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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22장 구조 묵상

열왕기상 22장 요약

열왕기상 22장은 이스라엘 왕 아합과 유다 왕 여호사밧이 연합하여 아람과 전쟁을 벌이는 장면을 다룹니다. 아합은 라못 길르앗을 되찾기 위해 전쟁을 계획하고, 미가야 선지자의 예언을 무시한 채 전투에 나섭니다. 아합은 전장에서 화살에 맞아 죽고, 예언대로 그의 피가 개들에게 핥기게 됩니다. 한편, 여호사밧은 유다에서 선한 왕으로 기록되며, 아하시야가 아합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왕이 됩니다.


열왕기상 22장 구조

  • 아합과 여호사밧의 연합 (22:1-12)
  • 미가야 선지자의 예언 (22:13-28)
  • 아합의 전사와 여호사밧의 귀환 (22:29-40)
  • 여호사밧과 아하시야의 통치 (22:41-53)


1. 아합과 여호사밧의 연합 (22:1-12)

"동맹과 전쟁 준비"


아람과 이스라엘 사이에는 3년 동안 전쟁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이스라엘 왕 아합은 아람 왕에게 빼앗긴 라못 길르앗을 되찾기 위해 유다 왕 여호사밧과 동맹을 맺고 함께 전쟁을 계획합니다. 여호사밧은 신실한 왕이었기에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여호와의 뜻을 묻자고 제안합니다. 아합은 400명의 거짓 선지자들을 불러오고, 그들은 모두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아합은 전쟁에 앞서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이미 전쟁을 하기로 결정한 상태였습니다. 여호사밧의 요청으로 선지자들을 부르긴 했으나, 진실을 말하는 하나님의 선지자가 아니라 아합의 뜻에 부합하는 거짓 선지자들을 부른 것입니다. 이는 아합의 마음이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있음을 보여줍니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의 뜻을 묻고자 할 때, 자신의 뜻을 우선하지 말고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구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2. 미가야 선지자의 예언 (22:13-28)

"진리를 외면하는 아합"


여호사밧은 400명의 선지자들이 전쟁의 승리를 예언한 것에 의구심을 품고, 다른 선지자가 있는지 묻습니다. 이에 아합은 미가야라는 선지자가 있으나, 그는 항상 불길한 예언만 하기 때문에 불러오기 싫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호사밧의 요청에 따라 미가야를 부릅니다. 미가야는 처음에는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비꼬듯이 말하지만, 이후 진실을 말합니다. 그는 아합이 전쟁에서 죽을 것이라는 예언을 하며, 아합이 패배하고 이스라엘이 흩어질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미가야는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모두 거짓 영에 사로잡혀 아합을 속이고 있다고 말합니다. 아합은 이 예언을 듣고도 마음을 바꾸지 않고 미가야를 감옥에 가둔 채 전쟁에 나섭니다.


미가야의 예언은 하나님의 진리를 대변했지만, 아합은 그 진리를 외면하고 자신의 욕망을 따랐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진리가 때로는 불편하거나 우리가 원하는 방향과 다를 수 있음을 배웁니다. 그러나 그 진리가 하나님의 뜻이라면, 우리는 반드시 받아들여야 합니다. 아합처럼 진리를 무시하고 자신의 욕망을 좇을 때, 그 결과는 파멸로 이어집니다. 이 장면은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받아들이는 자세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3. 아합의 전사와 여호사밧의 귀환 (22:29-40)

"하나님의 예언 성취: 아합의 죽음"


아합은 미가야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여호사밧과 함께 라못 길르앗을 공격합니다. 아합은 자신이 죽을 것을 두려워해 변장을 하고, 여호사밧은 왕복을 입고 전쟁에 나섭니다. 아람 왕은 아합만을 목표로 삼으라 명령했지만, 변장한 아합을 알아보지 못한 아람 군은 여호사밧을 공격합니다. 여호사밧이 하나님께 부르짖자 아람 군은 공격을 멈추고 물러갑니다.


그러나 한 병사가 무심코 쏜 화살이 아합의 갑옷 틈을 맞히며, 아합은 전차 안에서 피를 흘리며 죽습니다. 그의 피가 전차에서 흘러내리고, 예언대로 그의 피는 사마리아의 개들에게 핥기게 됩니다. 아합의 죽음은 하나님의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아합의 죽음은 하나님의 예언이 어떻게 정확하게 이루어지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는 진리를 외면하고 자신의 뜻을 따랐지만, 그 결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할 때 그 대가가 얼마나 무서운지 깨닫게 됩니다. 여호사밧이 하나님께 부르짖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구해주셨다는 점은, 신실한 자에게는 언제나 하나님의 보호가 있음을 상기시킵니다. 반면, 하나님을 무시한 아합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4. 여호사밧과 아하시야의 통치 (22:41-53)

"두 왕의 평가: 여호사밧과 아하시야"


아합의 죽음 후, 여호사밧은 유다에서 25년간 왕으로 통치하며 선한 일을 행합니다. 그는 그의 조상 아사처럼 여호와를 따랐으며, 이스라엘의 악한 길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산당을 제거하지 않았으며, 여전히 백성들은 산당에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여호사밧은 해상 무역을 시도했으나, 실패했습니다. 여호사밧의 통치는 전반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선한 왕으로 기록됩니다.


한편,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이스라엘의 왕위를 이어받아 2년간 통치했습니다. 아하시야는 여호와를 멀리하고, 바알을 섬기며 아버지 아합과 어머니 이세벨의 악행을 이어갔습니다. 그 결과 아하시야도 이스라엘을 멸망의 길로 이끌게 됩니다.


여호사밧과 아하시야의 통치는 대비됩니다. 여호사밧은 비록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을 따르는 선한 왕으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의지하며 유다를 다스렸고, 신실하게 여호와를 따랐습니다. 반면, 아하시야는 아합의 죄악을 그대로 이어받아 바알을 섬기며, 이스라엘을 더 깊은 죄악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이는 한 나라의 지도자가 하나님을 따르는지 여부가 나라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하나님을 따르는 선택이 중요하며, 그 선택은 개인뿐만 아니라 공동체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칩니다.


결론

열왕기상 22장은 아합과 여호사밧의 전쟁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와 불순종에 따른 심판을 강조합니다. 아합은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결국 전장에서 예언대로 죽음을 맞이합니다. 반면, 여호사밧은 신실하게 하나님께 의지하며 유다를 통치합니다. 아합의 죽음과 여호사밧의 보호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배우게 됩니다.


이 장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인간의 계획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습니다. 아합은 자신의 욕망을 따라 전쟁에 나갔으나, 그 결과는 파멸이었습니다. 반면,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으며, 선한 왕으로 기억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열왕기상 장별요약


열왕기상 20장 구조 묵상

 열왕기상 20장 요약

열왕기상 20장은 이스라엘의 아합 왕과 아람 왕 벤하닷 사이의 두 차례 전쟁을 기록합니다. 벤하닷은 이스라엘을 침략해 항복을 요구했으나, 하나님의 도움으로 아합은 전쟁에서 승리합니다. 벤하닷이 다시 침공했지만, 하나님께서 또다시 이스라엘을 도와 승리하게 하십니다. 아합은 벤하닷을 사로잡았으나, 그를 살려 보냄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심판을 받게 됩니다. 이 장은 하나님의 도움과 아합의 불순종을 보여줍니다.


열왕기상 20장 구조

  • 벤하닷의 첫 번째 침공과 하나님의 승리 (20:1-22)
  • 벤하닷의 두 번째 침공과 또다시 얻은 승리 (20:23-30)
  • 벤하닷의 사면과 하나님의 심판 예언 (20:31-43)


1. 벤하닷의 첫 번째 침공과 하나님의 승리 (20:1-22)

"하나님의 은혜로 얻은 첫 승리"


아람 왕 벤하닷은 32명의 왕과 함께 사마리아를 공격하고, 아합 왕에게 굴욕적인 조건으로 항복을 요구합니다. 벤하닷은 아합의 재산과 가족을 모두 요구했으며, 아합은 처음에는 항복을 고려했으나, 그의 장로들이 이를 반대하자 거부합니다. 이때 한 예언자가 아합에게 나타나 하나님의 뜻을 전합니다. 하나님은 벤하닷의 군대가 아무리 강력해도 그들을 이길 것이라고 약속하며, 이 승리가 하나님의 능력임을 분명히 보여주십니다.


