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둘째 주일 낮 예배 대표기도문

7월 2째주 대표기도문

하나님 아버지, 만왕의 왕이시며 만유의 주가 되시는 주님의 이름을 높여 찬양합니다. 창조로 하늘을 펴시고 섭리로 계절을 돌리시며, 여름의 뜨거운 볕과 장맛비의 물길까지도 주의 손에 붙들려 있음을 고백하오니, 2026년 7월 둘째 주일(7월 12일) 낮 예배로 저희를 불러 모아 주심이 은혜요 복임을 감사드립니다. 세상의 분주함 가운데서도 주의 날을 거룩히 구별하게 하시고,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게 하시니, 오늘 드리는 예배가 사람을 높이는 소리가 아니라 그리스도만 높이는 하늘의 합창이 되게 하옵소서.

자비로우신 주님, 그러나 저희는 지난 한 주간도 말씀 앞에 정직하지 못하였나이다. 입술로는 주를 사랑한다 하면서 마음은 세상의 염려로 가득 차 있었고, 기도해야 할 시간에 게으름과 핑계로 등을 돌렸으며, 이웃을 향한 사랑보다 자기 유익을 먼저 구하였습니다. 더위가 심해지면 마음이 쉽게 거칠어지듯, 작은 일에도 성내고 판단하며, 감사보다 불평을 쌓아 올린 죄가 있나이다. 주님, 저희의 교만과 냉담과 무관심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십자가의 보혈로 저희를 씻기시고, 성령의 새 바람으로 굳은 심령을 녹이사 회개의 열매를 맺게 하옵소서. 주께서 기뻐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셨사오니, 오늘 예배 가운데 참된 통회로 주께 돌아오게 하옵소서.

은혜의 하나님, 성도들의 믿음을 위하여 간구합니다. 여름 한가운데로 들어서며 몸이 지치고 리듬이 흐트러질 때, 믿음도 느슨해지지 않게 붙들어 주옵소서. 말씀의 뿌리가 얕아지지 않게 하시고, 기도의 샘이 마르지 않게 하시며, 작은 유혹에도 무너지는 연약함을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병중에 있는 지체들에게는 하늘의 위로와 회복을, 마음이 눌린 지체들에게는 성령의 평강을, 경제와 관계의 무게로 신음하는 가정들에게는 피할 길과 일용할 양식을 베풀어 주옵소서. 우리로 하여금 보이는 형편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주의 약속을 붙들게 하시고,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고백으로 다시 일어서게 하옵소서.

또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위하여 기도드립니다. 더위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게 하시고, 세상의 소음 속에서도 주의 음성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눈을 헛된 즐거움에서 돌이켜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보게 하시며, 우리의 손을 탐심에서 건져 나눔과 섬김으로 펴지게 하옵소서. 휴가와 이동이 잦아지는 계절에 예배를 가볍게 여기지 않게 하시고, 어디에 있든지 예배자답게 살게 하시며, 가정마다 말씀과 기도의 울타리가 세워지게 하옵소서.

주님, 여름 행사를 위해 간절히 기도합니다. 유치부와 아동부의 여름성경학교, 학생과 청년의 수련회와 각 부서의 여름 사역 위에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더하여 주옵소서. 프로그램이 앞서지 않게 하시고 복음이 중심이 되게 하시며, 아이들과 다음 세대가 재미의 기억만 남기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 죄를 미워하고 은혜를 사모하게 하옵소서. 교사와 봉사자들의 마음에 먼저 복음의 불을 지피사 사랑으로 품게 하시고, 준비하는 수고에 지치지 않도록 새 힘을 더하여 주옵소서. 폭염과 장마, 이동과 야외활동 가운데 사고와 질병을 막아 주시고, 모든 일정이 안전 가운데 진행되게 하옵소서. 특별히 결석과 방황 가운데 있는 아이들, 신앙의 기초가 약한 가정의 자녀들을 주께서 친히 불러 모아 주시고, 한 영혼을 향한 주의 기쁨이 우리 가운데 충만하게 하옵소서.

교회를 위하여 기도드립니다. 주께서 피로 사신 교회가 진리의 기둥과 터로 굳게 서게 하시고, 세속화의 바람 속에서도 말씀의 권위와 경건의 능력을 잃지 않게 하옵소서.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이 타협 없는 복음으로 울려 퍼지게 하시고, 성례의 은혜를 사모하여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더욱 깊어지게 하옵소서. 목회자와 장로, 모든 직분자들에게 분별과 겸손과 담대함을 주시고, 교회 안에 시기와 분열의 씨앗이 뿌려지지 않도록 사랑 안에서 한 몸 되게 하옵소서. 새가족과 오래된 성도, 다음 세대와 장년이 서로를 세워 주는 교회 되게 하시며, 가난한 자와 연약한 자를 외면하지 않는 긍휼의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특별히 선교사님들과 온 열방의 복음 사역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낯선 언어와 문화 속에서, 혹은 위험과 제한 속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하는 주의 종들을 주께서 지켜 주옵소서. 그들의 영혼을 낙심에서 건져 주시고, 건강과 안전을 보호하시며, 가정과 자녀들을 주의 날개 아래 숨겨 주옵소서. 복음의 문이 닫힌 곳에도 주께서 길을 여시고, 작은 만남과 짧은 말씀 한 구절을 통해서도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옵소서. 재정의 필요를 채우시고 동역의 손길을 붙여 주시며, 우리가 기도와 물질로 신실히 참여하게 하옵소서. 한국교회가 선교의 초심을 잃지 않게 하시고, 숫자와 외형이 아니라 거룩과 진실로 주님 앞에 서게 하시며, 보내는 교회로서 끝까지 책임을 다하게 하옵소서.

또한 한국교회를 위해 간구합니다. 주님, 우리 안에 남은 교만과 자기 의를 꺾어 주시고, 회개의 눈물로 다시 복음의 중심으로 돌아오게 하옵소서. 말씀을 바로 가르치고 바르게 사는 교회가 되게 하시며, 세상의 박수보다 주님의 칭찬을 구하게 하옵소서. 다음 세대가 교회를 떠나는 현실 앞에서 핑계를 찾기보다, 먼저 어른들이 무릎을 꿇고 믿음의 본을 보이게 하옵소서. 진리가 흐려지지 않게 하시고, 교회가 사회 앞에 빛과 소금의 책임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주께서 위정자들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과 공의를 행하는 지혜를 주시며, 분열과 혐오가 아니라 절제와 화평이 자라나게 하옵소서. 폭염과 풍수해, 각종 재난과 사고 가운데 백성을 보호하시고, 현장에서 수고하는 이들에게 힘과 안전을 더하여 주옵소서. 북한 땅과 그 백성도 긍휼히 여겨 주시고, 복음의 빛이 어둠을 뚫고 들어가게 하시며, 거짓과 두려움의 사슬이 끊어져 참 자유가 그리스도 안에서 임하게 하옵소서.

마지막으로 오늘 예배를 위해 기도드립니다. 찬양하는 입술과 기도하는 마음을 성령께서 붙드시고, 선포되는 말씀이 우리의 심령을 찔러 살리게 하옵소서. 듣는 우리에게 순종의 귀를 주시고, 예배 후의 삶이 예배를 증명하게 하옵소서. 여름의 열기 속에서도 믿음의 열심이 식지 않게 하시고, 교회와 가정과 일터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퍼지게 하옵소서.

우리의 구주요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수요 예배 대표기도문 2026년 2월 둘째주

2월 둘째주 대표기도문

겨울의 찬 기운 속에서도 계절을 다스리시고, 얼어붙은 땅 아래에 봄의 새순을 준비하시는 주님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2월 둘째 주 수요예배로 저희를 불러 주시고, 낮의 분주함을 내려놓고 주의 얼굴을 구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세상은 바람처럼 마음을 흔들고 염려는 눈발처럼 쌓이지만, 주께서 오늘도 말씀과 기도의 자리로 저희를 품어 안으시니, 이 시간이 위로만이 아니라 믿음이 다시 단단해지는 은혜의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 이 예배의 문턱에서 저희의 지난날을 돌아보며 회개합니다. 말로는 사랑을 말하면서도 가까운 가족에게는 날 선 말로 상처를 주었고, 작은 일에 마음이 조급해져 감사보다 불평을 먼저 쏟아냈나이다. 기도해야 할 시간에 핸드폰과 걱정거리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씀을 들으며 “아멘” 하면서도 순종은 미루었던 완고함이 있었습니다. 주님, 우리의 얕은 믿음과 숨은 교만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깨끗이 씻기시고, 성령으로 새 마음을 부어 주셔서, 다시 주께로 돌이키는 참된 회개의 열매를 맺게 하옵소서.

사랑의 하나님, 2월의 차가운 바람 속에서 몸과 마음이 약해지기 쉬운 때에 성도들을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감기와 독감, 각종 질병으로 고생하는 지체들에게 치유의 손길을 더하시고, 회복 중인 이들에게는 인내와 소망을, 간병하는 가족들에게는 새 힘과 평안을 주옵소서. 경제의 무게로 숨이 찬 가정들, 관계의 상처로 마음이 얼어붙은 가정들 위에도 은혜의 햇살을 비추사 다시 살아나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의 믿음이 감정의 온도에 따라 식었다 뜨거워졌다 하지 않게 하시고, 말씀 위에 깊이 뿌리내려 흔들리지 않게 붙들어 주옵소서.

특별히 졸업의 계절을 맞아 기도합니다. 졸업을 앞둔 아이들과 청소년, 청년들의 걸음을 주께서 친히 인도하여 주옵소서. 새로운 학교와 새로운 자리 앞에서 설렘과 두려움이 함께 몰려오나,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하신 약속을 붙들게 하시고, 성적과 스펙이 인생의 주인이 되지 않게 하시며, 하나님의 뜻과 부르심이 삶의 방향이 되게 하옵소서.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에게 필요한 문을 열어 주시고, 낙심하지 않도록 마음을 지켜 주시며, 정직과 성실로 준비하는 손길에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자녀를 위해 마음 졸이며 기도하는 부모들의 눈물을 주께서 기억하시고, 가정마다 비교와 불안이 아니라 믿음의 평강이 흐르게 하옵소서. 교실과 캠퍼스, 직장과 군대의 자리마다 우리 자녀들이 주님과 동행하는 거룩한 습관을 배우게 하시고, 세상의 유혹 속에서도 자신을 지켜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내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 교회를 위해 기도드립니다. 주께서 피로 사신 교회가 진리 위에 굳게 서게 하시고, 세상의 소리에 휩쓸리지 않게 하옵소서.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이 생명의 능력이 되게 하시며, 듣는 성도들이 바른 교훈을 사랑하고 순종으로 열매 맺게 하옵소서. 목사님과 교역자들에게 영육의 강건함과 성령의 지혜를 더하시고, 장로님들과 권사님들, 여집사님들과 모든 직분자들에게는 겸손한 충성과 섬김의 기쁨을 부어 주옵소서. 특히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교회를 돌보고 기도하는 손길들—식탁을 준비하고, 아이들을 품고, 예배당을 정돈하며, 눈물로 중보하는 어머니의 마음들을 주께서 기억하시고 위로하시며, 그 수고가 헛되지 않게 하옵소서. 서로의 허물을 덮어 주는 사랑을 주셔서, 말로 상처 내기보다 말로 세워 주는 공동체 되게 하옵소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합니다. 주님, 이 땅에 정의와 진실이 서게 하시고, 연약한 이들이 외면당하지 않게 하옵소서. 위정자들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과 공의를 행할 지혜를 주시며, 갈등과 분열을 부추기는 말들이 줄어들고 화평을 이루는 길이 열리게 하옵소서. 또한 한국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부름받은 사명을 잊지 않게 하시고, 외형이 아니라 거룩과 회개로 새로워지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맡기신 선교의 사명도 기억하게 하셔서, 기도와 물질로 동역하며 복음이 필요한 곳마다 주의 길이 열리게 하옵소서.

마지막으로 오늘 수요예배를 주께서 기쁘게 받아 주옵소서. 우리의 마음을 옥토로 빚으사 말씀이 깊이 심기게 하시고, 기도할 때 성령께서 탄식으로 도우사 우리의 연약함을 붙들어 주옵소서. 예배 후에도 주의 평강이 우리 가정과 일터에 이어지게 하시며, 남은 한 주간을 거룩과 사랑으로 살아내게 하옵소서. 겨울의 끝자락에서도 주께서 새 계절을 준비하시듯, 우리 안에서도 새 믿음과 새 순종을 준비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일 오후 예배 대표기도문 7월 첫주(맥추감사주일)

 만유의 주재이시며 홀로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영원 전부터 스스로 계시며 뜻대로 만물을 창조하시고 섭리로 다스리시는 주 앞에, 맥추절을 지킨 이 주일 오후에도 저희가 다시 모여 경배하게 하심을 감사하나이다. 주께서 때와 기한을 정하시고 계절을 돌리사, 무더운 여름의 한복판에도 해와 비와 바람을 주관하시며 피조계를 보존하심을 찬송하나이다. 주께서 첫 열매의 절기를 명하사 주의 백성으로 하여금 은혜의 근원을 잊지 않게 하셨사오니, 저희도 상반기 동안 일용할 양식과 시간과 건강과 보호를 베푸신 주의 손길을 인정하며, 모든 영광을 주께 돌리나이다.

주님, 주는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며, 택하신 백성을 끝까지 붙드시는 이이신 줄을 믿나이다. 그러나 주의 율법은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오나, 저희는 아담 안에서 타락한 본성의 부패함으로 말미암아 생각과 말과 행위에 허물이 많았나이다. 마음으로는 주를 경외한다 하나 실제로는 자기 뜻을 따랐고, 주일을 거룩히 구별하기보다 세상의 염려를 품었으며, 감사의 제사를 드리기보다 불평과 탐심을 품었나이다. 사랑하라 하신 계명을 좇지 못하고, 기도하라 하신 명령을 게을리하였으며,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외면한 죄도 있나이다. 보이는 죄뿐 아니라 숨은 교만과 무관심과 냉담함까지도 주 앞에 자복하오니,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와 보혈로 저희 죄를 사하시고, 성령으로 새롭게 하사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게 하옵소서.

은혜의 하나님, 저희를 의롭다 하심은 행위가 아니요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을 믿사오니, 믿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주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신 자들을 부르시고, 중생케 하시며, 성화의 길로 인도하시고, 마침내 영화에 이르게 하시는 구원의 사슬이 끊어지지 않음을 굳게 붙들게 하옵소서. 흔들리는 시대에 감정과 형편을 따라 요동하지 않게 하시고, 기록된 말씀 위에 굳게 서게 하옵소서. 성도의 믿음이 단회적 고백으로 그치지 아니하고,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는 성화의 길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기도의 자리와 말씀 묵상의 자리, 공예배와 성례의 자리에서 은혜의 방편을 가벼이 여기지 않게 하시며, 참된 경건이 가정과 일터에서 열매 맺게 하옵소서.

주님, 맥추절의 뜻을 따라 저희 마음을 살피게 하옵소서. 주께서 주신 첫 열매를 합당히 드리게 하시며, 물질의 감사뿐 아니라 마음의 순종과 시간의 헌신을 드리게 하옵소서. 주께서 채우신 것을 자랑하지 않게 하시고, 주께서 맡기신 청지기의 직분을 두려움과 기쁨으로 감당케 하옵소서. 우리에게 있는 소유가 주께로부터 왔고 또한 주께로 돌아갈 것을 고백하오니, 인색함을 제하시고 넉넉한 마음으로 구제와 선교와 교회 섬김에 참여하게 하옵소서. 남은 하반기를 주의 뜻 아래 두게 하시고, 계획이 무너질 때에도 섭리의 손을 신뢰하는 믿음을 허락하옵소서.

교회를 위하여 간구하나이다. 주께서 피로 사신 교회가 진리의 기둥과 터가 되게 하시고, 사람의 지혜와 세상의 방식에 치우치지 않게 하옵소서.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이 정통한 교훈으로 분명히 울려 퍼지게 하시고, 성도들이 바른 교리를 사랑하며 순종으로 화답하게 하옵소서. 오류의 가르침과 가벼운 신앙을 멀리하게 하시며, 치리와 권면과 교제가 말씀의 질서 안에서 바르게 서게 하옵소서. 목회자와 장로와 모든 직분자들에게 경외함과 절제와 분별을 주시고, 맡겨진 양 떼를 진리로 먹이며 경계하는 충성된 청지기 되게 하옵소서. 연약한 지체들을 돌보게 하시며, 병든 자와 낙심한 자에게 위로를, 시험 중에 있는 자에게 피할 길을 베풀어 주옵소서.

가정들을 붙들어 주옵소서. 남편과 아내가 언약의 책임을 다하게 하시고, 부모가 자녀를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게 하옵소서. 무더위로 지치고 마음이 쉽게 예민해지는 때에, 성령의 절제와 온유를 더하사 다툼을 그치고 화평을 이루게 하옵소서. 다음 세대를 위하여 특별히 기도하오니, 여름성경학교와 수련회 가운데 복음의 진리가 분명히 전파되게 하시고, 단순한 행사로 끝나지 아니하며 회심과 결단의 역사가 있게 하옵소서. 섬기는 교사와 봉사자들에게 지혜와 체력을 더하시고, 모든 일정과 이동 가운데 안전을 지켜 주옵소서. 또한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세상의 가치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게 하시며, 신앙의 기초와 요긴한 교훈을 바르게 배우게 하옵소서.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나이다. 주께서 위정자들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주사 공의를 행하게 하시며, 법과 제도가 약한 자를 보호하는 도구가 되게 하옵소서. 분열과 다툼을 거두시고, 거짓과 탐욕이 억제되게 하시며, 폭염과 풍수해와 각종 재난으로부터 백성을 지켜 주옵소서. 또한 이 땅의 교회들이 세속화의 유혹을 물리치고, 진리와 거룩함으로 사회 앞에 빛과 소금의 책임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또한 주 예수께서 선지자로 말씀을 밝히시고, 제사장으로 단번에 자신을 드려 화목을 이루시며, 왕으로 교회를 보호하시고 원수를 다스리심을 믿사오니, 그 통치 아래 저희 삶이 질서와 거룩을 회복하게 하옵소서. 마지막 날에 각 사람을 행한 대로 심판하실 주를 기억하게 하시어, 은혜를 핑계로 방종하지 않게 하시고, 구원의 은혜에 합당한 열매로 주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이 시간 드리는 오후 예배를 주께서 받으시옵소서. 우리의 마음을 단정히 하사 경솔함을 버리게 하시고, 찬송과 기도와 말씀 봉독과 설교 가운데 성령께서 역사하시어 그리스도만 높임을 받게 하옵소서. 말씀을 듣는 저희에게 깨달음만이 아니라 순종의 의지를 주시며, 주의 날을 마치는 이 시간에도 믿음과 두려움으로 자신을 살피게 하옵소서. 예배가 끝난 뒤에도 주의 날을 거룩히 지키게 하시며, 맥추의 감사가 오늘의 감정으로 그치지 아니하고 한 주간의 순종과 절제로 이어지게 하옵소서.

오직 중보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7월 첫째 주일 대표기도문(맥추 감사 주일)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계절의 문을 여시고 닫으시는 주께서 2026년 7월 첫 주일, 맥추감사 주일에 우리를 주의 전으로 불러 모아 주시니 찬양과 경배를 올려드립니다. 여름의 한가운데에 들어선 이때, 뜨거운 햇살이 땅을 달구어도 주의 사랑은 그보다 더 뜨겁고, 장맛비가 길을 막아도 주의 신실하심은 구름 위의 해처럼 변함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메마른 심령에 생수 되시는 주님, 오늘 우리의 예배가 습관의 껍질을 벗고, 살아 있는 영으로 주께 드려지는 향기로운 제사 되게 하옵소서.

자비로우신 주님, 그러나 지난 날들을 돌아보면 감사의 입술보다 원망의 탄식이 앞섰고, 주께 받은 은혜를 당연히 여기며 첫 열매를 주께 드리기보다 내 창고를 먼저 채우려 했던 죄가 있나이다. 말씀을 듣고도 마음의 밭을 갈지 않아 씨앗을 길가에 흘려보내었고, 기도해야 할 시간에 염려로 시간을 태웠으며, 사랑해야 할 이웃을 향해 차가운 시선과 날 선 말로 상처를 남기기도 하였습니다. 주님, 우리의 무감각과 교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십자가 보혈로 우리를 씻기시고, 성령의 바람으로 굳은 마음을 녹이사 다시 감사의 샘이 솟게 하옵소서.

