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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9장 강해

 창세기 9장 개요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린 노아에게 하나님은 새로운 언약을 맺으신다. 먼저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을 주시고, 육고기를 먹도록 허락한다. 무지개를 두어 물로 심판하지 않을 것이라 약속하신다. 땅에 정착한 노아는 포도나무를 심고 포도주를 마시고 옷을 벗는 추태를 행한다. 함이 노아의 벗은 모습을 보고 형제들에게 고자질하며 놀리지만 셈과 야벳을 아버지의 수치를 보지 않고 덮어 준다. 노아는 함의 아들 가나안을 저주한다. 950세에 생을 마감한다.


  • 1-7절 다시 언약을 맺는 하나님
  • 8-17절 심판과 무지개
  • 18-29절 술취한 노아와 죽음


1-7절 다시 언약을 맺는 하나님


하나님이 복을 주시며

이 구절은 창세기 1장의 내용을 그대로 반복한다.

  • 창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어떤 의민에서 노아는 새로운 아담이다. 그에게서 다시 인류가 번성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제2의 아담처럼 노아에게 아담에게 주었던 복을 다시 반복하고 있다. 사람에게뿐만  아니라 다른 피조물에 대한 통치까지 거의 비슷하게 주어진다.


산 동물은 너희 먹을 것이

성경에서 가장 처음을 육신을 허락하는 구절이다. 하지만 이 구절이 그 전부터 육식을 먹었는지 먹지 않았는지 알게 하지는 못한다. 적지 않은 학자들은 이 구절 이전에서 육식이 있었을 것이라 말한다. 그러므로 이 부분은 좀더 다른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피다. 피에 생명이 있으며, 피째 먹지 말 것을 경고하신다.(4절) 또한 피흘림에 대해 피는 피로 갚겠다 하신다. 즉 피는 생명이다.(6절)


8-17절 심판과 무지개


내 언약을

하나님의 언약은 노아와 후손들 그리고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과 땅의 모든 짐승을 포함한다.(10절) 하나님의 언약의 핵심은 모든 다시는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징계는 악을 잠시 멈출 수는 있으나 없게 하지는 못한다. 본성이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고양이를 잠깐 우리에 가둘 수는 있으나 생선을 좋아하는 습성을 바꾸지 못한 것과 같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에 다시는 세상을 심판하지 않겠다 하신다. 결국 진정한 승리는 새로운 마음의 변화, 본성의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무지개

무지개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케쉐트(קֶשֶׁת)로 직역하면 활이다. 무지개는 활처럼 초승달처럼 휘어 있기 때문이다. 동일한 단어가 삼상 2:4에서는 활로 번역된다. 어떤 이들은 이 단어에 유난을 떨지만 그리 중요한 단어가 아니다. 휘어진 것을 말하는 것이다.


18-29절 술취한 노아와 죽음


함은 가나안의 아버지라

9장의 마지막 단락은 노아의 실수와 죽음이 기록되어 있다. 방주에서 나온 노아는 포도원을 가꾼다. 어느 날 포도주를 마시고 취해 옷을 벗고 눕는다. 어떤 사람은 술에 취하면 옷을 다 벗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그런데 함이 아버지의 벗은 모습을 보고 두 형제에게 고자질 한다. 셈과 야벳은 이야기를 듣고 뒷걸음쳐 가서 아버지의 하체를 덮어 준다. 수치를 가려준 것이다. 수치를 가리는 것은 인간의 타락 이후 생겨난 지식이다.


18절에서 함은 가나안의 아버지로 소개되고, 함이 저주를 받지 않고 함의 아들 가나안이 저주를 받는다. 가나안은 이스라엘이 들어가야 할 땅의 이름의 기원이 되는 이름이다. 그들은 저주 받은 백성임을 말해준다.


