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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장

1. 개요


창세기 1장은 창세기의 시작이자 서막에 해당합니다. 창세기를 읽을 때는 연대기적으로 읽으면 안 되고 반드시 출애굽의 관점에서 읽어야 합니다. 신약적 관점으로 읽으면 더욱더 좋습니다. 하여튼 창세기 1장은 바로의 질문인 '여호와 누구기에?'라는 질문의 답일 수도 있습니다. 히브리인들이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 그는 누구일까? 그 질문의 답이 창세기이고, 창세기 1장입니다. 창세기 1장을 천지를 창조하시고 모든 만물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소개합니다.


2. 강해


1-2절 태초에 하나님

  • 창세기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 창세기 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처음에(베레쉬트)는 '처음'이란 뜻이다. 베는 히브리어 베트이며, 시간과 장소를 의미한다. 로쉬는 '머리''장자''처음' 등의 의미다. 베레쉬트에 무슨 심오한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처음'이란 뜻이다. 하지만 처음은 첫번째라는 뜻이 아닌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이란 의미로 '아루 오래된'이란 뜻이로 해석해야 한다. 모든 것이 없을 때 하나님은 '천지'를 만드셨다. 천지는 한 단어가 아니라 '하샤마임'과 '하 에레츠'로 그하늘들과 그 땅이다. 샤마임은 하늘의 복수형태이다. 이건 여러 하늘들이란 뜻이 아니라 고대 히브리인이 갖는 하늘에 대한 관념이다. 그들은 하늘들이 최소한 3층이 있다고 믿었다. 7단계로 주장하는 이들도있다.


창세기 1장을 유심히 읽어보면 지구의 창조가 없다. 곧바로 빛이 있고, 2일째는 물과 물 사이를 갈라 공간을 만든다. 과도하게 문자적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이들은 대단한 오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말하고 싶다. 필자는 1절에 '그 땅(에레츠)'를 지구의 창조로 본다. 하여튼 1장의 창조는 대단히 상징적이다.


2절로 넘어가면 땅은 혼돈하고 공허하다. 혼돈은 질서가 없다는 뜻이며, 공허는 텅 비어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1장의 창조가 무에서 유로, 무질서에서 질서로 나아가는 것을 본다면 혼돈과 공허는 처음을 뜻하며, 아직 사람이 살 수 없는 원시적 상태임을 말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짓고 바벨론으로 끌려 갈 때 이 단어가 사용된다. 성경 속에서 '공허'와 '혼돈'은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 또는 저주의 결과로 자주 사용된다.


  • 예레미야 4:23 보라 내가 땅을 본즉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늘에는 빛이 없으며
  • 이사야  24:1 보라 여호와께서 땅을 공허하게 하시며 황폐하게 하시며 지면을 뒤집어엎으시고 그 주민을 흩으시리니
  • 이사야 34:11 당아새와 고슴도치가 그 땅을 차지하며 부엉이와 까마귀가 거기에 살 것이라 여호와께서 그 위에 혼란의 줄과 공허의 추를 드리우실 것인즉
  • 이사야 45:18 대저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을 창조하신 이 그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땅을 지으시고 그것을 만드셨으며 그것을 견고하게 하시되 혼돈하게 창조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이 거주하게 그것을 지으셨으니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창조의 관점에서 공허와 혼돈은 저주가 아닌 시작의 상태로 읽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죄로 인하여 인간들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때도 저주의 사용된다는 점은 창조의 시작과 저주는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두 절을 통해서 하나님은 무에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음을 읽는다. 또한 언제든지 다시 태고적 혼돈과 공허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인간의 본질이 흙이듯 창조전의 모습은 혼돈과 공허다. 창세기 7장에서 홍수로 인해 혼돈의 세계가 되었다는 점은 인간의 죄가 반(反)창조로 나아가게 한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준다.