은혜의 하나님, 맥추의 절기를 맞아 먼저 감사드립니다. 상반기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시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의 숨을 붙드시며, 일터와 가정과 교회에 필요한 양식을 공급하신 주께 감사를 드립니다.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하신 말씀처럼, 우리가 가진 것과 이룬 것의 시작이 주께로부터 왔음을 잊지 않게 하시고, 감사가 단지 말이 아니라 헌신과 순종으로 드려지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주신 물질의 곡식뿐 아니라, 회개의 눈물과 인내의 열매, 섬김의 수고와 화해의 열매를 주께 올려드리는 성도 되게 하옵소서.

주님, 성도들의 믿음을 위하여 간구합니다. 더위가 길어지면 몸이 지치듯, 신앙의 길도 길어질수록 마음이 해이해지기 쉬우니 우리를 붙드사 믿음이 식지 않게 하옵소서. 세상의 소음이 커질수록 말씀의 음성이 더 또렷이 들리게 하시고, 흔들리는 뉴스와 감정의 파도 위에서도 “주께서 나의 피난처”라는 고백으로 견고히 서게 하옵소서. 병상에 있는 지체들에게는 하늘의 위로와 치유를, 마음이 눌린 지체들에게는 성령의 자유를, 경제의 무게로 신음하는 가정에는 일용할 양식과 새 길을 열어 주옵소서.

또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여름의 뜨거운 햇볕이 곡식을 익히듯, 우리의 삶에 허락하신 훈련과 시련을 통해 거룩의 열매가 무르익게 하옵소서. 우리의 눈을 헛된 욕망에서 돌이켜 주의 얼굴을 구하게 하시고, 손은 탐심을 움켜쥐기보다 나누는 손이 되게 하시며, 발걸음은 죄의 길을 피하여 의의 길을 걷게 하옵소서. 휴가와 쉼의 계절을 맞아 마음이 풀어져 경건이 느슨해지지 않게 하시고, 쉬는 날에도 주 안에서 쉼을 배우며, 어디서든 예배자답게 살게 하옵소서.

특별히 여름성경학교와 수련회를 위해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다음 세대의 마음밭을 주께서 친히 갈아엎으사 복음의 씨앗이 깊이 뿌리내리게 하옵소서. 아이들의 웃음 속에 하늘의 기쁨을 심어 주시고, 말씀을 듣는 시간마다 성령께서 조명하사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게 하옵소서. 교사들과 봉사자들에게는 사랑의 인내와 지혜를 더하시고, 준비하는 손길마다 낙심 대신 새 힘을 주옵소서. 수련회 가운데 회개의 눈물과 결단의 고백이 있게 하시며, 청소년과 청년들이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말씀의 기준으로 자신을 세우게 하옵소서. 이동과 야외활동 가운데 사고와 질병을 막아 주시고, 폭염과 장마 속에서도 안전을 지켜 주옵소서. 무엇보다 모든 프로그램의 중심이 사람이 아니라 복음이 되게 하시고, 우리의 열심이 아니라 주의 은혜가 주인공 되게 하옵소서.

교회를 위해 기도드립니다. 주께서 피로 사신 교회가 진리의 기둥과 터로 굳게 서게 하시고, 시대의 바람에 흔들리지 않게 하옵소서.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이 타협 없는 복음으로 울려 퍼지게 하시며, 성례 가운데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더욱 깊이 누리게 하옵소서. 목회자들과 장로님들, 모든 직분자들에게 겸손한 담대함을 주시고, 교회의 각 부서와 기관이 한 몸처럼 조화를 이루게 하옵소서. 여름 사역으로 분주한 때에 서로를 비교하거나 원망하지 않게 하시고, 수고를 알아주지 못한 자리마다 주께서 친히 위로와 상급으로 채워 주옵소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폭염과 풍수해, 각종 재난과 사고로부터 이 땅을 지켜 주시고, 현장에서 수고하는 의료진과 안전요원, 군과 공무원들에게 지혜와 보호를 더하여 주옵소서. 갈등이 깊어지는 시대에 참된 공의와 절제가 회복되게 하시고, 약한 자들의 눈물이 외면당하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의 가정들이 무너진 울타리를 다시 세우게 하시며, 다음 세대가 쾌락이 아니라 경건을 배우고, 성공이 아니라 소명을 붙들게 하옵소서.

마지막으로 오늘 드리는 예배를 위해 간구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옥토로 빚으사 말씀이 떨어질 때 길가가 아니라 깊이 뿌리내리는 밭이 되게 하시고, 찬양이 뜨거운 여름 공기처럼 하늘로 올라가는 믿음의 고백이 되게 하옵소서. 설교하시는 주의 종에게 성령의 권능을 더하사 그리스도만 높이게 하시고, 듣는 우리에게는 순종의 귀와 실천의 손을 허락하옵소서. 맥추의 감사가 오늘 하루의 감정으로 끝나지 않게 하시고, 남은 하반기를 감사로 시작하여 감사로 마치는 성도 되게 하옵소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지금도 은혜의 보좌 우편에서 중보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6월 넷째 주일 대표기도문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계절의 문을 여닫으시는 주께서 오늘 2026년 6월 넷째 주일에도 우리를 은혜의 자리로 불러 주시니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립니다. 6월의 끝자락에 서서 뒤돌아보면, 주께서 흘려 보내신 햇빛과 비, 웃음과 눈물 속에도 한결같이 우리를 붙드신 손길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장마의 구름이 하늘을 덮어도 그 너머에 변치 않는 빛이 있듯, 우리의 삶 위에 덮이는 염려와 소란을 넘어 주의 신실하심이 언제나 우리를 비추고 있사오니, 오늘 예배 가운데 그 빛을 다시 보게 하옵소서.

주님,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자주 흐려졌고, 감사보다 원망이 먼저 입술에 올랐으며, 믿음의 고백보다 계산과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주께서 주신 시간들을 거룩하게 구별하지 못하고, 기도해야 할 자리에서 습관과 핑계를 붙들었으며, 말씀을 듣고도 순종을 미루는 완악함으로 주의 마음을 근심하게 하였나이다. 이기심과 무관심의 죄, 말로 지은 죄, 은혜를 가볍게 여긴 죄를 주 앞에 내려놓사오니, 십자가의 보혈로 씻어 주시고 성령의 새 바람으로 우리 심령을 정결케 하옵소서. 회개하는 자를 품으시는 주님, 우리를 다시 주의 길 위에 세워 주옵소서.

은혜의 하나님, 성도들의 믿음을 위하여 간구합니다. 믿음이 흔들리는 시대에 우리의 뿌리가 얕아지지 않게 하시고, 말씀 위에 깊이 내린 뿌리가 폭풍에도 뽑히지 않게 하옵소서. 각 가정마다 예배의 등불이 꺼지지 않게 하시며, 자녀들의 마음밭을 주께서 갈아 주셔서 복음의 씨앗이 열매 맺게 하옵소서. 병상에 있는 지체에게는 하늘의 위로를, 마음이 지친 자에게는 새 힘을, 믿음의 길을 홀로 걷는 자에게는 동행의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믿음이 말로만 아니라 삶의 선택으로 드러나게 하시고, 작고 평범한 하루 속에서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고백이 살아 움직이게 하옵소서.

또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6월을 보내며 흘려보낸 시간들을 주 앞에 세어 보게 하시고, 다가오는 7월을 ‘결심의 달’이 아니라 ‘은혜를 의지하는 달’로 맞이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달력이 분주함으로 가득 차기 전에, 먼저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우선순위를 세우게 하시며, 바쁜 손을 잠시 멈추어 주의 얼굴을 구하는 기도의 습관을 회복하게 하옵소서. 성령께서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사, 죄의 습관은 끊어지고 거룩의 열매가 맺히며, 관계 속의 상처는 십자가의 사랑으로 덮이게 하옵소서.

교회를 위하여 간구합니다. 주께서 피로 사신 이 교회가 진리 위에 굳게 서게 하시고, 사람의 지혜가 아니라 성경의 권위로 가르치고 순종하는 공동체 되게 하옵소서.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이 생명과 회개의 능력이 되게 하시며, 예배와 교육과 선교와 섬김이 균형 있게 자라나게 하옵소서. 목회자들과 모든 직분자들에게 겸손한 마음과 담대한 믿음을 주시고, 분열의 틈을 원수가 파고들지 못하도록 사랑 안에서 한 몸 되게 하옵소서. 특별히 다음 주 맥추감사주일을 준비하는 우리 마음에 ‘첫 열매’를 드리는 믿음을 새기게 하시고, 반년을 인도하신 은혜를 세어 감사하게 하시며, 남은 반년 또한 주께 맡기는 믿음의 예배가 되게 하옵소서.

북한선교 주일의 마음으로 간구합니다. 닫힌 땅에도 주의 복음은 갇히지 아니함을 믿사오니, 북녘 땅의 영혼들을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어둠 속에서도 촛불을 지키듯 믿음을 지키는 지하 교회와 성도들을 보호하시고, 말씀과 양식과 피난처를 주께서 친히 공급하여 주옵소서. 복음을 전하는 모든 사역자들과 선교의 통로들을 지혜롭게 인도하시며, 우리의 기도가 멀리 가지 못하는 것처럼 보여도 하늘 보좌에 닿아 그 땅에 이슬처럼 내리게 하옵소서. 거짓과 우상과 두려움의 사슬이 끊어지고, 참된 자유가 그리스도 안에서 임하게 하시며, 통일을 구할 때에도 감정이나 계산이 아니라 진리와 회개 위에 세워진 화평을 주께서 이루어 주옵소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시고, 약한 자의 울음이 제도의 문턱에서 사라지지 않게 하옵소서. 지도자들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과 공의를 행하는 용기를 주시며, 국민들에게는 서로를 정죄하기보다 이웃으로 품는 성숙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경제와 일터의 불안 속에 있는 가정들을 도우시고, 청년들의 길을 열어 주시며, 다음 세대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로 세워지게 하옵소서. 전쟁과 분쟁이 멈추지 않는 이 시대에 우리 민족을 지켜 주시고, 교회가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책임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마지막으로 오늘 드리는 예배를 위해 간구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옥토로 빚으사 말씀이 떨어질 때 길가가 아니라 깊이 뿌리내리는 밭이 되게 하시고, 찬양이 하늘 문을 여는 믿음의 고백이 되게 하옵소서. 듣는 우리에게 순종의 귀를 주시고, 예배 후의 삶이 예배를 증명하게 하옵소서. 6월의 마지막 주일을 주의 은혜로 잘 마무리하게 하시고, 7월의 첫 걸음을 믿음으로 내딛게 하시며, 다음 주 맥추감사주일에 감사의 첫 열매를 기쁨으로 드리는 성도들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죄를 씻으시고 교회를 세우시며 만물을 다스리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월 첫주 수요 예배 대표기도문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겨울의 끝자락과 봄의 문턱을 주의 손으로 잇게 하시고, 얼어붙은 땅 아래에도 새 생명의 숨결을 준비하시는 주님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2026년 2월 첫 주 수요예배로 저희를 은혜의 자리로 부르시니 감사합니다. 세상은 분주하여 우리의 마음을 빼앗으려 하나, 주께서 오늘도 저희를 말씀과 기도의 등불 아래 모아 주시니, 이 시간이 헛된 위로가 아니라 하늘의 능력으로 새로워지는 시간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예배가 사람의 감정에 머물지 않고, 성령과 진리로 드려지는 참된 예배 되게 하옵소서.

자비하신 주님, 주 앞에 서서 지난 날을 돌아봅니다. 입술로는 주를 부르며 마음으로는 세상의 염려를 붙들었고, 믿음을 말하면서도 불안에 끌려 다녔습니다. 기도해야 할 자리에서 쉽게 낙심했고, 말씀을 들으면서도 순종은 미루었으며, 사랑해야 할 이웃을 향해 차가운 말과 무관심으로 상처를 남긴 적도 있나이다. 작은 유익 앞에서 양심을 타협하고, 내 뜻이 꺾일 때 분노와 불평을 키운 죄를 고백합니다. 주님, 우리의 교만과 완고함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씻어 주시고, 성령께서 우리의 속사람을 새롭게 하사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게 하옵소서. 상한 심령을 멸시하지 않으시는 주님, 오늘 이 예배 가운데 저희를 다시 주께로 돌이키게 하옵소서.

은혜의 하나님, 성도들의 믿음을 위하여 간구합니다. 2월의 찬바람처럼 마음을 얼게 하는 소식과 걱정이 많으나, 우리의 믿음이 환경에 흔들리지 않게 하옵소서. 눈에 보이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보이지 않는 주의 약속을 붙들게 하시며, 말씀 위에 깊이 뿌리내린 믿음으로 흔들리지 않게 하옵소서. 병중에 있는 지체들에게 치유의 은혜를, 마음이 무너진 이들에게 하늘의 위로를, 경제의 무게로 지친 가정들에게는 일용할 양식과 피할 길을 베풀어 주옵소서. 특별히 연약한 자들이 홀로 버티지 않게 하시고, 교회가 기도와 사랑으로 서로의 짐을 지는 공동체 되게 하옵소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새해의 결심이 무뎌지고 경건의 습관이 느슨해지기 쉬운 때에, 우리를 깨우사 다시 첫사랑을 회복하게 하옵소서. 아침의 첫 생각을 주께 드리게 하시고, 하루의 선택마다 주의 뜻을 묻게 하시며, 우리의 말과 표정과 손길이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내게 하옵소서. 우리가 스스로를 의지하려는 마음을 꺾어 주시고,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하신 말씀을 마음에 새기게 하옵소서. 시험을 만날 때 피할 길을 주시고, 유혹 앞에서는 거절할 힘을 주시며, 실패했을 때는 낙심 대신 회개의 길로 돌아오게 하옵소서.

교회를 위하여 간구합니다. 주께서 피로 사신 교회가 진리의 기둥과 터로 굳게 서게 하시고, 시대의 바람에 흔들리지 않게 하옵소서.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이 사람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임하게 하시며, 성도들이 바른 교훈을 사랑하고 삶으로 순종하게 하옵소서. 목회자와 장로님들과 모든 직분자들에게 분별과 겸손과 담대함을 더하사, 양 떼를 말씀으로 먹이며 기도로 지키는 충성된 일꾼 되게 하옵소서. 교육부서와 청년들과 다음 세대를 주께서 붙드시고, 곧 다가올 새 학기와 새로운 환경 속에서도 믿음이 자라게 하시며, 가정예배와 말씀교육이 회복되게 하옵소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주께서 이 땅을 긍휼히 여기사 분열과 혐오를 거두시고, 공의와 진실이 강물처럼 흐르게 하옵소서. 위정자들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지혜를 주시고, 약한 자를 외면하지 않는 정책과 결단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재난과 사고로부터 백성을 지켜 주시고, 수고하는 의료진과 안전요원들과 군과 공무원들을 보호하여 주옵소서. 또한 복음의 빛이 이 민족 가운데 더욱 밝게 비치게 하시고, 한국교회가 회개와 거룩으로 새로워져 세상의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마지막으로 오늘 수요예배를 위해 기도드립니다. 우리의 마음을 옥토로 빚으사 말씀이 떨어질 때 길가가 아니라 깊이 뿌리내리는 밭이 되게 하옵소서. 찬양하는 입술과 기도하는 심령을 성령께서 붙드시고, 선포되는 말씀을 통해 우리의 생각과 삶이 교정되게 하옵소서. 예배 후에도 받은 은혜를 흘려보내는 자 되게 하시고, 남은 한 주간을 거룩과 사랑으로 살게 하옵소서.

우리의 구주요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6월 셋째 주일 예배 대표기도문

 거룩하시고 영화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알파와 오메가 되시는 주께서 오늘 2026년 6월 셋째 주일(6월 21일)에도 우리를 주의 전으로 불러 모아 주시니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립니다. 봄의 연약한 잎새를 지나 초여름의 짙은 푸름으로 땅을 덮으시듯, 주께서도 성도들의 심령 위에 성령의 이슬을 내리사 믿음이 무성한 나무가 되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의 호흡이 주의 은혜에서 나왔고, 우리의 걸음이 주의 섭리 안에 있사오니, 오늘 드리는 예배가 사람의 형식이 아니라 하늘 보좌 앞에 올려 드리는 향기로운 제사가 되게 하옵소서.

자비로우신 주님, 그러나 지난 한 주간을 돌아보면 우리의 마음은 자주 갈라지고, 혀는 쉽게 날카로워졌으며, 눈은 세상의 화려함을 좇아 방황하였습니다. 말씀을 알면서도 순종을 미루었고, 기도해야 할 자리에서 스스로의 꾀를 의지하였으며, 이웃의 짐을 함께 지기보다 내 편안함을 먼저 구하였습니다. 우리의 죄가 장맛비 뒤에 고인 탁한 물처럼 남아 있사오니, 주의 보혈로 씻어 주시고 성령의 불로 정결케 하옵소서. 회개하는 심령을 멸시하지 않으시는 주님, 굳은 마음을 제하시고 부드러운 새 마음을 주옵소서.

은혜의 하나님, 먼저 우리 성도들의 믿음을 위하여 간구합니다. 믿음이 지식으로만 머물지 않게 하시고, 환난 중에도 주께 뿌리내린 믿음으로 견고히 서게 하옵소서. 흔들리는 세상 소식에 마음이 요동할 때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고백하며 다시 평안을 얻는 성도들이 되게 하옵소서. 가정마다 말씀의 등불이 꺼지지 않게 하시고, 자녀들의 마음밭을 주께서 갈아엎으사 복음의 씨앗이 깊이 뿌리내리게 하옵소서. 청년들에게는 거룩한 용기와 분별을 주시고, 장년들에게는 믿음의 인내를 더하시며, 연로하신 성도들에게는 하늘 소망의 위로를 풍성히 부어 주옵소서.

또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위하여 기도드립니다. 우리의 하루가 분주함에 끌려가 “주여 주여” 하면서도 주의 뜻을 행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게 하옵소서. 새벽의 첫 생각을 주께 드리게 하시고, 일터와 학교와 가정에서 작은 선택마다 주의 말씀을 기준 삼게 하옵소서. 우리의 손이 탐심을 움켜쥐지 않고 섬김을 내어 주게 하시며, 우리의 발이 죄의 길을 피하여 의의 길로 걷게 하옵소서. 성령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사,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말과 표정과 관계 속에 스며나오게 하옵소서.

교회를 위하여 간구합니다. 주께서 피로 사신 이 교회를 세상의 유행에 흔들리지 않는 말씀의 기둥과 진리의 터가 되게 하옵소서.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이 사람의 말이 아니라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리게 하시고, 성례의 은혜를 사모함으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더 깊이 누리게 하옵소서. 담임목사님과 교역자들에게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더하사, 바른 교훈으로 양 떼를 먹이고 경계하게 하시며, 당회와 제직들과 모든 봉사자들에게는 겸손한 충성과 한 마음의 연합을 주옵소서. 숨은 자리에서 수고하는 손길들을 기억하시고, 낙심한 심령에는 새 힘을, 병든 몸에는 치유의 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주님, 우리 가운데 슬픔의 계절을 지나가는 지체들을 특별히 기억하여 주옵소서. 6월의 햇살이 따뜻해도 어떤 가정에는 여전히 그늘이 짙사오니, 상실로 눈물 흘리는 자에게는 “내가 너를 결코 버리지 아니하리라” 하신 약속으로 붙들어 주옵소서. 경제의 무게로 숨이 가쁜 성도들, 일터에서 불의와 압박을 견디는 성도들, 관계의 상처로 마음이 찢긴 성도들에게 하늘의 만나를 내려 주시고, 정직하게 일하는 손에 필요한 것을 공급하여 주옵소서. 시험과 진로 앞에 선 학생들에게는 헛된 비교를 끊게 하시고, 주께서 주시는 소명과 은사를 따라 걸어가게 하옵소서.

또한 주께서 우리 교회에 맡기신 선교의 사명을 기억합니다. 복음이 닿기 어려운 땅에서, 혹은 낯선 언어와 문화 속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는 선교사들과 동역자들을 지켜 주옵소서. 그들의 가정에 평강을 주시고, 안전을 지키시며, 선포되는 말씀마다 닫힌 문이 열리게 하옵소서. 우리가 기도와 물질로 신실히 동참하게 하시고, ‘가든지 보내든지’ 순종하는 교회로 자라게 하옵소서.