노아가 죽었더라

노아는 950세에 죽는다. 정말 오래 살았다. 위대한 믿음의 사람 노아도 결국은 죽는다. 이것이 인생이다. 이 생은 본디 짧고 빠르다. 우리는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될까? 가장 가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집중하고 가치 있는 일에 투자해야 한다.



창세기 장별 요약 및 장별 강해


창세기 8장 강해

창세기 8장 개요

6장부터 시작된 홍수 이야기는 8장에서 절정을 이룬다. 7장에서는 방주로 들어가는 이야기와 홍수가 일어난 상황을 다룬다. 8장은 홍수가 일어나고 물이 줄어들어 방주에서 나와 아라랏산에서 제사를 드리는 장면까지 이어진다. 홍수로 모든 호흡하는 생물이 죽는다. 노아는 방주에서 나와 가장 먼저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제사드린다.


  • 1-5절 홍수가 끝이 나고 물이 줄어들기 시작함
  • 6-12절 까마귀와 비둘기를 보내 상황을 알아봄
  • 13-19절 방주에서 나오는 노아의 가족
  • 20-22절 하나님께 제사하는 노아



1-5절 홍수가 끝이 나고 물이 줄어들기 시작함


기억하사

이전에는 권념하사이다. 히브리어 '자카르'는 기억하다 마음을 채우다 등으로 생각을 지우지 않고 담아두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노아의 가족을 잊지 않으시고 항상 마음에 두셨다. 하나님께서 기억해 주시는 사람, 그는 세상에서 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이다.


바람을 땅 위에

홍해를 건널 때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은 종종 해로운 존재지만 이곳에서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위하여 사용되고 있다.


하늘의 창문이 닫히고

참으로 멋진 시적 표현이다. 하늘에 창이 있다니.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죄를 지을 때 하늘을 닫으신다. 비를 멈추게 하시고 은혜를 멈추신다.


  • 78:23 그러나 그가 위의 궁창을 명령하시며 하늘 문을 여시고
  • 78:24 그들에게 만나를 비 같이 내려 먹이시며 하늘 양식을 그들에게 주셨나니
  • 78:25 사람이 힘센 자의 떡을 먹었으며 그가 음식을 그들에게 충족히 주셨도다


  • 3: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이스라엘이 우상에 빠질 때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해 하늘을 닫기도 하고 열기도 하셨다. 이사야 61:1에서 하나님은 하늘을 가르시고 우리에게 오신다. 가르다는 히브리어 카라는 '찟다'는 뜻이다. 하늘을 찢으시고 은혜를 주시기 위하여 내려오시는 것이다.


6-12절 까마귀와 비둘기를 보내 상황을 알아봄


일곱 째 달 열 이렛날

  • 호수의 시작은 둘째 달 열이렛날(7:11)이다. 5개월이 흘렀다.
  • 열째달 초하루(1일) 봉우리가 보임
  • 사십일 후 창문을 열고 까마귀를 보냄
  • 육백일 년 첫째 달 초 하룻날 물이 걷힘(13절)
  • 둘째 달 스무 이렛날(27일) 땅이 마름(14절) 방주에서 나옴(16절)
현대 태양력으로 하면 1년 10일을 방주 안에 있었다. 이스라엘 달력은 현대와 조금 다르다.


까마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까마귀다. 아직 율법이 주어지지 않았지만 율법상 까마귀는 부정한 새다. 하지만 엘리야에게 먹이를 주었듯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 하는 새다. 까마귀가 나가서 안 왔다는 말은 오류가 있다. 까마귀는 왕래했다. 즉 나가다 들어오기를 반복했다는 말이다. 까마귀가 부정한 새고 시체를 좋아해 들어오지 않았다는 억지스러운 설교는 하지 마시길...