벤하닷은 이스라엘을 과소평가하고, 술에 취해 있을 때 공격을 감행합니다. 아합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작은 군대와 함께 싸웠고,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으로 벤하닷의 군대는 크게 패배하게 됩니다. 벤하닷은 도망치고, 아합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를 뒤쫓아 마무리 공격을 준비합니다.


첫 번째 전쟁에서 중요한 것은 아합의 승리가 그의 군사력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입니다. 아합은 처음에 벤하닷의 요구에 순응하려 했으나, 예언자의 말씀에 따라 결단을 내렸고, 그 결과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았습니다. 이 장면은 인간의 연약함 속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그분의 백성을 위해 일하시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때로 작은 수를 사용해 강한 적을 이기게 하십니다(삼손의 사례처럼). 이때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가입니다. 아합은 하나님의 승리를 경험했지만, 그 이후의 행동에서 그 믿음을 계속 유지하는 데 실패합니다.


2. 벤하닷의 두 번째 침공과 또다시 얻은 승리 (20:23-30)

"하나님의 영광을 무시한 벤하닷의 두 번째 패배"


벤하닷은 패배 후 다시 군대를 재정비하고, 이스라엘과 또 한 번의 전투를 준비합니다. 아람 군대는 첫 번째 전쟁이 산지에서 벌어졌기 때문에 자신들이 졌다고 생각하고, 이번에는 평지에서 싸우면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산의 신일 뿐이라 여기며, 자신들이 평지에서 유리할 것이라 믿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은 산지나 평지에 제한되지 않으며, 하나님은 그들의 불신앙에 대해 응징할 것을 선언하십니다.


하나님은 또다시 예언자를 통해 아합에게 승리를 약속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시는 이유는 아람 군대가 하나님을 무시하고, 그분의 능력을 제한된 신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작은 군대로 평지에서 큰 아람 군대를 무찌르고, 10만 명 이상의 적군을 죽였습니다. 벤하닷은 다시 도망쳤으나, 이번에도 아합에게 목숨을 구걸하게 됩니다.


이 사건에서 아람 군대는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적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산의 신으로만 여겼으며, 하나님의 전능성을 무시한 채 자신들의 논리에 따라 전쟁을 계획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분으로, 그 어떤 영역에서도 승리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이 두 번째 승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드러내며, 하나님을 우상 숭배의 신들과 비교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보여줍니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과 그분의 주권이 모든 상황을 초월하여 역사하심을 깨닫습니다.


3. 벤하닷의 사면과 하나님의 심판 예언 (20:31-43)

"불순종으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


벤하닷은 패배 후 생명을 구걸하며 아합에게 자비를 구합니다. 아합은 벤하닷을 사로잡고도 그의 목숨을 살려주며, 그와 화친 조약을 맺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행동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벤하닷을 심판하길 원하셨으나, 아합은 그를 풀어줌으로써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했습니다.


이때 한 예언자가 아합에게 찾아와 비유적인 행동을 통해 그를 책망합니다. 예언자는 자기 자신을 다친 사람으로 가장하여, 아합 왕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합니다. 그는 아합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사람을 살려주었으므로, 그 대가로 아합 자신이 생명으로 갚을 것이라는 예언을 전합니다. 아합은 크게 괴로워하며 자신의 불순종을 깨닫지만, 결국 그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아합은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고 인간적인 판단에 따라 벤하닷을 살려주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인간적인 자비심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은 불순종의 문제였습니다. 하나님은 아합에게 벤하닷을 심판하라는 명령을 주셨지만, 아합은 그 명령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의 불순종은 결국 자신의 생명과 이스라엘의 멸망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 사건은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을 따를 때, 인간적인 판단보다 하나님의 뜻을 우선해야 함을 가르쳐줍니다. 하나님의 뜻은 항상 옳으며, 그분의 명령을 어길 때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는 교훈을 줍니다.


결론

열왕기상 20장은 하나님께서 아합에게 두 번의 전쟁에서 승리를 주시며,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보호받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아합은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벤하닷을 살려주며 불순종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아합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며, 이스라엘의 미래도 어두워지게 됩니다.


주해: 이 장은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 그리고 불순종의 대가를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작은 군대로도 강한 적을 무찌르실 수 있는 전능하신 분이시며,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모든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인간적인 판단보다 우선해야 하며, 그분의 명령에 신실하게 순종해야 합니다. 불순종의 결과는 항상 치명적이며,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면 그에 따른 심판이 반드시 따릅니다.


열왕기상 장별요약


열왕기상 12장 구조 묵상

 열왕기상 12장 요약

열왕기상 12장은 이스라엘 왕국이 남북으로 분열되는 중요한 장면을 다룹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위를 계승하지만, 그의 통치 초기에 백성들의 불만을 다루지 못하여 왕국이 갈라지게 됩니다. 르호보암은 어리석게도 나이 든 신하들의 조언을 무시하고 젊은 자들의 의견을 따르면서 백성들에게 더 큰 짐을 지우겠다고 선언합니다. 이에 따라 여로보암이 북쪽 열 지파의 지지를 얻어 북이스라엘을 세우고, 르호보암은 남쪽 유다 왕국을 통치하게 됩니다.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은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제사하러 가는 것을 막기 위해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 숭배를 조장합니다.


구조 분석

  • 르호보암의 어리석은 선택 (12:1-15)

백성의 요구를 거절하고, 더 큰 짐을 지우려는 르호보암의 결정.

  • 이스라엘 왕국의 분열 (12:16-20)

여로보암이 열 지파의 지지를 얻어 북이스라엘을 세움.

  • 르호보암의 통치와 북이스라엘의 우상 숭배 (12:21-33)

르호보암이 남유다를 통치하고,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백성에게 숭배하게 함.


묵상


1. 르호보암의 어리석은 선택 (12:1-15)


르호보암은 통치 초기에 중요한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백성들은 솔로몬 시대의 무거운 노동과 세금에서 벗어나기를 원했고, 나이 든 신하들은 백성의 요구를 들어줄 것을 권했습니다. 그러나 르호보암은 젊은 자들의 조언을 따르며 더 큰 짐을 지우겠다고 선언합니다. 이 선택은 그의 통치를 약화시키고, 백성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켜 결국 왕국이 분열되는 원인이 됩니다.


이 장면은 지도자의 지혜로운 판단과 타인의 조언을 경청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르호보암은 교만하고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보였으며, 이는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었습니다. 지도자는 백성의 필요를 이해하고, 그들의 요구에 공감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나는 내 삶에서 중요한 결정을 할 때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있는가? 혹은 내 주변 사람들의 지혜로운 조언을 듣고 있는가? 우리 모두는 결정을 내릴 때 하나님께 기도하며 지혜를 구하고, 자신의 고집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2. 이스라엘 왕국의 분열 (12:16-20)


르호보암의 어리석은 결정은 결국 왕국의 분열로 이어집니다. 백성들은 르호보암의 통치를 거부하고 여로보암을 새로운 왕으로 세우며, 이스라엘 왕국은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남쪽 유다는 르호보암의 통치 아래에 있었지만, 북쪽 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이 다스리게 됩니다. 이 분열은 이스라엘 역사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왔고, 하나님의 경고가 이루어진 사건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을 때, 공동체나 국가에 심각한 분열이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우리의 자아와 교만을 내려놓아야 함을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자신의 욕심과 고집대로 행할 때, 그 결과는 언제나 파괴적일 수 있습니다.


나는 내 삶에서 하나님의 경고를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에 말씀을 통해 경고하실 때가 많습니다. 그분의 말씀을 무시하지 말고 겸손히 순종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3. 르호보암의 통치와 북이스라엘의 우상 숭배 (12:21-33)


분열된 왕국에서 르호보암은 유다를 통치하게 되고, 여로보암은 북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여로보암은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제사하러 가는 것을 막기 위해 금송아지 두 개를 만들어 배델과 단에 두고, 백성들에게 그 우상을 숭배하게 합니다. 그는 정치적인 이유로 우상 숭배를 도입했지만, 이는 이스라엘을 큰 죄악으로 이끌어 갔습니다.


