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기적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기적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열왕기하 7장 구조 묵상

 열왕기하 7장 요약

열왕기하 7장은 엘리사의 예언대로 사마리아의 기근이 하나님의 기적을 통해 극적으로 끝나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아람 군대가 사마리아를 포위해 심각한 기근이 일어난 상황에서, 엘리사는 하나님의 구원을 예언하며, 다음 날 이스라엘 백성이 풍성한 양식을 누릴 것이라고 말합니다(1절). 그 예언을 의심한 한 장관은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는 엘리사의 말을 믿지 않았고, 엘리사는 그가 기적을 보겠지만 누리지 못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2절).


그 후, 나병 환자 네 명이 아람 진영으로 들어가 먹을 것을 찾으려 했는데, 놀랍게도 아람 군대는 이미 하나님의 기적적인 소리에 놀라 도망갔고, 진영에 모든 물자와 양식이 남아 있었습니다(3-7절). 나병 환자들은 사마리아 성에 돌아와 소식을 전했고, 이스라엘 백성은 아람 군대의 물자를 확보하며 기근에서 벗어나게 됩니다(8-16절). 엘리사를 의심했던 장관은 백성들에 의해 짓밟혀 죽게 되어, 엘리사의 예언이 이루어졌습니다(17-20절).


열왕기하 7장 구조

  • 엘리사의 구원 예언 (1-2절)
  • 나병 환자들이 아람 진영에 들어감 (3-8절)
  • 나병 환자들의 소식과 이스라엘의 구원 (9-16절)
  • 의심했던 장관의 죽음 (17-20절)


1. 엘리사의 구원 예언 (1-2절)

사마리아는 아람 군대의 포위로 극심한 기근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음식이 없어 심각한 고통을 겪었고, 심지어 아이들을 먹는 비극적인 상황까지 발생했습니다(열왕기하 6:28-29).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엘리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며, 다음 날이면 식량이 풍성해져 백성들이 값싸게 음식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예언합니다(1절). 여기서 "고운 밀가루 한 세아"와 "보리 두 세아"는 당시 화폐 가치로 보면 너무도 싸고 풍성한 양식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엘리사의 예언을 들은 왕의 장관은 의심하며,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라고 말합니다(2절). 장관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의심했고, 엘리사는 그가 이 기적을 보지만, 그 혜택을 누리지는 못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뢰의 중요성을 배우게 됩니다. 성경은 여러 번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말고 온전히 신뢰할 것을 강조합니다. 히브리어로 "믿다"라는 뜻의 "אָמַן"(아만)은 단순히 믿는 것을 넘어, 굳게 서다, 신뢰하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장관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했기에, 결국 그 혜택을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2. 나병 환자들이 아람 진영에 들어감 (3-8절)

사마리아 성문 밖에 나병 환자 네 명이 있었습니다. 당시 나병 환자들은 사회적으로 격리된 자들이었고, 성 밖에서 음식을 구걸하며 살았지만, 기근 때문에 더 이상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성 안에 머물러 있다가 굶어 죽는 것보다는 아람 진영으로 가서 음식을 구하려 했고, 만약 죽으면 죽겠다는 각오로 아람 진영으로 향했습니다(3-4절).


그러나 하나님의 기적적인 개입으로 아람 군대는 갑자기 자신들이 큰 군대의 공격을 받는 소리를 듣고, 모두 겁에 질려 진영을 버리고 도망쳤습니다(6-7절). 아람 군대는 실제로 공격을 받은 것이 아니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의 귀에 소리로 겁을 주셨던 것입니다. 이로 인해 아람 진영에는 식량과 물자가 그대로 남겨졌고, 나병 환자들은 그곳에서 음식을 먹고 귀중품을 챙길 수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의 기적적인 섭리를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그의 방법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십니다. 우리가 처한 상황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는 예기치 않은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음을 신뢰해야 합니다.


3. 나병 환자들의 소식과 이스라엘의 구원 (9-16절)

나병 환자들은 처음에는 자신들만을 위해 아람 진영에서 물자를 챙기지만,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이 좋은 소식을 사마리아 성에 알리기로 합니다(9절). 그들은 사마리아 성문으로 가서 성경비를 알려주고, 그 소식이 왕에게 전달됩니다. 처음에는 왕과 백성들이 이 소식을 함정일까 의심했지만, 왕은 병거를 보내 진위를 확인하게 합니다(12-14절). 그 결과 아람 군대가 실제로 도망쳤다는 사실이 확인되었고, 사마리아 백성은 아람 군대가 남겨둔 물자를 얻어 기근에서 벗어납니다.


