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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21장 구조 묵상

 열왕기하 21장 요약

열왕기하 21장은 유다 왕 므낫세와 그의 아들 아몬의 통치를 다룹니다. 므낫세는 유다 역사에서 가장 악명 높은 왕 중 한 명으로, 그의 통치 기간 동안 이방 신들을 섬기며 온갖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그는 성전 안에 이방 신들의 제단을 세우고, 바알 숭배와 아세라 목상 숭배를 다시 도입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해 유다에게 심판을 예고하셨지만, 므낫세는 회개하지 않고 계속해서 악을 행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예루살렘과 유다에게 심판을 내리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므낫세의 뒤를 이은 아들 아몬 역시 아버지의 악행을 따라가다가 그의 신하들에게 살해당하고, 그의 아들 요시야가 왕위를 잇습니다.


열왕기하 21장 구조

  • 므낫세의 악행과 우상 숭배 (1-9절)
  • 하나님의 심판 경고 (10-15절)
  • 므낫세의 죽음과 아몬의 통치 (16-18절)
  • 아몬의 통치와 그의 죽음 (19-26절)

1. 므낫세의 악행과 우상 숭배 (1-9절)

므낫세는 12세에 유다의 왕이 되어 55년간 통치했습니다. 그는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고, 이스라엘의 왕 아합이 행했던 것과 같은 악한 길을 따랐습니다(3절). 므낫세는 아버지 히스기야가 제거한 산당들을 다시 세웠고, 바알을 섬기고 아세라 목상을 세웠으며, 하늘의 모든 군대를 경배했습니다. 특히 그는 하나님의 성전에 이방 신들을 위한 제단을 세워 성전을 더럽혔으며, 심지어 자식을 불에 태워 제물로 바치고 점을 치며, 영적 음란에 빠져있었습니다(6절).


므낫세의 악행은 단순한 개인적 죄악이 아닌, 국가적이고 종교적인 배신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는 단순히 이방 신들을 받아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성전 안에 이방 신들의 제단을 세우고 그들을 예배했습니다. 성전은 원래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거룩한 장소였으나, 므낫세의 손에 의해 타락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이는 우상 숭배가 우리의 영적 삶을 얼마나 파괴할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므낫세의 행동에서 눈여겨볼 점은 영적 후퇴입니다. 그의 아버지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충실했고, 유다에서 우상 숭배를 근절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므낫세는 아버지가 성취한 개혁을 뒤집고, 다시 우상 숭배로 돌아갔습니다. 이는 한 세대의 신앙적 회복이 다음 세대에 자동으로 이어지지 않음을 경고합니다. 각 세대는 하나님 앞에서 독립적인 신앙 결단을 내려야 하며, 신앙은 결코 자동으로 전승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또한, 므낫세의 악행은 우상 숭배의 본질적인 속성을 보여줍니다. 우상 숭배는 단순히 특정한 신상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를 완전히 뒤틀리게 만드는 죄입니다. 므낫세는 아세라 목상, 바알, 하늘의 군대 등 여러 이방 신을 섬겼으며, 이는 곧 자신의 삶 전체를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들에게 바치는 행위로 이어졌습니다. 우상 숭배는 하나님을 떠나 세상의 권력, 물질, 쾌락에 의지하게 만듭니다. 이는 영혼의 타락을 의미하며, 하나님께 대한 배신을 상징합니다.


2. 하나님의 심판 경고 (10-15절)

하나님께서는 므낫세의 죄악에 대해 선지자들을 보내어 경고하십니다. 예루살렘과 유다가 저지른 죄가 이스라엘의 죄보다 더 크다는 경고와 함께,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심판하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과 유다를 "에브라임 집에 행한 것과 같이"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13절). 이스라엘이 아시리아에 의해 멸망한 것처럼, 유다 역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예루살렘이 악행을 계속할 경우, 그들을 **"다림줄로 잴 것"**이라고 하시며 심판의 기준이 확고함을 강조하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의 균형입니다. 하나님은 므낫세와 유다가 얼마나 큰 죄악을 저질렀는지를 분명히 하시고, 그 죄악에 대해 반드시 심판하실 것을 경고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기 전에 여러 번 선지자들을 통해 경고하시고, 회개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공의로우신 분이시면서도 끝까지 자비를 베푸시는 분임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임박했지만, 그 전에 그들에게 돌이킬 기회를 주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심판보다 회개와 회복을 원하신다는 사실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므낫세와 유다는 이 경고를 무시했습니다. 이는 경고의 무시가 결국 파멸로 이어질 수밖에 없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차례 경고를 보내시지만, 인간이 그 경고를 무시하고 죄악을 고집하면 결국 심판은 피할 수 없는 결과로 다가옵니다. 므낫세의 경우, 하나님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그의 죄악은 그 자신뿐만 아니라 그의 후손과 나라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3. 므낫세의 죽음과 아몬의 통치 (16-18절)

므낫세는 많은 죄악을 저질렀고, 특히 무고한 피를 많이 흘렸습니다(16절). 이 구절은 므낫세가 단순히 우상 숭배로 끝난 것이 아니라, 그의 통치 아래에서 많은 사람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음을 보여줍니다. 그는 사회의 도덕적, 영적 파괴를 가속화했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므낫세는 결국 죽고, 그의 아들 아몬이 왕위를 이어받습니다. 그러나 므낫세의 죄악은 아몬에게도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아몬 역시 아버지의 길을 따라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 앞에 악을 행했습니다(20절). 그 결과, 아몬은 그의 신하들에게 반란을 당해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23절). 아몬의 통치는 므낫세의 악행이 후손에게까지 영향을 미쳤음을 상징합니다. 므낫세의 죄악은 단순히 그의 개인적인 문제로 끝나지 않았으며, 그의 자손과 나라 전체에 걸쳐 악영향을 끼쳤습니다.