우상 숭배는 단지 형상을 섬기는 것을 넘어서,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중요시하는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여로보암의 행위는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한 것이며, 결국 북이스라엘은 우상 숭배로 인해 하나님과 멀어지게 됩니다. 우리도 삶 속에서 하나님보다 더 우선시하는 것이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합니다. 세상적인 성공이나 안정을 추구하는 것이 하나님보다 앞설 때, 우리는 영적으로 무너질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나는 하나님보다 더 우선시하는 것이 내 삶에 있는가? 세상의 유혹이나 정치적, 경제적 안정감을 추구하며 하나님을 멀리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중심은 언제나 하나님이어야 하며, 그분을 가장 우선으로 섬겨야 합니다.


결론


열왕기상 12장은 이스라엘 왕국의 분열과 그 원인을 기록하며, 지도자의 판단력과 순종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르호보암의 교만과 어리석음은 왕국을 분열시켰고, 여로보암의 정치적 우상 숭배는 북이스라엘을 영적으로 타락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우선시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열왕기상 장별 요약 목록


사사기 11장 강해

 사사기 11장 개요

여호와 앞에서 범죄 한 이스라엘을 하나님은 그들은 암몬 자손에 팔아 버립니다. 이스라엘은 다시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갑니다. 하나님은 길르앗 사람 입다는 사사로 세우셔서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십니다. 하지만 전쟁에 나갈 때 서원한 딸을 하나님께 드려야 했습니다.


사사기의 전체 구조 상에서 기드온이  사사로서의 최고의 정점을 찍었다면 입다는 두 번째 봉우리와 같습니다. 하지만 입다는 기드온과 현저한 차이가 존재합니다. 그것은 입다는 출신이 불분명하고, 에브라임 지파를 엄청나게 학살했다는 것입니다. 기드온이 숙곳 사람들을 학살한 점을 닮아 있으면서도 그 정도가 수백 배에 이릅니다. 이러한 점을 볼 때 기드온 사사라는 높은 봉우리와 같아 앞면은 밝은 빛이 비추지만 뒷면은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기드온 이후 사사들은 기드온의 그림자를 상당부분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점점 깊은 침체로 빠져들어갑니다.


사사 입다는 이후에 입산과 압돈이 나오기는 하지만 희미한 존재이고, 곧 삼손으로 넘어갑니다. 삼손은 엄밀히 사사로서의 개념이 없습니다. 그는 홀로 싸웠고, 누군가와 연합하여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표면상의 현상들은 입바가 사사기 안에서 마지막 사사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입다 안에서는 이후 이스라엘과 단지파와의 내전이 일어날 징후들이 전조 증상처럼 드리워져 있습니다. 전쟁의 달인? 이기는 하지만 인격적으로 전해 준비다 되지 않은 사사였습니다. 이제 사사기 11장 안으로 들어가 봅시다.


사사기 11장 구조

  • 1-3절 쫓겨나는 입다
  • 4-11절 입다와 거래하는 길르앗 장로들
  • 12-28절 암몬 왕과 타협하는 입다
  • 29-33절 전쟁에서 승리하는 입다
  • 34-40절 입다의 서원과 딸의 눈물


사사기 11장 강해


기생이 낳은 아들 입다

입다의 아버지는 길르앗으로 나옵니다.(1절) 지역 이름과 동일한 것을 볼 때는 그는 길르앗의 이름을 가져올 만큼의 큰 가문의 후손으로 보입니다. 조선시대로 치면 양반 중의 양반이며, 고관대작의 서생 출신 정도입니다. 출신 자체가 문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러한 출생은 길르앗이 정식적인 아내가 임신하면서 입다가 쫓겨났다는데 있습니다. 이것은 하갈과 그의 아들 이스마엘과 닮아 있습니다.


결국 본처의 아들들이 자라자 그들은 입다를 집에서 쫓아냅니다. 그들은 입다를 향해 '다른 여인의 자식'(2절)이라 말하며 그는 쫓아 냅니다. 결국 입다는 그들에게 쫓겨남을 당하고 돕(Tob) 땅에 거주하며 잡류들과 함께 지내게 됩니다.


   *아버지의 집

  • 성경에서 아버지의 집은 기업을 물려 받는 곳으로 소개됩니다. 이것은 명예와 권력 등을 물려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아버지의 기업을 잇지 못'(3절)한다는 말은 이러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를 청하다


암몬 사람들이 길르앗을 공격해 옵니다. 같이 붙어 있는 암몬은 자주 이스라엘을 괴롭혔습니다. 요단강 동편에 있던 길르앗 지방은 당연히 본토보다 더 먼저 침략을 당했습니다. 이번에도 이전과 달았습니다. 전면적으로 나와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정도였습니다. 벌벌 떨떨 그들은 결국 다시 돕(Tob) 땅에 있던 입다를 찾아가 도움을 구합니다.


길르앗 장로들은 입다에게 '와서 우리의 장관이 되라'(6절) 말합니다. 왕이라는 말을 돌려서 말한 것입니다. 하지만 입다는 불안합니다. 7절에 의하면 아버지의 쫓아낸 장본인들이 길르앗 장로들이었습니다. 아마도 본처의 아들들이 자신들이 힘이 없자 장로자들의 힘을 빌러 입다를 추방한 것으로 보입니다. 모든 사정을 알고 있던 입다는 당연히 그들의 말에 신용이 가지 않고, 굉장히 기분 나빠합니다. 쫓아낼 때는 언제고 이제 자신들이 어려움에 처하니 도움을 달라하다니.


몇 절 되지 않은 구절이지만 장로들과 입다는 계속해서 자신들의 요구를 서로에게 관철 시키고 있습니다. 6절에서 '장관이 되라' 말하고, '머리가 되리라'(8절), 말합니다. 입다도 장로들에게 '어찌하여'(7절), '내가 과연 너희의 머리가 되겠느냐'(9절) 결국 11절에서 입다는 길르앗 사람들의 '머리와 장관'이 됩니다.


이 부분을 유심히 살펴보면, 이스라엘이 기드온에게 했던 말입니다. 하지만 기드온은 거절합니다. 하지만 기드온은 왕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아들에게 '우리의 아버지는 왕이다'라는 이름을 지어준 것입니다. 아비멜렉은 기드온의 숨은 욕망을 그대로 드러내 세겜 사람들과 연합하여 기드온의 70 아들을 모두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됩니다. 하지만 그는 이스라엘의 왕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이제 입다가 등장하면서 진짜 왕은 아니지만 왕에 가까운 존재가 됩니다. 길르앗 장로들이 머리와 장관이 되어 달라 말했고, 본인도 머리가 되겠다고 말합니다. 


사사기의 핵심은 '왕'입니다. 하나님이 왕이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음으로 왕이 되기를 거부했습니다. 하나님은 사사들을 통하여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입다 스토리 안에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교제하는 내용이 없다는 것으로 기드온과 확연한 차이가 납니다. 또한 잘못된 서원은 그의 딸을 궁지로 몰아 넣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납니다.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서원은 후에 사울의 어리석은 서원과 너무나 닮아 있습니다. 지식이 없는 믿음은 어리석은 충동에 불과하다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입다와 암몬 왕과의 협상


길르앗에 쳐들어 온 이유


입다가 여러부분에서 부족하기는 하지만 사사는 사사다라는 말이 나오는 부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입다를 사용하셨는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입다는 먼저 암몬 왕에게 사자를 보내 왜 쳐들어 왔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암몬 왕은 너희(이스라엘)가 우리 땅을 쳐들어 왔기 때문이라 말합니다. 그러면서 출애굽 당시의 상황들을 이야기하면 그곳이 본래 자신들의 땅이었다고 말합니다.(13절)


첫 번째 반박, 이곳은 너희들의 땅이 아니다.