이 장면은 하나님의 구원은 모든 이에게 열려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줍니다. 나병 환자들은 당시에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이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사마리아를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연약하고 소외된 자들조차도 구원의 도구로 사용하실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그들이 자신들만을 위해 물자를 숨기지 않고, 백성들에게 소식을 알린 것은 공동체를 위한 배려와 나눔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는 나만의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어야 할 귀한 자산임을 깨닫게 합니다.


4. 의심했던 장관의 죽음 (17-20절)

엘리사의 예언을 의심했던 왕의 장관은 사마리아 성문에 배치되어 군중들을 통제하는 임무를 맡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아람 진영으로 달려가 물자를 구하는 과정에서 장관은 그들에게 짓밟혀 죽게 됩니다. 이로써 엘리사의 예언대로 그는 기적을 보았지만, 그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습니다(17-20절).


이 사건은 불신앙의 결과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고 불신했던 장관은 결국 그 기적의 결과를 누리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는 자가 얻게 되는 결과에 대한 경고입니다. 신약에서도 예수님께서 “믿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자는 정죄를 받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처럼(마가복음 16:16),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받아들이는 데서 비롯됩니다.


결론

열왕기하 7장은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구원의 기적을 강력하게 보여줍니다. 엘리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기근 속에 있는 백성들에게 구원을 약속했고, 하나님은 나병 환자들을 통해 그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교훈은 믿음의 중요성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믿지 않고 의심했던 장관은 결국 그 기적을 누리지 못했지만, 나병 환자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믿음, 그리고 그분의 방법을 인정하고 순종하는 자세를 배워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구원은 사회적으로 소외된 자들조차도 사용하여 이루어지며, 우리가 받은 은혜를 다른 이들과 나눌 때, 공동체의 구원을 이루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열왕기하 4장 구조 묵상

 열왕기하 4장 요약

열왕기하 4장은 선지자 엘리사의 기적적인 사역들이 기록된 장으로, 여러 사람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장에는 네 가지 중요한 사건이 등장합니다. 첫 번째는 선지자의 제자 중 한 사람의 아내가 남편의 빚으로 인해 아들들이 노예로 팔릴 위기에 처했을 때, 엘리사가 기적을 통해 그녀를 도운 이야기입니다(1-7절). 두 번째는 엘리사가 수넴의 한 부유한 여인에게 아들을 주는 축복과, 그 아들이 나중에 병으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이야기입니다(8-37절). 세 번째는 기근 속에서 엘리사가 독이 든 음식을 치유하는 이야기입니다(38-41절). 마지막으로, 엘리사가 100명을 작은 양의 음식으로 배불리 먹이는 기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42-44절).


열왕기하 4장 구조

  • 빚에 시달리는 과부의 기름 기적 (1-7절)
  • 수넴 여인과 그 아들의 죽음과 부활 (8-37절)
  • 독이 든 음식의 치유 (38-41절)
  • 작은 양식으로 많은 사람을 먹임 (42-44절)


1. 빚에 시달리는 과부의 기름 기적 (1-7절)

이 사건은 과부가 남편이 죽은 후 빚을 갚지 못해 두 아들이 노예로 팔릴 위기에 처했을 때, 엘리사가 그녀를 도와준 이야기입니다. 엘리사는 그녀에게 집에 있는 작은 기름병을 가지고 이웃들에게 그릇을 빌려 오라고 한 뒤, 그 기름을 모든 그릇에 부으라고 지시합니다. 과부는 순종하였고, 작은 기름병에서 끝없이 기름이 나와 모든 그릇을 채울 수 있었습니다. 그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아들들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의 채우심과 공급하심을 보여줍니다. 과부는 매우 작은 기름병 하나밖에 없었지만, 하나님은 그 작은 것에서 큰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가진 것의 크기에 달려 있지 않다는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진 작은 믿음이라도 그분을 신뢰하고 순종할 때 풍성하게 채워 주십니다. 또한 이 기적은 우리의 순종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과부는 엘리사의 지시에 따라 이웃에게 그릇을 빌렸고, 그 결과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우십니다.


