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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10장 주해와 강해

기름부음 받은 왕은 말씀 아래 서야 합니다

사무엘상 10장은 사울이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고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공개적인 인정을 받는 과정을 기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징조를 통해 사울의 부르심을 확증하시고 성령으로 능력을 주시며 백성 앞에서 그를 선택하십니다. 그러나 사울은 왕이 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할 종이었습니다. 이 본문을 통해 직분과 은사는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받은 은혜에 지속적인 순종으로 응답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르신 사람에게 말씀과 징조를 주십니다(삼상 10:1-8)

사무엘상 9장의 마지막에서 사무엘은 사울에게 종을 먼저 보내고 자신은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으라고 했습니다. 그 목적은 사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사울은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야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자신의 뜻대로 백성을 다스리는 절대군주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따라 하나님의 백성을 섬겨야 하는 언약적 통치자였습니다. 왕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먼저이며, 왕의 권위보다 말씀의 권위가 높습니다.

사무엘은 기름병을 가져다가 사울의 머리에 기름을 붓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네게 기름을 부으사 그의 기업의 지도자로 삼지 아니하셨느냐”라고 말했습니다.

기름을 붓는 행위는 어떤 사람이나 물건을 하나님의 목적을 위하여 특별히 구별하는 의식이었습니다. 구약에서는 제사장과 왕이 직분을 맡을 때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기름부음 자체가 사람에게 마법적인 능력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선택하고 직무를 맡기셨음을 나타내는 거룩한 표지였습니다.

‘기름을 붓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샤흐(מָשַׁח)에서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뜻하는 마시아흐(מָשִׁיחַ), 곧 메시아라는 말이 나옵니다. 사울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첫 번째 인물이 됩니다.

그러나 사울이 메시아라는 명칭과 연결된다고 해서 궁극적인 구원자라는 뜻은 아닙니다. 구약의 왕들은 하나님의 통치를 나타내는 기름부음 받은 종이었지만 모두 죄와 한계를 가진 인간이었습니다. 그들의 불완전한 통치는 완전한 기름부음 받은 왕을 기다리게 합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입을 맞춘 것은 개인적인 친밀함만이 아니라 존중과 충성, 직무의 인정을 나타내는 행동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무엘은 자신이 오랫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다는 이유로 사울을 경쟁자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임을 인정하고 왕의 사명을 받아들이도록 격려했습니다.

영적 지도자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데 집착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다음 사람을 축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직분을 자신의 소유로 생각하면 후계자를 경쟁자로 여기지만 하나님의 일로 생각하면 기쁨으로 길을 열어 줄 수 있습니다.

사무엘은 사울을 여호와의 “기업의 지도자”라고 불렀습니다. ‘지도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기드(נָגִיד)는 앞에 선 사람, 통치자 또는 지도자를 뜻합니다. 사울은 이스라엘의 절대적인 소유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맡아 돌보는 지도자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사울의 기업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업입니다. 왕은 백성을 자기 목적을 위해 이용할 권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소유인 백성을 말씀과 공의로 보호하도록 위임받은 청지기입니다.

교회도 목회자나 장로의 소유가 아닙니다.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자기 피로 사신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교회의 지도자는 사람들을 자신의 영향력 아래 묶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먹이고 보호하는 종입니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앞으로 일어날 세 가지 징조를 알려 주었습니다. 이 징조들은 사울이 받은 말씀이 실제로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며 하나님께서 그를 왕으로 부르셨음을 확증하는 역할을 합니다.

첫 번째 징조는 베냐민 경계의 셀사에 있는 라헬의 묘실 곁에서 두 사람을 만나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사울에게 찾으러 갔던 암나귀들이 이미 발견되었고, 그의 아버지가 암나귀에 대한 염려보다 아들을 걱정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할 것입니다.