장맛비가 대지를 적셔 열매를 준비하듯, 주님께서도 우리에게 주신 시련과 훈련을 통해 성숙의 열매를 맺게 하옵소서. 우리 안의 교만을 꺾으시고, 은혜로 다시 세우시며, 하나님의 나라가 먼저이고 의가 먼저인 삶으로 방향을 돌이키게 하옵소서.

특별히 교사강습회와 다음 세대 사역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교사들의 마음에 먼저 복음의 불을 지펴 주시고, 지식의 기술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아이들을 품게 하옵소서. 강습회 가운데 바른 교리와 경건의 훈련이 세워지게 하시며, 준비하는 모든 강사와 섬김이들에게 지혜와 체력을 더하여 주옵소서. 여름 사역과 성경학교를 앞두고 있는 부서마다 주께서 길을 여시고, 아이들의 웃음 속에 하늘의 씨앗이 심기게 하시며, 가정과 교회가 함께 손을 맞잡아 믿음의 계대를 이어가게 하옵소서.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합니다. 전쟁과 위기의 골짜기에서 이 땅을 지키기 위해 희생한 이들을 기억하게 하시고, 그 가족들의 눈물 위에 주의 위로를 덧입혀 주옵소서.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안이 값싼 것이 아니었음을 잊지 않게 하시며, 감사가 책임이 되게 하옵소서. 이 땅에 참된 화평을 허락하사 분열과 증오가 아니라 진리 안의 화해와 사랑이 자라나게 하시고, 남과 북의 긴장 속에서도 불의한 욕망이 아니라 공의와 자비가 길을 내게 하옵소서. 위정자들에게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지혜를 주시고, 법과 제도가 약한 자를 억누르지 않게 하시며, 우리 국민들에게는 서로를 이웃으로 여기며 섬기는 마음을 허락하옵소서.

마지막으로 오늘 예배를 위해 간구합니다. 우리의 마음밭을 갈아 주셔서 말씀이 떨어질 때 길가가 아니라 옥토가 되게 하시고, 찬양과 기도가 하늘 문을 여는 믿음의 고백이 되게 하옵소서. 설교를 듣는 우리가 비판의 귀가 아니라 순종의 귀를 갖게 하시며, 예배당을 나설 때에도 ‘예배를 살게 하라’는 부르심을 품고 세상 속으로 파송받는 제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를 죄에서 건지시고 지금도 은혜의 보좌 앞에서 중보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기도란 무엇인가?

 기도란 무엇이며 왜 해야 하는가 

— 하나님과의 살아 있는 교제 (설교문)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신앙의 가장 기본이자 가장 깊은 자리, 곧 “기도”에 대해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기도는 너무 익숙한 행위이기에 오히려 그 본질이 흐려질 때가 많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기도를 “무언가를 달라고 요청하는 시간” 정도로 이해합니다. 어떤 이들에게 기도는 종교적 의무이고, 어떤 이들에게는 위기 때만 꺼내 드는 비상수단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기도는 그보다 훨씬 더 깊고, 더 인격적이며, 더 본질적인 신앙의 자리입니다. 기도는 단지 하나님께 말을 거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과 살아 있는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방식입니다. 기도는 신앙의 기술이 아니라, 신앙 그 자체의 호흡입니다.


성경에서 기도는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교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종으로만 부르지 않으시고, 자녀로 부르십니다. 자녀와 아버지의 관계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것은 대화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실 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로 시작하라고 하신 것은(마 6:9), 기도의 본질이 관계에 있음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기도는 두려움 속에서 신에게 매달리는 행위가 아니라, 사랑받는 자녀가 아버지께 나아가는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출발점은 문제의 크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들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며, 하나님이 선하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기도는 또한 “하나님의 뜻에 참여하는 행위”입니다. 우리는 종종 기도를 “내 뜻을 하나님께 관철시키는 수단”으로 오해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기도는 오히려 반대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자신을 내어 놓는 자리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기도의 핵심도 이것입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 기도는 하나님을 내 계획에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하나님의 계획 안으로 들여보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된 기도는 종종 우리의 계획을 수정하고, 우리의 욕망을 정화하며, 우리의 방향을 재정렬합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까? 첫째,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합니다. 관계는 소통 없이 유지되지 않습니다. 침묵이 길어지면 거리감이 생깁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과의 관계도 기도 없이 깊어지지 않습니다. 성경은 끊임없이 기도하라고 권면합니다(살전 5:17). 이는 하루 종일 말을 멈추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의식을 놓치지 말라는 뜻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이 멀리 계시지 않음을, 지금도 나와 함께 계심을 자주 상기시키는 영적 훈련입니다.


둘째, 기도는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드러내기 위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의 필요를 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기도하라고 하십니까? 그것은 기도가 하나님께 정보를 제공하는 행위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 앞에 열어 놓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시편을 보십시오. 시편 기자는 분노, 슬픔, 두려움, 혼란, 기쁨, 감사, 모든 감정을 하나님 앞에 쏟아 놓습니다. 기도는 경건한 말만 골라서 드리는 시간이 아닙니다. 기도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하나님 앞에 가져가는 시간입니다. 그 자리에서 우리는 스스로도 잘 알지 못했던 마음의 깊은 층위를 발견하게 되고, 하나님 앞에서 정직해집니다.


셋째, 기도는 하나님의 평강으로 마음을 지키기 위해 필요합니다.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말합니다(빌 4:6).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말합니다(빌 4:7). 기도는 문제를 즉시 제거하는 마술이 아닙니다. 그러나 기도는 문제 한가운데서도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 마음을 지키게 합니다. 기도는 상황을 바꾸지 못할 때에도, 나를 바꾸는 통로가 됩니다. 염려는 우리를 문제 안에 가두지만, 기도는 우리를 하나님 안으로 옮겨 놓습니다.


넷째,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신앙의 고백이기 때문에 필요합니다.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은 종종 우리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기도는 “나는 한계가 있고, 하나님은 전능하시다”는 신앙의 선언입니다. 야고보서가 말한 것처럼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약 4:2)라는 말씀은, 기도가 단순한 종교적 형식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실제 통로임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주권적으로 일하시지만, 동시에 기도를 통해 역사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이 만나는 신비한 자리입니다.


다섯째, 기도는 우리의 욕망을 정화하기 때문에 필요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원하는지도 잘 모를 때가 많습니다. 기도는 내 욕망을 하나님 앞에 올려놓는 과정에서, 그 욕망이 다듬어지고 정화되는 시간입니다. 야고보서가 경고하듯이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는 기도가 있을 수 있습니다(약 4:3). 그러나 기도의 자리에서 우리는 점점 더 하나님의 마음을 배우게 되고, 무엇이 진짜 필요한지 분별하게 됩니다. 기도는 욕망을 그대로 밀어붙이는 시간이 아니라, 욕망을 하나님의 뜻 아래에 두는 시간입니다.


여섯째, 기도는 영적 전쟁의 자리이기 때문에 필요합니다. 성경은 우리의 싸움이 혈과 육이 아니라, 영적 권세와 어둠의 세력과의 싸움이라고 말합니다(엡 6:12). 에베소서 6장에서 전신갑주를 말한 후, 바울은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고 권면합니다(엡 6:18). 기도는 단지 내 마음의 안정 장치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확장되도록 참여하는 영적 전투의 통로입니다. 기도는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참여하는 신앙의 행위입니다.


일곱째, 기도는 우리를 그리스도를 닮게 하기 때문에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삶은 기도의 삶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중요한 사역 앞에서, 선택의 순간에, 고난의 시간에 기도하셨습니다. 특히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는 기도의 본질을 가장 깊이 보여 줍니다.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 이 기도는 연약함의 고백이자, 완전한 순종의 기도입니다. 기도는 예수님의 길을 따르는 자리입니다. 기도 속에서 우리는 점점 더 “내 뜻”보다 “아버지의 뜻”을 선택하는 사람으로 빚어집니다.


그렇다면 기도는 어떻게 드려야 합니까? 성경은 기도를 특정한 형식에만 가두지 않습니다. 그러나 몇 가지 중요한 원칙은 분명합니다. 첫째, 기도는 정직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포장할 필요가 없습니다. 둘째, 기도는 지속적이어야 합니다. 기도는 위기 관리용 도구가 아니라, 일상의 호흡입니다. 셋째, 기도는 말씀과 함께 가야 합니다. 말씀 없는 기도는 자기 생각의 반복이 되기 쉽고, 기도 없는 말씀은 지식으로만 머물기 쉽습니다. 넷째, 기도는 감사로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것이 유익합니다. 감사는 기도의 시선을 문제에서 하나님으로 옮겨 놓습니다.


마지막으로 성도 여러분, 기도는 능력 이전에 관계입니다. 우리는 종종 “기도하면 무엇이 일어나는가”에만 관심을 둡니다. 물론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 놀라운 일을 행하십니다. 그러나 기도의 가장 큰 열매는 상황의 변화보다, 하나님과의 친밀함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더 잘 알게 하고, 나 자신을 더 정확히 보게 하며, 세상을 하나님의 시선으로 보게 합니다. 기도는 하늘을 움직이기 전에, 먼저 나를 움직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설득하기보다, 나를 하나님께 맞추는 은혜의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를 부담으로 여기지 마십시오. 기도는 짐이 아니라 특권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언제든지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습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말할 수 있고, 들으시는 분이 계십니다. 오늘도 여러분의 기도가 크든 작든, 길든 짧든, 그 기도를 하나님께서 귀히 여기십니다. 그리고 그 기도의 자리에서 하나님은 지금도 여러분을 만나 주십니다.


성도 여러분, 기도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 신앙의 생명선입니다. 기도를 놓치면 신앙은 점점 형식이 되고, 기도를 붙들면 신앙은 다시 살아납니다. 오늘도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십시오.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뜻에 참여하며,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인내란 무엇인가

 인내란 무엇인가, 그리고 왜 인내하는가 

— 고난 속에서 하나님이 빚으시는 성도의 힘 (설교문)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인내”라는 단어를 붙듭니다. 인내는 흔히 소극적인 성품, 참고 버티는 성격, 혹은 어쩔 수 없어서 견디는 태도로 오해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내를 “약한 자의 미덕”처럼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인내는 전혀 다릅니다. 성경의 인내는 소극적 체념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끝까지 서 있는 능동적 믿음입니다. 인내는 상황에 굴복하는 태도가 아니라, 상황 위에서 하나님께 붙들린 삶의 자세입니다.


성경에서 인내로 번역되는 중요한 단어는 ὑπομονή(휘포모네)입니다. 이 단어는 단순히 “참는다”는 뜻을 넘어, 무게 아래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버텨 선다’, ‘끝까지 견딘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전쟁터에서 진지를 지키는 병사처럼, 휘포모네는 자리를 지키는 힘입니다. 인내는 도망가지 않는 용기이며, 포기하지 않는 신앙의 지속성입니다. 그러므로 인내는 약함이 아니라 강함입니다. 인내는 감정이 아니라 결단이며, 기질이 아니라 신앙의 열매입니다.


그렇다면 인내는 어디에서 옵니까? 성경은 인내가 인간의 타고난 성격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인내는 성령의 열매 가운데 하나입니다(갈 5:22, 오래 참음). 즉 인내는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빚어 가시는 성품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본래 급한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신앙의 여정 속에서 점점 더 깊은 인내를 배우게 됩니다. 인내는 “원래 성격이 그렇다”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빚고 계시는가”의 문제입니다.


성경은 인내가 믿음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가르칩니다. 야고보서 1장은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 1:3-4)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순서입니다. 시련이 인내를 낳고, 인내는 성숙을 낳습니다. 다시 말해 인내는 신앙의 부산물이 아니라, 성숙으로 가는 필수 과정입니다. 인내 없는 성숙은 없습니다. 빨리 자란 나무는 뿌리가 얕고, 얕은 뿌리는 작은 바람에도 쓰러집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빨리 키우시기보다, 깊이 뿌리내리게 하십니다. 그 과정이 바로 인내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우리를 인내의 길로 이끄십니까? 첫째, 인내는 우리를 하나님께 더 깊이 의존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인내가 필요 없는 삶은 사실상 하나님 없이도 관리 가능한 삶입니다. 그러나 인내의 자리에 들어가면, 인간의 힘과 계산이 한계를 드러냅니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께 매달리게 됩니다. 인내는 우리를 교만에서 건져내는 도구입니다. 내가 할 수 없는 시간을 통과하면서, 우리는 “주님이 아니시면 나는 설 수 없습니다”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인내는 인간의 자립심을 무너뜨리고, 하나님 의존을 세웁니다.


둘째, 인내는 우리의 동기를 정결하게 합니다. 고난이 없을 때는 내가 왜 신앙생활을 하는지 스스로도 분명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축복이 계속되면,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인지, 하나님의 선물을 사랑하는 것인지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인내의 시간은 우리의 동기를 드러냅니다. 아무 보상도 없어 보이는 자리에서도 하나님을 붙드는가, 아니면 손익 계산이 맞지 않으면 떠나는가. 인내는 신앙의 순도를 시험합니다. 그래서 인내는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신앙을 진짜로 만들어 주는 시간입니다.


셋째, 인내는 성도의 성품을 형성합니다. 로마서 5장은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고 말합니다(롬 5:3-4). 여기서 “연단”은 검증된 성품을 뜻합니다. 인내는 우리를 단단하게 만듭니다. 감정에 따라 흔들리지 않게 하고, 상황에 따라 신앙이 좌우되지 않게 합니다. 인내를 통과한 사람은 말이 가벼워지지 않고, 판단이 성급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시간 속에서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인내는 사람을 깊게 만듭니다.


넷째, 인내는 소망을 지켜 줍니다. 소망은 기다림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린다고 말합니다(롬 8:25). 인내 없는 소망은 금세 조급함으로 바뀌고, 조급함은 실망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인내는 소망을 보호합니다. 인내는 “아직이지만, 반드시”라는 신앙의 언어를 가능하게 합니다. 인내는 하나님의 시간표를 존중하는 태도입니다. 우리는 빨리 끝내고 싶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더 깊이 빚으시기 위해 시간을 사용하십니다.


다섯째, 인내는 그리스도를 닮게 합니다. 예수님의 삶은 인내의 삶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즉시 심판하실 수 있었지만, 십자가의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히브리서는 예수님께서 자기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셨다고 말합니다(히 12:2). 예수님의 인내는 무기력이 아니라, 구속을 향한 능동적 순종이었습니다. 성도의 인내는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는 것입니다. 인내는 십자가의 형태를 띱니다. 그러나 그 인내의 끝에는 부활의 영광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내는 패배가 아니라, 승리를 향한 과정입니다.


그렇다면 인내는 실제 삶에서 어떻게 나타납니까? 인내는 단지 큰 고난의 순간에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인내는 반복되는 일상, 바뀌지 않는 관계, 더디게 열리는 문, 계속되는 기도 제목 속에서 드러납니다. 인내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인내는 하루하루의 선택 속에서 길러집니다. 오늘도 하나님을 신뢰하기로 선택하는 것, 오늘도 포기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 오늘도 원망 대신 기도로 나아가는 것, 이것들이 모여 인내가 됩니다.


인내는 감정을 억누르는 기술이 아닙니다. 성경의 인내는 감정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시편을 보십시오. 시편 기자는 슬퍼하고, 분노하고, 탄식합니다. 그러나 그 감정 속에서도 하나님께로 나아갑니다. 인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말하면서도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인내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하나님 앞에 머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내는 무감각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포기하지 않는 끈질김입니다.


또한 인내는 공동체적 성품입니다. 성경은 서로 오래 참으라고 권면합니다(엡 4:2). 인내는 혼자서만 배우는 덕목이 아니라, 사람 사이에서 연습됩니다. 가족 안에서, 교회 안에서, 직장과 관계 속에서 우리는 인내를 배웁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는 참 잘 기다리지만, 사람 앞에서는 쉽게 폭발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인내는 하나님 앞과 사람 앞이 분리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오래 참으셨듯이, 우리도 서로에게 오래 참는 것이 복음에 합당한 삶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내를 방해하는 가장 큰 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조급함과 비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시간표보다 세상의 속도를 더 신뢰할 때가 많습니다. 다른 사람의 결과를 보며 나의 과정을 무가치하게 여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각 사람을 다른 길로 인도하십니다. 인내는 남의 시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시계를 보는 훈련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늦지 않으십니다. 다만 우리의 조급함이 하나님의 섭리를 “늦다”고 느끼게 만들 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인내를 배울 수 있습니까? 첫째,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십시오. 인내는 약속 위에 서야 지속됩니다. 둘째, 기도로 마음을 하나님께 열어 두십시오. 인내는 혼자 버티는 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은혜입니다. 셋째, 작은 순종을 계속하십시오. 인내는 큰 결단보다 작은 충성의 반복에서 자랍니다. 넷째, 믿음의 공동체 안에 머무르십시오. 혼자 있을수록 포기는 쉬워지고, 함께 있을수록 인내는 가능해집니다.


마지막으로 성도 여러분, 인내의 목적은 단지 “끝까지 버텨서 살아남는 것”이 아닙니다. 인내의 목적은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빚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과만을 원하시는 분이 아니라, 과정을 통해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분입니다. 인내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허락하시는 훈련입니다. 그 훈련은 때로 아프고, 길고, 답답합니다. 그러나 그 길 끝에서 우리는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그 시간이 나를 망가뜨린 것이 아니라, 나를 만들었다”고.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인내는 패배자의 미덕이 아닙니다. 인내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의 용기입니다. 인내는 포기가 아니라, 끝까지 붙드는 믿음입니다. 인내는 침묵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머무는 충성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시간 속에 있다면, 그것이 헛된 시간이 아님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은 그 시간 속에서 지금도 여러분을 빚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인내의 길 끝에서, 하나님은 반드시 선한 결말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인내로 믿음을 지키고, 인내로 소망을 붙들며, 인내로 사랑을 지속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끝까지 견딜 수 있는 은혜를 더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소망이란 무엇인가

 소망이란 무엇인가 

— 흔들리는 세상에서 붙드는 미래 (설교문)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소망”이라는 말을 다시 붙듭니다. 믿음과 사랑은 자주 이야기되지만, 소망은 이상하게도 자주 ‘막연한 기대’ 정도로 축소되곤 합니다. 사람들은 소망을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소망에는 ‘바람’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소망은 단순한 바람이 아닙니다. 감정의 일시적 상승도 아니고, 현실이 힘드니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낸 낙관도 아닙니다. 성경의 소망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미래가 이미 지금 우리의 삶을 붙들고 있다는 확신이며, 그 미래가 현실을 견디게 하고 방향을 정해 주는 능력입니다.


성경은 소망을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정의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은 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벧전 1:3). 여기서 소망은 “산 소망”입니다. 죽은 기대가 아닙니다. 현실이 부서질 때 함께 무너지는 꿈이 아닙니다. 산 소망은 살아 계신 하나님, 부활하신 그리스도에게 뿌리를 둔 소망입니다. 그러므로 소망은 상황이 좋아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부활의 사실에서 시작됩니다. 성도의 소망은 결국 “부활의 현실성”을 붙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소망은 무엇을 바라보는 것입니까? 성경의 소망은 단지 내 개인의 성공이나 건강이나 장수를 향한 희망사항에 머물지 않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돌보십니다. 그러나 성경의 핵심 소망은 하나님 나라의 완성, 그리스도의 재림,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그 안에서의 완전한 회복입니다. 로마서 8장에서 바울은 우리가 탄식하며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합니다. 곧 우리 몸의 속량(롬 8:23), 피조세계의 해방(롬 8:21),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광 가운데 드러나는 것입니다. 소망은 단지 “이 세상에서 잘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시작하신 구원의 역사가 마침내 완성되는 것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구분이 필요합니다. 성경의 소망은 ‘가능성’에 걸려 있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희망은 대개 가능성에 근거합니다. 상황이 좋아 보이면 희망이 커지고, 상황이 나빠 보이면 희망이 줄어듭니다. 그러나 성경의 소망은 가능성이 아니라 약속에 근거합니다. 약속은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약속하신 분이 신실하시면, 가능성이 낮아 보여도 소망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히브리서는 말합니다.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히 10:23). 소망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심리적 에너지라기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우리 마음에 낳는 안정입니다.