2. 수넴 여인과 그 아들의 죽음과 부활 (8-37절)

엘리사는 종종 수넴을 방문했는데, 그곳에서 한 부유한 여인이 그를 극진히 대접하였습니다. 이 여인은 엘리사를 위해 자신의 집에 방을 마련해 주었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엘리사는 그녀에게 아들을 약속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은혜로 그녀는 아들을 낳게 됩니다. 그러나 그 아들이 나중에 갑작스럽게 병에 걸려 죽고 맙니다. 수넴 여인은 엘리사를 찾아가고, 엘리사는 아이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여 아이를 다시 살립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의 생명을 주시는 능력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주관자이시며, 죽음까지도 그분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이 기적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는 능력자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또한 이 사건은 믿음의 본질에 대해 가르쳐 줍니다. 수넴 여인은 자신의 아들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엘리사를 찾아가 하나님의 능력을 구합니다. 그녀의 믿음은 절망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간절한 믿음이었습니다.


엘리사가 수넴 여인의 아들을 살린 기적은 단순히 개인적인 기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와 생명 주심의 상징으로서, 우리도 영적으로 죽은 상태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리신다는 교훈을 줍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서 죽어가던 부분을 되살리실 수 있는 능력자이십니다.


3. 독이 든 음식의 치유 (38-41절)

엘리사 시대에 기근이 있었을 때, 선지자의 제자들이 음식에 독이 든 채소를 넣어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그들이 음식을 먹고 독이 있음을 깨닫자, 엘리사는 밀가루를 넣어 독을 제거하는 기적을 행합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이 재앙과 어려움 속에서도 보호하고 치유하시는 능력을 보여줍니다.


음식에 독이 들어 사람들이 죽을 위험에 처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엘리사를 통해 그 독을 제거하시고 사람들을 보호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치유의 능력을 상징하며, 우리가 영적으로 또는 육체적으로 어려움에 처했을 때 하나님께서 보호하심을 경험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우리가 겪는 시험이나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은 문제의 해결책을 주시는 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밀가루는 상징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할 때, 영적인 독을 제거하고 영적 치유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4. 작은 양식으로 많은 사람을 먹임 (42-44절)

마지막으로, 엘리사는 작은 양의 음식으로 100명을 배불리 먹이는 기적을 행합니다. 한 사람이 첫 열매로 보리떡 20개와 자루에 담긴 곡식을 가져왔을 때, 엘리사는 그것을 100명에게 나누어 주라고 명령합니다. 사람들은 적은 양으로 어떻게 100명을 먹일 수 있느냐고 의아해했지만, 엘리사의 말씀대로 음식을 나누었을 때 모두가 배불리 먹고 남았습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의 기적적인 공급하심을 상징하며, 예수님께서 오병이어 기적을 행하신 사건과도 유사한 부분을 보여줍니다(마태복음 14:13-21). 하나님은 우리의 제한된 자원으로도 넘치게 공급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분입니다. 작은 헌신이라도 하나님의 손에 맡기면, 그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줄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삶 속에서 작은 것이라도 하나님께 바칠 때, 하나님께서 그것을 통해 놀라운 일을 이루실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줍니다.


또한, 여기서 중요한 점은 첫 열매의 헌신입니다. 그 사람이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렸을 때, 하나님은 그것을 기적적으로 사용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우리의 첫 열매와 자원을 하나님께 드릴 때, 하나님께서 그것을 축복하셔서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실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넘치도록 나눠주실 수 있습니다.


결론

열왕기하 4장은 하나님의 기적적인 능력과 은혜를 통해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시고, 삶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 장에 등장하는 기적들은 모두 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순종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작은 헌신을 통해 큰 일을 이루실 수 있음을 믿고,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 우리의 첫 열매와 자원을 드릴 때, 하나님은 그것을 기적적으로 사용하셔서 우리의 필요를 채우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유익을 주실 것입니다.