사울을 길로 나오게 했던 암나귀 문제는 이미 해결되었습니다. 사울은 암나귀를 찾으러 떠났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과정에서 사무엘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이제 그가 처음 맡았던 일에 대한 염려를 내려놓고 새로운 사명을 향해 나아가도록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왕으로 부르시면서 그의 가정 문제를 무시하지 않으셨습니다. 암나귀가 발견되었다는 사실과 아버지가 그를 걱정한다는 소식을 알려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큰 역사만 다스리는 분이 아니라 한 아버지의 염려와 한 가정의 사소해 보이는 문제도 돌보십니다.

라헬의 묘실은 베냐민 지파의 정체성과 연결되는 장소였습니다. 라헬은 베냐민을 낳다가 죽었고 아이의 이름을 베노니, 곧 ‘내 슬픔의 아들’이라고 지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의 이름을 베냐민, 곧 ‘오른손의 아들’로 바꾸었습니다.

사울이 라헬의 묘실 곁을 지나게 된 것은 베냐민 지파의 역사와 자신의 뿌리를 떠올리게 했을 수 있습니다. 다만 본문이 사울의 내면을 직접 설명하지 않으므로 그가 그 장소에서 무엇을 생각했는지는 단정할 수 없습니다.

두 번째 징조는 다볼 상수리나무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을 뵈러 벧엘로 올라가는 세 사람을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한 사람은 염소 새끼 세 마리를 이끌고, 다른 사람은 떡 세 덩이를 가지고, 또 다른 사람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지고 올 것입니다.

그들은 사울에게 문안하고 떡 두 덩이를 줄 것입니다. 사울은 그 떡을 받을 것입니다. 사무엘이 말한 사람들의 수와 소유물, 그들이 건넬 떡의 수까지 정확하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는 우연한 추측으로 보기 어려운 구체적인 징조였습니다.

벧엘은 야곱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장소이며 이스라엘의 신앙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 곳입니다. 세 사람은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제물을 가지고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사울에게 떡을 나누어 주는 것은 왕으로 부름받은 그에게 필요한 양식을 공급하는 하나님의 섭리로 볼 수 있습니다.

사울은 자신의 힘으로 모든 것을 마련해야 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길에서 필요한 것을 준비하고 공급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하나님의 공급이 따릅니다. 그러나 이 원리를 모든 개인적인 욕망이 자동으로 충족된다는 약속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을 이루는 데 필요한 것을 자신의 지혜에 따라 주십니다.

세 번째 징조는 사울이 하나님의 산에 이르렀을 때 일어날 것입니다. 그곳에는 블레셋 사람들의 영문 또는 주둔지가 있었습니다. 해당 히브리어 표현은 블레셋의 수비대나 관리가 주둔한 곳으로 이해될 수 있으며, 구체적인 형태에는 견해가 나뉩니다.

이스라엘 왕으로 부름받은 사울이 첫 번째로 마주하는 현실 가운데 하나는 이스라엘 땅에 자리한 블레셋의 세력이었습니다. 사울은 바로 그 블레셋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할 지도자로 부름받았습니다. 왕의 사명은 개인적인 명예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압제받는 백성을 보호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울은 성읍으로 들어갈 때 산당에서 내려오는 선지자의 무리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들 앞에는 비파와 소고와 저와 수금이 있으며 그들은 예언하고 있을 것입니다. 음악과 함께 선지자적 찬양이나 황홀한 예언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선지자의 무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인 사역을 함께 수행하거나 훈련받던 공동체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후대의 정식 선지자 학교와 정확히 같은 조직이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본문은 그들이 함께 음악을 연주하며 예언했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그때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 크게 임할 것입니다. ‘크게 임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찰라흐(צָלַח)는 어떤 사람 위에 강력하게 임하여 특정한 사명을 수행하도록 능력을 주는 것을 나타냅니다. 사사기에서는 하나님의 영이 사사들에게 임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게 하셨습니다.