비둘기

비둘기는 세 번 나갔다. 한 번은 발 붙일 곳이 없어 돌아왔고, 칠 일 후에 나갔을 때는 감람나무 잎을 물고 가져왔다. 생명이 움트기 시작한 것이다. 비둘기는 대한민국에서 해로운 새로 지정되어 있다. 비둘기가 해로운 균을 옮기기 때문이며 특히 비둘기 똥은 마르면서 공기 중으로 해로운 균을 옮긴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도 인간의 편의에 따른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 나갔을 때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유는 모른다. 비둘기가 살만한 환경이 만들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비둘기는 잡식성이다. 곤충이나 벌레, 과일, 곡물 등을 먹는다.


노아는 왜 까마귀와 비둘기를 보냈을까? 궁금해서이다. 언제 비가 그치는지, 땅은 마르고 있는지 등이 궁금했을 것이다.


13-19절 방주에서 나오는 노아의 가족


물이 걷힌 지라

드디어 물이 거의 사라졌다. 일년 가까이 방주에 있던 노아 가족들에게 희소식이다. 하나님의 진노가 물러나고 있는 증거이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은 참으로 안타깝다.


방주에서 나오라

물이 물러가고 땅이 말랐지만 노아는 방주에서 기다렸다.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지기 전까지.하나님께서 드디어 노아에게 방주에서 나오도록 명령하신다. 노아는 얼마나 긴장했을까. 세상이 궁금하기도하고 두렵기도 했을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지기까지 방주에서 나오지 않는 노아. 순종의 사람이다.


생육하고 번성하라(17절)

하나님은 아담에게 주었던 복을 노아에게 다시 준다.  하나님의 긍휼이다. 


20-22절 하나님께 제사하는 노아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첫 행위, 그것은 제단을 쌓고 제사하는 일이다. 감사와 희생의 제사였을 것이다. 번제 히브리어 '알라'(עָלָה)는 올리다는 뜻이다. 불을 피워 제물을 드리면 향이 올라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은 노아의 제사를 받으시고 약속하신다. 다시는 사람으로 인해 땅을 저주하지 않을 것이라고. 사람이 어려서부터 악하기 때문에(21절) 홍수가 사람의 본질을 바꾸지 못한다. 후에 노아도 자손들도 하나님께 범죄한다. 사람의 마음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오직 성령님이시다.


창세기 장별 요약 및 장별 강해


창세기 7장 강해

 창세기 7장 개요

6장이 홍수 이전 상황과 노아로 하여금 방주를 만드는 것까지 이야기라면 7장은 홍수의 시작과 과정을 담고 있다. 홍수는 창조 이전의 상황으로 만들어 모든 것이 혼합되고 뒤섞어 버린다. 죄는 반창조로 이끈다. 7장은 이상하리 만치 기이한 날짜가 많다.


  • 1-5절 홍수 직전의 명령
  • 6-12절 홍수의 시작
  • 13-24절 홍수의 과정들


1-5절 홍수 직전의 명령


방주로 들어가라

방주가 지어지고 홍수의 때가 가까워 오자 하나님은 노아와 가족들에게 방주로 들어가라 말한다. 믿음이 필요합니다. 과연 비가 올까? 지금까지도 힘들었지만 이젠 진짜 방주로 들어가야 한다.


내가 보았음이니라

하나님은 노아를 보았다. 우연히 본 것도 아니고 잘 못 본 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고, 숨겨진 의도와 목적까지 간파하신다. 하나님께는 비밀이 없다.

  • 4:12-13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요나서에도 니느웨 백성들이 회개하자 하나님은 그들을 보시고 징계를 철회하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고 계신다. 하갈이 사라를 피해 도망 갈때도 하나님은 보셨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고 보고 계시는 감찰하시는 분이시다.


암수 둘씩

생존을 위해서 최소한의 동물들을 준비하신다.


칠 일이면

곧바로 비가 내리지 않는다. 칠 일을 기다려야 한다. 10절에서 방주로 들어간 후 정확히 7일 후 그러니까 한 주의 첫 날 폭우가 쏟아진다. 칠 일은 충만한 시간이자 인내의 시간이다.