그리고 소망은 “미래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의 소망은 미래를 향해 있지만, 그 미래가 현재에 침투합니다. 우리는 흔히 소망을 “언젠가”라고 미룹니다. 그러나 성경은 소망이 지금 우리의 삶을 빚는다고 말합니다. 로마서 5장에서 바울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고 말합니다(롬 5:3-4). 소망은 환난이 끝난 다음에 생기는 보상심리가 아니라, 환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나를 빚고 계신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힘입니다. 그래서 소망은 고난을 지워버리는 마술이 아니라, 고난을 통과하게 하는 방향감각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소망과 믿음은 어떻게 다릅니까? 믿음은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께 현재를 맡기는 것입니다. 소망은 그 하나님이 약속하신 미래를 바라보며 그 미래에 현재를 맞추는 것입니다. 믿음이 “하나님이 참되시다”라는 관계적 신뢰라면, 소망은 “그 참되신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실 결말이 있다”는 종말론적 확신입니다. 믿음이 현재의 손이라면, 소망은 미래의 시선입니다. 그러나 둘은 분리되지 않습니다. 믿음은 소망을 낳고, 소망은 믿음을 지탱합니다. 소망이 흐려지면 믿음은 곧 ‘당장의 성과’에 매달리게 되고, 믿음이 약해지면 소망은 ‘꿈’ 수준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그럼 소망은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까? 성경은 소망을 “기다림”과 연결합니다.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롬 8:24-25)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핵심은 “참음(ὑπομονή, 휘포모네)”입니다. 소망은 성급한 사람에게 낯설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에게 익숙합니다. 소망은 ‘빨리’ 해결되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소망은 시간이 걸려도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확신으로 기다릴 힘을 줍니다.


이 지점에서 성도 여러분이 자주 겪는 시험이 드러납니다. 우리는 소망을 “당장 바뀌는 현실”과 연결시키려 합니다. 그래서 기도했는데 현실이 더 어려워지면 “내 소망이 무너졌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소망은 현실의 그래프를 따라 오르내리는 것이 아닙니다. 소망은 현실의 파도 위에 떠 있는 얇은 배가 아니라, 하나님 약속이라는 깊은 닻을 내린 배입니다. 파도가 치면 배는 흔들립니다. 그러나 닻이 깊으면 떠내려가지 않습니다. 성도의 소망은 흔들릴 수는 있어도, 끊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소망의 근거가 내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경은 소망을 “영혼의 닻”이라고 부릅니다. 히브리서 6장은 우리가 가진 소망을 두고 영혼의 튼튼하고 견고한 닻 같아서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히 6:19)라고 말합니다. 닻은 배를 정지시키는 도구입니다. 폭풍이 오면 배는 닻을 내립니다. 닻은 바람을 이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떠내려가지 않게 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소망이 그렇습니다. 소망은 문제를 즉시 제거하는 능력이 아니라, 문제 속에서도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지 않게 하는 안전장치입니다. 성도는 소망으로 붙들려 있습니다. 현실이 나를 떠밀어도, 소망이 나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면 소망은 우리 삶에서 어떤 열매를 맺습니까? 첫째, 소망은 정결을 낳습니다. 요한일서 3장은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 3:3)라고 말합니다. 소망은 단지 “좋은 미래를 기다리는 마음”이 아니라, 그 미래에 합당한 삶으로 현재를 정돈하게 합니다. 우리는 종종 “나는 소망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현재의 습관과 선택은 세상과 다를 바 없이 흐트러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소망은 삶을 정화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완성될 것을 믿는 사람은 그 나라의 가치로 오늘을 살아가려 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소망은 담대함을 낳습니다. 소망이 있는 사람은 모든 것을 잃을까 두려워 움츠러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소망은 ‘최종적으로 잃을 수 없는 것’을 붙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유업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다고 베드로는 말합니다(벧전 1:4). 그러므로 세상에서 손해를 보아도, 사람에게 버림을 받아도, 현실의 문이 닫혀도, 성도는 전부를 잃은 사람이 아닙니다. 소망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소망은 성도를 겁쟁이가 아니라 순례자로 만듭니다. 순례자는 길에서 손해를 볼 수 있으나 길의 끝을 알고 있습니다.


셋째, 소망은 위로를 낳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에서 바울은 죽음 앞에 낙심하는 성도들을 향해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살전 4:13)고 말합니다. 여기서 바울은 “슬퍼하지 말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슬픔을 금지하지 않습니다. 다만 “소망 없는 슬픔”이 되지 않게 하려 합니다. 성도의 슬픔은 눈물이 있지만 절망이 아닙니다. 장례의 자리에서도 우리는 부활의 소망을 말합니다. 그것은 감정의 부정이 아니라, 죽음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는 신앙입니다. 그래서 소망은 눈물을 마르게 하기보다, 눈물이 절망으로 굳어지지 않게 합니다.


넷째, 소망은 사랑을 지속시키는 힘이 됩니다. 사랑은 오래 가기 어렵습니다. 관계의 현실은 거칠고, 사람은 상처를 주고받습니다. 그러나 소망이 있는 사랑은 버티는 사랑이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사람을 새롭게 하시고 교회를 거룩하게 하시며 결국 모든 것을 회복하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서로의 현재만 보고 포기하기 쉽지만, 소망은 “하나님이 이 사람을 어디까지 빚어가실지”를 보게 합니다. 소망은 사랑의 연료가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소망은 어떻게 자라납니까? 첫째, 소망은 복음의 사실을 반복해서 들을 때 자랍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다시 오심은 소망의 기초입니다. 둘째, 소망은 고난을 통과하며 정련됩니다. 환난이 인내를, 인내가 연단을, 연단이 소망을 이룬다고 했습니다(롬 5:3-4). 고난은 소망을 없애는 것 같지만, 오히려 참 소망과 거짓 소망을 분리합니다. 셋째, 소망은 예배 가운데 강화됩니다. 예배는 현실에서 잠시 도피하는 행사가 아니라, 현실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다시 보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을 크게 볼수록, 소망은 단단해집니다. 넷째, 소망은 공동체 안에서 전염됩니다. 낙심한 이에게 소망의 말을 건네고, 서로의 간증을 듣고, 함께 기도할 때 소망이 살아납니다.


마지막으로 성도 여러분, 소망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우리는 천국이라는 장소를 소망하지만, 그 천국의 본질은 주님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소망하지만, 그곳의 영광은 하나님이 친히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것입니다(계 21장). 그러므로 소망은 어떤 추상적 미래가 아니라, 인격이신 주님을 향한 기다림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잊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그 약속은 오늘 우리의 마음을 지탱합니다.


그러니 오늘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소망을 감정으로 측정하지 마십시오. 어떤 날은 마음이 어둡고, 기도해도 빛이 잘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망은 마음의 밝기가 아니라, 약속의 확실성에 달려 있습니다. 소망을 잃었다고 느끼는 날에는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줄이고, 약속하신 하나님을 다시 바라보십시오. 주님은 신실하십니다. 그분은 시작하신 일을 끝까지 이루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소망은 그분의 손에서 결코 끊어지지 않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불안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도의 삶에는 다른 리듬이 있습니다. 흔들려도 떠내려가지 않는 리듬, 눈물이 있어도 절망하지 않는 리듬, 실패가 있어도 끝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리듬이 있습니다. 그것이 소망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미래가 지금 우리의 현재를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산 소망이 우리를 살게 합니다. 이 소망을 붙들고 오늘도 믿음으로 걸어가며, 사랑으로 섬기며, 인내로 기다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믿음이란 무엇인가

 믿음이란 무엇인가 

— 보이는 것을 넘어 약속에 서는 삶 (설교문)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너무 익숙한 단어 하나를 다시 붙들고자 합니다. 바로 “믿음”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신 분도 “믿음으로 산다”는 말이 막연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믿음이 감정인지, 결단인지, 지식인지, 혹은 어떤 분위기인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성경이 말하는 믿음의 본질을 분명하게 정리하고, 그 믿음이 성도의 삶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설교로 풀어 드리고자 합니다.


성경은 믿음을 단순한 낙관주의로 말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잘 될 거야”라는 긍정의 자기암시가 아닙니다. 믿음은 내가 원하는 결과를 끌어오는 주문도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이용’하는 기술이 아니라, 하나님께 ‘의탁’하는 관계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 속에서 약속에 몸을 싣는 행위이며, 그 약속이 내 눈앞의 현실을 넘어선다 해도 하나님이 참되시다는 사실에 내 존재를 걸어 버리는 결단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은 믿음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며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히 11:1). 여기서 “실상”으로 번역된 말은 헬라어로 ὑπόστασις(휘포스타시스)인데, 어떤 것을 ‘받쳐주는 실체’ 혹은 ‘토대’를 가리킬 때 쓰입니다. 믿음은 공중에 떠 있는 기대감이 아니라, 삶 전체를 지탱하는 바닥입니다. 그리고 “증거”로 번역된 말은 ἔλεγχος(엘렝코스)로, 법정에서 제시되는 확증, 혹은 마음을 설득하는 확실한 논증을 뜻하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믿음은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이 현실보다 더 깊은 실재임을 붙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은 무엇을 ‘믿는’ 것입니까? 성경은 믿음의 대상이 분명하다고 말합니다. 믿음은 내 가능성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믿음은 내 마음의 강도를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크기를 따지기 전에 먼저 물어야 합니다. “내가 붙든 대상이 누구인가?” 믿음은 대상이 바뀌면 전혀 다른 것이 됩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구원을 낳지만, 자기 자신을 향한 믿음은 결국 자기 숭배로 흐르고 맙니다.


성경에서 믿음의 핵심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17절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말합니다(롬 10:17). 믿음은 공기의 변화나 감정의 고조에서 생기지 않습니다. 믿음은 말씀이 귀에 들려 마음을 꿰뚫고, 결국 내 삶의 방향을 바꾸는 데서 생깁니다. 그러니 믿음이 약하다고 느끼는 날은 마음을 더 세게 다잡기보다, 말씀 앞에 더 정직하게 서야 합니다. 믿음의 근육은 내 의지의 반복이 아니라 말씀의 공급으로 자랍니다.


성도 여러분, 믿음에는 지적 요소가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믿는지 알아야 합니다. 아무 내용도 없이 “그냥 믿습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지식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야고보서가 경고하듯이 귀신들도 하나님이 한 분이신 줄 믿고 떠는 수준의 ‘정답’이 있을 수 있습니다(약 2:19). 믿음은 단지 옳은 교리를 머리에 담는 것이 아니라, 그 교리가 내 삶을 움직이도록 내어 맡기는 것입니다. 믿음은 “나는 알고 있다”가 아니라 “나는 맡긴다”입니다.


성경이 보여 주는 믿음은 언제나 ‘행동’을 포함합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으로”라는 표현을 반복하면서, 믿음이 실제 삶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증언합니다. 믿음으로 노아가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를 받아 방주를 준비했고(히 11:7), 믿음으로 아브라함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습니다(히 11:8).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들이 완벽한 정보와 확실한 지도를 가지고 움직인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믿음은 모든 불확실성이 제거된 뒤에야 출발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불확실성 한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참되시기에 한 걸음 내딛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너무 자주 “확신이 100%인 상태”로 오해합니다. 그래서 흔들리면 “내게 믿음이 없다”고 단정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믿음이 흔들림과 싸우는 과정임을 보여 줍니다. 어떤 아버지가 귀신 들린 아들을 두고 예수님께 나아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막 9:24). 이 고백은 믿음이 없는 고백이 아니라, 믿음의 정직한 모양입니다. 믿음은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가 아니라 “나는 흔들리지만 주께 붙든다”입니다. 믿음은 자기 확신이 아니라, 주님께 매달리는 신뢰입니다.


그러면 믿음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바울은 믿음을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자리에서 설명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습니다(롬 5:1). 여기서 믿음은 ‘공로’가 아닙니다. 믿음은 ‘손’과 같습니다. 선물이 주어질 때, 손은 선물을 만들어내지 않습니다. 손은 그 선물을 받습니다. 믿음은 구원을 성취하는 힘이 아니라, 구원을 받는 통로입니다. 우리가 믿기 때문에 예수님이 구원자가 되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구원자이시기에 우리가 믿음으로 그분께 결합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8-9절도 분명합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엡 2:8-9). 믿음조차도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의 영역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자랑이 아니라 감사로 흐릅니다. “내가 믿어서 구원받았다”는 말이 우리를 우쭐하게 만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종교적 자기의입니다. 참 믿음은 언제나 나를 낮추고, 그리스도를 높이며, 은혜를 크게 만듭니다.


믿음은 또한 “인격적 신뢰”입니다. 성경의 믿음은 어떤 사상을 믿는 것만이 아니라, 인격이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믿음을 ‘예수님을 믿는다’(πιστεύω εἰς, 피스튜오 에이스)라고 말할 때, 단순히 어떤 내용을 받아들인다는 뜻을 넘어 “그분 안으로 들어간다”는 방향성을 포함합니다. 믿음은 그리스도에게로 이동하는 것입니다. 내 삶의 중심이 옮겨지는 것입니다. 나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삶의 권위 구조를 바꿉니다. 무엇이 옳은지 판단하는 최종 기준이 내 감정과 계산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이 됩니다.


이제 믿음이 삶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구체적으로 보겠습니다. 믿음은 첫째, 두려움을 다루는 방식입니다. 두려움은 미래가 불확실할 때 올라옵니다. 그런데 믿음은 미래를 내 손에 넣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두려움이 사라져서 평안한 것이 아니라, 두려움이 있어도 하나님께로 피난하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가 말한 것처럼 환난 날에 내가 주께 피하리이다(시 57:1). 믿음은 현실의 폭풍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폭풍 속에서도 하나님이 피난처이심을 선택합니다.


둘째, 믿음은 순종으로 드러납니다. 우리는 순종을 ‘의무’로만 받아들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순종은 사랑과 신뢰의 열매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그분의 말씀을 따르는 것입니다. 순종은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한 거래가 아니라,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확신에서 나오는 반응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칠 때, 그의 마음은 잔혹한 종교적 결단이 아니라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실 것이라는 신뢰에 놓여 있었습니다(창 22장, 히 11:17-19 참조). 믿음은 이해가 끝난 뒤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를 넘어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순종 가운데서 이해가 따라오기도 합니다.


셋째, 믿음은 고난을 해석하는 눈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고난이 없다는 말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믿음의 길에는 시험과 연단이 동반됩니다. 베드로전서는 믿음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다고 말합니다(벧전 1:7). 믿음은 고난을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는 증거로 읽지 않고, “하나님이 나를 다듬고 계신다”는 과정으로 읽습니다. 물론 이것은 감상적 해석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보십시오. 가장 버려진 것 같은 순간에 하나님은 가장 깊은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고난을 단번에 제거하는 힘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이 선을 이루신다는 약속을 붙드는 힘입니다(롬 8:28).


넷째, 믿음은 공동체를 세웁니다. 믿음은 개인의 마음속에서만 맴도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서로를 붙드는 끈이 됩니다. 우리는 서로의 믿음을 북돋우고, 지친 이의 손을 잡아 주고, 넘어지는 이를 다시 일으켜 세웁니다. 바울은 같은 믿음을 따라 한 몸을 이루었다고 말합니다(엡 4장). 믿음은 ‘나 혼자 견디는 힘’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버티는 은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믿음을 자라게 할 수 있습니까? 첫째, 말씀 앞에 반복적으로 자신을 세워야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롬 10:17). 둘째, 기도로 하나님께 마음을 여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믿음은 자기 확신이 아니라 하나님 의존입니다. 셋째, 작은 순종을 통해 믿음이 실제 삶에 뿌리내리게 해야 합니다. 믿음은 생각으로만 자라지 않고, 선택과 행동으로 자랍니다. 넷째, 믿음의 선배들과 성도들의 증언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셨는지 듣는 것은 우리 믿음의 시야를 넓혀 줍니다.


마지막으로, 믿음의 가장 깊은 자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믿음은 결국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고 말합니다(히 12:2). 믿음은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기술이 아니라, 예수님을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나의 믿음이 얼마나 강한지 측정하는 데 마음을 빼앗기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 믿음이 붙들고 있는 분이 누구신지를 보십시오.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히 13:8). 우리의 감정은 오르내리지만, 그분의 신실하심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니 오늘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믿음은 현실 도피가 아닙니다. 믿음은 현실을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다시 읽는 용기입니다. 믿음은 불안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불안 속에서도 하나님께로 가는 사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완벽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넘어져도 다시 주님의 손을 붙잡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길 끝에서 우리는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나를 끝까지 붙드셨다고, 내가 믿음을 지킨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를 지켜 주셨다고.


주님께서 오늘 우리 각 사람의 마음에 믿음을 새롭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바라는 것들의 실상,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로서의 믿음이, 단어가 아니라 삶이 되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그 믿음으로 오늘도 한 걸음 걸어가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주일 예배 대표기도문 2026년 6월 둘째주

6월 둘째주일 대표기도문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6월의 빛을 창조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초여름 햇살이 잎사귀를 더 짙게 물들이고, 바람이 땀 맺힌 이마를 식혀 주듯이, 주께서도 우리의 굳은 마음을 만지시고 믿음의 생기를 불어넣어 주옵소서. 계절은 바뀌어도 주의 인자하심은 변함이 없고, 우리의 걸음이 흔들려도 주의 언약은 흔들리지 않으니, 오늘 주의 날에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 예배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만 담대히 서오니, 이 예배의 처음과 끝을 주께서 친히 주관하여 주옵소서.

주님, 지난 한 주간 우리의 모습을 주의 말씀 앞에 세웁니다. 입술로는 주를 경외한다 하면서도 마음은 세상 염려에 쉽게 점령당했고, 기도는 짧아지고 자기 확신은 길어졌습니다. 사랑해야 할 자리에서 계산했고, 용서해야 할 순간에 고집했고, 성결을 말하면서도 은밀한 죄를 가볍게 여겼습니다. 예배의 감격을 기억한다 하면서도 월요일의 삶에서는 주를 잊곤 했습니다. 주여,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십자가의 보혈로 씻어 주시고, 성령께서 회개의 눈물로 심령의 먼지를 씻어 주셔서, 다시 복음의 빛 아래 정결히 서게 하옵소서. 우리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로 살게 하시고, 값없이 주신 은혜를 값싸게 여기지 않게 하옵소서.

은혜의 하나님, 6월의 정서를 따라 우리의 기도를 넓혀 주옵소서. 초록이 무성해지는 이 계절에 우리의 믿음도 자라게 하시고, 여름을 준비하는 밭처럼 우리의 마음도 말씀으로 갈아엎어지게 하옵소서. 성도들의 영혼에 영적 침체가 스며들지 않게 하시고, 예배가 형식으로 굳어지지 않게 하시며, 성령의 새 바람이 교회와 가정에 불어 예배의 불씨가 다시 살아나게 하옵소서. “주께서 교회를 세우시겠다” 하신 약속을 붙들고, 우리로 하여금 사람의 열심이 아니라 은혜의 수단인 말씀과 기도와 성례에 더욱 충실하게 하옵소서.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주님, 우리가 누리는 일상과 자유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님을 고백합니다. 이 땅을 지키기 위해 헌신한 이들의 수고를 기억하게 하시고, 유가족과 상이 용사들, 마음에 상처를 품고 살아가는 이들을 주께서 친히 위로하여 주옵소서. 그들의 눈물이 헛되지 않게 하시고, 교회가 말로만 감사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실제로 돌보고 섬기는 손과 발이 되게 하옵소서. 또한 이 나라의 군인들과 의무를 감당하는 이들을 보호하셔서, 두려움과 외로움 가운데서도 정직과 절제와 책임으로 서게 하시며, 악을 멀리하고 생명을 존귀히 여기는 마음을 주옵소서. 분열과 증오의 언어가 우리의 땅을 메마르게 하지 않게 하시고, 공의와 화평이 강물처럼 흐르게 하셔서, 정의가 약자를 짓누르는 칼이 아니라 약자를 살리는 울타리가 되게 하옵소서. 무엇보다 참 평화는 사람의 협상만이 아니라 만왕의 왕 되신 주님의 다스리심 아래 있음을 깨닫고, 교회가 복음으로 화평을 전하는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 대학생들과 청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학기의 긴장을 지나 방학을 맞는 이들에게 쉼을 주시되, 그 쉼이 영혼의 나태가 되지 않게 하옵소서. 시간의 여백 속에서 말씀을 가까이하게 하시고, 기도의 습관을 새로 세우게 하시며, 믿음의 동역자들과 건강한 교제를 허락하옵소서. 아르바이트와 인턴과 진로 준비 가운데 흔들리는 마음을 붙드시고, 비교와 불안이 마음을 잠식하지 못하게 하시며, “너희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하신 약속으로 담대히 걷게 하옵소서. 유혹이 많은 여름의 길목에서 눈과 귀와 마음을 지켜 주시고, 혹 방황하는 자가 있다면 주께서 잃은 양을 찾으시는 목자처럼 붙들어 교회로, 은혜로, 회개의 자리로 돌아오게 하옵소서.

