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1장 개요
여호와 앞에서 범죄 한 이스라엘을 하나님은 그들은 암몬 자손에 팔아 버립니다. 이스라엘은 다시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갑니다. 하나님은 길르앗 사람 입다는 사사로 세우셔서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십니다. 하지만 전쟁에 나갈 때 서원한 딸을 하나님께 드려야 했습니다.
사사기의 전체 구조 상에서 기드온이 사사로서의 최고의 정점을 찍었다면 입다는 두 번째 봉우리와 같습니다. 하지만 입다는 기드온과 현저한 차이가 존재합니다. 그것은 입다는 출신이 불분명하고, 에브라임 지파를 엄청나게 학살했다는 것입니다. 기드온이 숙곳 사람들을 학살한 점을 닮아 있으면서도 그 정도가 수백 배에 이릅니다. 이러한 점을 볼 때 기드온 사사라는 높은 봉우리와 같아 앞면은 밝은 빛이 비추지만 뒷면은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기드온 이후 사사들은 기드온의 그림자를 상당부분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점점 깊은 침체로 빠져들어갑니다.
사사 입다는 이후에 입산과 압돈이 나오기는 하지만 희미한 존재이고, 곧 삼손으로 넘어갑니다. 삼손은 엄밀히 사사로서의 개념이 없습니다. 그는 홀로 싸웠고, 누군가와 연합하여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표면상의 현상들은 입바가 사사기 안에서 마지막 사사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입다 안에서는 이후 이스라엘과 단지파와의 내전이 일어날 징후들이 전조 증상처럼 드리워져 있습니다. 전쟁의 달인? 이기는 하지만 인격적으로 전해 준비다 되지 않은 사사였습니다. 이제 사사기 11장 안으로 들어가 봅시다.
사사기 11장 구조
- 1-3절 쫓겨나는 입다
- 4-11절 입다와 거래하는 길르앗 장로들
- 12-28절 암몬 왕과 타협하는 입다
- 29-33절 전쟁에서 승리하는 입다
- 34-40절 입다의 서원과 딸의 눈물
사사기 11장 강해
기생이 낳은 아들 입다
입다의 아버지는 길르앗으로 나옵니다.(1절) 지역 이름과 동일한 것을 볼 때는 그는 길르앗의 이름을 가져올 만큼의 큰 가문의 후손으로 보입니다. 조선시대로 치면 양반 중의 양반이며, 고관대작의 서생 출신 정도입니다. 출신 자체가 문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러한 출생은 길르앗이 정식적인 아내가 임신하면서 입다가 쫓겨났다는데 있습니다. 이것은 하갈과 그의 아들 이스마엘과 닮아 있습니다.
결국 본처의 아들들이 자라자 그들은 입다를 집에서 쫓아냅니다. 그들은 입다를 향해 '다른 여인의 자식'(2절)이라 말하며 그는 쫓아 냅니다. 결국 입다는 그들에게 쫓겨남을 당하고 돕(Tob) 땅에 거주하며 잡류들과 함께 지내게 됩니다.
*아버지의 집
- 성경에서 아버지의 집은 기업을 물려 받는 곳으로 소개됩니다. 이것은 명예와 권력 등을 물려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아버지의 기업을 잇지 못'(3절)한다는 말은 이러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를 청하다
암몬 사람들이 길르앗을 공격해 옵니다. 같이 붙어 있는 암몬은 자주 이스라엘을 괴롭혔습니다. 요단강 동편에 있던 길르앗 지방은 당연히 본토보다 더 먼저 침략을 당했습니다. 이번에도 이전과 달았습니다. 전면적으로 나와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정도였습니다. 벌벌 떨떨 그들은 결국 다시 돕(Tob) 땅에 있던 입다를 찾아가 도움을 구합니다.
길르앗 장로들은 입다에게 '와서 우리의 장관이 되라'(6절) 말합니다. 왕이라는 말을 돌려서 말한 것입니다. 하지만 입다는 불안합니다. 7절에 의하면 아버지의 쫓아낸 장본인들이 길르앗 장로들이었습니다. 아마도 본처의 아들들이 자신들이 힘이 없자 장로자들의 힘을 빌러 입다를 추방한 것으로 보입니다. 모든 사정을 알고 있던 입다는 당연히 그들의 말에 신용이 가지 않고, 굉장히 기분 나빠합니다. 쫓아낼 때는 언제고 이제 자신들이 어려움에 처하니 도움을 달라하다니.
몇 절 되지 않은 구절이지만 장로들과 입다는 계속해서 자신들의 요구를 서로에게 관철 시키고 있습니다. 6절에서 '장관이 되라' 말하고, '머리가 되리라'(8절), 말합니다. 입다도 장로들에게 '어찌하여'(7절), '내가 과연 너희의 머리가 되겠느냐'(9절) 결국 11절에서 입다는 길르앗 사람들의 '머리와 장관'이 됩니다.