므낫세와 아몬의 사례에서 볼 수 있는 교훈은 죄가 세대를 초월해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입니다. 므낫세의 죄는 그의 아들 아몬에게 그대로 이어졌고, 아몬은 아버지의 악행을 답습하다가 비참한 죽음을 맞았습니다. 이는 지도자의 영적 상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합니다. 한 개인의 죄가 그 사람만을 망치는 것이 아니라, 후손과 나라 전체에 걸쳐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게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아야 합니다.


4. 아몬의 통치와 그의 죽음 (19-26절)

아몬은 므낫세의 뒤를 이어 유다의 왕이 되었으나, 아버지의 길을 따랐습니다. 그는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며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아몬은 므낫세의 잘못을 교훈 삼지 않고, 오히려 아버지의 악행을 답습하여 유다 백성들을 계속해서 우상 숭배와 영적 타락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그의 통치 기간은 매우 짧았으며, 결국 신하들에 의해 살해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를 암살한 신하들 역시 백성들에 의해 처형되었고, 아몬의 아들 요시야가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24절).


구조에 따른 묵상 아몬의 짧은 통치와 죽음은 하나님을 배반한 삶의 궁극적인 결과를 보여줍니다. 아몬은 하나님께서 므낫세에게 보내신 경고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아버지의 길을 따랐으며, 그 결과는 그의 비참한 죽음으로 이어졌습니다. 지도자가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악행을 계속한다면, 그것은 결국 그 자신뿐만 아니라 국가의 멸망으로 이어지게 됨을 경고합니다. 아몬의 죽음 후에도 유다의 상황은 여전히 어두웠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여전히 그분의 섭리 속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결론 및 교훈

열왕기하 21장은 므낫세와 아몬의 악행과 그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이 두 왕의 통치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하며, 우상 숭배와 악행이 한 나라와 그 백성들에게 얼마나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경고는 항상 회개의 기회를 주며, 결국 하나님께로 돌아가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매일의 삶 속에서 우상을 경계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온전히 지켜야 함을 다시금 깨닫게 합니다.


앞으로 다가올 요시야의 통치는 유다에 새로운 희망을 가져오지만, 그 역시 죄악과 우상 숭배로 인해 얼룩진 유다를 완전히 회복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이 장을 통해, 우리의 삶도 매일 하나님 앞에서 결단하고 회개하며, 영적인 후퇴를 경계해야 한다는 깊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열왕기하 16장 구조 묵상

열왕기하 16장 요약

열왕기하 16장은 유다 왕 아하스의 통치와 그의 악행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하스는 20세에 왕이 되어 16년 동안 유다를 다스렸습니다. 그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지 않고, 오히려 이방 왕들의 죄악을 본받아 우상을 숭배하고, 심지어 자신의 아들을 불에 태워 바치는 끔찍한 행위를 저질렀습니다. 


아하스는 아람과 이스라엘의 공격을 받자, 앗수르 왕 디글랏빌레셀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조공을 바쳤고, 앗수르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아하스는 앗수르의 신전을 본떠 예루살렘 성전에 새로운 제단을 세우고, 그곳에서 제사를 드리게 하여 하나님을 더욱 떠나게 됩니다. 아하스는 죽은 후 다윗 성에 장사되지 못하고, 그의 아들 히스기야가 뒤를 이어 왕이 됩니다.


열왕기하 16장 구조

  • 유다 왕 아하스의 악행과 우상 숭배 (1-4절)
  • 아하스가 아람과 이스라엘의 위협을 받음 (5-9절)
  • 아하스가 아시리아 제단을 본떠 예루살렘에 세움 (10-18절)
  • 아하스의 죽음과 후계자 히스기야 (19-20절)


1. 유다 왕 아하스의 악행과 우상 숭배 (1-4절)

아하스는 20세에 왕이 되어 16년 동안 유다를 다스렸습니다(2절). 그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지 않았으며, 이스라엘 왕들의 죄악을 본받아 이방 신을 숭배하고,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는 악한 행위를 일삼았습니다(3절). 아하스는 심지어 자신의 아들을 불에 태워 제물로 바치는 끔찍한 일을 저지르며(3절), 하나님의 법을 완전히 어기고, 하나님을 멀리 떠나 이방 신들에게 의지했습니다.