사울은 자신의 체격이나 가문의 힘만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없었습니다. 블레셋은 철기 기술과 조직적인 군사력을 가진 강한 민족이었습니다. 사울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적인 능력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영의 도우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인간의 재능과 조건만으로 수행할 수 없습니다. 학식과 경험, 지도력과 언변은 유익할 수 있지만 성령께서 말씀을 통해 역사하지 않으시면 사람의 영혼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맡은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지 말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여호와의 영이 임하면 사울은 선지자들과 함께 예언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 표현은 사울의 외모나 인격 전체가 즉시 완전해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왕의 직무를 감당하도록 하나님께서 새로운 능력과 상태를 주신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는 표현을 신약에서 말하는 중생과 정확히 동일한 것으로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구약에서 성령의 임재는 특정한 직무와 사명을 수행하도록 주시는 능력과 관련될 때가 많습니다. 사울이 성령의 능력을 받았다는 사실이 그의 개인적인 구원과 끝까지의 순종을 자동으로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왕의 직무에 적합하도록 변화시키고 필요한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그 은혜에 지속적인 믿음과 순종으로 응답해야 했습니다. 직무를 위한 성령의 은사와 거룩한 인격의 성숙은 구분되지만 결코 분리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날에도 뛰어난 은사와 신앙적인 인격을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설교를 잘하고 사람을 이끌며 특별한 능력을 보인다고 해서 그 사람의 모든 삶이 자동으로 성숙한 것은 아닙니다. 은사가 크면 그 은사를 말씀에 따라 사용해야 할 책임도 커집니다.

사무엘은 이 징조들이 사울에게 임하면 “너는 기회를 따라 행하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하시느니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사울이 자기 욕망대로 무엇이든 행해도 된다는 허락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므로 주어진 상황에서 왕의 사명에 맞게 담대히 행동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순종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므로 사울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며 책임 있게 행동해야 했습니다. 은혜는 사람을 수동적으로 만들지 않고 믿음의 행동으로 이끕니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자신보다 먼저 길갈로 내려가라고 명령했습니다. 자신도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기 위해 내려갈 것이며, 사울은 사무엘이 도착하여 해야 할 일을 알려 줄 때까지 칠 일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이 명령은 사울의 왕권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어도 제사와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마음대로 다룰 수 없었습니다. 사울은 사무엘을 기다리고 하나님께서 알려 주시는 말씀에 순종해야 했습니다.

길갈에서 칠 일을 기다리라는 명령은 이후 사무엘상 13장에서 결정적인 시험이 됩니다. 사울은 블레셋의 위협과 백성이 흩어지는 상황을 보고 사무엘을 끝까지 기다리지 못한 채 자신이 번제를 드립니다. 사무엘상 10장에서 이미 분명한 명령을 받았으므로 뒤의 불순종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하나님께서는 큰 사명을 맡기시기 전에 기다림과 순종을 가르치십니다. 사람은 능력을 발휘하는 일보다 기다리는 일을 더 어려워합니다. 눈앞의 상황이 급해 보이면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판단을 앞세우기 쉽습니다.

믿음은 행동할 때를 아는 것뿐 아니라 기다릴 때를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는 담대히 움직이고 기다리라고 하실 때는 조급함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사명의 열심도 말씀의 경계를 넘어가면 불순종이 될 수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았지만 지속적인 순종이 필요했습니다(삼상 10:9-16)

사울이 사무엘을 떠나려고 몸을 돌이킬 때 하나님께서 새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이 말한 모든 징조가 그날 다 이루어졌습니다. 사울의 부르심은 그의 상상이나 사무엘의 개인적인 계획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구체적인 사건으로 확증하셨습니다.

‘새 마음’이라는 표현은 문자적으로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다른 마음”을 주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왕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사울의 내면과 능력에 변화를 주셨습니다. 이전에는 평범한 베냐민 사람으로 아버지의 암나귀를 찾던 사울이 이제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준비되기 시작했습니다.

사울이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바꾼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새로운 마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데 필요한 변화도 하나님의 은혜에서 시작됩니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와 훈련만으로 하나님의 일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새 마음’을 신약에서 말하는 구원의 중생과 완전히 같은 개념으로 단정하는 것은 신중해야 합니다. 이후의 사울은 반복적으로 불순종하고 하나님의 영이 떠나는 비극을 경험합니다. 여기서는 왕의 직무를 위한 특별한 변화와 능력 부여가 중심입니다.