노아가 명하신대로

노아는 순종의 사람이다. 그는 오직 믿음으로 행한 사람이다. 자기부인이 없다면 순종은 불가능하다. 우리의 경험과 지식으로 우리는 종종 엄청난 실패와 불행을 맞이하기도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노아는 철저히 하나님의 명령에만 순종했다.


6-12절 홍수의 시작

육백 세

육백이란 나이가 유난히 강조된다. 하지만 홍사건 안에서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호하다. 성경 안에서 육은 사람을 뜻한다. 하지만 육 백이 사람을 뜻하는지는 모호하다.


사십 주야

비가 내리는 기간은 사십일이다. 성경에서 40은 고난의 시기, 인내의 시기,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의 준비 기간 등으로 이해된다. 또한 충만을 뜻하기도 한다. 이스라엘의 40년 광야 생활과 엘리야의 40일 동안 도주, 예수님의 40일 금식 등은 고난과 역경의 시기를 뜻한다. 40일의 홍수는 인간들이 완전히 멸절하는 저주의 시간이다.


깊음의 샘 하늘의 창문

은유적 표현이다. 하지만 1장에서 둘 째날 물과 물이 나뉘었다는 것을 기억하다. 하늘의 물이 흘러 내린다면 끔찍하다. 최근들어 우리나라에도 하루에 수백mm가 내리자 도심이 물에 잠기기도 했다. 이것이 40일 동안 계속 된다고 생각해 보라. 정말 무서운 일이다. 하늘뿐 아니라 깊음에서도 물이 솟구쳐 온다면 그야말로 참사다.


13-24절 홍수의 과정들

방주에 들어갔고

방주로 들어간 사람은 노아와 노아의 아내, 세 아들과 세 며느리 모두 8명이다. 베드로 심판에 대해 말하면서 노아의 가족을 언급한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지만 영원히 참지는 않으시다. 심판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다. 물론 준비 되지 않는 자들에게만.

  • 베드로전서 3:20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여호와께서 - 문을 받으시니라(16절)

방주의 문을 받은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문은 항상 열려 있지 않다. 문이 닫히면 더 이상 들어가지 못한다. 그런데 왜 아무도 노아의 가족과 함께 방주로 들어가지 않았을까? 아마도 그들은 노아를 미친 사람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믿음의 길은 종종 미치광이로 보인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문을 닫으면 누구도 구원의 방주로 들어가지 못한다.


방주가 물 위에

엄청난 비가 쏟아지자 방주가 떠 올랐다. 구원을 뜻한다. 죄악을 행하는 모든 사람들이 죽었다. 그들은 비가 쏟아지는 순간까지 홍수를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구원은 악에 대한 심판과 함께 이루어진다. 동일한 날, 누군가는 심판을 받고, 누군가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다 죽었더라(22절)

코로 호흡하는 모든 생물은 다 죽었다. 하지만 물속 생물은 죽지 않았다. 홍수 사건에서 악을 행하는 자들은 코로 호흡하는 것과 연결된다. 이 부분은 연구가 필요하다.




창세기 장별 요약 및 장별 강해




창세기 6장 강해

 창세기 6장 개요

창세기 6장부터 9장까지는 홍수 심판을 다룹니다. 5장에서 소개된 족보를 통해 수많은 인류가 지구에 거하게 된 것을 봅니다. 아담에게 주신 땅에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복이 성취된 것입니다. 문제는 선의 충만이 아니라 악의 충만이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인류의 번성을 슬퍼하시고 홍수로 멸망 시키기로 하십니다.


  • 1-7절 홍수 이전의 세상
  • 8-22절 노아에게 홍수 심판을 알리고 방주를 짓도록 명령함


1-7절 홍수 이전의 세상


사람이 번성할 때

수많은 사람들이 태어나고 번성했다. 심판이 홍수는 사람들이 많아짐으로 더욱 악화되었다. 그들은 모이면 모일수록 악을 행합니다. 번성은 분명 하나님의 축복이지만 죄인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죄를 짓는 데 사한다.