또한 교사강습회를 준비하고 참여하는 교회학교 교사들과 섬김이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주님, 다음 세대를 맡기신 것이 곧 주의 언약을 우리 손에 다시 부탁하신 것임을 알게 하옵소서. 교사들에게 지식만이 아니라 복음의 중심을 붙드는 믿음과, 아이들의 이름을 품는 사랑과, 끝까지 인내하는 충성을 더하여 주옵소서. 강습회 시간마다 성령께서 가르치셔서, 프로그램의 기술이 아니라 진리의 능력을 의지하게 하시고, 아이들의 마음밭에 심는 씨앗이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되게 하옵소서. 여름성경학교와 청소년 사역을 준비하는 모든 손길 위에 기름 부으사, 안전을 지키게 하시고, 한 영혼도 헛되이 지나치지 않게 하시며, 우리 자녀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기쁨과 교회의 아름다움을 맛보게 하옵소서. 부모들에게도 믿음의 본을 보이게 하시고, 가정예배의 등불이 다시 켜지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 교회를 위해 간구합니다. 병든 지체들에게 치유의 손을 얹어 주시고, 경제적 어려움과 관계의 상처로 무너진 가정들에 회복을 주옵소서. 눈물로 기도하는 이들의 이름을 주께서 기억하셔서,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교회 안의 섬김이 경쟁이 되지 않게 하시고, 직분이 자랑이 되지 않게 하시며, 십자가 앞에서 모두가 같은 은혜의 빚진 자임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서로의 허물을 덮어 주는 사랑을 주시고, 진리 안에서 하나 됨을 지키게 하옵소서.

특별히 오늘 예배의 부흥을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열어 주시고, 예배를 방해하는 분주함과 산만함을 거두어 주옵소서. 찬양이 입술의 소리로만 끝나지 않게 하시고, 진리의 고백으로 올려지게 하옵소서. 무엇보다 목사님께 성령의 능력을 더하셔서, 사람의 말재주가 아니라 성경의 뜻을 바르게 풀어 선포하게 하옵소서. 설교가 귀를 즐겁게 하는 말이 아니라 죽은 심령을 살리는 생명의 말씀 되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우리 가운데 더욱 선명히 드러나게 하옵소서. 듣는 우리에게는 겸손한 마음을 주셔서, 판단하려 앉지 않고 순종하려 서게 하시며, “아멘”이 예배당에만 울리지 않고 삶의 자리에서 열매로 맺히게 하옵소서.

주님, 6월의 푸름이 한낱 색이 아니라 자람의 약속이듯, 우리도 오늘 예배를 통해 자라게 하옵소서. 연약한 믿음은 굳게 하시고, 식어 있던 사랑은 다시 뜨겁게 하시며, 숨겨진 죄는 빛 가운데 드러나 회개하게 하옵소서.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손에 붙들린 백성답게 살게 하시고, 어디서든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는 증인 되게 하옵소서.

모든 영광을 받으실 삼위 하나님께 이 예배를 올려드리며, 우리를 위해 지금도 중보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6월 주일 낮 예배 대표기도문 모음

6월 주일 대표기도문 모음


6월의 계절과 목회적 상황

 6월은 상반기의 끝자락이자, 여름의 문이 활짝 열리는 달입니다. 교회력으로는 성령강림의 은혜를 기억하며, 우리의 신앙이 말과 감정에 머무르지 않고 성령의 열매로 익어가기를 구해야 할 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6월 주일 대표기도는 감사와 점검을 함께 담겠습니다. 지난 반년을 인도하신 섭리에 감사하며, 느슨해진 경건과 사랑의 식음을 회개하고, 다가오는 여름 사역과 다음 세대를 위해 간구하겠습니다. 또한 호국의 달을 지나며 나라와 민족의 아픔을 기억하되, 교회가 정치의 언어가 아니라 복음의 언어로 공의와 화평을 구하도록 기도하겠습니다. 매 주일마다 계절의 정서(초여름의 빛, 땀, 자람)를 살리면서도, 말씀과 교리에 단단히 뿌리내린 기도로 예배의 문을 열어가겠습니다.


6월 첫째 주 대표기도문


6월 둘째 주 주일 대표기도문


6월 셋째 주 주일 대표기도문


6월 넷째 주 주일 대표기도문


6월 다섯째 주 주일 대표기도문



이사야 장별요약

이사야 장별요약 

이사야서는 구약의 대표적인 대예언서로, 남유다와 예루살렘을 둘러싼 역사적 위기 속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공의를 선포하는 책입니다. 우상숭배와 불의, 형식적 예배를 책망하며 심판이 임할 것을 경고하지만, 동시에 회개하는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긍휼과 회복의 약속을 함께 제시합니다. 앗수르와 바벨론 같은 열강의 등장 속에서도 역사의 주권이 여호와께 있음을 밝히고, 시온의 구원과 남은 자의 소망을 강조합니다. 또한 메시아의 오심과 고난받는 종의 사역, 성령의 새 시대를 예언하며 구속사의 큰 흐름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이사야 구조

이사야서는 크게 심판과 책망(1–39장), 위로와 회복(40–55장), **새 시대와 완성(56–66장)**으로 나뉘는 구조입니다.

  • 1–12장: 유다와 예루살렘의 죄 고발, 심판 경고, 남은 자와 메시아적 소망

  • 13–23장: 열방 심판 예언(바벨론·앗수르·두로 등), 열국 위에 계신 하나님의 주권

  • 24–27장: “여호와의 날”과 우주적 심판, 시온의 구원과 종말론적 회복(이사야 묵시록으로 불림)

  • 28–35장: 유다의 헛된 의지(동맹·정치) 책망, 시온의 보호와 최종 회복 약속

  • 36–39장: 히스기야 시대 역사 서술(앗수르 위기, 구원, 바벨론 예고)로 전환점 형성

  • 40–48장: 포로 백성 위로, 창조주 여호와의 위대하심, 우상 무력함, 고레스 사용

  • 49–55장: 여호와의 종 노래(특히 53장), 대속과 구원의 확장, 은혜의 초청과 언약 회복

  • 56–59장: 구원받은 공동체의 윤리와 예배, 불의 책망, 구속자의 오심 약속

  • 60–62장: 시온의 영광과 열방의 회복, 새 이름과 완전한 회복의 비전

  • 63–66장: 보복과 구원, 회개 탄원, 새 하늘과 새 땅, 최종 심판과 영원한 예배


이사야 1장 요약

이사야 1장은 유다와 예루살렘의 죄악을 고발하며 하나님의 심판 경고로 시작하는 장입니다. 백성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과 불의에 빠졌으며, 형식적인 제사와 절기는 오히려 하나님께 가증한 것으로 선언됩니다. 하나님은 정의를 행하고 약자를 돌보며 회개하라고 촉구하시고, 순종하면 회복을, 거역하면 멸망을 맞게 될 것을 선포하십니다.


이사야 2장 요약

이사야 2장은 말일에 여호와의 성전 산이 만방 위에 굳게 서고 열방이 그리로 몰려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회복의 비전을 선포합니다. 여호와께서 열국을 심판하시며 전쟁이 그치고 평화가 임할 것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동시에 유다는 우상과 교만으로 가득하여 여호와의 날에 낮아질 것을 경고하며,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여호와의 빛 가운데 행하라고 촉구합니다.


이사야 3장 요약

이사야 3장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과 유다에서 의지하던 모든 버팀목을 거두시고 사회 질서를 무너뜨리실 심판을 선포합니다. 지도자들은 부패하고 백성은 서로 압제하며, 어린 자가 다스리는 혼란이 임할 것을 말합니다. 특히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학대하고 공의를 굽힌 책임을 지도층에 묻고, 교만과 사치에 빠진 시온의 딸들에게 수치와 황폐를 경고하십니다.


이사야 4장 요약

이사야 4장은 심판으로 남은 자들이 극심한 수치를 겪는 현실을 말한 뒤, 여호와께서 시온에 남은 자를 거룩하게 하시고 정결케 하실 회복의 약속을 선포합니다. 그날에 여호와의 싹이 영화롭고 아름다우며, 예루살렘은 씻김과 심판의 영으로 깨끗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시온 위에 구름과 불로 임재하셔서 덮개와 피난처가 되어 주심으로, 보호와 안식이 회복될 것을 보여 줍니다.


이사야 5장 요약

이사야 5장은 포도원의 노래로 시작하여, 하나님이 정성껏 가꾸신 이스라엘이 좋은 열매 대신 들포도를 맺은 배신을 고발합니다. 하나님은 포도원을 황폐케 하시듯 유다를 심판하실 것을 선언하시며, 탐욕과 술취함, 조롱, 도덕 전도, 교만, 불의한 재판 등 여섯 가지 화로 죄악을 구체적으로 드러내십니다. 결국 열방을 도구로 삼아 임할 재앙과 어둠을 경고하십니다.

이사야 6장 요약

이사야 6장은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이사야가 성전에서 거룩하신 여호와의 영광을 보고 소명을 받는 장입니다. 슬압들이 “거룩하다”를 선포하는 가운데 이사야는 자신의 부정함을 깨닫고, 제단 숯불로 죄 사함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백성의 완고함을 드러내는 사명을 맡기시며 심판이 임할 것을 알리시되, 그루터기처럼 남을 거룩한 씨의 소망도 함께 남기십니다.

이사야 7장 요약

이사야 7장은 아람과 북이스라엘의 침공 위기 속에서 아하스 왕이 두려워할 때, 하나님이 믿음으로 서라고 권면하시는 장입니다. 아하스가 표징을 거절하자 여호와께서 친히 ‘임마누엘’ 표징을 주시며,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선포하십니다. 그러나 아하스가 앗수르를 의지한 결과 더 큰 환난이 임할 것을 경고하며, 남은 자만이 보존될 것임을 암시합니다.

이사야 8장 요약

이사야 8장은 앗수르의 급류 같은 침공이 임할 것을 예고하며, 유다의 두려움과 불신을 책망하는 장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동맹과 소문을 두려워하지 말고 여호와만 거룩히 여기라고 명하십니다. 여호와는 믿는 자에게 성소가 되시나, 거역하는 자에게는 걸림돌이 될 것을 선포합니다. 끝으로 어둠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증거와 율법을 붙들라고 촉구합니다.

이사야 9장 요약

이사야 9장은 흑암 가운데 있던 갈릴리 지역에 큰 빛이 비칠 것을 예언하며 구원의 전환을 선포합니다.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나셨고 그의 이름이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이라 불리며, 다윗의 보좌 위에 공의와 정의로 다스릴 것을 말합니다. 동시에 북이스라엘의 교만과 불의를 책망하며, 회개하지 않는 백성 위에 심판이 계속될 것을 반복해 경고합니다.

이사야 10장 요약

이사야 10장은 불의한 법령으로 약자를 압제하는 지도자들에게 화를 선포하며,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을 경고합니다. 또한 앗수르는 하나님의 진노의 막대기지만 교만하여 스스로 높이므로, 하나님께서 결국 앗수르도 꺾으실 것을 선언하십니다. 남은 자가 여호와께 돌아오는 소망이 제시되고, 시온을 위협하던 대적이 하나님의 손에 멸망함으로 두려움이 거둘 것임을 선포합니다.

이사야 11장 요약

이사야 11장은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와 여호와의 영(רוּחַ, 루아흐)으로 충만한 메시아가 공의로 다스릴 것을 예언합니다. 그 통치 아래 약자는 보호받고 악인은 심판받으며,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하는 평화의 질서가 임합니다. 또한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땅에 가득하고, 흩어진 남은 자가 열방에서 돌아오는 회복이 이루어질 것을 선포합니다.

이사야 12장 요약

이사야 12장은 구원의 날에 드릴 감사 찬양을 담은 짧은 찬송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돌이켜 위로가 되었음을 고백하며, 여호와가 나의 힘과 노래와 구원이심을 선포합니다. 백성은 구원의 우물에서 기쁨으로 물을 길으며, 여호와의 행하심을 만방에 알리고 시온에서 크게 찬송하라고 권면합니다.

이사야 13장 요약

이사야 13장은 바벨론에 대한 심판 예언으로 시작하여, 여호와의 날에 임할 두려운 진노를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열방의 군대를 불러 교만한 제국을 치시고, 하늘과 땅이 흔들리는 우주적 공포로 심판을 묘사합니다. 바벨론은 소돔과 고모라처럼 황폐하여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이 될 것이며, 인간의 교만과 잔혹함이 하나님의 공의 앞에 무너짐을 보여 줍니다.

이사야 14장 요약

이사야 14장은 바벨론의 압제에서 이스라엘을 돌이켜 위로하실 회복을 말한 뒤, 바벨론 왕의 몰락을 조롱하는 노래를 전합니다. 교만하여 하늘에 오르려 하던 자가 스올(שְׁאוֹל, 스올)로 떨어지고, 열방이 그 пад함을 보고 놀랄 것을 선포합니다. 또한 블레셋에 대한 경고를 덧붙이며, 시온의 기초는 여호와께 있음을 확인합니다.

이사야 15장 요약

이사야 15장은 모압에 임할 재앙을 애통의 언어로 묘사합니다. 주요 성읍들이 하루아침에 황폐해지고, 모압 전역에 울부짖음과 통곡이 퍼지며 피난길이 이어집니다. 선지자는 모압의 슬픔을 외면하지 않고 깊이 탄식하지만, 동시에 죄와 교만의 결과로 임하는 하나님의 심판이 피할 수 없음을 드러냅니다.

이사야 16장 요약

이사야 16장은 모압에게 시온에 조공을 보내며 보호를 구하라고 권하는 한편, 교만으로 인해 결국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을 선포합니다. 다윗의 장막 위에 인애와 공의로 세워질 보좌의 소망을 비추면서도, 모압의 자랑이 꺾이고 포도 수확의 기쁨이 사라질 것을 예언합니다. 선지자는 모압을 위해 마음 아파하며 탄식하지만, 정하신 때에 재앙이 임함을 분명히 합니다.

이사야 17장 요약

이사야 17장은 다메섹(아람)과 북이스라엘의 쇠망을 예언하며, 그들의 요새와 영광이 사라질 것을 선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심판 가운데서도 이삭 줍듯 남은 자가 남을 것을 말하고, 그들이 마침내 여호와께로 돌아올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반대로 우상과 인간의 손으로 만든 것을 의지하면 황폐가 더해질 뿐임을 경고하며, 열방의 소동도 하나님 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짐을 보여 줍니다.

이사야 18장 요약

이사야 18장은 구스(에티오피아)로 보이는 먼 나라를 향해, 민첩한 사절과 강한 민족의 소동을 언급하며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때가 차기 전까지 조용히 지켜보시다가, 추수 때 가지를 치듯 열방을 처리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결국 그 날에 만군의 여호와께 예물이 시온으로 드려질 것을 말하며, 열방도 하나님께 돌아올 길이 열려 있음을 비춥니다.

이사야 19장 요약

이사야 19장은 애굽에 대한 심판과 회복을 함께 선포합니다. 여호와께서 애굽을 치셔서 내분과 혼란, 경제 붕괴가 임하고 지혜자들의 계략이 어리석게 될 것을 경고하십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애굽이 여호와를 알고 제사하며, 애굽과 앗수르와 이스라엘이 함께 복을 받는 놀라운 화해의 비전을 제시하여, 구원이 열방으로 확장됨을 보여 줍니다.

이사야 20장 요약

이사야 20장은 이사야가 삼 년 동안 벗은 몸과 맨발로 다닌 상징 행위를 통해, 애굽과 구스가 앗수르에 사로잡혀 수치를 당할 것을 예언합니다. 이는 유다가 애굽을 의지하려는 헛된 기대를 깨뜨리는 경고이며, 세상의 힘은 참된 피난처가 될 수 없음을 드러냅니다. 결국 하나님을 떠난 의지처는 부끄러움으로 끝나므로, 여호와만 의뢰해야 함을 가르칩니다.

이사야 21장 요약

이사야 21장은 여러 나라를 향한 경고로, 바벨론의 몰락을 “망대의 파수꾼” 환상으로 선포합니다. “무너졌다”는 선언은 교만한 제국의 종말을 보여 줍니다. 이어 두마(에돔)와 아라비아에 대한 말씀으로, 어둠 속에서 아침을 묻는 자들에게 회개의 촉구가 주어지고, 광야의 피난과 기근의 현실이 드러납니다.

이사야 22장 요약

이사야 22장은 “환상의 골짜기” 예루살렘의 죄를 책망합니다. 위기 속에서도 백성이 회개 대신 잔치와 자기확신에 빠진 것을 꾸짖으시고, 하나님이 요구하신 애통을 거절한 죄를 지적하십니다. 또한 권력자 세브나의 교만을 낮추시고, 엘리아김을 세워 책임 있는 청지기 직분을 맡기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합니다.

이사야 23장 요약

이사야 23장은 해상 무역의 중심인 두로가 무너질 것을 예언합니다. 두로의 영화가 꺾이고 상업의 자랑이 수치로 바뀌며, 열방의 경제 질서가 흔들리는 장면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정한 때가 지난 후 두로가 다시 일어날 수 있으되, 그 이익이 여호와께 드려지는 방향으로 바뀔 것을 암시하며 하나님의 통치가 경제 위에도 미침을 드러냅니다.

이사야 24장 요약

이사야 24장은 땅 전체에 임하는 보편적 심판을 선포하며, 인간의 죄로 창조 질서가 흔들리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땅이 황폐해지고 기쁨이 끊기며, 남은 자만이 여호와를 찬양하게 됩니다. 이 심판은 열방의 교만과 불의를 다루는 여호와의 날을 보여 주며, 하나님이 왕으로 시온에서 영광 가운데 다스리실 것을 결론으로 제시합니다.

이사야 25장 요약

이사야 25장은 심판 뒤에 드러나는 구원의 찬양입니다. 하나님께서 교만한 성읍을 무너뜨리시고 가난한 자의 피난처가 되어 주심을 고백합니다. 또한 시온에서 만민을 위한 잔치를 베푸시고, 사망을 영원히 멸하시며 눈물을 씻기실 것을 선포합니다. 백성은 “우리가 기다리던 여호와”를 찬송하며 구원의 기쁨을 누립니다.

이사야 26장 요약

이사야 26장은 구원받은 공동체의 노래로, 견고한 성읍과 여호와를 신뢰하는 삶을 찬양합니다. 마음을 주께 두는 자에게 “완전한 평강”을 주신다고 선포하며, 교만한 자는 낮아지고 의인은 주의 길을 기다린다고 고백합니다. 또한 환난 속에서도 여호와께 부르짖는 믿음을 보여 주고, 마침내 주께서 죽은 자를 살리실 소망을 비춥니다.

이사야 27장 요약

이사야 27장은 여호와께서 리워야단을 벌하시고 악의 권세를 꺾으실 것을 선포합니다. 이어 이스라엘을 “포도원”으로 다시 가꾸시는 보호의 약속이 나오며, 징계는 멸절이 아니라 정결케 함임을 드러냅니다. 우상과 죄가 제거될 때 야곱의 죄가 속함을 받게 되고, 흩어진 자들이 큰 나팔 소리에 돌아와 예루살렘에서 여호와께 예배할 회복을 말합니다.

이사야 28장 요약

이사야 28장은 에브라임의 교만과 술 취한 지도자들을 책망하며, 그들의 영화가 시들 것을 경고합니다. 예루살렘 지도자들도 거짓 안전을 의지하므로 심판이 임할 것이라 선포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온에 시험한 돌, 귀한 모퉁잇돌을 두신다고 약속하시며, 믿는 자는 급절하지 않을 것을 말씀하십니다. 징계 속에서도 하나님의 지혜로운 농부 같은 다스림이 강조됩니다.

이사야 29장 요약

이사야 29장은 예루살렘을 아리엘이라 부르며 심판과 회복을 함께 선포합니다. 성읍이 낮아지고 대적이 둘러싸나,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대적의 계획을 헛되게 하실 것을 말합니다. 또한 백성의 영적 무지와 위선적 예배를 꾸짖으며, 입술은 가까우나 마음은 먼 죄를 드러냅니다. 마지막에는 눈과 귀가 열리고 겸손한 자가 기뻐하는 회복을 약속합니다.