신약의 중생은 성령께서 죄로 죽은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하시고 믿음과 회개로 이끄시는 구원 사건입니다. 반면 사울에게 주어진 다른 마음과 성령의 임재는 일차적으로 왕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주어진 직무적 은혜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은사와 직분을 주셨다고 그 사람의 모든 삶을 자동으로 승인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직분을 맡은 사람도 날마다 말씀 앞에서 자신을 살피고 회개해야 합니다. 과거에 받은 은혜와 체험이 현재의 불순종을 가려 주지 못합니다.

사울과 종이 하나님의 산에 이를 때 선지자의 무리가 그들을 영접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사울에게 크게 임하자 그도 그들 가운데서 예언했습니다. 사무엘이 말한 세 번째 징조가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사울을 이전부터 알던 사람들은 그가 선지자들과 함께 예언하는 모습을 보고 서로 놀랐습니다. “기스의 아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 사울도 선지자들 중에 있느냐”라고 말했습니다.

사울은 왕이 될 만한 외모와 체격을 갖추고 있었지만 선지자적인 인물로 알려진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그가 선지자의 무리 가운데서 예언하자 사람들은 예상하지 못한 변화에 놀랐습니다.

그곳의 한 사람이 “그들의 아버지가 누구냐”라고 물었습니다. 이 표현의 정확한 의도에는 견해가 나뉠 수 있습니다. 선지자적 은사는 인간적인 혈통이나 가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는 말로 이해되기도 합니다. 선지자 무리의 출신을 따지는 것보다 그들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영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사울도 선지자들 중에 있느냐”라는 말은 이후 이스라엘의 속담이 되었습니다. 평소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이 특별한 행동을 할 때 사용되는 표현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사울에게 일어난 변화가 사람들에게 큰 인상을 남겼음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사울이 선지자들과 함께 예언했다고 해서 계속 선지자의 직무를 수행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일시적으로 예언 활동에 참여한 것과 하나님의 말씀을 지속해서 받아 전하는 정식 선지자로 세워지는 것은 구분해야 합니다.

사울에게 성령이 임한 사건은 하나님께서 그의 왕권을 위해 실제적인 능력을 주셨음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르시기만 하고 아무 도움도 주지 않는 분이 아닙니다. 맡기신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필요한 은혜와 은사를 주십니다.

그럼에도 은사를 받았다는 사실이 끝까지의 충성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사울의 생애는 강력한 영적 체험과 직분의 은혜가 말씀에 대한 지속적인 순종을 대신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한때 성령의 능력을 경험하고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주었어도 이후에 교만과 불순종으로 무너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특별한 체험을 신앙의 최종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눈물을 흘리고 강한 감동을 받으며 놀라운 은사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신앙은 그 체험 이후 하나님의 말씀을 꾸준히 따르는 삶으로 확인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열매로 그들을 알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은사가 얼마나 화려한가보다 그 사람의 삶에 사랑과 거룩함, 겸손과 순종의 열매가 있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참된 은사는 그리스도의 몸을 섬기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 사용되어야 합니다.

사울은 예언하기를 마친 후 산당으로 갔습니다. 그의 숙부가 사울과 종을 만나 어디에 갔었는지 물었습니다. 사울은 암나귀들을 찾다가 찾지 못해 사무엘에게 갔다고 대답했습니다.

숙부는 사무엘이 무슨 말을 했는지 알려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사울은 암나귀들이 이미 발견되었다는 말을 전했지만, 사무엘이 왕의 일에 관하여 말한 것은 알리지 않았습니다.