아하스의 행위는 우상 숭배와 영적 타락의 심각성을 보여줍니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바를 저버리고, 이방 민족들의 죄악을 따라갔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이방 신들을 섬기지 말라고 경고하셨으나(신명기 12:29-31), 아하스는 그 경고를 무시했습니다. 이는 우상 숭배의 결과가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경고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외에 다른 어떤 것에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만 충실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아하스가 아람과 이스라엘의 위협을 받음 (5-9절)

아하스는 통치 중에 아람 왕 르신과 이스라엘 왕 베가의 공격을 받게 됩니다(5절). 그들은 예루살렘을 포위했으나 아하스를 이기지 못했습니다. 위기에 처한 아하스는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고, 아시리아 왕 디글랏빌레셀에게 도움을 요청하며 조공을 바쳤습니다(7절). 디글랏빌레셀은 아하스의 요청을 받아들여 아람 왕 르신을 죽이고 다메섹을 점령하였습니다(9절).


이 사건은 인간적인 해결책에 의존하는 위험성을 보여줍니다. 아하스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아시리아 왕의 도움을 구했습니다. 그 결과로 잠시 위기는 넘겼지만, 이는 결국 영적인 타락과 더 큰 문제로 이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유다를 지키는 분이심에도 불구하고, 아하스는 세속적인 힘에 의지했습니다. 이는 우리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하나님께 먼저 의지해야 한다는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세상의 방법이 순간적으로는 효과적일 수 있지만, 그것이 영적인 타락으로 이어지면 결국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3. 아하스가 앗수르의 제단을 본떠 예루살렘에 세움 (10-18절)

아하스는 다메섹에 있는 동안 아시리아 왕을 만나 그곳의 제단을 보고, 그 제단의 설계도를 제사장 우리야에게 보내 예루살렘 성전에 같은 제단을 세우게 했습니다(10-11절). 그는 하나님께 드려야 할 제사를 이 새로운 제단에서 드리게 하였고, 성전 안의 구조와 예배 방식도 아시리아의 영향을 받아 변경했습니다(14-16절). 아하스는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까지도 바꾸면서, 하나님을 더욱 멀리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 장면은 영적 타협과 세속적인 문화의 영향을 경고합니다. 아하스는 앗수르 왕과의 동맹을 맺으면서, 그들의 신앙과 문화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성전마저도 세속적인 영향력에 따라 바꾸었으며, 이는 영적인 타락의 절정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의 방법대로, 그분께 예배드리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세상의 방식에 영적인 삶을 타협해서는 안 되며,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는 신앙을 지켜야 합니다.


4. 아하스의 죽음과 후계자 히스기야 (19-20절)

아하스는 악한 길을 걸어가며 16년 동안 유다를 통치한 후 죽었고, 그의 아들 히스기야가 그 뒤를 이어 왕이 되었습니다(19-20절). 아하스는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이방 신들을 숭배했으나, 그의 아들 히스기야는 반대로 유다의 영적 개혁을 이끌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왕으로서 유다를 회복시킵니다.


이 사건은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영적 유산의 중요성을 상기시킵니다. 아하스는 자신이 통치하는 동안 영적 타락을 초래했지만, 그 뒤를 이은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돌아와 유다를 회복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는 우리의 신앙이 후세대에 미치는 영향력을 생각하게 하며, 우리는 하나님 앞에 온전한 삶을 살아가며 신앙을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책임을 가져야 합니다.


결론

열왕기하 16장은 우상 숭배와 영적 타락, 그리고 인간적인 해결책에 의지하는 것의 위험성을 강조합니다. 아하스는 하나님을 멀리 떠나 이방 신들을 섬기고, 세속적인 힘에 의지함으로써 유다를 타락시켰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세상의 방식에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습니다.


이 장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따르는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고, 세속적인 유혹에 흔들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것을 배웁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이시며, 그분께만 우리의 마음과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열왕기상 17장 구조 요약

 열왕기상 17장 요약

열왕기상 17장은 선지자 엘리야의 사역이 시작되는 장으로, 이스라엘에 3년간 가뭄이 선포되며 하나님의 기적적인 공급이 나타납니다. 엘리야는 그릿 시냇가에서 까마귀의 도움을 받고, 사르밧 과부의 집에서 가루와 기름이 마르지 않는 기적을 경험합니다. 또한 죽은 과부의 아들을 살려내며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줍니다. 엘리야의 믿음과 순종은 하나님이 기적을 통해 그를 보호하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증거하게 합니다.


열왕기상 17장 구조

  • 엘리야의 가뭄 예언과 그릿 시냇가의 보호 (17:1-7)
  • 사르밧 과부와 기적적인 공급 (17:8-16)
  • 과부의 아들 부활 (17:17-24)


1. 엘리야의 가뭄 예언과 그릿 시냇가의 보호 (17:1-7)

"믿음으로 선포된 하나님의 심판과 공급하심"


엘리야는 여호와의 명령을 받아 이스라엘에 가뭄을 예언합니다. 3년 동안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라는 예언은 아합 왕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심판을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그릿 시냇가로 가서 몸을 숨기게 하셨고, 까마귀를 통해 음식을 공급받게 하셨습니다. 물이 마를 때까지 엘리야는 그곳에서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었습니다.