하나님의 아들들 사람의 딸들

기묘한 구절이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상징한다. 사람의 딸들은 이 땅의 사람들을 말한다. 아들은 기업을 무를 자며, 딸들은 순결한 자들을 말한다. 신화적 요소가 다분한 이 구절의 핵심은 '섞임'이다. 창세기 1장 창조에서 질서가 잡아가기 위해서 분리되었고, 자신의 자리에서 구분되어 소명을 감당했다. 그런데 이제는 다시 섞입니다. 죄는 자신의 자리를 떠나 타인의 자리를 침범한다.


아름다움을 보고

아름다움은 창세기 1장에서 피조물을 보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뜻의 '토브'이다.(참 창 1장 강해) 도대체 사람의 아름다움이란 뭘 말하는 것일까? 문제는 바라봄이 창세기 3장에서 하와가 선악과를 보는 것과 불길하게 닮아 있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6장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소유된 자들이지만 타락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땅의 사람들의 딸들을 탐하여 내려 간다.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하나님의 영이 함께 했지만 다시는 함께 있지 않을 것임을 천명하신다. 육체는 히브리어 바샤로로 2장에서 살 중의 살. 과 한 몸이란 단어에 사용된 것이다. 이 단어는 인간의 육체 자체를 뜻하기 보다는 '하나가 됨'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즉 분리 되어야 하는데 섞여 하나가 되고 만 것이다.


백이십 년

성경에서 12는 완전수이며, 이스라엘 전체 백성을 일컫는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조성되기 전 120년은 뭘 말하는 것일까? 학자들 간의 적지 않은 논쟁이 있기는 하지만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앞의 육체와 120년은 동일한 의미일 수 없다. 즉 인간의 제한된 삶, 죽음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불쌍한 인생 말이다.


네피림

네피림은 자주 등장하게 된다. 정확히는 민 13:33에 한 번 등장한다. 이곳에서 네피림의 후손 아낙자손이 소개된다. 결국 네피림 거대한 전투적 용사들로 보는 것이 잃다. 헤라클래스와 같이. 전쟁을 위해 길러진 용병 또는 살인병기들인 셈이다.

민수기 1333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네피림은 이후 용사들과 이어진다.


항상 악할 뿐

하나님은 사람들의 깊은 내면을 보셨다. 그들의 생각은 늘 악했다. 마음속의 생각들은 악하여 늘 죄 지을 생각만을 한다. 아담의 타락 이후 죄가 사람들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 첫사람이 가인이다. 이후 사람들은 가인처럼 죄의 욕망에 이끌려 살아가는 죄인들이 되었다.


한탄하사

한탄하다 히브리어 '나함'은 깊이 고민하다 위로하다 (마음을) 되돌리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즉 후회한다는 뜻이다. 참으로 기이한 표현이다. 그릇된 조직신학에 길들여진 개신교는 신이신 하나님이 어떻게 '변질' '변화'할 수 있는가를 의아해 한다. 이것은 사람의 언어다. 하나님의 마음을 담은. 죄인들을 보시고 슬퍼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8-22절 노아에게 홍수 심판을 알리고 방주를 짓도록 명령함


노아는

8절을 직역하면 

노아는 찾았다 은혜를 여호와의 눈에 있는

히브리어와 영어는 동일한 의미다. 하지만 한글 번역은 이상하게 수동태형으로 노아가 여호와의 은혜를 입었다고 번역했다.

'입었다'로 번역한 히브리어 마짜는 찾다 가다 구하다 (일이) 일어나다 만나다 손을 잡다는 뜻이다. 그런데 왜 수동태형으로 번역을 했는지...  1-7절에서 타락한 인류를 설명하고 8절은 그들과 전혀 다른 길을 걷는 노아를 설명하니 당연히 노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다 찾았다는 능동형으로 번역 해야 옳다.