열왕기하 장별요약 목록


사도행전 3장 강해

 사도행전 3장 개요

사도행전 3장은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갈 때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이를 예수의 이름으로 고쳐준 사건을 다룹니다. 성전 미문에 앉아 있아 있던 앉은 뱅이가 일어나 걷자 사람들이 놀라 베드로를 주목합니다. 베드로는 자신을 주목한 사람들에게 너희가 죽이기로 결의한 예수 그리스도가 낫게 했다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에 죽었다가 살아날 것을 이미 예언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사도행전 3장 구조

  • 1-10절 구걸하는 앉은 뱅이를 치유하다.
  • 11-26절 예수는 성경에서 약속한 메시아다.


사도행전 3장 강해


1-10절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러 올라가는 두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제 구시 시간에 성전에 올라갑니다. 유대인들은 하루에 세 번 기도합니다. 구시는 아침에 드리는 기도이며 번제를 드리는 시간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갔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의 십자가 사건으로 인해 유대교를 완전히 버린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삶으로서의 유대교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유대인에게 기도는 집이나 거리에서도 하지만 그러한 기도와 성전에서 하는 기도는 차원이 다른 개념입니다. 성전은 정식적인 것이고, 다른 곳은 불가피하게 기도하는 장소 정도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가능한 성전에 올라가 기도하는 것을 기뻐했고, 또 그렇게 했습니다.


성전 미문의 앉은 뱅이


이 때 나면서 못 걷게 된 사람들을 사람들이 메고 와서 미문 앞에 놓습니다. 구걸하기 위해서입니다. 미문은 아름답다는 뜻입니다. 장애인은 율법적으로 흠이 있어 성전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성전으로 들어가는 이들에게 구걸하기 위해 문 앞에서 구걸했습니다.

  • 신 23:1 고환이 상한 자나 음경이 잘린 자는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 신 23:2 사생자는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십 대에 이르기까지도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 신 23:3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 대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제3성전인 헤롯성전에는 헤롯에 의해 개축과 증축이 이루어지면서 아담했던 성전이 화려해졌습니다. 유대인들은 성전의 구역을 나눔으로 엄격하게 관리했습니다. 지성소는 1년에 딱 한 번 대 제사장만 들어갑니다. 성소는 제사장들이 떡상과 금잔대를 위해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들어갑니다. 


성전의 안뜰은 유대인의 온전한 남성만 들어가고, 바깥뜰은 여성과 장애인 유대인, 이방인들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장애인이었던 이 남자는 바깥들(엄밀하게 말하면 성전이 아닙니다.)에 늘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는 베드로와 요한을 발견하고 구걸합니다. 구걸은 늘 해왔고, 구걸을 통해 그는 생존해 왔기 때문에 베드로와 요한에게도 여전히 구걸합니다. 앉은뱅이에게 있는 삶의 관성을 주의해 봐야 합니다. 우리도 여전히 죄의 관성에 붙들려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어나 걸으라


두 사도가 구절하는 사람을 주목합니다. 베드로 그 사람을 향해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라고 말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베드로의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는 물질의 소유는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있습니다. 그 이름인 앉은뱅이를 낫게 했습니다.

예수의 이름이


뒤에 베드로가 다시 길게 설명하지만 이 부분에서 조금 생각해 봅시다. 앉은뱅이는 날 때부터 장애를 가졌기 때문에 단 한 번도 성전 안뜰 안으로 들어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는 늘 성전의 바깥에 머물렀습니다. 그런데 그는 발목의 힘을 얻어 일어나 걷고 뛰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는 과정은 '성전으로 들어가면서'(8절) 한 것입니다. 즉 그는 성전으로 들어갔습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정말 성전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이것이 기적이고, 예수님의 능력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참으로 차별의 담을 허물고, 긍휼의 성전을 세웠습니다.

11-26절 예수의 이름이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 붙잡았습니다. 사람들이 그 사람의 모습을 깜짝 놀랍니다. 사람들은 두 사도에게 달려들어 솔로몬 행각이라는 곳에 모였습니다. 베드로가 그들이 모인 것을 보고 설교를 하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12절)


사람들이 왜 베드로와 요한을 주목(注目) 했을까요?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눈으로 직접 보고 너무나 놀랬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일어난 기적과 이적은 구약 시대에서만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 선지자들이 일으켰던 놀라운 기적을 눈으로 직접 확인한 것입니다.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본 것이죠.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보기 전 사람인 베드로와 요한을 주목했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기적과 이적을 보면서 그것을 행하는 사람에게 주목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과 이해력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베드로는 이러한 인간들이 실수와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서 설교하기 시작합니다.