17장부터 이어지는 내용들은 엘리야와 아합의 대결 구두로 이어갑니다. 대부분의 왕들을 간략하게 정리하지만 갑자기 아합왕을 세세하게 그려 나가는 것입니다. 아합왕이 얼마나 이스라엘을 망가뜨려 놓았는가를 말하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열왕기는 이스라엘이 심판을 받아 망한 이유를 밝히기 위함으로 왕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에 집중합니다. 그 중심에 아합왕이 있으며, 아합왕 뒤에는 이세벨과 바알이 있음을 드러내고자 함입니다.


엘리야의 믿음은 하나님께서 그의 필요를 기적적으로 채우실 것이라는 확신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그의 말씀을 신실하게 따르는 자를 보호하시고,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도 공급하십니다. 우리의 삶에서 어려운 상황이 올 때, 엘리야처럼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2. 사르밧 과부와 기적적인 공급 (17:8-16)

"순종으로 이룬 기적, 하나님을 향한 신뢰"


그릿 시냇가가 마르자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사르밧으로 가라고 명령하셨고, 그곳에서 한 과부가 엘리야를 맞이합니다. 당시 과부는 아들과 함께 마지막 남은 가루와 기름으로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엘리야의 요청에 따라 그에게 음식을 먼저 제공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나 가루와 기름이 다하지 않았고, 이들은 가뭄 동안 계속해서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사르밧 과부의 이야기는 순종이 기적을 불러온다는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그녀는 자신의 필요를 우선시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람에게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분의 말씀에 순종할 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필요를 아시며, 우리가 신뢰하고 순종할 때 기적을 행하십니다.


3. 과부의 아들 부활 (17:17-24)

"죽음에서 생명으로, 하나님의 능력과 자비"


사르밧 과부의 아들이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그녀는 엘리야에게 이 상황을 호소합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그 아이를 위해 기도하며, 세 번 아이의 몸 위에 엎드립니다. 그 기도의 응답으로 하나님은 아이의 생명을 되돌려주셨습니다. 이 기적을 통해 과부는 엘리야가 참된 하나님의 사람임을 깨닫고,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게 됩니다.


과부의 아들의 부활 사건은 하나님의 생명력과 자비를 상징합니다. 죽음의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생명을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엘리야의 간절한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은 우리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가장 절박한 순간에 우리를 돕는 분이십니다.


결론

열왕기상 17장은 하나님의 능력과 엘리야의 믿음, 그리고 하나님의 기적적인 공급하심을 통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증거합니다. 엘리야는 가뭄을 예언하고, 그릿 시냇가에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으며, 사르밧 과부의 집에서 기적을 경험하고, 죽은 아이를 살리며 하나님의 능력을 증거했습니다. 이 모든 사건은 하나님께서 그의 종들에게 필요를 채우시고,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심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공급하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엘리야와 사르밧 과부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할 때 기적적인 은혜를 경험할 수 있음을 가르쳐줍니다. 또한, 엘리야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그의 백성을 돌보시며, 절망 속에서도 소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열왕기상 장별요약


사사기 8장 강해

 사사기 8장 개요

삼백용사와 함께 미디안의 전쟁을 시작한 기드온은 두 장수 오렙과 스엡을 죽이고 추격을 계속합니다. 이때 에브람이 지파 사람들이 기드온을 찾아와 항의하자 기드온은 달래 줍니다.  삼백용사는 도망가는 미디안 군사들을 끝까지 추격하여 그들을 전멸시킵니다.


사사기 8장 구조

  • 1-3절 에브라임 지파의 항의
  • 4-9절 숙곳 사람들의 거절
  • 10-21절 세바와 살문나를 죽이고 전멸시키다.
  • 22-28 마지막의 기드온
  • 29-35절 기드온의 사후 타락하는 이스라엘


사사기 8장 강해


1-3절 에브라임 지파의 항의


항의하는 에브라임 지파

전쟁을 어느 정도 마치고 나자 갑자기 에브라임 지파가 기드온을 찾아옵니다. 그들은 기드온에게 미다안과 싸울 때 왜 우리를 부르지 않았느냐 따집니다. 이것은 자신들을 대우하지 못한 것이라 말합니다. 어느 정도 일리는 있습니다. 하지만 기드온이 나설 때까지 무서워서 벌벌 떨던 에브라임 지파가 갑자기 기드온을 찾아오는 것은 정말 활당한 일입니다. 그들은 비겁하고 나쁜 사람들입니다.


기드온의 위로

2-3절은 기드온이 에브라임 지파를 위로하며 돌려보내는 장면입니다. 2-3절을 먼저 이해해야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 내가 이제 행한 일이 너희가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  하나님이 미디안의 방백 오렙과 스엡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으니 내가 한 일이 어찌 능히 너희가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에브라임의 끝물포도와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가 비교됩니다. 여기서 아비에셀은 므낫세 지파를 말합니다. 전쟁을 시작하는 것은 기드온이므로 맏물포도입니다. 하지만 전쟁을 마무리한 것은 에브라임 지파로 끝물포도입니다. 하지만 끝물포도는 미디안의 강력한 두 왕인 오렙과 스엡을 에브라임이 지파가 잡아 죽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습니다. 에브라임 지파의 거만과 자만이 뼛속 깊이 들어가 있다는 것입니다. 후에 에브라임 지파는 입다를 찾아 다시 항의하지만 그때는 가차없이 살육을 당하고 맙니다.