사울이 왕에 관한 일을 숨긴 이유를 본문은 설명하지 않습니다. 겸손하여 말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으며, 두려움이나 당혹감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의 동기를 확정하여 그의 성품을 평가하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사울이 왕권을 자랑하며 사람들에게 떠벌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공개적으로 드러나기 전까지 자신에게 주어진 비밀을 간직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께 받은 일을 즉시 모든 사람에게 말하기보다 때를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침묵 자체가 언제나 겸손은 아닙니다. 두려움이나 책임 회피로 말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침묵과 말 모두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해야 할 때 침묵하는 것도 잘못이고, 기다려야 할 때 앞서 말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사울은 개인적으로 기름부음을 받고 여러 징조를 경험했지만 아직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공개적인 인정을 받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개인적인 부르심과 공동체의 공적인 확인을 함께 이루실 것입니다.

개인적인 확신만으로 교회의 직분을 주장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특별한 사명을 주셨다고 느끼는 것만으로 공동체 위에 권위를 행사할 수 없습니다. 말씀에 따른 자격과 교회의 분별, 공적인 부르심이 함께 확인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에게 개인적으로 말씀하시고 기름을 부으신 뒤,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도 제비를 통해 그를 선택하실 것입니다. 개인의 소명과 공동체의 인정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연결됩니다.

하나님께서 왕을 세우셨지만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습니다(삼상 10:17-27)

사무엘은 백성을 미스바로 불러 여호와 앞에 모았습니다. 미스바는 이스라엘이 우상을 버리고 죄를 고백했던 장소입니다. 블레셋의 공격 앞에서 사무엘이 중보하고 하나님께서 큰 우레로 승리를 주셨던 곳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돌아온 장소에서 이제 왕을 세우는 중요한 일이 이루어집니다. 왕의 선택은 단순한 정치 행사가 아니라 여호와 앞에서 진행되는 언약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사무엘은 왕을 뽑기 전에 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원을 먼저 선포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시고 애굽 사람의 손과 그들을 압제하던 모든 나라의 손에서 건져 내셨다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과 구원자는 이미 하나님이셨습니다. 바로의 권세를 꺾고 노예였던 백성을 해방하신 분은 인간 왕이 아니라 여호와였습니다. 사사 시대에도 하나님께서 구원자를 보내 대적의 손에서 건지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모든 재난과 고통에서 자신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버리고 왕을 세워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사무엘은 왕을 세우는 자리에서도 백성의 요구에 담긴 죄를 숨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의 요구를 허락하셨지만 그것이 자신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은 행위였다는 평가를 철회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허락이 인간의 동기를 자동으로 의롭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원하는 일이 이루어졌다는 사실만으로 그것이 모두 하나님의 기쁨이었고 자신의 동기도 옳았다고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불완전한 선택을 허락하시고 그것을 통해 교훈을 얻게 하실 수 있습니다.

사무엘은 모든 지파를 여호와 앞에 나아오게 했습니다. 제비를 뽑자 베냐민 지파가 뽑혔고, 베냐민 지파의 가족들을 나아오게 하자 마드리의 가족이 뽑혔습니다. 마침내 기스의 아들 사울이 뽑혔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제비뽑기는 사람의 의도를 배제하고 하나님의 뜻을 묻는 방법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제비의 결과를 우연으로만 보지 않고 하나님의 주권적인 결정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사울을 개인적으로 선택하셨지만 제비를 통해 그 선택을 백성 앞에서 공개적으로 확증하셨습니다.

사울이 뽑혔지만 사람들이 그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짐 보따리들 사이에 숨어 있었습니다. 사울이 숨은 이유도 본문은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겸손과 두려움, 부담과 망설임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가 짐 사이에 숨은 일을 지나치게 아름다운 겸손으로 이상화할 필요도 없고, 이 장면만으로 비겁한 사람이라고 단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왕이라는 엄청난 책임 앞에서 두려움과 부담을 느꼈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여호와께 그 사람이 그곳에 왔는지를 물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사울이 짐 보따리들 사이에 숨어 있다고 알려 주셨습니다. 사울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숨길 수 있었지만 하나님께 숨을 수는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위치뿐 아니라 마음과 두려움도 아십니다. 사명을 피하기 위해 숨는다고 하나님의 부르심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모세는 말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었고 요나는 다시스로 도망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부르신 사람을 찾아내셨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일을 하나님의 특별한 소명이라고 여기고 무조건 나서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기록된 말씀에 어긋나지 않아야 하며 교회 공동체의 분별과 확인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이 달려가 사울을 데려왔습니다. 그가 백성 가운데 서자 다른 사람보다 어깨 위만큼 컸습니다. 사무엘은 “너희는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보느냐 모든 백성 중에 짝할 이가 없느니라”고 말했습니다.