3-5절 첫째날의 창조


  • 창세기 1:3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 창세기 1:4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 창세기 1:5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첫째날의 창조는 '빛(오르 אור)'이다. 이 빛은 후에 나오는 광명체와는 성질이 다르다. 학자들 간의 적지 않은 논란의 중심에 3절의 빛이다. 태양이 없는 상태에서 빛으 가능할까 때문입니다. 최근들어 학자들은 북극의 오로라처럼 태양이 없어도 빛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과연 모세는 태양 없는 빛을 말하고 싶어서 3절을 넣은 것일까? 아니라고 본다. 출애굽의 재앙의 하나가 흑암 재앙이라는 점은 빛의 아들이 파라오가 가짜 신임을 드러내는 재앙이자 심판이었다. 빛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3절의 빛을 현대인의 관점으로 읽을 것이 아니라 출애굽의 관점에서 읽는 것이 더 우선시 되어야 한다.


부름은 곧 존재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자 존재가 있다. '빛이 되었다'가 아니라 '빛이 있었다(ויהי־אור)'는 과거형(히 미완료)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말씀은 곧 존재이다. 말씀이 전부라는 사실을 말한다. 출애굽은 신관념에 대한 혁명적 전환을 가져왔다. 애굽은 보이는 형상을 신이라 불렀다. 고대 사람들은 신이 보여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를 죽었다. 하여튼, 히브리인들은 보이는 신은 가짜이고, 말씀하시는 신이 진짜임을 믿어야 했다. 보는 종교에서 듣는 종교로의 혁명적 변환이 일어난다.


보시기에 좋았다. '좋다'는 히브리어 토브는 '선''완전' 등에 사용된다. 하나님의 완전성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피조물은 그 존재 자체로 완전한 피조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만족'해야 한다. 참 신앙은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신뢰이자 만족이며 감사이다. 죄는 하나님의 베품에 대한 불만족이다. 


빛과 어둠을 나누사. 창조는 섞인 것을 분리하여 나눈다. 하나님은 계속하여 구분하여 질서를 세우고, 모든 것을 각자의 소명을 준다. 낮과 밤을 분리하듯, 이후에 물과 물을 분리하고, 물과 땅을 구분 짓는다. 구분은 차별을 위한 것이 아니라 소명을 위한 것이다. 태양은 낮을 빛을 발하고 낮을 주관한다. 달은 밤을 주관한다. 이처럼 구분은 모든 것을 체계적으로 세워나가는 건축술이다.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하나님이 부르시면 이름이 된다. 이름은 곧 존재의 규명이자 한계을 설정한다. 모든 존재는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다. 하나님은 그들의 이름을 부름으로 이름대로 살아갈 소명을 받는다. 이것이 이름의 신학이 갖는 핵심이다. 성경 안에는 이름을 부르는 것이 종종 선택 받은 백성됨과 구원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증명한다. 후에 이 부분은 따로 [ #이름의신학 ]이란 주제로 따로 다룰 것이다.


  • 이사야 40장26절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 이사야 41장25절 내가 한 사람을 일으켜 북방에서 오게 하며 내 이름을 부르는 자를 해 돋는 곳에서 오게 하였나니 그가 이르러 고관들을 석회 같이, 토기장이가 진흙을 밟음 같이 하리니
  • 이사야 65장1절 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찾아냄이 되었으며 내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던 나라에 내가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있노라 하였노라
  • 사도행전  2장21절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 고린도전서  1장2절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첫째 날은 빛을 창조하심으로 어둠과 구분하신다. 빛이 없다면 어둠도 없을 것이다. 창조는 존재하게 함으로 무를 드러낸다. 무는 '아무 것도 없다'가 아니라 그냥 무인 것이다. 존재 만이 무를 드러내며, 빛을 있어야 어둠을 드러낸다. 요한은 자신의 모든 신학을 '빛'의 개념에서 설명한다는 점도 유의하여 볼 만한다. 하나님은 빛이고, 예수님을 빛으로 세상에 오셨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빛의 자녀들이다.