이사야 30장 요약

이사야 30장은 애굽을 의지하는 반역을 “화”로 책망하며, 사람의 힘이 아닌 여호와를 구하라고 촉구합니다. 참된 구원은 “돌이켜 안연히” 주를 신뢰하는 데 있으나, 백성은 빠른 말에 의지하다 더 큰 두려움을 맞습니다. 그러나 여호와는 은혜 베푸시려고 기다리시는 분으로, 회개하는 자에게 길을 가르치시고 회복을 주십니다. 끝으로 앗수르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무너질 것을 선포합니다.

이사야 31장 요약

이사야 31장은 애굽의 말과 병거를 의지하고 여호와를 찾지 않는 유다에게 “화”를 선포합니다. 애굽은 사람이며 그 힘은 육체일 뿐이므로, 의지하는 자와 돕는 자가 함께 넘어질 것을 경고합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사자와 새의 비유처럼 시온을 지키시며 보호하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그러므로 우상을 버리고 여호와께 돌아오면, 앗수르는 사람의 칼이 아닌 하나님의 심판으로 무너질 것을 선포합니다.

이사야 32장 요약

이사야 32장은 의로 통치하는 왕과 공평으로 다스리는 지도자들 아래서 새 질서가 세워질 것을 말합니다. 그 통치는 피난처와 그늘처럼 백성을 살리고, 눈과 귀와 마음의 분별이 회복되게 합니다. 반대로 안일한 자들의 방심은 황폐를 부르며 회개를 촉구합니다. 마침내 위로부터 성령(רוּחַ, 루아흐)이 부어지면 광야가 옥토가 되고, 공의와 의의 열매로 화평과 안전이 임할 것을 약속합니다.

이사야 33장 요약

이사야 33장은 약탈자와 배신자에게 “화”를 선포하며, 그들이 행한 대로 심판을 받을 것을 말합니다. 시온은 “여호와여 은혜를 베푸소서”라고 간구하고, 하나님은 때가 되어 일어나 대적을 꺾으십니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시대의 보배이며, 의롭게 사는 자만이 거룩한 불 앞에 거할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끝으로 여호와가 재판장·율법 제정자·왕이 되셔서 시온을 구원하시고 죄 사함과 회복의 평안을 주심을 선포합니다.

이사야 34장 요약

이사야 34장은 열방을 향한 보편적 심판을 에돔을 대표로 선포하며, 여호와의 진노와 보복의 날을 강렬한 이미지로 묘사합니다. 하늘이 두루마리처럼 말리고 땅이 불과 유황으로 황폐해지는 우주적 심판이 나타납니다. 에돔은 제사처럼 도살당하는 심판을 받고, 그 땅은 짐승의 거처가 되어 영구한 황무지가 됩니다. 끝으로 “여호와의 책”을 들어 말씀이 반드시 성취됨을 확증합니다.

이사야 35장 요약

이사야 35장은 광야와 사막이 꽃피는 회복의 환상을 통해 구원의 기쁨을 선포합니다. 약한 손과 떨리는 무릎을 강하게 하며, 하나님이 오셔서 보복하시고 구원하실 것을 말합니다. 소경이 보고 귀먹은 자가 들으며 저는 자가 뛰는 치유가 나타나고, 거룩한 대로가 열려 구속받은 자들이 시온으로 돌아옵니다. 슬픔과 탄식은 사라지고 영원한 기쁨이 임하는 회복을 약속합니다.

이사야 36장 요약

이사야 36장은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위협하는 역사적 사건을 기록합니다. 랍사게는 히스기야의 신뢰를 흔들며, 애굽의 도움은 헛되다고 조롱하고 여호와께서도 구원하지 못할 것이라 모독합니다. 그는 히브리 말로 백성을 두렵게 하여 항복을 유도하지만, 히스기야의 신하들은 왕의 명령대로 침묵합니다. 위기는 극에 달하고, 이제 신앙의 선택이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이 펼쳐집니다.

이사야 37장 요약

이사야 37장은 히스기야가 랍사게의 모독을 듣고 여호와께 나아가 기도하며, 이사야를 통해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 장입니다. 하나님은 앗수르의 교만을 꾸짖고 예루살렘을 보호하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히스기야는 편지를 성전에 펴놓고 여호와만 참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며 구원을 구합니다. 결국 여호와의 사자가 앗수르 군을 치고 산헤립은 물러가며, 하나님의 열심이 구원을 이루심이 드러납니다.

이사야 38장 요약

이사야 38장은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을 상황에서 하나님께 눈물로 간구하고, 수명이 연장되는 은혜를 받는 장입니다. 여호와는 표징으로 해시계의 그림자를 물러가게 하시며 약속을 확증하십니다. 히스기야는 자신의 연약함과 하나님의 구원을 회상하는 감사의 시를 남기고, 살아 있는 자가 여호와를 찬양한다고 고백합니다. 이는 생명이 하나님의 손에 있으며, 고난이 믿음을 새롭게 하는 통로임을 보여 줍니다.

이사야 39장 요약

이사야 39장은 바벨론 사신들이 히스기야를 방문했을 때, 히스기야가 보물과 무기고를 자랑한 사건을 다룹니다. 이사야는 그 교만과 방심을 책망하며, 장차 그 모든 것이 바벨론으로 옮겨지고 왕의 자손이 포로가 될 것을 예언합니다. 히스기야는 말씀이 옳다고 인정하면서도, 당대에 평안이 있을 것을 말하는데, 이는 인간의 한계와 시대적 과제를 남깁니다. 다음 장부터 위로의 메시지로 전환되는 중요한 연결점이 됩니다.

이사야 40장 요약

이사야 40장은 “너희는 위로하라”는 선언으로 시작하여 포로 된 백성에게 하나님의 위로와 새 출발을 선포합니다. 광야에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는 외침과 함께,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것을 말합니다. 사람은 풀 같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며, 하나님은 목자처럼 양을 품으시는 분으로 묘사됩니다. 또한 창조주 여호와의 위대하심을 강조하며, 그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어 독수리처럼 올라갈 것을 약속합니다.

이사야 41장 요약

이사야 41장은 열방을 법정으로 부르며 여호와께서 역사를 주관하심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동방에서 한 사람을 일으켜 나라들을 다스리게 하시며, 우상들은 무력함이 드러납니다. 동시에 이스라엘을 “내 종”으로 택하셔서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고, 함께하여 붙들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광야에 물을 내고 메마른 땅을 변화시키시는 회복의 은혜로, 여호와만 참 하나님이심을 확증하십니다.

이사야 42장 요약

이사야 42장은 여호와의 종이 공의(מִשְׁפָּט, 미쉬파트)를 세우며 온유하게 사명을 이루는 모습을 예언합니다. 그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며, 열방의 빛과 언약이 됩니다. 하나님은 우상에게 영광을 주지 않으시고 새 일을 행하신다고 선언하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해 책망을 받으며, 회개가 필요함을 드러냅니다.

이사야 43장 요약

이사야 43장은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시작하여,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창조하고 구속하신 분임을 강조합니다. 물과 불 가운데서도 함께하시며, 백성을 열방에서 모아 돌아오게 하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증인이며, 오직 여호와만 구원자이심을 선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형식적 신앙과 죄를 책망하시면서도, 자기 이름을 위하여 허물을 도말하시고 새 길을 여시는 은혜를 약속하십니다.

이사야 44장 요약

이사야 44장은 야곱을 택하신 하나님이 성령(רוּחַ, 루아흐)을 부어 메마른 땅을 적시듯 새 생명을 주실 것을 약속합니다. 여호와만이 처음이요 마지막이며, 우상은 사람이 만들어 섬기는 헛것임을 조롱하며 드러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를 구름처럼 도말하셨으니 돌아오라고 부르십니다. 또한 고레스를 들어 예루살렘과 성전을 회복하게 하실 것을 말하며, 구원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확증합니다.

이사야 45장 요약

이사야 45장은 여호와께서 고레스에게 기름을 부어 열방을 열고 포로를 돌려보내게 하시는 계획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여호와요 다른 신이 없으며, 빛과 어둠과 평안과 환난까지 주관하심을 선언하십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은 하나님의 창조주 권리와 주권에서 나오며, 우상 숭배의 헛됨이 폭로됩니다. 끝으로 땅 끝까지 여호와께로 돌아와 구원을 얻으라 하시며, 모든 무릎이 여호와께 꿇게 될 것을 선포합니다.

이사야 46장 요약

이사야 46장은 바벨론의 신 벨과 느보가 짐승에 실려 끌려가는 모습으로 우상의 무력함을 보여 줍니다. 반대로 여호와는 이스라엘을 태에서부터 품고 늙을 때까지 업으시는 하나님이심을 선언하십니다. 우상은 사람이 만들고 운반해야 하지만, 하나님은 친히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끝을 처음부터 알리시며 뜻을 반드시 이루시므로, 완악한 마음을 버리고 하나님의 구원을 신뢰하라고 권면합니다.

이사야 47장 요약

이사야 47장은 “처녀 딸 바벨론”의 교만과 사치를 책망하며, 수치와 굴욕의 심판을 선포합니다. 바벨론은 자신을 영원한 여주인이라 여기고 “나는 있고 다른 이가 없다”고 자만했으나, 하루아침에 재앙과 상실이 임할 것을 경고받습니다. 점술과 주술에 의지하던 지혜가 무너지고, 불처럼 심판이 덮칠 때 아무도 구하지 못합니다. 이는 하나님만이 참 주권자이심을 드러내는 장입니다.

이사야 48장 요약

이사야 48장은 이스라엘이 입술로는 여호와를 부르나 마음은 완고한 위선을 책망합니다. 하나님은 이전부터 미래를 알리신 이유가 우상에게 영광이 돌아가지 않게 하려는 것임을 밝히십니다. 그러나 자기 이름을 위하여 진노를 더디 하시고, 연단을 통해 백성을 정결케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는 새 일을 선포하시며 바벨론에서 나와 구원을 노래하라 하시고,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음을 경고합니다.

이사야 49장 요약

이사야 49장은 여호와의 종이 태에서부터 부르심을 받아 이스라엘을 돌아오게 하고, 더 나아가 열방의 빛이 되어 구원을 땅 끝까지 이르게 할 것을 선포합니다. 시온이 버림받았다고 탄식하나, 하나님은 어머니가 자식을 잊지 못하듯 시온을 잊지 않으신다고 위로하십니다. 하나님은 포로를 해방시키고 대적을 심판하시며, 열방이 시온의 자녀를 안고 돌아오는 회복을 약속하십니다.

이사야 50장 요약

이사야 50장은 이스라엘의 버림이 하나님의 무능이 아니라 죄와 불순종 때문임을 밝히며, 여호와의 구원 능력이 여전히 강하심을 선포합니다. 이어 여호와의 종이 매를 맞고 모욕을 당해도 얼굴을 돌리지 않으며, 하나님이 도우시기에 수치를 당하지 않는 순종을 보여 줍니다. 어둠 가운데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라고 권면합니다. 반대로 자기 불로 스스로 길을 밝히는 자는 고통을 얻을 것을 경고합니다.


이사야 51장 요약

이사야 51장은 의를 따르고 여호와를 찾는 자들에게 아브라함과 사라를 기억하라고 권면하며, 적은 자를 통해 큰 민족을 이루신 하나님을 신뢰하라 합니다. 여호와의 구원이 가까이 왔고 그의 의가 영원히 설 것을 선포합니다. 또한 “깰지어다”라는 호소로 시온을 위로하시며, 두려움 대신 창조주를 바라보라고 촉구합니다. 예루살렘은 진노의 잔을 마셨으나, 하나님이 그 잔을 대적에게 옮기시고 회복을 주실 것을 약속합니다.

이사야 52장 요약

이사야 52장은 시온이 깨어 아름다운 옷을 입고 포로의 사슬을 풀라는 회복의 선포로 시작합니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값없이 구속하실 것이며,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의 발이 아름답다고 노래합니다. 예루살렘의 파수꾼들이 함께 기뻐하고, 여호와의 거룩한 팔이 열방 앞에 나타나 구원이 땅 끝까지 미칠 것을 말합니다. 마지막은 여호와의 종이 높아질 것이나 많은 이들이 놀랄 만큼 고난을 당할 것을 예고합니다.

이사야 53장 요약

이사야 53장은 고난받는 여호와의 종이 멸시와 버림을 받으나, 우리의 질고와 죄를 대신 지고 찔림과 상함을 당하는 대속의 비밀을 선포합니다. 우리는 그를 하나님께 맞은 자로 여겼으나, 그의 고난은 우리의 허물과 죄악 때문임을 밝힙니다. 그는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잠잠히 순종하고, 악인과 함께 죽임을 당하나 부자의 묘실에 안장됩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생명을 속건제로 삼으시고, 그가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결국 승리를 나눌 것을 약속합니다.

이사야 54장 요약

이사야 54장은 고난 뒤에 임할 시온의 회복을 “잉태하지 못하던 여인”의 기쁨으로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잠시 버렸으나 큰 긍휼로 다시 모으시고, 영원한 인애로 언약을 세우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시온은 보석처럼 견고히 세워지고 자녀들이 여호와께 가르침을 받아 큰 평안을 누릴 것입니다. 또한 어떤 무기가 시온을 해치지 못하며, 하나님이 의롭게 하시는 종들의 기업이 안전함을 선언합니다.

이사야 55장 요약

이사야 55장은 목마른 자와 돈 없는 자에게 값없이 와서 먹고 마시라 하시는 은혜의 초청입니다. 여호와께로 돌아오면 풍성히 용서하시며, 하나님의 길과 생각이 사람과 다름을 선포합니다. 말씀은 비와 눈처럼 내려 헛되이 돌아가지 않고 뜻을 이루며, 백성은 기쁨으로 인도함을 받고 평강 가운데 나아갈 것입니다. 가시나무 대신 잣나무가 자라듯 새 창조의 열매가 나타나고, 이는 여호와의 영원한 표징이 됩니다.

이사야 56장 요약

이사야 56장은 공의를 지키고 의를 행하라고 촉구하며, 하나님의 구원이 가까움을 선포합니다. 이방인과 고자도 여호와의 언약을 붙들면 하나님의 집에서 기쁨과 이름을 얻고,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될 것이라 약속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무지하고 탐욕스러워 공동체를 해치므로 책망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흩어진 자를 더 모으시겠지만, 지도자들의 타락은 심판을 부른다고 경고합니다.

이사야 57장 요약

이사야 57장은 의인이 죽어도 악인이 깨닫지 못하는 현실을 말하며, 우상숭배와 음행 같은 영적 배교를 강하게 책망합니다. 이스라엘은 높은 산과 길에서 우상을 찾고, 왕과 동맹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잊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높고 거룩한 곳에 계시면서도 마음이 상하고 겸손한 자와 함께하셔서 소생케 하십니다. 하나님은 돌이키는 자에게 평강을 주시되,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음을 선언합니다.

이사야 58장 요약

이사야 58장은 금식과 예배의 형식은 갖추었으나 불의와 억압을 멈추지 않는 위선을 책망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고 압제받는 자를 자유케 하며, 굶주린 자를 먹이고 헐벗은 자를 입히는 자비라고 선포합니다. 그렇게 행하면 빛이 비치고 상처가 낫고, 여호와께서 응답하실 것입니다. 또한 안식일을 즐거움으로 지키며 여호와를 기뻐하면 높임과 기업의 복을 누릴 것이라 약속합니다.

이사야 59장 요약

이사야 59장은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 못하심이 아니라, 백성의 죄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로막았음을 밝힙니다. 폭력과 거짓, 불의가 가득해 공의가 멀리 있고 진리가 넘어졌다고 탄식합니다. 하나님은 중재자가 없음을 보시고 친히 구원의 옷을 입고 보복과 구원을 행하십니다. 구속자가 시온에 임하고, 여호와의 영(רוּחַ, 루아흐)과 말씀의 언약이 대대로 떠나지 않을 것을 약속합니다.

이사야 60장 요약

이사야 60장은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는 선언으로 시온의 영광을 노래합니다. 어둠이 땅을 덮어도 여호와의 영광이 시온 위에 임하고, 열방과 왕들이 그 빛으로 나아올 것입니다. 금과 유향이 들어오고 성읍이 재건되며, 대적도 섬기게 되는 회복이 선포됩니다. 여호와가 영원한 빛이 되고 슬픔이 끝나며, 작은 자가 강한 나라가 되는 번성의 약속으로 마칩니다.

이사야 61장 요약

이사야 61장은 여호와의 영(רוּחַ, 루아흐)이 임한 기름부음 받은 자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마음 상한 자를 싸매며, 포로 된 자의 자유와 갇힌 자의 놓임을 선포하는 장입니다. 이는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이 함께 임한다는 선언이며, 애통하는 자에게 재 대신 화관, 슬픔 대신 기쁨의 기름을 주십니다. 시온의 무너진 터가 다시 세워지고 백성은 의의 나무라 불리며, 하나님이 주신 구원과 의가 새 옷처럼 열방 앞에 찬연히 나타나 하나님 영광을 증언합니다.

이사야 62장 요약

이사야 62장은 시온의 의가 빛같이, 그 구원이 횃불같이 나타날 때까지 여호와께서 잠잠하지 않으시겠다고 선언하는 장입니다. 예루살렘은 새 이름을 받고, ‘버림받은 자’가 아니라 ‘기쁨이 되는 자’로 불리며, 여호와께서 신랑이 신부를 기뻐하듯 시온을 기뻐하십니다. 성벽 위 파수꾼들은 밤낮 쉬지 않고 하나님께 기억시키며, 길을 돋우고 돌을 제해 백성의 돌아올 길을 예비하라고 외칩니다. 또한 다시는 곡식과 포도주가 원수의 먹이가 되지 않게 하시고, 수고한 열매를 여호와 앞에서 기쁨으로 누리게 하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이사야 63장 요약

이사야 63장은 에돔과 보스라에서 붉은 옷을 입고 오는 분의 환상으로 시작하여, 여호와의 보복과 심판이 포도즙 틀을 밟는 것처럼 단호하게 이루어짐을 선포합니다. 누구도 함께하지 못할 때 여호와 홀로 원수를 밟아 피가 옷에 튄다고 말하며 공의의 엄중함을 드러냅니다. 이어 선지자는 출애굽과 광야에서 베푸신 인자와 긍휼을 회상하고, 백성이 성령을 근심하게 한 죄를 고백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로 부르며, 백성을 다시 이끄시는 자비와 구속의 팔을 나타내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사야 64장 요약

이사야 64장은 하나님께서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셔서 산이 진동하고 대적이 떨게 되기를 구하는 탄원으로 시작합니다. 백성은 오래된 죄로 인해 더러워졌고, 우리의 의는 더러운 옷과 같으며, 바람에 날리는 잎처럼 죄악에 휩쓸렸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을 부르는 자가 드문 현실 속에서 주께서 얼굴을 숨기신 이유가 우리의 죄임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토기장이요 우리는 진흙이니, 진노를 오래 품지 마시고 언약 백성을 기억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황폐한 시온과 성소의 회복을 애통 가운데 구합니다.

이사야 65장 요약

이사야 65장은 하나님이 찾지 않던 자들에게까지 자신을 나타내셨으나, 이스라엘은 완고하게 자기 길을 따르고 우상과 가증한 풍속을 즐겼음을 책망하는 장입니다. 하나님은 남은 자를 남겨 종들에게는 기쁨과 평안을 주시되, 배반한 자에게는 칼과 기근의 심판을 선포하십니다. 백성의 자랑과 자기의가 헛되었음이 드러나고, 종들과 반역자들의 운명이 갈라집니다. 그러나 결말에서 여호와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고, 예루살렘을 기쁨으로 삼아 눈물과 애곡이 그치며 평화가 충만한 새 창조의 삶을 약속하십니다.

이사야 66장 요약

이사야 66장은 하늘은 하나님의 보좌요 땅은 발등상이라 선포하며, 형식적 제사보다 마음이 가난하고 말씀에 떠는 자를 기뻐하신다고 밝힙니다. 스스로 택한 길을 즐긴 자들의 예배는 가증하다 하시고, 박해하던 자들은 수치를 당할 것을 경고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을 놀랍게 회복시키셔서 해산의 비유처럼 갑작스런 구원이 임하고, 어머니가 자식을 위로하듯 예루살렘이 위로를 받습니다. 또한 열방을 모아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시고 그들 가운데서 제사장과 레위를 세우실 것을 말합니다. 끝으로 악인의 심판과 의인의 영원한 예배가 대비됩니다.

