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생명의 약속이며, 새로운 것의 '있게 함'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창세기 12장 서론 부분을 읽을 때 하나님의 창조적 능력이 어떻게 사용되는가를 봐야 한다. 이제 들어가 보자.

창세기 12장 구조

1-12절 하나님이 소명과 순종하는 아브람

13-20절 기근과 애굽에서 당한 일


2. 주해

1-12절 하나님이 소명과 순종하는 아브람

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하나님이 아브람을 부르신다. 앞의 '너의' 소유격은 이후의 문장을 이끈다. '너의 고향' '너의 친척'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고 명하신다. 떠남은 분리이며 관계없음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기 위한 첫 번째 조건으로 '떠남'으로 제시한다. 떠나지 않고 도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너의'라는 표현은 지금까지 아브람이 쌓아 놓은 명성, 부, 권위, 관계 등을 벗어나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버리로 혈혈단신으로 가라는 말은 아니다. 아브라함은 부유하며 많은 재산을 가지고 가나안에 도착한다. 물론 이후 더 많은 재물을 얻기를 하지만. 1절은 '너는 독립적인 존재가 되라'라는 뜻이다.

소명은 존재를 규명하고, 존재를 한계 짓는다. 부르심으로 모호한 것이 사라지고 삶의 방향과 목적, 그리고 방식까지 정확하게 정해진다.

*아버지의 집
성경에서 아버지의 집은 다양성을 가지고 있지만 보호와 권위, 그리고 기업을 잇는다는 의미를 포괄적으로 가지고 있다. 아버지를 떠나는 아버지의 집을 떠남과 같다. 이 말은 아버지의 보호를 벗어나 유랑한다. 또는 처량한 신세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또한 아버지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 전체를 뜻하기도 한다.

  • 창세기 20장 13절 하나님이 나를 내 아버지의 집을 떠나 두루 다니게 하실 때에 내가 아내에게 말하기를 이 후로 우리의 가는 곳마다 그대는 나를 그대의 오라비라 하라 이것이 그대가 내게 베풀 은혜라 하였었노라
  •  창세기 50장 8절 요셉의 온 집과 그의 형제들과 그의 아버지의 집이 그와 함께 올라가고 그들의 어린 아이들과 양 떼와 소 떼만 고센 땅에 남겼으며

창세기 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2절을 약속이다. 큰 민족, 이름, 복.이 된다. 민족은 후손이고, 이름은 11장에서 사람들이 '우리들의 이름을 내자'라는 울림이다. 히브리어 셈은 이름이란 뜻인데, 노아의 아들 셈과 11장의이름(셈), 그리고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약속한 이름(셈)은 다분히 언어유희적이다. 창세기 기자는 유명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란 사실을 강조한다.

이후 모세오경은 12장 2절의 주석과도 있다. 때로는 실패한 듯보이고, 때로는 막막해 보이지만 결국 모세오경이 끝날 즈음 거대한 민족이 탄생하고, 아브라함의 이름이 존귀케 되며, 아브라함은 복의 사람이 된다. 하지만 지금은 시작이고 내일이 보지 않는다.

창세기 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복을 준다'는 표현이 다시 등장한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복을 내리고, 저주하는 자에게 저주를 내린다'고 약속하신다. 아브람을 축복하는 자가 누구일까? 또한 저주하는 자는?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고, 하나님을 거절하는 자들이다. 아브람은 말씀에 순종하는 자이기에 아브람은 곧 하나님이다.
  • 마태복음 10장 25절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
이러한 맥락은 아브람이 이 땅에서 왕 같은 제사장처럼 살아갈 것을 말한다. 아브람과 하나님은 다르지 않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자신의 이름을 주었다. 마치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런 것처럼.

아브람으로 인해 땅을 복을 받는다. 아담의 창조와 타락 역시 이 부분을 강조한다. 아담으로 인해 땅이 복을 받고 저주를 받는다. 소명자들은 이땅의 운명을 지고 간다.

창세기 12: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아브람은 곧 실행에 옮긴다.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다'는 표현은 굉장히 특이하다. 번역은 '따라갔다'라고 했지만 히브리어는 '걷다' '동행하다'의 뜻인 '할라크'이다. 이 단어는 히브리어에서꼭 외어 두어야 할 단어다. 에녹이 하나님께 동행(할라크)한 것처럼 아브라함 역시 하나님을 따랐고(할라크) 하나님과 동행(할라크)한다.

조카 롯도 함께 아브람과 동행한다. 아브람이 권유한 것인지를 확실치 않으나 결국 하나님을 따르는 삶을 함께 동참한다. 롯의 시작은 이처럼 아름답지만 결국 믿음의 길에서 벗어난다.

아브람이 소명을 길을 떠날 때 그의 나이는 75세였다.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니었음에도 기꺼이 그 길을 걸었다. 하란에서 떠났다는 표현도 염두에 두자. 후에 이 부분을 다시 언급할 것이다.

창세기 12:5-6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아브람은 아내 사래와 조카 롯을 데리고 가나안에 도착한다.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란 표현은 아브라함이 하란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는 것과 그가 성공한 삶을 살았다는 뜻을 의미한다. 하지만 성공적인 삶이라 할지라도 아브라함은 그곳에 안주하지 않고 믿음의 모험을 떠났다. 

1절에서 '보여줄 땅'에서 5절에서는 '가나안 땅'으로 구체화되었다. 믿음의 삶이란 처음에 모호함과 불투명만이 가득하지만 하루하루 순종의 삶을 통해 구체화된다는 점을 망각하면 된다. 우리는 모든 알고, 모든 것을 이해하고 시작하려 하지만 믿음의 삶은 그렇지 않다. 지금 내가 아는 작은 계명에 순종할 때 더 크고 원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룰 수 있다.