  • 요한복음 1장 5절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 요한복음 3장 19절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 요한복음 8장 12절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 요한1서 1장 5절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  데살로니가전서 5장 5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6-8절 둘째날의 창조


  • 창세기 1:6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 창세기 1:7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 창세기 1:8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둘째 날의 창조는 궁창 즉 공간이다. 공간은 물과 물 사이에서 생겨난다.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은 위의물과 아랫물 사이에 존재하는 불안정한 장소이다. 홍수 때 두 장소의 물이 합해진다. 하지만 그 공간은 하나님께서 붙드시므로 안전하다. 무엇이 우리를 안전하게 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가. 공간은 인간의 불안정한 인간의 실존을 표명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붙듬으로 안전하게 된다.


하나님은 공간을 하늘(샤마임)이라 부른다. 둘째 날의 창조는 섞인 것들을 분리함으로 공간을 만든다. 결국 이러한 이러한 공간은 다시 채워진다. 창조는 텅빔에서 채움으로 나아간다. 사람을 창조한 이후 이 땅에 번성하고 충만하라는 의미는 창조를 완성하라는 의미다.


9-13절 셋째날의 창조


  • 창세기 1:9 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 창세기 1:10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 창세기 1:11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 창세기 1:12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 창세기 1:13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

셋째 날의 창조는 출애굽에서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첫째 날은 빛을 만드시고, 둘째 날은 물을 갈라 공간을 만들고, 이젠 아랫물속에 있는 땅을 불러 내신다. 9절에 등장하는 뭍이란 표현은 히브리어로 '하바바샤브'로 말라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단어는 출애굽기 4:9과 요나 1:9에서 사용되어 사람들이 발을 딛고 있는 땅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앞에 있을 때 절망하는 이스라엘을 위해 물 속에서 '마른  땅'을 드러내신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다. 땅은 하나님의 구원의 상징이다. 에덴 동산은 물 속에서 불러낸 땅 위에 세워진다.


10절에서는 이 뭍을 '땅(에레츠)'로 부르신다. 에레츠는 지구라는 의미와 함께 이스라엘이 조상들로부터 물려 받은 기업으로 자주 번역되는 단어로 상속되어야할 재산의 개념이 강하다. 가나안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받은 기업(에레츠)이다. 이스라엘을 에레츠이스라엘라 부르는 이유이다. 땅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다. 그 선물을 망각하면 안 된다.


땅에게도 소명이 주어진다. 땅은 씨(제라) 맺는 식물을 내야 한다. 씨는 다음 세대를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끊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각기 종류대로는 분리와 나눔의 법칙에 속한다. 인간의 성장과 비교하면 창조의 순서와 매우 닮아있다. 처음엔 아무런 기능도 없는 줄기세포지만 분열하는 과정을 통해 각지 다른 세포로 성장한다.


14-19절 넷째날의 창조


  • 창세기 1:14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 창세기 1:15 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 창세기 1:16 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 창세기 1:17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을 비추게 하시며
  • 창세기 1:18 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시고 빛과 어둠을 나뉘게 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 창세기 1:19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넷째 날이니라

넷째 날부터는 이전의 삼일 창조와 대칭을 이루며 채움으로 이어간다. 넷째날은 첫날과 대응한다. 첫날 빛을 만드신 하나님은 넷째날 공창에 광명체를 만드심으로 빛을 발하게 하신다. 넷째날이 되서야 드디어 우리가 아는 공전과 자전을 통해 자연의 법칙이 완성된다. 그러므로 계절과 나로가 해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징조는 약간 모호다. 별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계신다는 뜻을 포함하지만 어떤 의인지 부정확하다.


'징조(오트 אוֹת)'라는 던어는 영어 sign과 다른 말이 아니다. 표시 또는 징조로 해석되는 평범한 단어다. 마태는 이 구절에서 종말의 징조를 가져왔느지 모를 일이다.