이사야 34장 주해 및 묵상

 

이사야 34장 주해 및 묵상

이사야 34장은 열방을 향한 보편적 심판 선언을 에돔을 대표 사례로 집중 조명하며, 여호와의 ‘보복의 날’과 ‘신원(伸寃)의 해’를 통해 하나님의 공의가 역사 속에서 반드시 실현됨을 선포하는 장입니다. 창조 질서가 뒤집히는 우주적 이미지, 피의 제사처럼 묘사되는 심판, 그리고 황폐가 영구히 지속되는 땅의 풍경이 결합되어 종말론적 긴장을 형성합니다. 동시에 “여호와의 책”이라는 확증 장치를 통해 이 경고가 단순한 수사(修辭)가 아니라 언약적 말씀의 성취임을 강조합니다.

34장 구조 분석

  • 열방 소환과 여호와의 진노 선언 (1–4절)

  • 에돔·보스라를 향한 제사적 심판 (5–10절)

  • 황폐의 상징과 창조 질서의 전복, 짐승의 거처가 된 땅 (11–15절)

  • 여호와의 책과 성취의 확증, 기업 분배의 선언 (16–17절)

열방 소환과 여호와의 진노 선언 (1–4절)

이사야 34장은 “너희 열국이여 가까이 와서 들으라”는 부름으로 시작합니다. 이는 단지 유다 주변 국가들만이 아니라, ‘땅과 그 안에 충만한 것’까지 소환하는 보편적 법정 장면입니다. 선지자적 언어에서 이런 소환은 여호와께서 역사의 주재자이시며, 어떤 민족도 그분의 공의로운 심판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선언과 같습니다. 당시 유다의 현실은 강대국의 압박 속에서 흔들리고 있었고, 백성은 눈에 보이는 군사력과 외교 동맹에 기대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이 장은 시선을 단숨에 “열방 전체”로 확장시키며, 인간 정치의 판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의 무대에서 역사를 보도록 이끕니다.

2절에서 여호와의 ‘진노’와 ‘분노’가 열국 위에 임한다고 말할 때, 이는 감정의 폭발로서의 분노가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이 악을 그냥 두지 않으시는 언약적 공의의 발현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히브리어로 진노를 표현하는 말은 문맥에 따라 코가 달아오르는 형상적 표현을 포함하지만, 성경 전체의 흐름에서 하나님의 진노는 변덕이 아니라 죄에 대한 일관된 반응입니다. 특히 이사야서에서 진노는 우상숭배, 폭력, 교만, 불의에 대한 하나님의 ‘정당한 거절’이며, 동시에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 주시는 신원 행위와 연결됩니다.

3절의 “죽임을 당한 자의 시체”와 “악취”, “피가 산에 녹음”이라는 표현은 충격적입니다. 선지자는 일부러 이 언어를 정제하지 않습니다. 전쟁과 폭력이 낭만적으로 미화될 때, 하나님은 그 실상을 드러내십니다. 이 대목은 심판의 언어이지만 동시에 인간의 죄가 만들어 낸 현실의 민낯을 보여 줍니다. 교부들 가운데 예로니무스(Jerome)는 이런 강렬한 이미지가 문자적 사건을 넘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교만이 결국 썩어 사라지는 운명을 상징한다고 보았습니다. 문자적 참상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참상이 가리키는 영적 실재—죄의 결말—를 더 깊이 읽으려는 시도입니다.

4절에서 하늘의 만상이 사라지고 하늘이 두루마리처럼 말린다는 우주적 표현이 등장합니다. 이는 단순한 과장이 아니라, 하나님 심판의 범위가 정치적 사건을 넘어 ‘창조 질서’에까지 닿는다는 종말론적 언어입니다. 이사야는 심판을 ‘부분적 사건’으로 축소하지 않고, 하나님과 피조 세계의 관계가 재정렬되는 사건으로 묘사합니다. 신약의 묵시문학(예: 베드로후서의 불 심판, 요한계시록의 하늘 땅의 변동)도 이런 구약적 상징을 이어받습니다. 결국 이 본문은 “역사의 마지막 말은 제국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다”는 진술로 우리를 세웁니다.

이 첫 단락이 다음 단락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열방 전체를 향한 법정 선고가 내려졌다면, 이제 그 선고가 구체적으로 어떤 표본을 통해 드러나는지를 보여 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5절부터는 에돔이 심판의 대표 무대가 됩니다.

에돔·보스라를 향한 제사적 심판 (5–10절)

5절은 “내 칼이 하늘에서 흡족하게 마셨은즉”이라는 독특한 표현으로 시작합니다. 칼이 ‘마신다’는 의인화는 심판이 우연히 흘러나온 폭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정하신 판결이 실행되는 장면임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그 칼이 “에돔 위에” 내려온다고 말합니다. 에돔은 역사적으로 야곱(이스라엘)과 형제 관계인 에서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으며, 여러 시기에 걸쳐 이스라엘을 대적하거나 기회를 틈타 조롱했던 전통이 축적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에돔은 단지 한 나라의 이름이 아니라, ‘형제됨을 배반한 적대’와 ‘언약 백성을 조롱하는 교만’의 상징으로 확대됩니다. 개혁주의 전통에서 에돔을 단순히 민족 혐오로 읽기보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간 교만의 대표 표상으로 읽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6절은 보스라에서의 큰 도살을 말하며, 심판을 제사적 언어로 묘사합니다. “여호와께 제사가” 있고 “큰 도살이” 있다고 할 때, 이는 하나님께서 피 흘림을 즐기신다는 뜻이 아니라, 죄에 대한 심판이 거룩한 재판의 집행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상징입니다. 구약에서 제사는 죄의 심각성과 대속의 필요를 드러냅니다. 그런데 이 본문에서는 ‘대속 제사’가 아니라 ‘심판의 제사’처럼 묘사됩니다. 죄가 회개로 정결케 되지 않을 때, 그 죄는 심판의 자리에서 폭로되고 끊어집니다.

칼빈은 예언서의 이런 본문을 다룰 때, 하나님이 잔인하셔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의로우시기 때문에 심판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합니다. 특히 하나님은 언약 백성의 억울함을 외면하지 않으시며, 악을 ‘그대로 두는 관용’이 아니라 ‘반드시 바로잡는 공의’로 역사하십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공의는 단지 처벌의 공의만이 아니라, 세계가 바르게 서도록 하는 창조적 공의입니다.

7절에서 들소와 수송아지가 함께 엎드러진다는 묘사는, 강하고 거칠어 보이던 권세가 한순간에 무력해지는 장면을 상징합니다. ‘강함’은 인간이 가장 쉽게 우상화하는 가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강함 자체를 미워하시는 분이 아니라, 강함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교만으로 변질될 때 그것을 꺾으시는 분입니다.

8절은 이사야 34장의 신학적 중심을 분명히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보복하시는 날이요, 시온의 송사를 위하여 신원하시는 해”라는 선언입니다. 여기서 ‘보복’은 감정적 복수가 아니라, 히브리어 נקם(나캄, naqam)의 영역으로, ‘정의를 회복하기 위한 보상과 판결’의 의미가 강합니다. 또한 ‘신원’은 억울함을 풀어주고 권리를 세워주는 행위입니다. 즉 심판은 악인을 무너뜨리는 동시에, 피해자를 회복시키는 사건입니다. 이 구절을 붙잡으면, 34장의 강렬함이 단지 공포로만 읽히지 않고, 억눌린 자에게는 하나님의 공의가 드디어 움직인다는 소망으로 들립니다.

9–10절은 에돔의 강과 티끌이 유황과 불로 변해 밤낮 타며 연기가 영원히 올라가고, 대대로 황무하여 지나갈 자가 없다고 말합니다. 이 표현은 역사적 심판을 넘어 ‘영구적 황폐’라는 상징으로 확장됩니다. 교부 오리겐(Origen)은 예언서의 ‘불’ 이미지를 단순 물질 불로만 고정하기보다, 하나님 앞에서 죄가 견딜 수 없는 상태로 드러나는 영적 실재로도 읽었습니다. 물론 문자적 역사성(전쟁과 황폐)을 부정하지 않되, 그 사건이 가리키는 궁극의 메시지—하나님께서 악을 영원한 집으로 삼게 두지 않으신다는 점—을 함께 보려는 해석입니다.

이제 본문은 한 민족의 심판을 넘어, 황폐가 어떤 모습으로 지속되는지, 곧 ‘하나님 없는 땅’이 어떤 세계가 되는지를 더 구체적인 풍경으로 보여 줍니다. 11절부터는 에돔이 인간의 거처에서 짐승의 거처로 바뀌는 장면이 이어집니다.

황폐의 상징과 창조 질서의 전복, 짐승의 거처가 된 땅 (11–15절)

11절은 “당아새와 고슴도치가 그 땅을 차지하며 부엉이와 까마귀가 거기 거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짐승 목록’ 자체보다, 그 목록이 상징하는 세계의 전도입니다. 도시와 문명이 무너지고, 사람이 떠나고, 폐허에 밤의 새와 광야의 존재들이 깃듭니다. 창조 질서의 상징이 뒤집히는 장면입니다. 특히 11절은 “혼돈의 줄”과 “공허의 추”를 언급하는데, 이는 창세기 1장의 ‘혼돈과 공허’를 연상시키는 표현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질서를 세우신 창조 세계가 죄와 심판 앞에서 다시 ‘혼돈’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이미지입니다. 즉 심판은 단지 건물의 붕괴가 아니라, 하나님을 거부한 세계가 결국 ‘창조 이전의 무질서’로 스스로 후퇴하는 사건입니다.

12절에서 “귀인들도 나라를 다스릴 것이 없고 방백들도 없어질 것”이라고 말할 때, 이는 정치 체제의 붕괴를 뜻합니다. 권력의 공백은 단지 행정의 문제만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세운 ‘자기보장’이 해체되는 자리입니다. 이사야 32–33장에서 시온의 안전이 여호와의 통치에 달려 있음을 보았다면, 34장에서는 하나님 없이 세운 통치는 결국 사라지고 땅이 황폐해진다는 대비가 분명해집니다.

13절의 찔레와 가시, 엉겅퀴의 번성은 에덴의 저주(땅이 가시덤불을 낸다)를 연상시킵니다. 죄의 결과는 인간의 내면에만 머무르지 않고, 관계와 사회와 환경 전반에 “가시”를 자라게 합니다. 선지자는 이를 자연 풍경으로 그려, 죄의 결과가 얼마나 전면적인지 체감하게 합니다.

14–15절은 “들짐승이 이리와 만나고, 숫염소가 제 짝을 부르며, 올빼미가 거기 쉬고” 등 더 강렬한 황야의 이미지를 제시합니다. 이 대목은 고대 근동에서 사람들이 두려워하던 ‘무주공산’의 상징을 통해, 하나님을 떠난 땅이 얼마나 살 수 없는 자리로 변하는지 드러냅니다. 동시에 이것은 단지 물리적 공포를 조장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없는 번영의 허상을 깨는 목적을 가집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버리면 ‘자유’가 확장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의 질서가 무너져 두려움이 번성합니다.

개혁주의 관점에서 이 단락은 “하나님의 일반 은총(일반적인 유지와 질서)이 거두어질 때 세계가 얼마나 빠르게 붕괴하는가”를 보여 주는 텍스트로도 읽힙니다. 하나님은 악인에게도 햇빛과 비를 주시며 사회 질서를 일정 부분 유지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그 질서가 영원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교만이 끝까지 고집될 때, 하나님은 그 거짓 안전을 무너뜨리시고, 인간이 스스로 만든 세계의 토대가 얼마나 취약한지 드러내십니다.

이제 이사야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모든 경고가 ‘예언자의 과장’이나 ‘정치적 선전’이 아니라는 점을 확증합니다. 그래서 16–17절에서 “여호와의 책”이 등장합니다.

여호와의 책과 성취의 확증, 기업 분배의 선언 (16–17절)

16절은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찾아 읽어 보라”고 말합니다. 이 표현은 예언이 ‘즉흥적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록된 뜻과 일치한다는 확증을 제공합니다. 여기서 ‘책’은 문자적 문서만을 의미한다기보다, 하나님 말씀의 확정성과 신실하심을 상징합니다. “이것들 가운데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라는 말은, 심판의 세부까지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는 뜻입니다. 즉 역사에는 우연처럼 보이는 사건들이 많지만, 하나님 말씀은 그 우연을 관통하는 통치의 선을 가지고 있습니다.

17절은 “여호와께서 그것들을 위하여 제비를 뽑으시며 그의 손으로 줄을 띠어 그것들을 나누어 주셨으니”라고 말합니다. 이는 땅을 기업으로 분배하는 언어를 심판 장면에 적용한 것입니다. 원래 기업 분배는 은혜의 언어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황폐의 자리마저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배분’하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선한 땅도, 심판의 땅도 모두 주권 아래 두십니다. 이것이 두려움이면서 동시에 위로가 됩니다. 두려움인 이유는 우리가 숨겨 둔 죄도 하나님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위로인 이유는 우리를 흔드는 대적과 세상의 폭력도 하나님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교부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는 성경의 심판 본문을 읽을 때, 하나님이 악을 즉시 제거하지 않으시는 기간이 우리에게 회개의 시간을 주는 자비이기도 하며, 동시에 마지막에는 공의가 반드시 드러난다는 사실이 성도의 소망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사야 34장은 바로 그 두 축을 함께 세웁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되, 공의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대의 불의가 계속되는 것처럼 보여도 절망하지 않고, 또한 하나님의 인내를 ‘무기한 유예’로 오해하며 방심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이사야 34장을 그리스도 중심으로 읽을 때, 심판의 제사적 언어는 궁극적으로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 그리고 그 죄가 해결되지 않을 때 어떤 파국을 낳는지 보여 줍니다. 동시에 복음은 그 심판을 가볍게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심판이 마땅히 임해야 할 자리에 대속의 길이 열렸음을 선포합니다. 그렇다고 이 본문이 곧바로 ‘모든 심판이 사라졌다’로 정리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공의가 십자가에서 가장 깊이 드러났기에, 이제 우리는 그 공의를 가볍게 여기지 않고 회개와 경외로 응답해야 합니다.

마무리

이사야 34장은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보편적 심판을 에돔의 황폐라는 강렬한 상징으로 드러내며, “보복의 날”과 “신원의 해”가 반드시 온다는 사실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교만은 결국 창조 질서가 무너지는 혼돈으로 되돌아가지만, 그 과정조차 여호와의 말씀 아래 있습니다. 이 장은 우리에게 세상의 폭력과 불의가 마지막 결론이 아님을 가르치며, 동시에 하나님의 인내를 가볍게 여기는 방심을 경고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대의 소란 속에서도 여호와의 말씀을 붙들고, 공의와 거룩 앞에 겸손히 서며, 하나님이 이루실 최종적 정의를 소망 가운데 기다리는 삶으로 부름받습니다.


은혜로운 주일 대표기도문 모음

주일 대표기도문 모음

계절을 따라 상황에 맞는 기도문을 찾아서 주일 대표기도문을 작성했습니다. 문학적인 문장과 교리적이고 전통적인 기도 제목을 넣어서 은혜로운 기도문으로 작성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높으심을 찬양합니다. 모든 기도자들에게 은혜가 넘치기를 원합니다.


1월 주일 대표기도문

거룩하신 하나님, 눈송이 한 장에도 질서를 새기시는 ‘하늘의 직공’이시며, 얼어붙은 땅 아래에도 봄의 약속을 숨겨 두신 ‘언약의 정원사’이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1월의 긴 밤과 매서운 바람 속에서도 주의 자비는 난롯불처럼 꺼지지 않고, 주의 말씀은 얼음 위의 등불처럼 우리 발걸음을 비추십니다. 오늘 주의 날, 우리의 호흡을 모아 주의 이름을 높이며,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로 예배의 문에 서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주의 숨결로 오늘 우리를 덥혀 주옵소서.

주님, 지난 한 주간 우리 마음에는 서리처럼 굳은 죄가 끼었습니다. 기도는 미루고, 말씀은 대충 읽었으며, 자기 의를 따뜻한 외투처럼 걸치고 이웃의 허물을 쉽게 판단했습니다. 불평과 염려로 입술을 더럽히고, 숨은 욕심으로 주의 뜻을 비틀었습니다. 주여, 우리의 얼어붙은 심령을 회개의 눈물로 녹이시고,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씻어 주옵소서. 성령께서 새 바람을 불어넣으사 돌 같은 마음을 제하시고, 겸손한 마음으로 다시 걷게 하옵소서.

새해의 첫 달을 지나며, 우리에게 ‘처음 사랑’을 회복하게 하옵소서. 바쁜 일정이 영혼의 난로를 꺼뜨리지 않게 하시고, 가정마다 말씀 낭독과 기도가 촛불처럼 계속 타오르게 하옵소서. 우리의 시간과 재물을 감사로 드리게 하시고, 은혜로 시작해 은혜로 끝나는 한 해가 되게 하옵소서.

이제 간구하오니, 성도들의 믿음을 지켜 주옵소서. 믿음이 체감 온도에 따라 식지 않게 하시고, 약속의 말씀에 뿌리내린 나무처럼 겨울에도 푸르게 하옵소서. 병상과 가정과 일터에 있는 지체들에게 “내가 너를 버리지 아니하리라” 하신 주의 음성이 들리게 하시고, 낙심한 이들에게는 위로의 하나님이 가까이 계심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우리 모든 세대를 믿음으로 붙들어 주옵소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주소서. 하루의 계획을 세우기 전에 먼저 주의 얼굴을 구하게 하시고, 선택의 갈림길마다 ‘주께서 기뻐하시는 길’로 돌이키게 하옵소서. 작은 순종을 크게 여기게 하시고, 십자가를 피하지 않고 기쁨으로 지게 하옵소서. 우리의 말과 생각과 은밀한 습관까지도 주의 빛으로 정결케 하옵소서.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말씀과 성례가 맑은 샘처럼 흐르게 하시고, 기도가 겨울 새벽의 종소리처럼 교회의 중심을 깨우게 하옵소서. 목회자와 장로와 집사와 모든 직분자들에게 충성과 분별을 더하시며, 당회와 제직의 모든 결정이 사람의 유익이 아니라 주의 뜻에 굴복하는 거룩한 질서가 되게 하옵소서. 다음 세대에게는 교리의 뼈대를 세우고 복음의 심장을 심어 주옵소서. 선교의 문을 여셔서 얼어붙은 땅에도 복음의 씨가 심기게 하시고, 박해받는 교회와 선교사들을 보호하셔서 복음의 등불이 꺼지지 않게 하옵소서. 사랑의 손길이 외로운 이웃과 연약한 자에게 닿게 하옵소서.

나라와 민족을 긍휼히 여기소서. 분열의 찬바람을 거두시고 공의와 화평을 내려 주옵소서. 지도자들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주시며, 정직과 책임의 옷을 입게 하옵소서. 경제의 추위 속에 있는 가정들에 일용할 양식을 채우시고, 청년들의 길을 여시며, 재난과 사고로 상한 이들을 위로하여 주옵소서. 한반도에 긴장을 누그러뜨리시고, 북녘 땅의 주민들에게도 복음의 문을 열어 주셔서 참 자유가 임하게 하옵소서. 전쟁과 갈등으로 신음하는 열방에도 주의 자비를 베푸소서.

마지막으로 오늘 예배 위에 성령의 눈부신 빛을 비추사, 찬양은 더 뜨겁게, 말씀은 더 선명하게, 우리의 ‘아멘’은 더 순종으로 이어지게 하옵소서. 성찬을 받는 마음이 더 경건하게, 헌금을 드리는 손이 더 기쁘게 하시며, 예배 후의 삶이 예배의 연장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거룩한 주일 대표기도문

 거룩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

알파와 오메가 되시며, 만물의 시작과 끝을 주의 지혜로 붙드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불어넣어 살아 있는 영이 되게 하신 하나님, 오늘도 주의 날에 우리를 불러 모아 은혜의 보좌 앞에 서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세상의 소음은 파도처럼 높아져도, 주의 말씀은 흔들리지 않는 등대이시니—우리의 눈을 들어 오직 주님만 바라보게 하옵소서. 이 시간 드리는 예배가 사람의 열심이 아니라, 성령의 바람이 돛을 밀어 올리는 참된 경배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 지난 한 주간 우리의 삶을 주의 빛 앞에 세워 봅니다.
입술로는 주를 사랑한다 하면서도 마음은 쉽게 식었고, 경건을 말하면서도 작은 유익에 흔들렸으며, 십자가를 자랑하면서도 자기를 부인하는 길을 피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교만이 뿌리처럼 깊어져 판단과 정죄의 열매를 맺게 했고, 염려가 믿음의 목을 조여 감사의 노래를 빼앗아 갔습니다.
주여, 우리의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어 주옵소서. 돌 같은 마음을 제하시고 살같이 부드러운 마음을 주셔서, 회개가 두려움의 울음이 아니라 은혜를 향해 돌아서는 순종이 되게 하옵소서.