세겜 땅은 후에 에브라임 지파의 것이 된다. 야곱의 딸인 디나가 강간을 당한 곳이기도 하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후에 [성서지리-세겜]에서 다룰 예정이다.
  • 창세기 48:21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또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
  • 창세기 48:22 내가 네게 네 형제보다 세겜 땅을 더 주었나니 이는 내가 내 칼과 활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니라
출애굽 후에 가나안을 정복한 후 요셉의 뼈를 세겜에 묻는다.
  • 여호수아 24장 32절 또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가져 온 요셉의 뼈를 세겜에 장사하였으니 이곳은 야곱이 백 크시타를 주고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자손들에게서 산 밭이라 그것이 요셉 자손의 기업이 되었더라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이 구절을 처음 읽을 때 정말 놀랐다. 아무렇지 않게 넘어갔지만 어느 순간 알 수 없는 답답함이 밀려왔다. 하나님의 약속의 땅이라고 왔는데 그 땅은 빈 땅도 아니고,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곳도 아니었다. 그곳에는 그곳의 땅 주인이 따로 있었다. 아브람은 평생은 나그네로 살아가야 했다. 이 부분에대해서는 히브리서 기자가 잘 표현한다.
  • 히브리서 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 히브리서 11:9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 히브리서 11:10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창 12:7-9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가나안 땅에 도착하자 하나님이 다시 나타나셔서 약속을 하신다. 이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신다는 것이다. 분명 '네 자손'이라고 했다. 아직 없는, 태어나지 않은 아들을 하나님은 미리 말씀하신다. 아브라함이 이 약속을 들었을 때 얼마나 설렜을까? 

아브람은 약속을 믿고 그곳에 제단을 쌓는다. 굳이 예배로 번역하지 않아도 아브람의 믿음이 얼마니 대단한가를 잘 보여준다. 그는 하나님을 경험한 후 그대로 멈추지 않고 예물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를 표했다. 제사는 공짜가 아니다. 자신 소유의 일부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양이나 염소 한마리를 현재 돈으로 환산하면 적어도 20-50만 원 정도 가격이다. 요즘이라면 매주마다 이런 예물을 가지고 간다면 아마 폭동이 일어날 것이다.

13-20절 기근과 애굽에서 당한 일


창세기 12:10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놀라운 설명이다. 약속에 땅에도 기근은 온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에 형통만 존재할 거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어쩌면 믿음 이후 더 가정이 어렵고 힘들 수도 있다. 기근을 통해 아브람은 생존 방법을 찾아야 했다. 결국 그는 애굽을 선택한다. 이 부분 역시 안타깝다. 처음 당하는 일이라 어쩔 수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왜 기도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 일로 말미암아 아브람은 큰 어려움에 처한다.


창세가 12:11-13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그의 아내 사래에게 말하되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 하니라


이 부분은 놀랍도 못해 경악스럽다. 물론 현대인의 관점으로 말이다. 아브람은 사래에게 당신을 빼앗으려고 자신을 죽일 수 있다고 말하며, 차라리 먼저 누이라고 거짓말 하겠다고 말한다. 후에 이삭도 부전자전이라고 그대로 따라 한다.
  • 창세기 26장 7절 그 곳 사람들이 그의 아내에 대하여 물으매 그가 말하기를 그는 내 누이라 하였으니 리브가는 보기에 아리따우므로 그 곳 백성이 리브가로 말미암아 자기를 죽일까 하여 그는 내 아내라 하기를 두려워함이었더라


창세기 12:14-17 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이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바로의 고관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서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이끌어들인지라 이에 바로가 그로 말미암아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얻었더라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결국 아브람이 걱정한 일이 그대로 이루어진다. 사실 이 부분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몇 권의 창세기 주석을 봐도 딱히 동의할만한 설명을 못한다. 사래의 얼굴이 검은색톤의 이집트 인에게 하얗게 보여 이쁘게 보였을 것이라는 황당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곳도 있다. 탈북자들이 한국에 내려와 남자의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다고 한다. 그들이 보기에 너무 젊어 보인다고 한다. 잘 먹고 잘살아서? 아니면 사래가 동안이라서? 알 길은 없다. 다만 그렇다는 것이다.

사래가 얼마나 예뻤던지 애굽 사람들이 수근거리 시작했고, 그 소문이 바로에게까지 들린다. 결국 바로가 사래를 데려간다. 대신 사래이 오빠?인 아브람에게 많은 선물을 준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바로의 집에 재앙을 내린다. 아브람은 철저히 하나님께서 보호하신다.


창세기 12:18-20 바로가 아브람을 불러서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느냐 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 내가 그를 데려다가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라 하고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와 함께 그의 아내와 그의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


깜짝 놀란 바로는 바로 아브람을 불러 야단을 친다. 왜 거짓말을 했냐고. 결국 바로는 재앙을 겪고 나서야 아브람을 내보낸다. 후에 출애굽 사건과 너무나 닮지 않았는가. 지중해 근안에 큰 기근이 오자 야곱의 가족이 요셉의 도움으로 애굽으로 내려가고 430년 후에 모세를 통해 열 가지 재앙이 일어나고 결국 애굽을 나온다. 그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많은 재물을 가지고 나온다.
  • 출애굽기 12:35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하여 애굽 사람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매
  • 출애굽기 12:36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사 그들이 구하는 대로 주게 하시므로 그들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

믿음의 길은 순탄하지만 않다. 때로는 폭풍우도 있고, 사막을 만나기도하고, 목마름과 갈증이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마침내 약속하신 것들을 이루실 것이다. 믿음의 사람들은 어떤 환경에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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