  • 마태복음 24장 30절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광명체들이 하는 일은 빛을 비추는 일이다. 빛을 비춤으로 땅의 만물은 형상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빛이 없으면 모든 것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16절의 주관한다는 말은 통치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만물을 궁창의 빛 아래 두신다. 인간은 하늘의 지배를 받지 않지만 영향을 받는다. 비가 내리면 비를 피할 수없고, 어둠이 찾아오면 막을 방도가 없다.


'궁창에 두었다'(14, 17절)는 장소적 의미로 그곳을 벗어나면 안된다는 말이다. 태양은 자신의 길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가야한다. 이것이 태양의 운명이다. 운명은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소명에 관련된 것이다. 넷째 날도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20-23절 다섯째날의 창조


  • 창세기 1:20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 창세기 1:21 하나님이 큰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 창세기 1:22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 창세기 1:23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

다섯 째날은 둘째 날과 대응한다. 둘째날은 물과 물 사이를 나누어 공간을 만들었다. 하지만 다섯 째날은 아래의 물과 물과 사이의 공간을 채우신다. 아랫물에는 물고기로 채우시고, 위의 궁창은 새들로 채우신다.


넷째 날에 번성이란 단어가 네 번이 사용되었다는 점은 더 계속하여 충만해져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아직 하나님의 창조는 완성되지 않았다. 남겨진 부분을 채워가는 것은 인간의 일이다. 우리는 여기서 광명체 등은 '비추라'는 소명의 의무가 주어지지만 생물에 대해서는 번성하여 충말하라는 다른 의미의 소명이 주어짐을 발견한다. 교회는 생명의 공동체이므로  생육하고 번성하여 충만해야할 의무를 갖는다. 교회 성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것이다.


24-31절 여섯째 날의 창조


  • 창세기 1:24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 창세기 1:25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여섯 째날은 동물과 사람의 창조이다. 여섯 날은 땅 위에 존재에 대해 이루어지며, 서로 닮아 있다. 먼저 동물은 식물처럼 땅에게 명령한다. 짐승도 땅에게 명령하여 종류대로 내라 하신다. 짐승과 가축, 등은 용어의 차이로 야생과 사람의 손에 길러질 가축을 대변한다. 이 또한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 창세기 1: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 창세기 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 창세기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 창세기 1:29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
  • 창세기 1:30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 창세기 1:31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마지막 사람의 창조는 특이하다. 지금까지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한 것이며, 이미 존재한 것으로부터 확장되어 창조된 것이다. 물론 사람도 그렇다. 하지만 창세기 기자는 의도적으로 인간은 하나님께 특별한 관심과 합의, 사랑의 결과로 창조 되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형상과 모양(첼렘과 테무스)은 이후 번역을 살펴도 크게 큰 차이를 느낄 수 없는 모호함이 존재한다. 아마도 비슷한 단어를 통해 강조 또는 언어유희를 사용했을 것이라 학자들을 추측한다. 핵심은 '우리의 모양과 우리의 형상' 즉 '우리'라는 표현에 방점에 찍힌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모양대로 창조되었다는 점이다. 이전의 피조물 설명과는 상당히 다른 표현이다.

사람의 창조 목적은 지금까지 지은 생물들을 다스리게 하는 것이다.(26절 하) 사람은 남자와 여자로 창조 된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명한다. 이것은 동물의 창조와 비슷하다. 하지만 사람은 '땅을 정복하라'는 명령과 ...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명령이 추가된다. 즉 생물의 지배권을 갖는다는 말이다.

또한 셋째 날 창조 된 채소가 사람들의 먹을거리가 된다. 육일째의 창조는 동물에게도 사람에게도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표현을 두 번 사용함으로 둘째 날에 빠진 '보시기에 좋았더라'를 추가함으로 7번을 채운다. 이렇게 육일의 창조는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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