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7장 개요
6장이 홍수 이전 상황과 노아로 하여금 방주를 만드는 것까지 이야기라면 7장은 홍수의 시작과 과정을 담고 있다. 홍수는 창조 이전의 상황으로 만들어 모든 것이 혼합되고 뒤섞어 버린다. 죄는 반창조로 이끈다. 7장은 이상하리 만치 기이한 날짜가 많다.
- 1-5절 홍수 직전의 명령
- 6-12절 홍수의 시작
- 13-24절 홍수의 과정들
1-5절 홍수 직전의 명령
방주로 들어가라
방주가 지어지고 홍수의 때가 가까워 오자 하나님은 노아와 가족들에게 방주로 들어가라 말한다. 믿음이 필요합니다. 과연 비가 올까? 지금까지도 힘들었지만 이젠 진짜 방주로 들어가야 한다.
내가 보았음이니라
하나님은 노아를 보았다. 우연히 본 것도 아니고 잘 못 본 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고, 숨겨진 의도와 목적까지 간파하신다. 하나님께는 비밀이 없다.
- 히 4:12-13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요나서에도 니느웨 백성들이 회개하자 하나님은 그들을 보시고 징계를 철회하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고 계신다. 하갈이 사라를 피해 도망 갈때도 하나님은 보셨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고 보고 계시는 감찰하시는 분이시다.
암수 둘씩
생존을 위해서 최소한의 동물들을 준비하신다.
칠 일이면
곧바로 비가 내리지 않는다. 칠 일을 기다려야 한다. 10절에서 방주로 들어간 후 정확히 7일 후 그러니까 한 주의 첫 날 폭우가 쏟아진다. 칠 일은 충만한 시간이자 인내의 시간이다.
노아가 명하신대로
노아는 순종의 사람이다. 그는 오직 믿음으로 행한 사람이다. 자기부인이 없다면 순종은 불가능하다. 우리의 경험과 지식으로 우리는 종종 엄청난 실패와 불행을 맞이하기도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노아는 철저히 하나님의 명령에만 순종했다.
6-12절 홍수의 시작
육백 세
육백이란 나이가 유난히 강조된다. 하지만 홍사건 안에서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호하다. 성경 안에서 육은 사람을 뜻한다. 하지만 육 백이 사람을 뜻하는지는 모호하다.
사십 주야
비가 내리는 기간은 사십일이다. 성경에서 40은 고난의 시기, 인내의 시기,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의 준비 기간 등으로 이해된다. 또한 충만을 뜻하기도 한다. 이스라엘의 40년 광야 생활과 엘리야의 40일 동안 도주, 예수님의 40일 금식 등은 고난과 역경의 시기를 뜻한다. 40일의 홍수는 인간들이 완전히 멸절하는 저주의 시간이다.
깊음의 샘 하늘의 창문
은유적 표현이다. 하지만 1장에서 둘 째날 물과 물이 나뉘었다는 것을 기억하다. 하늘의 물이 흘러 내린다면 끔찍하다. 최근들어 우리나라에도 하루에 수백mm가 내리자 도심이 물에 잠기기도 했다. 이것이 40일 동안 계속 된다고 생각해 보라. 정말 무서운 일이다. 하늘뿐 아니라 깊음에서도 물이 솟구쳐 온다면 그야말로 참사다.
13-24절 홍수의 과정들
방주에 들어갔고
방주로 들어간 사람은 노아와 노아의 아내, 세 아들과 세 며느리 모두 8명이다. 베드로 심판에 대해 말하면서 노아의 가족을 언급한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지만 영원히 참지는 않으시다. 심판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다. 물론 준비 되지 않는 자들에게만.
- 베드로전서 3:20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여호와께서 - 문을 받으시니라(16절)
방주의 문을 받은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문은 항상 열려 있지 않다. 문이 닫히면 더 이상 들어가지 못한다. 그런데 왜 아무도 노아의 가족과 함께 방주로 들어가지 않았을까? 아마도 그들은 노아를 미친 사람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믿음의 길은 종종 미치광이로 보인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문을 닫으면 누구도 구원의 방주로 들어가지 못한다.
방주가 물 위에
엄청난 비가 쏟아지자 방주가 떠 올랐다. 구원을 뜻한다. 죄악을 행하는 모든 사람들이 죽었다. 그들은 비가 쏟아지는 순간까지 홍수를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구원은 악에 대한 심판과 함께 이루어진다. 동일한 날, 누군가는 심판을 받고, 누군가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다 죽었더라(22절)
코로 호흡하는 모든 생물은 다 죽었다. 하지만 물속 생물은 죽지 않았다. 홍수 사건에서 악을 행하는 자들은 코로 호흡하는 것과 연결된다. 이 부분은 연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