사울은 백성의 눈에 왕다운 모습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큰 키와 준수한 외모는 군사 지도자를 원하는 백성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을 것입니다. 백성은 “왕이여 만세하소서”라고 외쳤습니다.

개역개정의 “왕이여 만세하소서”는 문자적으로 왕이 오래 살기를 바란다는 환호입니다. 백성은 자신들이 바라던 왕을 보며 기뻐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강한 지도자를 갖게 되었다는 기대가 그들 가운데 가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큰 키가 영적인 충성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사울은 사람들의 기대에 어울리는 외모를 가졌지만 왕권의 성공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에 달려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외적 조건은 유익할 수 있지만 중심의 신실함을 대신하지 못합니다.

사무엘은 왕의 제도를 백성에게 말하고 책에 기록하여 여호와 앞에 두었습니다. 사무엘상 8장에서 설명한 왕의 제도는 인간 왕권이 백성에게서 무엇을 빼앗을 수 있는지를 경고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여기서는 왕과 백성이 지켜야 할 통치의 원리와 권리 및 책임을 기록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왕의 권한은 무제한적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과 언약의 질서 안에서 행사되어야 했습니다. 사울은 왕이 되었지만 율법 위에 있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왕은 여호와이시며 인간 왕은 그분의 말씀 아래 놓인 종이었습니다.

사무엘이 왕의 제도를 책에 기록하여 여호와 앞에 두었다는 것은 왕권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규정되고 평가받아야 함을 보여 줍니다. 왕의 행동이 옳은지는 왕 자신의 뜻이나 대중의 인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오늘날 국가의 권력과 교회의 지도력도 절대적일 수 없습니다. 모든 권위는 하나님께로부터 위임받은 것이며 정의와 선을 위해 사용되어야 합니다. 지도자가 자신의 권력을 사적인 욕망과 지배를 위해 사용한다면 하나님께 책임을 져야 합니다.

사무엘은 모든 백성을 각자의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사울도 기브아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왕으로 공개적인 선출을 받았지만 당장 왕궁을 세우거나 군대를 조직하지 않았습니다. 왕정의 실제적인 출범은 이후의 사건을 통해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나님께 마음을 감동받은 유력한 사람들은 사울과 함께 갔습니다. ‘마음을 감동하셨다’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만지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만 준비하신 것이 아니라 그를 도울 사람들의 마음도 움직이셨습니다.

지도자는 혼자 모든 일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동역자를 붙여 주시고 공동체의 마음을 움직여 사명을 함께 감당하게 하십니다. 좋은 동역자는 지도자의 개인적인 야망을 돕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함께 이루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어떤 불량배들은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고 말하며 사울을 멸시하고 예물을 바치지 않았습니다. ‘불량배’에 해당하는 표현은 베네 벨리야알(בְּנֵי בְלִיַּעַל), 곧 벨리야알의 아들들이라는 말입니다. 무가치하고 악하며 공동체의 질서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선택하셨지만 모든 사람이 그 선택을 받아들인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게 드러나도 사람의 교만과 불신은 그것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참된 권위는 언제나 모든 사람의 즉각적인 환영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사울이 자신들을 구원할 수 있겠느냐고 조롱했습니다. 사울의 왕권과 구원 능력은 아직 역사 속에서 증명되지 않았습니다. 다음 장에서 암몬 사람 나하스가 야베스 길르앗을 위협할 때 사울은 성령의 능력으로 백성을 구원하며 왕으로서의 지도력을 보여 줄 것입니다.