15절에서 22절까지에서 입다는 왜 이스라엘이 요단 동편 땅에 머물게 되었는가를 정확히 말해 줍니다. 하나님이 모압을 공격하지 못하게 한 것(17절)과 그 지역들이 아모리 왕 시혼의 것이었음을 말합니다.(21절) 즉 이 땅은 암몬 왕이 주장하는 것처럼 그들의 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입다의 이러한 주장은 그가 살아가고 있는 땅에 대한 이해, 하나님께서 이 땅을 차지하기까지의 과정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두 번째 반박, 여호와와 그모스가 준 땅?

입다의 주장은 명약관화합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여 얻은 땅이다. 그래서 얻은 것이다.(21-23절) 그렇다면 너희는 너희가 섬기는 그모스가 너희에게 준 땅이라면 너희가 얻을 것이 아니냐?(24절) 신들이 준 땅으로 네가 와서 달라고 하면 안 된다.


세 번째 반박, 네가 십볼의 아들 발락보다 나으냐?

세 번째 반박으로 출애굽 당시에 십볼의 아들 발락이 이스라엘과 싸우지 않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도 감히 무서워서 싸우지 않는데 니가 뭔데 우리와 싸우려 하느냐는 것입니다.(25절) 니가 발락보다 낫다고 우기는 것이냐? 따져 묻는 것이죠. 


네 번째 반박, 왜 지금까지는 빼앗지 않았느냐?

네 번째는 우리가 길르앗에 거한지 삼백 년이 넘었다. 여기가 정말 너희 땅이었다면 왜 지금까지는 단 한 번도 뺏을 생각을 하지 않았느냐? 그러므로 네가 이곳에 쳐들어와 땅을 달라고 하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다섯 번째 반박, 네게 악을 행하지 않았다.

27절에서 입다는 마지막으로 '내가 네게 죄를 짓지 아니하였거늘' 왜 쳐들어 왔다고 묻습니다. 즉 이곳에 쳐들어 올 이유가 단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입다의 주장을 보면 그가 얼마나 논리적이고 명석한가를 보여줍니다. 그는 단지 싸움을 잘하는 무식한 싸움꾼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바른 믿음과 뛰어난 머리를 가진 사사였습니다. 만약 입다가 감정적인 부분을 절제 했다면 기드온을 뛰어 넘는 위대한 사사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의 명석함은 다음 장에 나오는 에브라임 지파는 학살하는 데에도 사용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결국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옵니다.


입다의 서원과 딸


입다는 암몬과의 전쟁을 시작하면서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서원을 하나님께 하게 됩니다. 30-31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 주시면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


입다의 서원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학자들은 정말 제물로 바쳤다 아니다 논란이 많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인 맥락을 보면 그가 얼마나 어리석고 충동적인가를 잘 보여줍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사람을 제물로 드리지 않습니다. 그런 제물은 받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일부의 학자들은 그냥 성전에서 봉사하는 여자가 되게 했다는 식으로 말합니다. 하지만 '번제물'(31절)이란 표현은 제단에 드리는 제물을 말합니다.


결국 입다가 전쟁에서 승리한 후 돌아왔을 때 무남독녀인 그 의 딸이 소고 치며 춤을 추며 아버지를 반깁니다.(34절) 하나님의 뜻도 아니고, 자신의 즉흥적 생각으로 서원하는 어리석음 범하고 있습니다. 


입다의 잘못된 서원을 통해 진정한 왕의 필요성을 대두하게 됩니다. 사사기를 왕의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왜 왕이 필요한가를 설명합니다. 그래서 사사기는 사무엘성를 보조하기 위한 문서로 보기도 합니다.


사사기 장별요약 및 강해


사사기 9장 강해

 사사기 9장 개요

사사기9장은 기드온의 사망 이후를 다룹니다. 기드온의 아들 중에 세겜의 여인과 결혼하여 낳은 아비멜렉이 세겜 사람들과 결탁하여 기드온의 다른 형제들을 모두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됩니다. 하지만 얼마 후 세겜 사람들은 가알의 말에 넘어가 아비멜렉과 싸우게 됩니다. 


사사기 9장은 기드온이란 걸출한 사사의 내면에 숨겨진 욕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사기는 기드온을 정점으로 기드온 전과 후로 나뉘게 됩니다. 기드온 후의 영적 흐름을 보여주는 사건이 아비멜렉의 반역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스라엘은 내전 아닌 내전에 치르게 되고, 영적으로 엄청난 퇴보를 보여줍니다. 왜 그러한 퇴보가 나타나는지를 사사기 9장의 아비멜렉이란 인물과 요담의 저주 비유를 통해 풀어가 봅시다.


사사기 9장 구조

  • 1-6절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의 추악한 결탁
  • 7-21절 요담의 저주 예언
  • 22-57절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의 전쟁


사사기 9장 강해


1-6절 불의하고 악한 결탁


아비멜렉


9장이 시작되면서 이야기가 이상하게 흘러갑니다. 기드온의 한 아들인 아비멜렉이 어머니의 고향인 세겜을 찾아가 내가 너희를 다스리는 것이 낫느냐 기드온의 70명이 너희를 다스리는 것이 낫느냐고 말하며, '나는 너희와 골육'(2절)이라고 강조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매우 중요한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지난 사사기 8장에서 기드온의 전쟁 후 말기 인생에 대해 언급하면서 기드온이 왕이 되는 것은 거절했지만 마음은 왕이 되고 싶었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그 근거가 무엇일가?


먼저는 아비멜렉이란 이름에 들어가 있습니다. 아비멜렉의 뜻은 '나의 아버지는 왕이다'입니다. 아들의 이름을 누가 지을까요? 아버지가 짓습니다. 그런데 아들의 이름을 지으면서 '나의 아버지는 왕이다'라고 짓는다면 '나는 왕이다'라는 뜻이 됩니다. 기드온은 위대한 사사였지만 말로는 좋지 않았습니다. 그는 차마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시기에 왕이라고 호칭을 붙일수 없었지만 이미 왕이었고, 왕처럼 군림했습니다. 이것이 '아비멜렉'이란 이름 속에 들어가 있습니다.


골육과 형제


자 두 번째 문제로 넘어가 봅시다. 아비멜렉은 자신이 왕이 되기 위하여 '어머니의 형제'(1절)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2절에서 '나는 너희와 골육'이라 말합니다. 그러자 세겜 사람들은 서로 말하며 '그는 우리 형제'라고 말합니다. 아비멜렉은 자신이 어머니의 가족, 형제, 민족들에게 같은 혈육임을 강조하며 도움을 구합니다. 결국 이러한 아비멜렉의 강조는 세겜의 피가 있는 아비멜렉과 전혀 피가 섞이지 않는 다른 기드온의 아들들과 구분 짓고 차별하게 합니다. 세겜 사람들은 아비멜렉의 말에 수긍하고 그와 한 배를 탑니다. 가장 치졸하고 악하고 교활한 방법입니다.


왕이 된 아비멜렉


6절에서 세겜 사람들과 밀로 모든 족속들이 모여 세겜의 상수리 나무 아래 곁에서 아비멜렉을 왕으로 삼습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왕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왕이시기 때문에 왕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 삼상 8: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그렇다고 왕을 세우지 않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신명기 17:14-20에 의하면 하나님은 후에 왕이 세워야 할 때가 되면 이러한 조건을 통해 왕을 세워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 신 17:14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이르러 그 땅을 차지하고 거주할 때에 만일 우리도 우리 주위의 모든 민족들 같이 우리 위에 왕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나거든
  • 신 17:15 반드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네 위에 왕으로 세울 것이며 네 위에 왕을 세우려면 네 형제 중에서 한 사람을 할 것이요 네 형제 아닌 타국인을 네 위에 세우지 말 것이며
  • 신 17:16 그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
  • 신 17:17 그에게 아내를 많이 두어 그의 마음이 미혹되게 하지 말 것이며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
  • 신 17:18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이 율법서의 등사본을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서 책에 기록하여
  • 신 17:19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 신 17:20 그리하면 그의 마음이 그의 형제 위에 교만하지 아니하고 이 명령에서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니 이스라엘 중에서 그와 그의 자손이 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하리라


그런데 아비멜렉은 아직 시기가 아님에도 스스로 왕이 되고 싶어 외가를 찾아가 사람들을 교묘히 설득한 것입니다. 아비멜렉의 이러한 왕이 되려는 욕망은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기드온이 심어 놓은 것이다. 하지만 기드온은 차마 왕이 될 수 없었습니다. 최소한의 신앙양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죠. 아비멜렉은 달랐습니다. 그는 신앙도 없고, 양심도 없는 교활하고 악한 자입니다. 그는 왕이 되려는 욕망에 사로잡혀 불의한 자들과 결탁하고 불의한 자들을 돈으로 매수하여 모두 죽인 것입니다.