굳이 입다 때와 비교할 필요는 없지만 짚고 넘어갈 부분은 기드온 때는 기드온이 필요에 의해 에브라임 지파를 불렀습니다. 7장 24절을 보면 기드온이 사람을 보내 에브라임 지파를 불렀고, 그들은 전쟁이 동참하여 미디안을 무찔렀습니다. 즉 업적이 있는 것이죠. 그 일로 기드온은 미워도 별다른 항의를 하지 않고 돌로 보냅니다. 하지만 입다 때는 전혀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로 인해 입다는 엄청난 수치와 분노를 느낀 것입니다.


4-9, 13-17절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의 거절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


기드온은 전쟁이 아직 마무리 되지 않았기 때문에 남은 패잔병인 세바와 산문나의 군사들을 추격합니다. 이때 숙곳에 이르러 그곳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달라 말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말이 가관입니다.

  • 삿 8:6 숙곳의 방백들이 이르되 세바와 살문나의 손이 지금 네 손 안에 있다는거냐 어찌 우리가 네 군대에게 떡을 주겠느냐 하는지라
이들의 말은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고, 그들늘 네(기드온)가 죽이지 않았는데 뭘 믿고 너에게 도움을 주느냐는 것입니다. 잘못하여 그들이 되돌아와 자신들을 공격하면 난처하다는 것입니다. 문제의 심각성은 그들의 변명이 아니라, 그들이 누구냐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로 길르앗 지방에서 이방민족들을 주시해야하는 '망대'(9절)가 있었던 곳입니다. 기드온은 그들의 말을 듣고 화가나서 다시 돌아올 때 망대를 헐고, 그들을 죽이겠다 말합니다.

기드온의 복수


세바와 살문나를 포로로 붙잡고 숙곳과 브니엘을 찾아갑니다. 한 사람을 붙잡아 숙곳이 장로들 칠십 명의 명단을 받고 그들을 들가시와 찔레로 징벌하고 브니엘 망대를 헐어 버립니다. 적들을 살펴야할 망대가 아무런 가치도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분노는 기드온을 보게 됩니다. 비록 숙곳과 브니엘이 잘못하기는 했지만 굳이 복수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기드온은 자신을 모독한 자들을 그대로 두지 않고 처단하는 복수의 화신이 됩니다. 이러한 기드온의 성향은 기드온 이전과 이후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특징입니다. 기드온이 뿌린 내전의 씨는 입다와 그리고 레위인의 첩 사건들을 통해 더욱 명확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10-12, 18-21절 세바와 살문나를 죽이고 전멸시키다.


그들이 안전할 때에


세바와 날문가가 갈골에 있을 때 아직 만오천 명이 있었습니다.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기드온은 그들을 격파하기에 이릅니다. 마지막까지 자신들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충성을 다합니다.


11절을 보면 '적군이 안심하고 있는 중'에 기드온과 삼백용사가 급습합니다. 왜 안전하다고 느낄까요? 요단강을 건너 먼 곳까지 왔기 때문에 설마 이곳까지 오리라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현재 성서지리학자들은 갈골을 현재의 카르카르 지역이며, 암만 남동쪽으로 190km 정도 떨어진 지역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곳은 얍복강의 어느 부분에 속합니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때에 급습해 오자 그들은 반격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질겁하여 도망가고 맙니다. 기드온과 용사들은 이때를 노려 세바와 살문나를 포로로 사로 잡게 됩니다.


세바와 살문나의 처형식

기드온은 이제 세바와 살문나를 처형합니다. 그런데 그의 맏아들 여델에게 시킵니다. 하지만 여델은 아직 어려서 살인을 잘 못합니다.(20절) 결국 기드온이 그들을 처형합니다. 우리는 다시 기드온의 이상한 행동을 보게 됩니다. 그는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자신의 아들에게 시켜 자랑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겸손하고 순진하게 보이는 기드온 안에 숨겨진 탐욕과 교만이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합니다. 그의 복수도 그렇고, 이젠 아들을 부추겨 피를 묻히게 하려는 행동도 드러냅니다. 기드온의 숨겨진 욕망을 그의 말년에, 그리고 사후에도 계속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22-35 마지막의 기드온과 사후의 이스라엘


왕이 되어 달라


기드온이 집으로 돌아오자 금의환양합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기드온에게 자신들을 다스려 달라고 말합니다. 즉 왕이 되어 달라는 것이죠. 하지만 기드온은 겸손하게 자신은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 8:23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하니라


기드온의 타락


처음은 참 좋았지만 기드온의 결말은 결코 좋지 않습니다. 그는 차마 왕이 되는 것은 거절했지만 왕처럼 사는 것은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전쟁을 통해 얻을 귀금속들을 달라고 말하니다.(24-26절) 그리고 그것으로 금에봇을 만들어 음란하게 섬기게 됩니다. 에봇은 제사장들이 입는 곳으로 하나님께 물을 때 사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금으로 만든 에봇은 실제 에봇도 아님에도 기드온이 왜 만들었을까요? 이것이 기드온의 허상입니다. 그는 자신 안에 거대한 욕망을 숨겼고, 그것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온의 에봇을 상상한 그림