이 부분을 유심히 살펴보면, 이스라엘이 기드온에게 했던 말입니다. 하지만 기드온은 거절합니다. 하지만 기드온은 왕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아들에게 '우리의 아버지는 왕이다'라는 이름을 지어준 것입니다. 아비멜렉은 기드온의 숨은 욕망을 그대로 드러내 세겜 사람들과 연합하여 기드온의 70 아들을 모두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됩니다. 하지만 그는 이스라엘의 왕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이제 입다가 등장하면서 진짜 왕은 아니지만 왕에 가까운 존재가 됩니다. 길르앗 장로들이 머리와 장관이 되어 달라 말했고, 본인도 머리가 되겠다고 말합니다.
사사기의 핵심은 '왕'입니다. 하나님이 왕이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음으로 왕이 되기를 거부했습니다. 하나님은 사사들을 통하여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입다 스토리 안에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교제하는 내용이 없다는 것으로 기드온과 확연한 차이가 납니다. 또한 잘못된 서원은 그의 딸을 궁지로 몰아 넣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납니다.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서원은 후에 사울의 어리석은 서원과 너무나 닮아 있습니다. 지식이 없는 믿음은 어리석은 충동에 불과하다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입다와 암몬 왕과의 협상
길르앗에 쳐들어 온 이유
입다가 여러부분에서 부족하기는 하지만 사사는 사사다라는 말이 나오는 부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입다를 사용하셨는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입다는 먼저 암몬 왕에게 사자를 보내 왜 쳐들어 왔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암몬 왕은 너희(이스라엘)가 우리 땅을 쳐들어 왔기 때문이라 말합니다. 그러면서 출애굽 당시의 상황들을 이야기하면 그곳이 본래 자신들의 땅이었다고 말합니다.(13절)
첫 번째 반박, 이곳은 너희들의 땅이 아니다.
15절에서 22절까지에서 입다는 왜 이스라엘이 요단 동편 땅에 머물게 되었는가를 정확히 말해 줍니다. 하나님이 모압을 공격하지 못하게 한 것(17절)과 그 지역들이 아모리 왕 시혼의 것이었음을 말합니다.(21절) 즉 이 땅은 암몬 왕이 주장하는 것처럼 그들의 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입다의 이러한 주장은 그가 살아가고 있는 땅에 대한 이해, 하나님께서 이 땅을 차지하기까지의 과정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두 번째 반박, 여호와와 그모스가 준 땅?
입다의 주장은 명약관화합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여 얻은 땅이다. 그래서 얻은 것이다.(21-23절) 그렇다면 너희는 너희가 섬기는 그모스가 너희에게 준 땅이라면 너희가 얻을 것이 아니냐?(24절) 신들이 준 땅으로 네가 와서 달라고 하면 안 된다.
세 번째 반박, 네가 십볼의 아들 발락보다 나으냐?
세 번째 반박으로 출애굽 당시에 십볼의 아들 발락이 이스라엘과 싸우지 않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도 감히 무서워서 싸우지 않는데 니가 뭔데 우리와 싸우려 하느냐는 것입니다.(25절) 니가 발락보다 낫다고 우기는 것이냐? 따져 묻는 것이죠.
네 번째 반박, 왜 지금까지는 빼앗지 않았느냐?
네 번째는 우리가 길르앗에 거한지 삼백 년이 넘었다. 여기가 정말 너희 땅이었다면 왜 지금까지는 단 한 번도 뺏을 생각을 하지 않았느냐? 그러므로 네가 이곳에 쳐들어와 땅을 달라고 하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다섯 번째 반박, 네게 악을 행하지 않았다.
27절에서 입다는 마지막으로 '내가 네게 죄를 짓지 아니하였거늘' 왜 쳐들어 왔다고 묻습니다. 즉 이곳에 쳐들어 올 이유가 단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입다의 주장을 보면 그가 얼마나 논리적이고 명석한가를 보여줍니다. 그는 단지 싸움을 잘하는 무식한 싸움꾼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바른 믿음과 뛰어난 머리를 가진 사사였습니다. 만약 입다가 감정적인 부분을 절제 했다면 기드온을 뛰어 넘는 위대한 사사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의 명석함은 다음 장에 나오는 에브라임 지파는 학살하는 데에도 사용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결국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옵니다.
입다의 서원과 딸
입다는 암몬과의 전쟁을 시작하면서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서원을 하나님께 하게 됩니다. 30-31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 주시면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
입다의 서원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학자들은 정말 제물로 바쳤다 아니다 논란이 많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인 맥락을 보면 그가 얼마나 어리석고 충동적인가를 잘 보여줍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사람을 제물로 드리지 않습니다. 그런 제물은 받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일부의 학자들은 그냥 성전에서 봉사하는 여자가 되게 했다는 식으로 말합니다. 하지만 '번제물'(31절)이란 표현은 제단에 드리는 제물을 말합니다.
결국 입다가 전쟁에서 승리한 후 돌아왔을 때 무남독녀인 그 의 딸이 소고 치며 춤을 추며 아버지를 반깁니다.(34절) 하나님의 뜻도 아니고, 자신의 즉흥적 생각으로 서원하는 어리석음 범하고 있습니다.
입다의 잘못된 서원을 통해 진정한 왕의 필요성을 대두하게 됩니다. 사사기를 왕의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왜 왕이 필요한가를 설명합니다. 그래서 사사기는 사무엘성를 보조하기 위한 문서로 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