13-16절 부활하신 그리스도


13절을 보면 ‘베드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 예정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라고 말합니다. 자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했다고 말합니다. 입으로는 예수님을 살리신 하나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설교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부활이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신 사건입니다. 베드로는 너희가 죽게 빌라도에게 넘겨주어 죽게 한 그리스도 예수가 이 사람을 살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먼저 너희가 예수 그리스도를 빌라도에게 넘겨줌으로 말미암아 생명이 주를 죽었다 설교합니다. 그들의 죄를 감추지 않고 폭로하고 있는 것입니다.


17-26절 회개하고 돌이키라


너희가 알지 못했다.(17절)


베드로는 너희가 알지 못해서 그랬다고 말합니다. 또한 너희 관리들도 모르고 했다는 것입니다. ‘모른다’라는 말은 ‘그들이 죄가 없다’라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깊은 그 뜻과 계획을 알지 못했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구속의 역사는 우리가 알지 못하게, 우리가 생각지 못 하게, 또한 전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선지자의 예언(18절)

하지만 그들이 모르는 것이 아무런 죄가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선지자의 입을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권한 받으실 것을 우리에게 이미 알렸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성경에 깊이 성격을 이해하지 못하고 내 생각대로 내 계획대로 욕심대로 살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주목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말씀대로 살 수 있는 능력과 지혜와 믿음이 없습니다 이것이 자연적인 인간의 한계입니다.


회개하고 돌이키라(19절)


베드로는 이제는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이것은 새롭게 되는 날이라고 표현하는데 주로부터 이를 것이라고 말합니다. 주의 헬라어 '퀴리오스'는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원래 구약 히브리어 ‘주’를 뜻하는 ‘아도나이’는 여호'=와 하나님을 부르는 호칭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이제 그 ‘주’라는 말을 여호와 하나님에게서 예수님께로 옮겨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를 보내리니(20절)


주님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예수를 보내시니 여러분이 표현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다는 일 놀라운 계획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절 보면 말씀과 하나님이 곧 하나라는 사실 올 얘기해 주고 있는데 베드로는 구약의 하나님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신다라는 표현을 통해서 성부와 성자 하나님의 관계를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은 하나님이다 또한 성령 하나님 역시 하나님이십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하나님은 우리에게 보내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신 다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21절 - 26절


베드로는 구약에서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21절은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라고 말합니다. 구약의 말씀을 이야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갑자기 오신 것이 아니라 이미 선지자들 통해서 하나님께서 오래전에 약속하셨고 그 약속하신 것이 구약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나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말합니다.


‘받아준다 ’라는 말은 아직까지 ‘계시하지 아니한다’ ‘드러내지 아니한다’ ‘때를 기다리고 있다’라는 뜻입니다. ‘때가 되자 예수 그리스도를 땅에 보내주셨고 그 보내 주신 예수 그리스도 너희가 죽였고, 너희가 죽인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 살리셨고, 그 살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이 사람을 낫게 했다’라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장별강해 및 강해목록


여호수아 3장 강해

 여호수아 3장 개요

두 정탐꾼을 통해 가나안 거민들이 두려워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여호수아는 드디어 요단을 건널 준비를 합니다. 싯딤(뜻 아카시아)에서 떠나 요단 동편에 자리하고 그곳에서 사훌을 유숙합니다.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어깨에 메고 앞서가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뒤따릅니다. 제사장들의 발이 요단강에 들어가자 요단강이 멈춰 서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마른 땅으로 요단을 건너 갑니다.


여호수아 3장 구조

  • 1-6절 요단을 건널 준비
  • 7-13여호와의 약속
  • 14-17절 요단을 건너는 이스라엘


여호수아 3장 강해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3장이 되면서 여호수아가 어떤 인물인지 잘 보여줍니다. 여호수아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으면 항상 '일찍' 일어났습니다. 아마도 그런 일이 없어도 아침 일찍 일어났을 것입니다. 프로는 실력이 아니라 정신입니다. 아마추어는 실력이 아니라 정신입니다.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고 미리 준비해 나갑니다. 하지만 아마추어는 환경을 탓합니다. 우리도 일찍 일어나야 합니다.