다시 타락하는 이스라엘


기드온의 사후에 이스라엘은 다시 타락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 볼 부분이 있습니다. 기드온이 많은 아내를 두었고, 무려 칠십 명의 자녀를 두었다는 것입니다. 왕처럼 군림하며 살았던 기드온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기드온이 죽자 다시 이스라엘은 타락의 길로 접어 듭니다. 타락은 하나님에 대한 기억을 지우는 것입니다.(34절) 결국 이것은 기드온의 가족을 홀대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바알브릿은 자신드의 신으로 삼고 하나님을 대신해 섬깁니다.


바알브릿(Baal-Berith)
바알은 주인이고, 브릿은 '언약'의 히브리어 베릿트입니다. 언약의 주라는 뜻입니다. 바알과 언약을 맺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망각하고 타락하는 이스라엘의 우상숭배를 지적하는 표현입니다.


사사기 6장 강해

사사기 6장 개요

사사기 6장 사사 기드온 6장부터 8장까지는 사사 기드온의 이야기입니다. 사사 기드온은 약한 므낫세 지파였지만 용기를 내어 300 용사와 더불어 미디안을 물리칩니다. 6장은 기드온 스토리의 서막을 여는 장면이 소개됩니다. 기드온은 요셉의 첫째 아들인 므낫세의 후손 므낫세 지파 소속입니다. 므낫세 지파는 항상 에브라임 지파에게 무시당했습니다. 이 부분은 8:1-3절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사사기는 기드온 이야기를 마지막 전반부가 마무리됩니다. 기드온의 아들인 아비멜렉 이야기부터는 이전보다 훨씬 암울하고 부정적인 스토리가 전개됩니다.


서론부에 해당되는 6장에서는 죄로 인해 고통 받는 이스라엘과 기드온이 소명을 받게 되는 과정을 다룹니다. 기드온은 므낫세 지파로 약한 지파이자 가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기드온을 통해 상상도 못할 강력한 힘과 많은 군대를 지닌 미디안 연합군을 격파합니다. 6장에서는 기드온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소심하고 약한 기드온이 어떻게 강한 용사로 거듭나는가를 보여줍니다.

사사기 6장 구조

  • 1-6절 고통 받는 이스라엘
  • 7-10절 한 선지자의 경고
  • 11-24절 기드온을 만나는 천사
  • 25-32절 우상을 제거하는 기드온
  • 33-40절 하나님을 시험하는 기드온


사사기 6장 강해


1-6절 또 악을 행하고


또 악을 행하였으므로


이스라엘이 또 악을 행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칠 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이 손에 넘깁니다. 상황이 얼마나 열악했으면 이스라엘이 산에서 웅덩이와 굴과 산성을 만들어 지냈다고 말합니다. 미다인은 파종할 때면 치러 올라와 토지소산을 멸하고 모두 가져갑니다. 고통이 너무 심한 이스라엘이 부르짖습니다. 인간의 어리석음은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조상들이 그렇게 당하는 것을 보고도 교훈을 얻지 못합니다.


동방 사람들이


성경에서 동방 사람은 우상과 이방인,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즉 이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며,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사람들로 소개됩니다. 하나님께서 다시스로 도망가는 요나를 동풍으로 징계하듯 범죄 한 이스라엘은 동방 사람들을 통해 징계하십니다. 동방은 이방의 땅이자 저주 받은 곳으로 종종 사용됩니다. 하지만 동방에서 구원자가 온다는 것은 매우 역설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이 부분은 후에 성경의 동쪽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메뚜기 떼 같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메뚜기 떼가 얼마나 무서운지 모를 것입니다. 출애굽 당시에도 등장하는 메뚜기떼는 현재도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무섭게 활동합니다.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정도의 엄청난 수를 말합니다. 메뚜기 떼가 오면 먹을 수 있는 대부분의 식물과 풀을 순식간에 먹어버립니다.


7-10절 한 선지자


부르짖으므로


이스라엘이 괴로워 부르짖자 하나님이 움직이십니다. 어찌 보면 하나님은 너무나 착하고 무능해 보이고 답답해 보입니다. 우리 같으면 거의 죽을 지경까지 내버려 두고 싶지만 하나님은 그대로 두지 못하고 다시 구원자를 찾으십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긍휼이 많으신 분입니다. 사람은 변하지 않습니다. 노아의 홍수를 보십시오. 모든 사람들을 멸절 시켰지만 노아의 후손들은 완전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타인에게 냉정하게 대하는 것은 절대 좋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고통을 당하는 입장에서 생각하며 긍휼을 베풀어야 합니다.