7-21절 요담의 나무 비유


요담의 비유를 잘 들어보면 이스라엘 안에서 나무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열매를 통해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것이 그들의 사명이었죠. 하지만 가시나무는 아무런 열매도 없고, 오히려 고통을 줍니다. 그런데 가시나무가 스스로 왕이 되겠다고 나섭니다. 결국 가시나무를 왕으로 만들면 고통이 따를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가시나무는 아비멜렉입니다.


삼을 삼으려 함


요일하게 살아남은 요담은 그리심 산 꼭대기에 올라가 세겜 사람들에게 나무의 비유를 통해 그들의 어리석음을 지적합니다. 나무들이 왕을 삼으려는 시도는 8장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을 찾아 한 말입니다. 그들은 왕이 있어 자신들을 다스릴 때 평화가 온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나무의 비유는 곧 이스라엘을 의미합니다.


나무들의 거절


올리브 나무를 찾아가 왕이 되어 달라 말합니다. 하지만 올리브 나무는 거절합니다. 거절의 이유를 읽어 봅시다.

내게 있는 나의 기름은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나니 내가 어찌 그것을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우쭐대리요 한지라(9절)


감람 나무는 자신의 기름으로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버릴 수 없고, 또한 나무들 '위에 우쭐'대는 것을 몹시 경계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굳이 왕이 될 이유가 없는 것이죠. 올리브 유는 정말 많은 곳에 사용되었습니다. 식용으로 사용하기도하고, 하나님의 등불을 켜고, 상처를 치유하는 약품으로 사용됩니다. 그것이 자신에게 너무나 좋고 행복한 것이죠. 그것을 버리고 싶지 않다고 말합니다.


이번에는 무화과 나무를 찾아갑니다. 무화과 나무도 비슷한 말을 합니다. 

나의 단 것과 나의 아름다운 열매를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우쭐대리요(11절)


무화과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식량이고 간식입니다. 익은 무화과도 맛있고, 적당히 말리면 그야말로 최고의 과자가 됩니다. 이렇게 중요한 일을 하는데 이것을 버리고 왕이 되고 싶지 않다 말합니다.


포도나무를 찾아갑니다. 포도나무도 동일한 답변을 합니다.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내 포도주를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우쭐대리요(13절)


포도나무는 포도 열매를 맺고, 그것으로 포도주를 만들어 사람들을 즐겁게 합니다. 이것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이며, 다른 나무들 위에 우쭐대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합니다. 올리브, 무화과, 포도 나무 모두 왕이 되는 것을 거절하니다. 이들은 가나안에서 가장 중요한 산물이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나무들입니다.


가시나무의 제안


그런데 가시나무에게 왕이 되라 하자 놀랍게도 가시나무는 왕이 되겠다고 말하며, 자신의 그늘에 와서 피하라고 말합니다. 가시나무에 그늘이 거의 없는 데 말이죠. 만약 자신의 그늘 아래 오지 않으면 자신에게서 불이 나와 레바논의 백향목을 사를 것이라 말합니다. 레바논의 백향목은 모든 나무 중의 으뜸이요 거대한 나무입니다. 값비싼 나무이며, 왕궁과 성전을 지을 때 사용하기도 합니다. 감히 백향목과 가시나무는 비교 조차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가시나무는 레바논의 백향목까지 태울 것이라 협박을 합니다.


여룹바알 기드온


요담은 이어 자신의 아버지 기드온이 어떤 희생을 통해 미디안의 손에서 너희를 건졌는가를 상기시킵니다. 그런데 세겜 사람들은 기드온의 은혜를 저버리고 아비멜렉과 손을 잡고 기드온의 아들들을 죽이고 아비멜렉을 왕으로 삼았습니다. 이제 아비멜렉에게서 불이 나와 세겜 사람들을 죽일 것입니다.


22-57절 아비벨렘과 세겜 사람들의 전쟁


악한 영을 보내시매


아비멜렉이 왕이 된 지 삼 년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에 악한 영을 보냅니다.(23절) 사사기 기자는 이유를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이 기드온의 아들들에게 행한 악한 일 때문이라 말합니다.


악한 영이 어떤 일을 하는 지를 나타나지 않지만 25절을 보면, 그들의 마음에 나쁜 마음이 들게 한 것이 분명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고 적대시하게 함으로 서로 싸우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정말 무서운 것이죠. 자중지란 사자성어처럼 아군끼리 서로 싸우면 결국 자멸의 길로 가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악한 영을 보내심으로 심판하려는 것입니다.


전쟁의 서막, 가알이 신뢰를 깨다


에벳의 아들 가알이 등장합니다. 26절에서 그의 형제들과 함께 가일이 등장하니다. 그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세겜 사람들이 그를 신뢰했고(26절), 가알은 아비멜렉을 저주합니다.(27) 왜 우리(세겜)가 아비멜렉을 섬겨야 하느냐?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이죠. 그는 백성들이 내 수하에 있다면 아비멜렉을 제거했을 것이라 호언장담하기도 합니다.(29절) 가알의 말에는 세겜 사람들과 아비멜렉 사이에 깊은 골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가알은 그것을 간파하며, 세겜 사람들의 입이 되어 주고 있습니다.


아비멜렉의 반격


세겜을 다스리는 아비멜렉의 수하 스불이 가알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아비멜렉에게 고합니다. 그러자 그들은 네 때에 나누어 밤에 매복하고 날이 밝자 가알과 세겜 성을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을 공격하자 세겜 사람들의 일부가 엘브릿 신전의 보루로 들어갑니다. 아비멜렉은 분노하여 그곳에 올라간 사람들을 모두 죽이려 합니다. 그는 살몬은 산에 올라 나뭇가지를 찍어 보루 아래에 놓고 불을 지를 생각이었습니다.  그렇게 세겜 망대에 있는 천 명이 죽게 됩니다. 


더베스까지 추격하여 그곳 사람들까지 죽일 생각을 합니다. 그곳에 견고한 망대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곳으로 도망합니다. 아비멜력은 이번에도 그곳에 불을 지르려 합니다. 그런데 그 때 한 여인이 멧돌 윗짝을 던져 아비멜렉의 머리를 깨뜨립니다. 아비멜렉은 자신이 살 수 없음을 알고 무기든 청년에게 자신을 죽이라 말합니다. 결국 아비멜렉은 죽임을 당하고 전쟁은 끝이 납니다.


저주가 임함


가짜 왕의 삼 년 천하는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지 않는 스스로 왕이 된 가짜 왕 아비멜렉은 비참하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사사기 기자는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의 악행을 이렇게 갚으셨다 말하며 9장을 마무리합니다. 하나님은 악을 두고 보지 않고 반드시 응징하는 분임을 말해 줍니다.


사사기 장별요약 및 강해목록



여호수아 11장 강해

여호수아 11장 개요

기브온 민족들로 인해 가나안 남부 거민들과 전쟁이 일어나고 결국 싸움에서 승리하게 됩니다. 전쟁이 휴전 상태가 될 것 같은데 악인들은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이번에는 갈릴리 상부에 자리한 하솔 왕 야빈이 연합군을 형성하여 이스라엘을 공격하기에 이릅니다. 

