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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6장 강해

 창세기 6장 개요

창세기 6장부터 9장까지는 홍수 심판을 다룹니다. 5장에서 소개된 족보를 통해 수많은 인류가 지구에 거하게 된 것을 봅니다. 아담에게 주신 땅에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복이 성취된 것입니다. 문제는 선의 충만이 아니라 악의 충만이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인류의 번성을 슬퍼하시고 홍수로 멸망 시키기로 하십니다.


  • 1-7절 홍수 이전의 세상
  • 8-22절 노아에게 홍수 심판을 알리고 방주를 짓도록 명령함


1-7절 홍수 이전의 세상


사람이 번성할 때

수많은 사람들이 태어나고 번성했다. 심판이 홍수는 사람들이 많아짐으로 더욱 악화되었다. 그들은 모이면 모일수록 악을 행합니다. 번성은 분명 하나님의 축복이지만 죄인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죄를 짓는 데 사한다.


하나님의 아들들 사람의 딸들

기묘한 구절이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상징한다. 사람의 딸들은 이 땅의 사람들을 말한다. 아들은 기업을 무를 자며, 딸들은 순결한 자들을 말한다. 신화적 요소가 다분한 이 구절의 핵심은 '섞임'이다. 창세기 1장 창조에서 질서가 잡아가기 위해서 분리되었고, 자신의 자리에서 구분되어 소명을 감당했다. 그런데 이제는 다시 섞입니다. 죄는 자신의 자리를 떠나 타인의 자리를 침범한다.


아름다움을 보고

아름다움은 창세기 1장에서 피조물을 보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뜻의 '토브'이다.(참 창 1장 강해) 도대체 사람의 아름다움이란 뭘 말하는 것일까? 문제는 바라봄이 창세기 3장에서 하와가 선악과를 보는 것과 불길하게 닮아 있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6장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소유된 자들이지만 타락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땅의 사람들의 딸들을 탐하여 내려 간다.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하나님의 영이 함께 했지만 다시는 함께 있지 않을 것임을 천명하신다. 육체는 히브리어 바샤로로 2장에서 살 중의 살. 과 한 몸이란 단어에 사용된 것이다. 이 단어는 인간의 육체 자체를 뜻하기 보다는 '하나가 됨'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즉 분리 되어야 하는데 섞여 하나가 되고 만 것이다.


백이십 년

성경에서 12는 완전수이며, 이스라엘 전체 백성을 일컫는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조성되기 전 120년은 뭘 말하는 것일까? 학자들 간의 적지 않은 논쟁이 있기는 하지만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앞의 육체와 120년은 동일한 의미일 수 없다. 즉 인간의 제한된 삶, 죽음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불쌍한 인생 말이다.


네피림

네피림은 자주 등장하게 된다. 정확히는 민 13:33에 한 번 등장한다. 이곳에서 네피림의 후손 아낙자손이 소개된다. 결국 네피림 거대한 전투적 용사들로 보는 것이 잃다. 헤라클래스와 같이. 전쟁을 위해 길러진 용병 또는 살인병기들인 셈이다.

민수기 1333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네피림은 이후 용사들과 이어진다.


항상 악할 뿐

하나님은 사람들의 깊은 내면을 보셨다. 그들의 생각은 늘 악했다. 마음속의 생각들은 악하여 늘 죄 지을 생각만을 한다. 아담의 타락 이후 죄가 사람들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 첫사람이 가인이다. 이후 사람들은 가인처럼 죄의 욕망에 이끌려 살아가는 죄인들이 되었다.


한탄하사

한탄하다 히브리어 '나함'은 깊이 고민하다 위로하다 (마음을) 되돌리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즉 후회한다는 뜻이다. 참으로 기이한 표현이다. 그릇된 조직신학에 길들여진 개신교는 신이신 하나님이 어떻게 '변질' '변화'할 수 있는가를 의아해 한다. 이것은 사람의 언어다. 하나님의 마음을 담은. 죄인들을 보시고 슬퍼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8-22절 노아에게 홍수 심판을 알리고 방주를 짓도록 명령함


노아는

8절을 직역하면 

노아는 찾았다 은혜를 여호와의 눈에 있는

히브리어와 영어는 동일한 의미다. 하지만 한글 번역은 이상하게 수동태형으로 노아가 여호와의 은혜를 입었다고 번역했다.

'입었다'로 번역한 히브리어 마짜는 찾다 가다 구하다 (일이) 일어나다 만나다 손을 잡다는 뜻이다. 그런데 왜 수동태형으로 번역을 했는지...  1-7절에서 타락한 인류를 설명하고 8절은 그들과 전혀 다른 길을 걷는 노아를 설명하니 당연히 노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다 찾았다는 능동형으로 번역 해야 옳다.


노아의 족보

다시 톨레도트가 등장한다. 노아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노아는 의인이며 완전한 자로 소개된다. 이 부분은 욥의 서두와 매우 비슷하다.


하나님과 동행

동행이 다시 등장한다. 에녹도 하나님과 동행했고, 노아도 하나님과 동행한다. 즉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살았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놀랍다. 오직 노아에게만 말씀하신다. 반대로 말하면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찾지 않고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찾고 구하면 만나 주실 것이다. 이것은 약속의 계명이다.


  • 신명기 4:29 그러나 네가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되리니 만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그를 찾으면 만나리라
  • 역대하 15:2 그가 나가서 아사를 맞아 이르되 아사와 및 유다와 베냐민의 무리들아 내 말을 들으라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 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지라 너희가 만일 그를 찾으면 그가 너희와 만나게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그를 버리면 그도 너희를 버리시리라
  • 마태복음 7: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너는 방주를 만들되

방주는 사각형이다. 배가 아니다. 고페르 나무는 정확히 모른다.


노아가 다 준행하였더라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방주를 짓는다.


창세기 장별 요약 및 장별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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