노아의 족보

다시 톨레도트가 등장한다. 노아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노아는 의인이며 완전한 자로 소개된다. 이 부분은 욥의 서두와 매우 비슷하다.


하나님과 동행

동행이 다시 등장한다. 에녹도 하나님과 동행했고, 노아도 하나님과 동행한다. 즉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살았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놀랍다. 오직 노아에게만 말씀하신다. 반대로 말하면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찾지 않고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찾고 구하면 만나 주실 것이다. 이것은 약속의 계명이다.


  • 신명기 4:29 그러나 네가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되리니 만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그를 찾으면 만나리라
  • 역대하 15:2 그가 나가서 아사를 맞아 이르되 아사와 및 유다와 베냐민의 무리들아 내 말을 들으라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 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지라 너희가 만일 그를 찾으면 그가 너희와 만나게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그를 버리면 그도 너희를 버리시리라
  • 마태복음 7: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너는 방주를 만들되

방주는 사각형이다. 배가 아니다. 고페르 나무는 정확히 모른다.


노아가 다 준행하였더라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방주를 짓는다.


창세기 장별 요약 및 장별 강해



창세기 5장 강해

 창세기 5장 개요

5장은 사람들의 번성이다. 악의 계보이든, 셋의 계보이든 번성하고 충만하라는 축복에 순응한다. 5장은 아담과 셋으로 이어지는 계보로 노아의 탄생까지 이어진다. 노아의 홍수는 5장의 족보에 종속되며,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갈등'이 내재되어 있다. 5장의 족보는 하나님의 인내의 시간이자 용서의 기간이다. 하지만 영원하지 않다. 곧 징계가 시작될 것이다. 홍수가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세상을 족보를 통해 드러낸다.


  • 1-5절 아담부터 셋까지
  • 6-24절 셋부터 에녹까지
  • 25-32절 므두셀라부터 노아까지


1-5절 아담부터 셋까지


계보니라

계보는 톨레도트. 새로운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필자는 톨레도트는 그리 중요하게 보지 않기 때문에 패스한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자료가 많으니 직접 찾아 보시길. 원어는 "제흐 세페르 톨레도트"(이것은 책이다 계보의)로 기록되어 있다. 긴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것이다. 최초의 창세기가 어디에 적혀있었는지 알 길은 없다. 토판과 양피지 중 하나 일 것이다. 토판이나 파피루스라면 볼륨 형식 것이고, 양피지라면 두루마리 형태일 것이다. 어떻든 1-4장까지 끊어지고, 5장부터 어느 부분까지 이어질 것이다. 다음 톨레도트가 6:9장인 것을 볼 때 노아의 홍수 이전까지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니 넘어가자.

고신대 강화구 논문에서 가져옴


하나님의 모양대로

1장의 내용이 다시 언급된다. 1절의 아담과 사람은 모두 히브리어 '아담'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모양(데무트)대로 만드셨다. 즉 사람은 하나님의 붕어빵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대리한다. 하지만 인간의 타락으로 많은 부분 훼손 되었다. 


복을 주시고

사람이 창조는 6일 째이다. 안식을 제하면 가장 늦은 날이다. 바로 그날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복을 주셨다. 그들을 사람(아담)이라 불렀다. 사람은 하나님의 복을 받은 존재이다. 하지만 타락했다는 하나님의 슬픔이 내재되어 있다. 이것은 5장 전체에 이어진다.


아담은 형상과 같은

아담도 아들을 낳는다. 첫째 아들은 가인이며, 둘째는 아벨이다. 하지만 가인은 살인자가 되어 버려졌고, 아벨은 가인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아담도 하나님처럼 자신을 닮은 아들을 낳는다. 여기서 형상은 1절의 모양과 동일한 단어 데무트이다. 그런데 왜 하나는 모양으로 하나는 형상으로 번역하는지...  세 번째 아들은 셋이다. 모양과 형상은 기원 자체가 하나님께 있음을 말합니다. 아담은 하나님을 닮고, 셋은 아담을 닮고.. 이어지는 족보도 '모양' '형상'이란 단어가 없어도 데무트로 이어질 것을 전제한다.