여호수아 11장 구조

  • 1-15절 가나안 북방 민족과의 전투에서 승리함 
  • 16-20절 앞선 전투의 간략한 정리
  • 21-23절 아낙 자손들을 멸함

1-15절 가나안 북방 민족과의 전투에서 승리함


하솔 왕 야빈


 
긴네롯은 갈릴리의 구약적 이름입니다. 하솔 왕 야빈이 사는 지역은 갈릴리 지역과 그 윗 지방을 말합니다. 이 지역은 가나안 본토와도 약간의 거리가 있지만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합니다. 서쪽으로는 페니키아 지방(두로와 시돈)이 자리하고, 북쪽으로는 아람 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헤르몬 산 아래와 갈릴리 중간쯤에 자리하고 있어 교통의 요지입니다. 이 지역을 지배하는 것은 강력한 힘이 필요합니다. 하솔 왕 야빈은 그 어떤 왕보다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어서 주변의 나라들을 모아 연합군을 형성하게 됩니다.

모든 군대를


야빈이 부르자 주변 연합국들은 그들의 모든 군대를 끌고 나옵니다. 이들은 단지 몇 명으로 해결한 문제가 아니라고 보았던 것입니다. 이번에 끝내지 않으면 잘못하면 점령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 미친 것 같습니다. 그야말로 총력전이 되고 말았습니다. 연합군의 수가 얼마나 많았던지 '해변의 수많은 모래 같고 말과 병거도 심히 많'(4절)았다고 말합니다. 모래는 사람이 셀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엄청난 수를 말할 때 바다의 모래와 같다 표현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두려워하지 말라'(6절) 하십니다. 1장에서 느꼈던 그 두려움이 여호수아를 엄습한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보았던 가나안 족속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거대한 수와 강력한 군대였습니다. 여호수아는 두려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전쟁에서 과연 이길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할까? 걱정과 근심에 기도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이 말씀이 얼마나 위로가 될까요? 하나님은 어떻게 전쟁을 치러야 할지를 정확하게 말씀해 주십니다.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이 표현은 전쟁에서 이기는 방법으로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다시 전쟁에서 말은 정말 중요한 수단이었습니다. 요즘으로 보면 최신형 전투기와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의 힘줄을 끊어 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전쟁을 이겨도 그 말들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하나님은 항상 말을 주의하라고 했습니다. 전쟁을 준비하는 것은 좋지만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했습니다.

  • 신 17:16 그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

갑자기 습격할 때에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들을 갑자기 습격합니다. 강력한 무기를 가진 이들은 교만합니다. 그들은 마음에 나태해져 전쟁을 우습게 봅니다. 여호수아는 교만한 그들의 마음을 이용하여 갑자기 습격합니다. 아무런 전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그들은 한 순간에 진영이 무너집니다. 여호수아 군대는 즉각적으로 그들을 공격하여 완전히 진멸합니다. 미스르봇 마임은 두라 아래에 자리한 곳으로 바위로 이루어진 요새와 같은 곳입니다. 그러니까 완전히 서쪽 끝까지 몰아 부쳐 그들은 진멸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의 말로입니다.

 
모세가 명령한 것처럼 모세는 죽었지만 모세를 통해 경고한 말씀을 살아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를 통해 주어진 말씀, 즉 가나안 사람들을 진멸하라는 말씀에 순종합니다. 그들은 남겨 종으로 삼거나 재산을 불리는 것이 이득이지만 말씀대로 해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이익에 눈이 멀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기록된 말씀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16-20절 앞선 전투의 간략한 정리 그 온 땅


 
이제 마지막을 지금까지 전쟁을 간략하게 소개합니다. 산지, 네겝(남방 광야)과 고센의 땅과 평지, 아라바까지 모두 점령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는 모든 곳입니다. 17절은 사해 아래 에돔에서 동쪽 왕의 길을 지나 갈릴리 동부와 헤르몬 지역까지입니다. 

기브온 외에는


치명적인 실수이긴 하지만 여호수아는 이 일로 절대 타협하지 않고 그대로 전쟁을 이끌어 모든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실수할 수 있지만 실수가 계속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 약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그들이 완악하여


 
가나안 전쟁이 흥미로운 것은 여호수아가 의도적으로 전쟁을 시작한 곳은 여리고와 아이 뿐입니다. 나머지는 그들이 먼저 공격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완악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 자멸의 길을 걸었던 것입니다. 바로가 마음이 완악하여 자멸의 길로 걸은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교만은 반드시 패망합니다.

 

21-23절 아낙 자손들을 멸함


아낙 자손들을 멸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렇게 두렵게 했던 아낙 자손들이 여호수아에게 죽게 됩니다. 이들은 후에 다윗에 의해 완전히 제거됩니다. 우리를 무섭게 하고 두렵게 하는 것들은 그들 자체가 아니라 우리의 생각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우리의 마음으로 제한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것은 말씀대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결국 모든 전쟁이 끝이 났습니다. 이 전쟁은 큰 전쟁을 말합니다. 지파별로 작은 전쟁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이것은 사사기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가나안 전쟁은 하나님의 대적하는 이들에 대한 전쟁입니다. 여호수아는 전쟁 시작 전 두렵고 힘들었지만 결국 말씀대로 순종할 때 승리를 얻게 됩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입니다. 우리의 힘과 능이 전부가 아닙니다.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여호수아 10장 강해

여호수아 10장 개요


기브온 거민들에게 속아 언약을 약조를 한 이스라엘은 기브온 거민들이 동족들의 공격을 받자 돕기 위해 출격합니다. 하지만 가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전쟁을 시작했지만 곧 해가 저물어갑니다. 이때 여호수아는 하나님께 해가 지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해가 중천에서 내려가지 않게 됩니다.

여호수아 10장 구조

  • 1-15절 중천에 머문 태양
  • 16-28절 아모리의 다섯 왕을 처형
  • 29-43절 가나안 남부 성읍들을 정복함

여호수아 10장 강해


1-15절 중천에 머문 태양


아모리 족속의 다섯 왕들


기브온 거민이 이스라엘과 동맹을 맺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주변의 거민들은 큰 충격에 빠집니다. 아모리 다섯 왕들은 서로 연합하여 기브온 족속을 공격하기로 합니다. 아모리 다섯 왕들은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 헤르본 왕 호함, 야므룻 왕 비람, 라기스 왕 야비아, 에글론 왕 드빌입니다. 이들은 가나안의 중서부에 위치한 소국들이며, 서로 연대하며 지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이 연합하게 된 이유는 아이성의 멸망과 기브온의 화친 때문입니다.(1절) 기브온성이 상당히 크고 중요한 성읍이었습니다. 그런데 기브온이 이스라엘과 화친했다는 것을 그들에게 큰 위협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결국 그들은 큰 두려움에 빠져 지금까지 관망하던 자세를 버리고 적극적으로 이스라엘을 대적하기 위해 힘을 모으게 됩니다.

당신들의 종을 도우소서


아모리 다섯 왕들이 연합하여 공격해 오자 기브온 사람들은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급히 사람을 보내 도움을 청합니다. 소식을 전해 들은 여호수아는 곧바로 군대를 정비하여 기브온에게 출발합니다. 하지만 거대한 연합군을 상대해야하는 여호수아는 엄청난 부담으로 갖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위로하십니다.

  • 수 10:8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그들 중에서 한 사람도 너를 당할 자 없으리라 하신지라
누군가를 돕는 것은 희생이 따릅니다. 희생 없이 도울 수 없습니다. 기브온 민족을 돕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약조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걸린 문제입니다. 하지만 희생이 따릅니다. 여호수아는 물러서지 않고 출격을 명했지만 두려웠습니다. 상대가 너무 강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위로하여 전쟁에 임하게 하십니다.


밤새도록 올라가서


여호수아 군대를 쉬지 않았습니다. 멈추지도 않았습니다. 너무 피곤하다면 중간에 쉴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아모이 연합군과의 전쟁이 싫거나 기브온 민족을 돕기 싫었다면 분명 나쁜 수법을 썼을 것입니다. 일부러 늦게 출발하거나, 의도적으로 전쟁을 피할 수 있었지만 여호수아는 비겁하게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께서 - 패하게 하시므로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여호수아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반드시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겠다고. 우리는 그 약속을 믿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 삼상 17: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11절을 보면 전쟁에서 이길 뿐 아니라 하늘에서 우박이 내려 아모리 연합군은 큰 어려움을 당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으 하나님의 백성들을 돕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온 천지 만물이 주인이십니다.