사울은 자신을 멸시하는 말을 듣고도 잠잠했습니다. 개역개정은 “그는 잠잠하였더라”고 번역합니다. 히브리어 표현에는 듣지 못한 사람처럼 행동했다는 의미가 담겨 있을 수 있습니다. 즉각 분노하거나 왕의 권력을 이용해 보복하지 않았습니다.

사울의 이 침묵은 왕정 초기의 절제된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는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반대자들을 처벌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정당성을 말로 강요하기보다 이후의 행동으로 증명할 기회를 기다렸습니다.

지도자는 모든 비판과 모욕에 즉시 반응할 필요가 없습니다. 잘못된 비난은 진실한 삶과 충실한 사역으로 답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자신의 명예를 지키는 데 모든 힘을 사용하면 맡겨진 사명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침묵이 언제나 정답은 아닙니다. 약한 사람을 보호하고 진리를 지켜야 할 때에는 분명하게 말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분노와 자존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말하고 침묵하는 것입니다.

사울의 기름부음과 공개적인 선출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이 장의 마지막에는 그를 따르는 사람과 멸시하는 사람이 함께 나타납니다. 왕정의 시작부터 갈등과 긴장이 존재합니다.

사울은 하나님께서 주신 징조와 성령의 능력, 백성의 인정과 동역자들을 받았습니다. 왕의 사명을 감당하는 데 필요한 많은 은혜가 주어졌습니다. 이후 그의 실패를 하나님의 은혜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돌릴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받은 은혜와 말씀에 그가 어떻게 응답하느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에게 왕권을 주셨지만 왕권의 성공을 자동으로 보장하지는 않으셨습니다. 길갈에서 기다리라는 명령을 포함하여 분명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사울이 말씀을 믿고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것이지만 자기 판단을 말씀보다 앞세우면 왕권은 흔들릴 것입니다.

사울은 이스라엘을 블레셋의 손에서 구원할 기름부음 받은 왕이었지만 궁극적인 메시아는 아니었습니다. 그의 제한된 왕권과 이후의 실패는 더 완전한 기름부음 받은 왕을 기다리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참된 메시아이십니다. 사울에게 성령이 임하여 일시적인 왕의 능력을 주셨다면 성령은 그리스도 위에 충만하게 머무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모든 말씀에 완전히 순종하셨고 죽기까지 충성하셨습니다.

사울은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큰 외모로 주목받았지만 예수님은 외적인 위엄으로 사람을 압도하여 왕이 되지 않으셨습니다. 종의 형체를 입고 낮아지셨으며 십자가를 통하여 왕권을 드러내셨습니다.

사울은 자신을 멸시하는 사람들 앞에서 잠시 침묵했지만 예수님은 모욕과 거짓 고발을 받으면서도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능력을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원수를 구원하고 죄인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드셨습니다.

사울은 암몬과 블레셋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일시적으로 구원할 왕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와 사망과 마귀의 권세에서 자기 백성을 영원히 구원하십니다. 모든 인간 지도자는 실패할 수 있지만 그리스도의 통치는 의롭고 영원합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무엘상 10장은 하나님께서 사울을 부르시고 필요한 징조와 능력, 동역자까지 주셨음을 보여 줍니다. 사울의 왕권은 그의 외모나 야망에서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기름을 부으시며 성령으로 능력을 주신 은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은혜와 은사는 지속적인 순종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사울은 큰 체험을 하고 새 마음을 받았지만 길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직분이 높고 은사가 뛰어나도 말씀보다 자신의 판단을 앞세우면 무너질 수 있습니다.

우리도 과거의 신앙 체험과 직분을 의지하지 말고 오늘 주시는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은사를 자랑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몸을 섬기는 데 사용하십시오. 높은 자리를 자신의 소유로 여기지 말고 하나님의 백성을 돌보라고 맡기신 책임으로 받아들이십시오.

우리의 궁극적인 소망은 불완전한 인간 왕에게 있지 않습니다.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고 아버지의 뜻에 끝까지 순종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참된 왕이신 그리스도를 의지하며, 말씀 아래에서 기다리고 순종하며, 받은 은혜에 충성으로 응답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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