자녀들을 낳았으며

아담은 셋만 놓고 죽은 것이 아니다. 다른 수많은 자녀들을 낳았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들어난다. 


구백삼십 세

아담이 죽은 나이다. 거의 천년에 가까운 그의 나이는 현재의 나이로 보면 신비롭기 그지 없다. 나이에 너무 과하게 기대지 말고 넘어가자. 우리가 알 수 도 없는 노릇이다.


백삼십 세에

아담이 셋을 낳은 나이다. 그렇다면 가인과 아벨은 언제 낳았을까?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추측해보면 수십 년이 지났을 수도 있다. 


6-24절 셋부터 에녹까지


셋은

셋도 자녀들을 낳았다. 하지만 모양이나 형상이 없다. 하지만 이미 내재되어 있다. 우리는 계보 이야기를 교회의 확장과 연결 시킬 필요가 있다.

생명은 생명으로 이어진다. 죽음은 생명을 낳지 못하다. 생명은 생명에서 나온다. 하지만 죄인은 죽는다. 죽음은 필연이다. 피할 수 없기에 또 다른 자신을 복제하여 생명을 물려주고 죽음을 맞이 한다. 죄의 값은 사망이다.


야렛은 에녹을 낳았고

에녹이 출생과 승천은 기존의 족보 패턴을 깬다. 출생하고 지내고 죽는다. 하지만 에녹은 태어나 살다 하늘로 올라간다. 죽음을 맞이하지 않는다. 죽지 않고 하늘에 올라간 이는 에녹과 엘리야 두 사람 뿐이다.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 하지만 죽지 않는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풀어야 할 숙제다. 죄 값을 누군가 대신 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원죄를 믿지 않는다. 승천은 사람의 한계를 너머 가는 것이다. 후일에 다시 생각해 보자.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동행은 같이 걷다로 '할라크'이다. 하지만 해석 상의 난제가 존재한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과 걸었다는 것이다.


동행이란?

동행이란 뭘까?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어찌 같이 걸을까? 우리는 이 단어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동행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 하는 삶을 말한다. 그렇다면 순종은 계명이 전제 된다. 계명이 당시에 존재했을까? 실제로 존재했다. 이 부분은 따로 고민해 보자. 출애굽기를 보면 십계명 이전에도 하나님의 계명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 15:26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 16:2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어느 때까지 너희가 내 계명과 내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려느냐


25-32절 므두셀라부터 노아까지


므두셀라는

므두셀라의 죽음은 홍수 해와 정확이 맞아 떨어진다. 그가 홍수로 죽은 것인지, 직전에 죽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보수 학자들은 홍수로 죽었다고 믿지 않는다. 하여튼 그는 첫 인류의 종말을 같이 한다.


라멕은

에녹, 라멕은 가인의 후손들에게도 존재한다. 이름은 같지만 너무나 다른 삶을 살아간다. 라멕은 노아를 낳는다. 그는 노아를 낳고 수고하는 이 땅에서 안식을 줄 것이라 말한다. 그가 말하는 안식은 심판을 통한 악으로부터의 쉼을 말할 것이다. 5장의 족보에 등장하는 이들은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승 해 갔을 확율이 높다. 아니면 하나님께서 직접 개인들에게 말씀하셨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노아는

노아의 출생으로 5장이 마무리 된다. 흥미로운 점은 지금까지 한 명 만을 언급하다 노아는 셈 함 야벳 세 명의 자녀를 언급한다.


5장은 

1) 악의 팽창과 세상의 타락이 내밀 하게 숨겨져 있다. 

2) 죽어야 하지만 세대를 거쳐 생명을 이어가게 하신다.

3) 생이 고통임을 보여준다.


창세기 장별 요약 및 장별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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