태양아 머무르라


전쟁이 한 창 일 때 여호수아는 여호와께 아뢰어 태양이 멈추게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즉 아직 적들을 섬멸하지 못했으므로 기적을 베풀어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태양이 멈추고, 달이 멈춘 것입니다. 자연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기적이 계속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기적이 당연히 일어날 것이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요행입니다. 반대로 기적은 없다고 말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들을 위해 기꺼이 기적을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  요일 5:14-15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16-28절 아모리의 다섯 왕을 처형


다섯 왕들이 도망하여


아모리 연합 다섯 왕들은 전쟁에서 패하여 도망갔습니다. 그들은 막게다 굴에 숨게 됩니다. 이들의 첩보를 들은 여호수아는 큰 돌로 입구를 막고 지키게 합니다. 그리고 본군에게는 나머지 적들이 자신들의 성읍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추적하게 합니다. 자신들의 성읍으로 들어가면 어려운 전쟁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여 적들을 거의 섬멸하고 몇 사람만 성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 소식을 들은 가나안 사람들은 너무 놀라 대적하지 못하게 됩니다.


전쟁이 거의 마무리되자 여호수아는 굴 앞으로 갑니다. 어귀를 열고 다섯 왕을 끄집어 냅니다. 지휘관들에게 왕들의 목을 발로 밟도록 명합니다. 목을 밟는 행위는 완전한 승리를 말합니다. 왕들을 죽여 나무에 매달고 다시 그들을 굴에 던져 넣고 닫아 버립니다.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자들에게 보여주는 상징적인 행위입니다.




*목을 발로 밟는 행위

발은 신체 중에서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하며 지저분합니다. 목은 사람의 신체 중에서 취약한 부분이며, 머리를 받치는 상징적인 신체입니다. 목은 그 사람의 신분과 권위를 나타냅니다. 가장 더럽고 낮은 곳의 발로 그 사람의 권위를 뜻하는 목을 밟는 것은 완전히 그를 무시하고, 정복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티그랏 빌레셋 3세(Tiglath-pileser III)가 전쟁에서 패한 적의 목을 밟는 부조




29-43절 가나안 남부 성읍들을 정복함


립나,  라기스, 게셀, 에글론, 드빌, 고센


여호수아는 다시 가나안 남부 성읍들을 하나씩 정복해 나갑니다. 립나와 싸워 멸하고, 라기스와 싸워 멸하며, 호람을 싸워 멸합니다. 라기스를 멸합니다. 에글로으로 가서 그 성도 멸합니다. 이들은 다섯 왕들의 성읍들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 왕들이 가만히 있지 않고 여호수아와 싸우기 위해서 나왔다는 것입니다. 왜 그들은 도망가지 않고 전쟁을 선택했을까요? 우리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은 애굽왕 바로가 그러했든 완악한 마음으로 이스라엘과 대적했고, 결국 완전히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여호수아 6장 강해

여호수아 6장 개요

모든 준비를 마친 여호수아는 드디어 여리고 성을 공격합니다. 매일 한 바퀴, 마지막 날 7바퀴를 돌고 함성을 지르자 무너집니다. 이스라엘은 여리고성을 진멸하고 라합과 그의 가족들을 구출해서 돌아옵니다.

여호수아 6장 구조

  • 1-7절 전쟁 준비를 하다.
  • 8-21절 여리고성을 진멸하다.
  • 22-27절 라합과 그의 가족을 구하다.

여호수아 6장 강해


여호수아 6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성을 정복한 사건을 기록합니다. 요단강을 건넌 후 이스라엘은 길갈에 진을 쳤고, 할례를 행하며, 가나안에서 첫 유월절을 보냅니다. 시기적으로 봄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후 드디어 첫 전쟁인 여리고성 공격에 나서게 됩니다. 여리고성에 대한 공격은 앞으로 전개될 전쟁에서 승리하는 방법과 양식을 잘 설명해 줍니다.


두려움에 떠는 여리고


1절은 5장 라합의 고백과 맞물려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공격을 준비하자 여리고성의 사람들은 두려움에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지 이스라엘이 강해서 근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요단을 건넜을 때 왜 주변의 성들은 전혀 준비를 하지 않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마음을 주관하여 전쟁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막으십니다. 하지만 후에는 서로 연합하여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스스로 자멸의 길을 걷습니다.

넘겨주었으니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2절) 다고 말합니다. 즉 전쟁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지만 승패를 이미 결정 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입니다. 변치 않는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룰 것입니다. 하지만 순종하는 자에게 약속은 주어집니다. 순종하지 않고 불의를 행하는 자들에게 약속을 성취되지 않습니다.

손에 넘겨 주다는 말은 모든 통제권을 준다는 말이며, 전쟁에서는 승리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에을 붙드심으로 모든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실 것입니다.
 

너희 모든 군사는...


하나님은 승리의 방법을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너무나 간단하고 어이없는 행동입니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아무 말하지 않고 여리고 성만을 도는 것입니다. 마지막 일곱째 날은 일곱 번을 돌고 양각 나팔을 불면 끝입니다. 참으로 기이하고 혼란한 방법입니다. 이런 전술이 또 있을까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전쟁은 여호와께 있으며, 모든 적들을 이기는 능력도 하나님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전쟁에서 이기는 방법은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나안 전쟁의 승리의 비결입니다.

우리는 종종 더 많은 방법, 더 좋은 전술을 만들지만 여리고 전쟁은 아닙니다. 이 전쟁은 이미 이긴 전쟁이며, 순종이 승리의 비결임을 알려 주려는 의도입니다.
 

양각 나팔을 불고


나팔은 고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신호 체계였습니다. 지금도 소리를 통해 전달합니다. 경찰이나 소방차, 구급차 등은 위기 시에 큰 소리를 냅니다. 나팔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글을 참조 바랍니다.

아무도 말하지 않고 침묵으로 걷지만 유일하게 나는 소리는 양각 나팔 소리입니다. 전쟁의 소리일까요? 새로운 시작의 소리일까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양각 나팔 소리가 이스라엘에게는 승리의 파이팅이지만 여리고 사람들에게는 죽음의 공포 소리가 될 겁니다.

기생 라합과 그 집에...


 
드디어 일곱째 날이 되자 소리를 외칩니다. 이제 여리고를 직접 공격할 것입니다. 하지만 라합과 그의 집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살려 내라' 말합니다. 두 정탐꾼을 숨겨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라합이 두 정탐꾼과 약조한 것입니다. 전쟁터에서 그의 가족만을 살려내는 것은 결코 쉬운데 아닙니다. 하지만 여호수아는 그 약속을 기억했고 그대로 행합니다. 후에 여호수아는 두 정탐꾼에게 라합의 집에 직접 들어가 그들을 이끌어 내라 명합니다.(22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한 약속을 우습게 여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명예가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후에 라합은 유다 지파 살몬과 결혼하여 다윗의 조상이 됩니다.(참 마 1:5)

여호수아의 저주


여리고성을 정복한 여호수아는 저주를 내립니다. 앞으로 누군가가 여리고성을 건축하게 된다면 기초를 쌓을 때 맏아들을 문을 세울 때 막내아들을 잃게 될 것입니다. 여리고성과 그 안의 모든 물건은 아무도 취해서는 안되는 것으로 하나님께 바쳐진(헤렘) 제물과 같습니다. 하지만 후에 히엘이란 사람이 여리고를 건축하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려는 거과 같습니다. 탐욕의 시대, 하나님을 버린 시대를 말합니다.

  • 왕상 16:34 그 시대에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였는데 그가 그 터를 쌓을 때에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그 성문을 세울 때에 막내 아들 스굽을 잃었으니 여호와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통하여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드디어 첫 전쟁이 끝이 났습니다. 여리고성의 승리 비결은 아주 간단합니다. 바로 '순종'입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잊지 맙시다.