사흘 후에


여호수아에서 '사흘'은 묘하게 반복됩니다. 2:22에서도 두 정탐군은 '사흘'을 숨어 있었습니다.  성경에서 사흘은 잊혀진 시간, 죽음의 시간으로 종종 사용되기도 합니다. 요나도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을 지냈고, 예수님의 부활도 사흘 때 되는 날입니다.

  • 욘 1:17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밤낮 삼 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으니라


이천 규빗쯤


이제 요단강을 건너야 합니다. 제사장들이 법궤를 메고 가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따라갑니다. 따라갈 때 2천 규빗정도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1규빗은 45-50cm입니다. 이 거리는 약 900m - 1km 정도입니다. 그리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립니다. 거리를 둠으로 앞사람이 아닌 법궤를 직접 볼 수 있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신앙에서 있어 객관적 사고는 매우 중요합니다. 너무 가까이 가면 사물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합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거리를 두면 객관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신앙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어떨 때는 매우 가까이 가야 하지만 어떨 때는 약간의 거리가 필요합니다. 과도한 몰입으로 잘못할 수 도 있습니다.


쌓여 서리라


아직 건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여호수아는 담대하게 외칩니다. 곧 물이 쌓여져 설 것이라고.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정말 놀라운 고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요단강이 멈춘 것은 자연이 법칙이 아닙니다. 기적입니다. 하지만 항상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항상 기적을 바라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일상도 하나님의 기적입니다. 일상을 소중히 해야 합니다.


이것으로서 너희가 알리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여호수아는 10절에서 가나안의 일곱 족속이 반드시 쫓겨 나게 될 것을 이 사건을 통해 알게 될 것이라 선언합니다. 믿음에 찬 여호수아의 고백은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함을 확신했고, 그로 인해 기적이 일어나며, 그 기적은 앞으로 전개될 모든 사건의 승리의 문을 여는 문고리가 될 것입니다. 이것은 그 자체로 기적이자 징조입니다.


요단이 항상 - 넘치더라


하필이면 요단을 건널 때가 추수기입니다. 이때가 되면 헐몬산의 만년설이 녹아 갈릴리로 내려와 요단강을 타고 내릴 때입니다. 요단강이 가장 물길이 세고 험할 때입니다. 하나님은 왜 하필 이때 강을 건너게 할까요.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흘러넘치는 요단보다 더 위대하다는 사실입니다.


제사장들의 발이 물 가에 잠기자


참으로 두려운 일입니다.  험하게 흘러 내리는 요단강에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냥 발을 담근 것입니다. 눈에 시퍼런 물이 흘러내리고 있는데 말이죠. 하지만 제사장들은 순종했습니다. 기적은 순종을 통해 일어납니다. 가나의 혼인잔치 때 하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순종은 놀라운 기적을 만들어냅니다.


마른 땅으로


요단강은 종종 홍해와 동일시되거나 비교됩니다. 먼저 요단강은 제2의 홍해 사건입니다. 두 번째 요단강은 분명 홍해와 다릅니다. 홍해는 이미 갈라진 홍해를 건넜지만 요단강은 흘러넘치고 있는 요단에 발을 디뎌야 물이 갈라집니다. 홍해는 은혜의 시간이요, 요단강은 순종의 시간입니다. 모두가 동일한 하나님의 은혜요 기적이지만 어느 때는 은혜를 부어주시고, 어느때는 순종을 요구합니다. 하나님께서 순종을 요구할 때 왜 전처럼 은혜만 부어주시지 않냐고 불평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은혜를 주시지만 다르게 주십니다.  동일하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지만 아기 때는 엄마가 주고, 다 커서는 직접 숟가락으로 떠먹어야 합니다.


여호수아 장별요약 및 강해목록


내 블로그 목록

추천 게시물

2024년 9월 29일, 주일 대표기도문

주일 낮 예배 대표기도문 믿는 자들의 위로와 희망이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9월의 마지막 주일, 저희를 주님의 거룩한 존전 앞에 불러 주셔서 예배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변화하는 계절 속에서도 변함없이 저희를 지키시고 인도하시는 주님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