한 선지자


이스라엘이 부르짖자 하나님께서 한 선지자를 보냅니다. 그는 기드온을 찾아가 이스라엘을 구원하라 합니다. 하지만 기드온을 찾아가기 전에 먼저 이스라엘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어떻게 사랑하셨는지를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 내셨습니다. 학대하는 자의 손에서 건져 냈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 땅의 신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했지만 이스라엘이 말을 듣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애굽의 군대와 미디안은 비교할 바가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세계 최강국이었던 애굽에게서 구원하셨는데 한낮 미디안에서 손에서 구할 수 없겠습니까? 충분히 구원하십니다. 그럼에도 미디안에게 당하는 이유가 뭘까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미다인의 손에 넘겨 주'(1절)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는 누구도 이길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미다인이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을 떠난 것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선지자는 이 부분을 깨닫게 하고 떠나갑니다.

11-24절 여호와의 사자와 여호와 샬롬


큰 용사여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을 찾아갑니다. 포도주 틀에서 숨어서 밀타작을 하는 기드온에게 '큰 용사'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기드온에게 이스라엘을 구원하라 합니다. 하지만 기드온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떠났다고 말합니다.

선지자는 계속하여 기드온을 설득합니다. 기드온에 선지자에게 예물을 드리지만 사자는 지팡이로 그것들을 불태우고 하늘로 올라갑니다. 기드온은 그제야 하나님인 줄 알고 놀랍니다. 하나님의 사자를 보고도 죽지 않은 것에 감사하여 여호와 샬롬이라 말합니다.

25-32절 우상의 제단을 헐고


우상의 단을 헐라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명을 내립니다. 칠 년 된 둘째 수소를 끌고 와 바알의 제단을 헐고 그곳에서 제사하도록 합니다. 겁이 많은 기드온은 낮에 하지 못하고 밤에 종 열과 올라가서 그것을 행합니다.  여기서 정말 놀라운 점은 이스라엘 안에 우상의 제단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모두가 섬겼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을 징벌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사사시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우상에 깊이 빠져 있었던 시대였음을 보여줍니다.




칠 년 된 제물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칠 년 된 제물을 바치라 하십니다.(25절) 그런데 칠 년은 정확히 미다인이 이스라엘을 지배하기 시작한 시간과 같습니다.(1절) 하나님은 칠 년된 제물을 통해 그동안의 모든 고통과 아픔을 제물처럼 태워 사라지게 하겠다는 선언으로 보입니다.


바알을 위한 변증


날이 밝자 성읍 사람들이 놀라 범인을 찾고 기드온인 것을 발견합니다. 동네 사람들이 기드온을 죽이려 하자 기드온의 아버지가 나서서 바알이 진짜 신이라며 자신을 지킬 것이라며 방어합니다. 저는 이 장면을 읽을 때마다 신기하고 의아합니다. 앞서서 말한 것처럼 어떻게 이렇게까지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처럼 떠 받을 수 있었는지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만큼 이스라엘의 죄가 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기드온이 잘못하여 죽을 위기에 처하자 기드온의 아버지 요아스가 재치를 발휘합니다. 바알이 만약 진짜 신이라며 그가 '자신을 위해 다툴 것이니라'(31절) 말합니다. 즉 바알은 자신이 신임을 스스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마을 사람들은 요아스의 논리에 반박하지 못하고 조용히 물러 납니다.

33-40절 양털 이슬 실험


이때에 동방 사람들이


드디어 기드온이 용기를 내어 우상을 제거했습니다. 모든 것이 준비된 것 같습니다. 기드온이 우상을 제거하자 신기하게도 미디안 연합군이 전면적으로 개시합니다. 아직 기드온은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하나님의 시간은 예측불허입니다. 적들이 어찌 알고 전쟁을 개시할 것일까요? 하지만 기드온을 서서히 준비해 가고 계십니다.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하시니


사사기에서 여호와의 영은 매우 중요합니다. 사람의 힘이 약할 때, 도무지 이길 자신이 없을 때, 하나님의 영이 임합니다. 그럼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사람은 변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영이 임하며 전혀 새로운 사람이 됩니다. 두려움에 떨던 열두 사도가 성령을 받고 두렴 없이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기드온이 나팔을 불매


이 나팔은 전쟁의 나팔입니다. 기드온은 자신이 속한 므낫세 지파만을 모으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셀과 스불론, 납달리 지파까지 사람을 보내어 데려 옵니다. 이들은 갈릴리 서편관 남편에 속한 북지파에 속한 이들입니다. 성령 충만은 무모함이 아니라 지혜입니다. 함께 동역함으로 큰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여쭈되


하지만 기드온은 여전히 부족합니다. 기드온은 겁이 많았습니다. 그는 여러모로 위축되어 있었고,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는 전쟁에 나가야 하지만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지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기드온은 양털 솜으로 시험을 합니다. 한 번은 양털에만 이슬이 있게 해 달라 하고, 두 번째는 주변에는 있고 양털에만 없게 해 달라고 말합니다.

첫 번째 시험은 양털에만 이슬이 있고, 주변 땅은 마르게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이스라엘은 비가 잘 오지 않는 곳입니다. 하지만 주야 일교차가 심해 밤이면 많은 이슬이 내렸습니다. 기드온은 많은 이슬이 내리지만 양털에만 내린다면 하나님의 기적이라 생각했습니다. 정말 그다음 날 그렇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기드온은 아직도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주변에는 이슬에 젖고 양털만 젖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사실, 첫 번째보다 두 번째 부탁이 더 어렵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어려움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정말 다음날이 되자 모두 이슬이 있지만 양털에만 이슬이 내리지 않았습니다.