창세기 14장 강해

 창세기 14장 개요


애굽에서 돌아와 목자들이 서로 싸우는 바람에 아브람과 롯은 결별합니다. 롯은 요단들을 보고 그곳으로 떠납니다. 홀로 남은 아브람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와 다시 언약을 상기 시키시며 보이는 땅을 주시겠다 약속하십니다.  롯이 소돔성에 거할 때 시날 왕 연합군과 소돔왕 연합군과의 전쟁이 일어납니다. 전쟁에서 소돔 연합군이 패하자 소돔성에 거하던 롯도 함께 포로로 잡혀갑니다. 아브람은 소식을 듣고 에스골의 형제와 연합하여 시날 왕 그돌라오멜 연합군을 공격하여 격파합니다. 오는 길에 살렘왕이자 제사장을 만나 축복을 받게 됩니다.


창세기 14장 구조

  • 1-12절 싯딤 골짜기의 전투
  • 13-16절 아브람의 헌신
  • 17-24절 멜기세덱의 축복


창세기 14장 강해


1-12절 싯딤 골짜기의 전투


전쟁이 일어나다


사람의 앞 일은 알 수가 없습니다. 롯은 자신이 가장 지혜로운 선택을 했다고 판단했고, 그것을 실행해 옮겼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얼마 가지 않아 자신이 거하던 소돔에 전쟁이 일어납니다. 전쟁에서 승리하든 패배하든 주민들은 피해를 봅니다. 가장 지혜로운 선택이 가장 어리석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싯딤 골짜기


싯딤(Shitim)은 아카시아를 말합니다. 이곳의 지명은 '아벨 싯딤'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해 북동쪽에 느보산 바로 위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싯딤 골짜기는 아벨 싯딤에서 조금 떨어진 사해 남쪽 근방입니다. 이곳은 후에 지대가 낮고 역청이 많아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연합군은 시날 왕 연합군이싯딤 골짜기를 통해 들어올 것이라 예상하고 그곳에 진을 친 것입니다. 




전쟁의 원인


4절에서 전쟁의 원인이 소개됩니다. 12년 동안 시날 왕 그돌라오멜을 소돔 지역 사람들이 섬겼습니다. 하지만 제십삼년에 배반하자 그돌라오멜은 분노하여 연합군을 형성하여 제14년이 되던 때에 소돔과 고모라를 공격한 것입니다. 그 때 하필이면 롯이 소돔성에 거하게 된 것입니다.


아마도 14년 전에 소돔과 고모라는 시날 왕에 의해 식민지? 상태가 되어 계속하여 조공을 바쳐온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처음 바칠 때는 평화를 위한 대가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소돔 연합국은 서로 배신하기로 합의하여 13년 차에 조공을 바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약자를 힘을 길러야하고, 그렇지 않다면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엄청난 고통을 수반하게 됩니다. 시날 왕 그돌라오멜은 연합군을 형성하여 소돔을 공격해 왔습니다.


소돔에 거주하는 롯도 잡혀감


롯은 아브람과 헤어질 때 소돔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소돔이 가깝기는 했지만 가축을 키워야 했기에 요단들을 찾아 떠났습니다. 하지만 수년 뒤에 롯은 소돔성 안에 살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후에 롯의 아내가 소돔을 빠져 나오면서 뒤를 돌아본 사건과 연관지어 본다면, 롯의 아내가 강청하여 소돔성으로 들어갔을 것으로 보입니다.


자석이 철을 끌어 당기듯, 세상을 좋아하는 롯과 롯의 아내는 타락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소돔성에 점점 이끌려 결국 모든 것을 팔아 버리고 소돔성에 자리잡게 되었을 것이 확실합니다. 결국 롯은 소돔성과 같은 운명이 되어 소돔성이 패배하자 그도 함께 포로가 되어 끌려갑니다.


세상을 사랑하면 세상과 같은 운명이 되고, 주님을 사랑하여 주님처럼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그와 함께하며 그와 같은 운명이 됩니다. 당신의 운명은 무엇입니까?


13-16절 아브람의 헌신


아브람의 출동


아브람이 롯이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이 지금까지 길러온 군사들을 이끌고 그돌라오멜 연합군을 추격하기 시작합니다. 우린 여기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아브람이 어떻게 해서 많은 군인들을 가질 수 있었는가입니다. 성경은 13절에서 가나안에 거주하는 아브람과 동맹한 사람들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즉 그들은 아브람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전쟁에 나가 목숨을 걸 정도라면 보통 사이가 아닙니다. 


아브람이 혼자 양성한 사병이 아닙니다. 그들은 가나안 주민들입니다. 아브람은 그들과 연합하여 지금까지 지내왔던 것입니다. 그들과 연합하기 위하여 아브람은 많은 재산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그들의 옷과 음식등을 꾼준히 제공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처럼 위급한 상황에서 그들은 아브람의 요청에 기꺼이 응하였습니다. 무엇이든 대가를 지불합니다. 평화에도 대가가 필요하고, 안전에도 대가가 필요합니다.


17-24절 멜기세덱의 축복


살렘 왕 멜기세덱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아브람 앞에 살렘왕 멜기세덱이 찾아옵니다. 살렘은 후에 예루살렘이 되는 곳으로 옛지명입니다. 살렘은 '평화'란 뜻입이며,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라는 뜻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살렘 왕을 족보가 없다며 예수님과 비유하기도 합니다.

살렘왕은 아브람을 향하여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으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라고 말합니다. 즉 이 전쟁은 아브람 혼자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붙드셨고, 함께 하신 것입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미쳐 깨닫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아브람과 함께 하셨고, 전쟁을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하나님이 이 모든 일을 하셨습니다. 아브람은 자신이 얻은 것 중에서 십분의 일을 살렘왕께 바칩니다.


소돔왕의 교활한 거래


이 때 소돔왕이 아브람을 향하여 사람은 내게 돌려주고, 물건을 네가 가지라고 말합니다.(21절) 참으로 교묘한 말입니다. 소돔왕은 마치 자신이 이 모든 권리가 있는 것처럼 말합니다. 그는 패배한 왕이고, 포로였습니다. 그를 구한 것은 아브람입니다. 그런데 마치 자신이 아브람에게 선심을 쓰는 것처럼 말합니다. 하지만 아브람은 자신과 동맹한 자들의 분깃을 나눈 후 하나도 가지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10월 넷째 주일 대표기도문

 주일 낮 대표기도문

  • 2023년 10월 22일 주일 대표기도문
  • 주일 오후 예배 대표기도문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희를 늘 사랑하여 주시고 풍성한 사랑과 은혜로 채워 주심 감사합니다. 늘 주님과 동행하게 하시사 거룩한 주일 주님께 나와 예배할 수 있음을 감사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니 늘 주님과 동행하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로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자비의 하나님, 저희는 늘 넘어집니다. 부족하고 허물이 많습니다. 지난 한 주간 돌아보니 부족한 것 뿐입니다. 이 시간 주님께 우리의 죄를 자백합니다. 용서하여 주소서.


저희를 용서하시고 자비와 긍휼로 붙잡아 주소서. 세상의 유혹과 쾌락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게 하시고, 흘러가는 세상의 법칙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며 바라보는 믿음의 삶을 살게 하소서.


날씨가 점점 차가워지고 있습니다. 당연한 것이지요. 이제 점점 더 추워질 것입니다. 바람은 첨첨 차가워져 따뜻한 곳을 원하는 겨울이 올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사랑이요 배려인줄 믿습니다. 늘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으로 인해 기뻐하는 삶이 되게 하소서.


자비의 주님, 항상 주님 안에서 기뻐하게 하소서. 어떠한 삶이 우리에게 닥쳐도 주님으로 인해 기뻐하며, 주님만을 바라보는 삶이 되게 하소서. 때로는 두렵고 때로는 힘들고 어려워도 주님을 온전히 신뢰함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를 원합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심각한 대립으로 인해 전쟁으로 번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두 나라는 세계 곳곳에 흩어진 수많은 유대인들과 아랍 사람들과의 대립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자비의 주님, 이 땅에 평화는 없는 것입니까?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는 오지 않는 것입니까? 자비의 주님, 세상에 전쟁이 아니라 평화의 세상이 되게 하소서.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가 임하게 하소서. 오직 하나님 안에서 참 평안과 기쁨을 누리게하소서.


설교하시는 목사님을 붙잡아 주소서. 성령의 능력으로 옷입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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