양털 시험은 어떤 면에서 답답한 면이 있습니다. 왜 기드온은 곧바로 순종하지 않고 자꾸 지체할까요? 이렇게 믿음이 없을까요? 여러분은 어떤가요? 하나님의 부르심이 곧바로 응답하십니까? 기드온의 시험을 하나님은 어찌 생각할까요? 이상하게도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모세처럼 화를 내거나 야단치지 않고 요구한 대로 그대로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긍휼이 아닐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기드온의 요구는 하나님의 실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 믿음이 약한 것을 알기에 자신의 믿음이 강해지도록 하나님께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이 약할 때, 우리가 두려울 때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주님도 우리에게 구하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찾는 이들을 기뻐하십시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려 하는 이들을 하나님은 기뻐하십시다. 이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 마 7: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 마 7: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 마 7: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 마 7:10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 마 7: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성경의 우상] 드라빔(Teraphim)

드라빔(Teraphim)

성경에 등장하는 우상들 가운데 작지만 상징적인 드라빔은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는 신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드라빔은 20-50cm 정도의 작은 우상으로 집에서 모시는 용도로 사용되었고, 가문의 수장 역할을 했습니다. 부모로부터 드라빔을 모시는 특권을 갖게 되면 가문을 이어 받게 됩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은 성경 속 우상인 드라빔을 좀 더 깊이 알아봅니다.


성경 속 드라빔의 역할


기업을 물려 받음


드라빔이 가장 먼저 등장하는 곳은 야곱에 하란에서 라반을 피해 가나안으로 갈 때입니다. 라반 몰래 전 재산을 모아 야단도주를 하게 됩니다. 이때 라헬이 라반이 가지고 있던 드러짐을 훔쳐 달아납니다. 라반이 쫓아야 야곱에게 드라빔을 가져간 것에 대해 심하게 책망을 합니다. 말 안장에 넣은 것으로 보아 20cm 이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누지(Nuzi) 문서에 의하면 드라빔을 가진 자가 부모의 기업을 물려 받는다고 합니다. 라반은 이러한 드라빔의 기능을 마비 시키기 위해 야곱과 언약을 맺고 절대 이곳을 넘어와서는 안 된다고 못 박습니다. 라반은 참으로 간교한 자입니다.


가정 수호신의 역할


드라빔은 신으로 섬겨졌습니다. 집에서 모시고 있으며 화를 막고 복을 가져 온다고 믿었습니다. 사사기 17장에 의하면 드라빔은 가정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섬겨졌습니다. 아마도 이곳에 등장하는 드라짐은 크기가 적지 않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점을 치는 수단


드라빔은 점을 칠 때 사용되었습니다. 점치는 것은 종종 제사장의 에봇과 연관되어 있으며, 신의 뜻을 물을 때 드라빔도 함께 사용했습니다.


  • 스가랴 10:2 드라빔들은 허탄한 것을 말하며 복술자는 진실하지 않은 것을 보고 거짓 꿈을 말한즉 그 위로가 헛되므로 백성들이 양 같이 유리하며 목자가 없으므로 곤고를 당하나니


  • 호세아 3:4 이스라엘 자손들이 많은 날 동안 왕도 없고 지도자도 없고 제사도 없고 주상도 없고 에봇도 없고 드라빔도 없이 지내다가


스가랴에만 등장하지만 드라빔이 '허탄한 것을 말한다'는 표현은 헛된 우상에 대한 우회적 표현입니다. 호세아 3:4도 점치는 용도로서 드라빔을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드라빔과 관련된 성경 구절들


  • 창세기 31:19 그 때에 라반이 양털을 깎으러 갔으므로 라헬은 그의 아버지의 드라빔을 도둑질하고

 

  • 창세기 31:35 라헬이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마침 생리가 있어 일어나서 영접할 수 없사오니 내 주는 노하지 마소서 하니라 라반이 그 드라빔을 두루 찾다가 찾아내지 못한지라

 

  • 사사기 17:5 그 사람 미가에게 신당이 있으므로 그가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고 한 아들을 세워 그의 제사장으로 삼았더라

 

  • 열왕기하 23:24 요시야가 또 유다 땅과 예루살렘에 보이는 신접한 자와 점쟁이와 드라빔과 우상과 모든 가증한 것을 다 제거하였으니 이는 대제사장 힐기야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발견한 책에 기록된 율법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라

 

  • 호세아 3:4 이스라엘 자손들이 많은 날 동안 왕도 없고 지도자도 없고 제사도 없고 주상도 없고 에봇도 없고 드라빔도 없이 지내다가

 

  • 스가랴 10:2 드라빔들은 허탄한 것을 말하며 복술자는 진실하지 않은 것을 보고 거짓 꿈을 말한즉 그 위로가 헛되므로 백성들이 양 같이 유리하며 목자가 없으므로 곤고를 당하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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