이제 간구하오니, 먼저 성도들의 믿음을 붙들어 주옵소서.
믿음이 감정의 온도에 좌우되지 않게 하시고, 말씀 위에 세운 집처럼 비바람에도 무너지지 않게 하옵소서.
어린 믿음은 자라게 하시고, 지친 믿음은 다시 숨 쉬게 하시며, 흔들리는 믿음은 약속의 말씀으로 뿌리를 더 깊이 내리게 하옵소서.
우리 각 사람의 가정과 일터와 학교가 작은 예배당이 되게 하시고,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드리는 순종이 주께 올려지는 향기로운 제사가 되게 하옵소서.

또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하루의 첫걸음이 주님께 향하게 하시고, 결정의 갈림길마다 “주의 뜻이 무엇입니까” 묻게 하옵소서.
성령께서 우리의 생각을 새롭게 하셔서, 세상의 빠른 길이 아니라 주님의 좁은 길을 기쁨으로 택하게 하시고, 십자가를 짐이 아니라 생명의 길로 붙들게 하옵소서.
고난 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는 위로의 하나님이 가까이 계심을 경험하게 하시고, 질병과 상처와 관계의 깨어짐 속에서도 “주께서 선으로 인도하신다”는 확신을 놓치지 않게 하옵소서.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그리스도께서 피로 사신 몸 된 교회를 주께서 친히 다스려 주옵소서. 말씀과 성례가 바르게 세워지게 하시고, 기도가 교회의 숨결이 되게 하시며, 거룩이 교회의 향기가 되게 하옵소서.
목회자에게는 말씀의 검을 바르게 다루는 지혜와, 양들을 품는 목자의 심장을 더하여 주옵소서. 장로와 집사와 모든 직분자들에게는 “충성”의 은혜를 주셔서 사람의 시선이 아니라 주님의 눈앞에서 섬기게 하옵소서.
연약한 지체들을 더욱 돌보게 하시고, 다음 세대를 진리로 양육하게 하시며, 전도와 선교의 문을 여셔서 잃은 양들이 돌아오는 기쁨을 교회가 다시 누리게 하옵소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합니다.
주님, 우리가 누리는 평안이 결코 당연함이 아님을 고백합니다. 이 땅에 공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시고, 진리가 바다를 덮음 같이 우리의 삶과 제도와 문화 가운데 스며들게 하옵소서.
지도자들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과 백성을 섬기는 겸손을 주시고, 분열과 혐오의 언어가 아니라 화평의 길을 찾게 하옵소서.
경제적 어려움과 불안 속에 신음하는 이들을 기억하셔서, 일터를 지키시고 생계를 붙드시며, 억눌린 마음에 소망의 빛을 비추어 주옵소서.
이 땅의 교회들이 세상과 닮아 약해지지 않게 하시고, 복음의 본질을 붙들어 빛과 소금의 사명을 다시 감당하게 하옵소서.

마지막으로, 오늘 드려지는 예배를 위해 간구합니다.
찬양하는 입술 위에, 기도하는 마음 위에, 말씀을 선포하는 강단 위에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더하여 주옵소서.
듣는 우리가 지식으로만 지나치지 않게 하시고, “아멘”이 삶의 순종으로 이어지게 하옵소서.
예배의 처음과 끝이 주님께만 영광이 되게 하시고, 우리의 심령이 은혜로 새로워져 세상으로 나아갈 때에도 주의 얼굴빛을 품고 걷게 하옵소서.

우리의 의가 되시며 참된 중보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3월 주일 대표기도문

만물이 새 옷을 입기 시작하는 3월, 얼음장을 풀어 물길을 내시고 마른 가지 끝에 연둣빛 약속을 매달아 주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긴 겨울의 숨결을 지나 새봄의 문턱에 우리를 세우시고, 주의 날에 은혜의 보좌 앞으로 부르셔서 예배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들판의 흙이 풀리듯 우리의 굳은 생각도 풀어 주시고,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소망이 헛된 기대가 아니라 부활의 주께서 심으신 산 소망이 되게 하옵소서.

그러나 주님, 새싹이 돋는 계절에도 우리의 마음은 여전히 굳어 있었습니다. 말씀을 가까이하기보다 핑계를 가까이했고, 기도는 미루며 염려는 앞당겼습니다. 혀로는 사랑을 말하면서 마음으로는 미움을 품었고, 가정과 일터에서 감사의 열매보다 불평의 가시를 키웠습니다. 주여,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십자가의 보혈로 씻어 주옵소서. 성령께서 우리 심령의 얼음을 깨뜨리사 회개의 눈물이 흐르게 하시고, 사순절의 길에서도 십자가를 깊이 바라보며 다시 첫사랑으로 돌아오게 하옵소서.

주님, 새학기를 맞는 자녀들과 청년들을 붙들어 주옵소서. 새로운 교실과 새로운 만남 앞에서 두려움보다 믿음을, 경쟁보다 정직을, 성취보다 경건을 택하게 하옵소서. 시험과 평가 속에서도 자신을 증명하려 애쓰기보다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정체성을 붙들게 하시고, 스마트한 지식보다 거룩한 지혜를 사모하게 하옵소서. 교사와 교직원들에게는 인내와 공평을 더하시고, 가정마다 말씀의 등불이 책상 위에 켜지게 하옵소서.

이제 간구하오니, 성도들의 믿음을 봄비처럼 새롭게 하옵소서. 지친 심령에는 위로를, 흔들리는 마음에는 약속의 닻을, 냉랭한 영혼에는 성령의 불을 더하여 주옵소서. 병상에 있는 지체들에게는 치료의 손을 얹어 주시고, 돌봄이 필요한 어르신들에게는 자녀 같은 사랑을, 홀로 있는 이들에게는 교회의 따뜻한 품을 열어 주옵소서. 우리의 기도가 메아리 없는 소리가 되지 않게 하시고, 응답을 기다리는 자리에서 믿음의 뿌리가 더 깊어지게 하옵소서. 하루의 시작을 말씀으로 열고 하루의 끝을 감사로 닫게 하시며, 작은 순종이 누적되어 거룩의 습관이 되게 하옵소서.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춘계 대심방의 걸음마다 주께서 앞서 행하사, 방문하는 가정마다 복음의 향기가 스며들게 하옵소서. 문 앞에서의 인사가 형식이 아니라 상한 마음을 싸매는 은혜의 방문이 되게 하시고, 숨은 눈물과 갈등을 드러내어 치유하시며, 식어진 기도의 제단을 다시 세우게 하옵소서. 목회자와 장로와 심방하는 일꾼들에게 겸손과 분별을 주시고, 말씀과 성례가 교회의 중심에서 맑은 샘처럼 흐르게 하옵소서. 우리 교회가 숫자의 자랑이 아니라 거룩의 열매로 주님을 영화롭게 하게 하시며, 웨스트민스터의 고백 위에 굳게 서서 진리와 사랑을 함께 붙들게 하옵소서. 다음 세대에게는 바른 교리의 뼈대와 복음의 심장을 함께 심어 주시고, 전도와 선교의 문을 여셔서 잃은 양들이 돌아오는 기쁨을 교회가 누리게 하옵소서. 먼 타국에서 수고하는 선교사들과 신학생들을 붙드시고, 복음의 씨앗이 봄 햇살 아래 싹트듯 열방 가운데 자라게 하옵소서.

나라와 민족을 긍휼히 여기소서. 새봄의 바람이 미움과 분열의 먼지를 거두어 가게 하시고, 지도자들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과 공의로 섬기는 용기를 허락하옵소서. 경제의 무게로 짓눌린 이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채우시고, 청년들의 길을 여시며, 재난과 사고로 상한 이들을 위로하시고, 남과 북과 열방에 참된 화평의 길을 열어 주옵소서.

마지막으로 오늘 예배 위에 성령의 생기를 부으사 찬양은 더 맑게, 말씀은 더 선명하게, 우리의 ‘아멘’은 더 순종으로 이어지게 하옵소서. 헌금하는 손에 탐심이 아니라 감사가 담기게 하시고, 성찬에 나아갈 때마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새롭게 맛보게 하옵소서. 예배 후의 월요일에도 주의 얼굴빛을 품고 날마다 끝까지 살게 하시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5월 주일 대표기도문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5월의 빛으로 들과 산을 물들이시고, 꽃잎 한 장에도 섭리의 질서를 새기시는 창조주를 찬양합니다. 봄의 끝자락과 여름의 문턱 사이에서, 주께서 만물을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시듯 우리의 삶도 주의 뜻 가운데 단정히 세워 주옵소서. 무엇보다 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아, 교회에 주신 생명의 선물—우리의 아이들을 주의 손에 다시 올려드립니다. 죄의 그늘이 길게 드리운 세상 한복판에서도, 어린 영혼들이 은혜의 햇살 아래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경배를 드립니다.

주님, 먼저 우리의 죄를 고백합니다. 우리는 아이들을 맡겨 주신 주의 뜻을 잊고, “내 자녀”라는 소유의 말로 주의 기업을 가리곤 했습니다. 믿음의 본을 보이기보다 말로만 가르쳤고, 말씀의 길로 인도하기보다 성취의 길로 재촉했습니다. 가정의 예배가 희미해진 사이, 세상의 소리가 더 크게 들리게 했고, 기도의 울타리를 세우기보다 염려의 담을 높였습니다. 주여, 우리의 교만과 무관심을 용서하시고,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어 주옵소서. 성령께서 우리의 가정과 교회를 새롭게 하셔서, 부모의 무릎이 다시 기도의 제단이 되게 하옵소서.

은혜의 하나님, 어린이들을 축복하여 주옵소서. 이 작은 자들을 주께서 친히 부르사 “내게로 오라” 하셨으니, 우리가 그 부르심 앞에서 더 겸손히 서게 하옵소서. 아이들이 단지 착한 사람이 되는 수준을 넘어, 아담 안에서 타락한 본성을 가진 존재임을 깨닫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는 구원의 은혜를 맛보게 하옵소서. 지혜의 근본이 여호와를 경외함임을 알게 하시고, 말씀의 씨앗이 마음 밭에 심겨져 때가 이르면 믿음의 열매로 맺히게 하옵소서. 유혹이 많은 시대 속에서 눈과 귀와 마음을 지켜 주시고, 학교와 친구 관계와 온라인 세계 속에서도 거룩한 분별을 배우게 하옵소서.

주님, 다음 세대의 신앙교육을 위해 교회를 붙들어 주옵소서. 주일학교와 청소년부와 청년 공동체에 바른 교리가 뼈대처럼 서게 하시고, 복음의 사랑이 피처럼 돌게 하옵소서. 교사들에게는 말씀을 바르게 가르치는 정직과, 아이들의 이름을 품는 목자의 심정을 더하여 주옵소서. 교회가 아이들에게 단지 즐거운 공간이 아니라, 언약의 하나님을 배우는 학교가 되게 하시고, 세례와 성찬이 가볍게 여겨지지 않게 하시며, 성도의 교제가 진실한 돌봄으로 나타나게 하옵소서. 가정마다 신앙의 전수가 끊기지 않게 하시고, 부모들이 자녀를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는 언약의 책임을 기쁨으로 감당하게 하옵소서.

또한 성도들의 삶 가운데 은혜로운 시간을 더하여 주옵소서. 5월의 길어진 햇살처럼 주의 인도하심이 우리의 하루를 넉넉히 비추게 하시고, 바쁜 일정 속에서도 주님의 임재를 놓치지 않게 하옵소서. 지친 이들에게는 쉼을, 병든 이들에게는 치료를, 낙심한 이들에게는 소망을 주시며, 가정마다 화해의 언어가 피어나게 하옵소서. 우리가 받은 은혜를 이웃에게 흘려보내어, 교회가 꽃향기처럼 지역에 스며들게 하옵소서.

나라와 민족을 긍휼히 여기소서. 분열과 혐오의 언어를 거두시고, 공의와 진리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옵소서. 지도자들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주시고, 약한 자를 돌아보는 책임을 더하여 주옵소서. 아이들이 안전하게 자랄 수 있는 사회가 되게 하시며, 가정이 무너지지 않도록 보호하시고, 다음 세대가 절망이 아니라 소명을 배우는 땅이 되게 하옵소서.

마지막으로 오늘 예배를 축복하여 주옵소서. 찬양 위에 성령의 기름을 부으시고, 말씀 선포 가운데 그리스도의 향기가 진하게 퍼지게 하옵소서. 어린이들의 웃음이 단지 귀여운 소리가 아니라, 교회에 주신 생명의 증거로 들리게 하시고, 우리 모두가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으로 주께 나아가게 하옵소서. 예배가 끝난 뒤에도 은혜의 불씨가 꺼지지 않게 하시며,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으로 가정과 교회를 새롭게 하옵소서.

우리의 참 목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7월 첫 주 맥추 감사 주일 대표기도문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계절의 문지방을 넘게 하시고 반년의 길을 인도하신 주를 찬양합니다. 씨를 뿌리게 하시고 비를 주시며, 햇빛을 아끼지 않으시는 주께서 오늘 맥추감사주일에 우리를 불러 첫 열매를 드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부활의 첫 열매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구원과 장차 올 영원한 추수까지 보증하신 은혜를 경배합니다. 광야 같던 날들에도 만나를 내리신 주님, 우리의 식탁과 숨결과 시간표까지도 주의 섭리로 채우셨습니다. 들녘의 이삭이 고개 숙이듯 우리도 은혜 앞에 머리를 숙입니다. 주께서 주신 것 위에만이 아니라, 주께서 막아 주신 재앙과 넘어짐 위에도 감사를 올려드립니다.

주님, 그러나 지난 상반기 우리의 마음은 감사보다 불평이 앞섰고, 주신 것보다 없는 것을 헤아렸습니다. 풍성함 속에서도 탐심을 키우고, 작은 손해 앞에서 원망하며, 기도의 제단을 뒤로 미룬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말씀을 들었으나 순종이 더뎠고, 가난한 이웃의 한숨을 듣고도 우리의 귀를 닫았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우리의 교만을 꺾으시고, 보혈로 씻어 주셔서 참 회개로 다시 서게 하옵소서. 우리의 의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의로만 살게 하옵소서.

이제 간구하오니 성도들의 믿음을 자라게 하옵소서. 맥추의 첫 열매처럼 우리의 믿음도 첫사랑을 회복하게 하시고, 말씀 위에 뿌리내려 흔들리지 않게 하옵소서. 시험과 유혹 속에서 마음을 지키게 하시며, 병든 자를 위로하시고, 낙심한 마음에 소망의 등불을 켜 주옵소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허락하셔서, 하루의 선택마다 ‘주의 뜻’이 길이 되게 하시고, 성령의 열매가 우리의 성품과 말과 습관에 맺히게 하옵소서. 받은 은혜를 헤아려 청지기답게 쓰게 하시고, 만족함을 배우게 하시며, 기쁨으로 나누는 손을 넓혀 주옵소서.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말씀과 성례가 바르게 세워지고, 기도가 교회의 숨결이 되게 하옵소서. 직분자들에게 충성과 겸손을, 교사들에게 진리의 가르침을, 다음 세대에게는 언약의 신앙을 더하여 주옵소서. 서로 다른 생각과 성향이 십자가 아래에서 한 몸 됨을 기억하게 하시고, 작은 상처들이 뿌리내려 분열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선교의 문을 여셔서 복음의 씨앗이 땅끝까지 퍼지게 하시며, 헌금과 섬김이 사람의 자랑이 아니라 주께 드리는 첫 열매가 되게 하옵소서.

나라와 민족을 긍휼히 여기소서. 지도자들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과 공의를 행할 용기를 주시고, 분열의 불길을 거두사 화평의 길을 열어 주옵소서. 경제의 어려움 속에 있는 가정들을 붙드시고, 약한 이들을 보호하시며, 다음 세대가 진리와 소명을 배우게 하옵소서. 이 땅에 재난을 막아 주시고, 그 고통의 자리에서 교회가 이웃의 피난처가 되게 하옵소서.

마지막으로 오늘 예배를 받으소서. 찬양과 기도와 말씀 선포 위에 성령의 기름을 부으시고, 우리의 감사가 입술에만 머물지 않고 순종과 나눔으로 이어지게 하옵소서. 상반기를 인도하신 주께서 하반기도 붙드실 것을 믿사오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9월 주일 대표기도문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여름의 열기를 거두시고 9월의 바람으로 들판을 식히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푸르던 잎이 서서히 깊어지고, 하늘이 높아지며, 햇살이 한층 부드러워지는 이 계절에—주께서 우리 삶에도 성숙의 색을 입히시고 감사의 향을 더해 주심을 믿습니다. 이 가을의 문턱에서 우리를 예배로 부르시니, 들녘이 익어 고개 숙이듯 우리도 은혜 앞에 머리 숙여 경배드립니다.

주님, 그러나 열매를 말하면서도 열매 맺는 수고를 싫어했던 우리의 죄를 고백합니다. 감사는 쉽게 잊고, 당연함을 크게 여기며, 작은 결핍 앞에서 원망의 말을 내뱉었습니다. 사랑해야 할 자리에서 자기 의를 세웠고, 섬겨야 할 순간에 편안함을 택했으며, 기도의 자리보다 염려의 자리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주여, 우리의 완고함을 꺾어 주옵소서. 메마른 마음을 회개의 이슬로 적셔 주시고, 십자가의 보혈로 씻어 주셔서 다시 감사의 사람으로 서게 하옵소서. 우리의 의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의로 살게 하옵소서.

이제 간구하오니, 성도들의 믿음을 가을 곡식처럼 여물게 하옵소서. 믿음이 감정의 바람에 쓰러지지 않게 하시고, 말씀이라는 뿌리가 깊어져 어떤 계절에도 흔들리지 않게 하옵소서. 시험과 유혹 앞에서 분별을 주시고, 낙심한 이들에게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하시는 주의 음성이 들리게 하옵소서. 병든 자에게 치유의 손을, 상한 마음에는 위로의 기름을 부어 주시며, 외로운 이들에게는 교회의 따뜻한 품을 열어 주옵소서. 우리의 신앙이 잎사귀만 무성한 겉모양이 되지 않게 하시고, 성령의 열매—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가 삶의 가지마다 맺히게 하옵소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허락하옵소서. 아침의 첫 생각이 주께 향하게 하시고, 하루의 선택마다 “주께서 기뻐하시는 길”을 묻게 하옵소서. 말이 익기 전에 마음이 먼저 다스려지게 하시고, 작은 순종을 크게 여기게 하시며, 십자가를 피하지 않고 기쁨으로 지게 하옵소서. 우리의 일터와 가정이 결실의 밭이 되게 하시고, 우리가 흘린 땀과 눈물이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음을 믿게 하옵소서.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말씀과 성례가 맑은 샘처럼 흐르게 하시고, 기도가 교회의 호흡이 되게 하옵소서. 직분자들에게 충성과 겸손을, 교사들에게 진리의 열심을, 다음 세대에게는 언약의 믿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교회가 세상의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하지 않게 하시고, 오직 복음의 빛으로 자신을 비추게 하옵소서. 섬김이 의무가 아니라 기쁨이 되게 하시며, 나눔이 남는 것을 덜어내는 일이 아니라 받은 은혜를 흘려보내는 첫 열매가 되게 하옵소서. 선교의 문을 여셔서 복음의 씨앗이 더 많은 땅에 뿌려지고, 열방 가운데 구원의 추수가 일어나게 하옵소서.

나라와 민족을 긍휼히 여기소서. 분열과 혐오의 바람을 잠재우시고, 공의와 진리로 이 땅을 새롭게 하옵소서. 지도자들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주시고, 약한 자를 돌아보는 책임을 더하여 주옵소서. 경제의 무게로 짓눌린 가정에 일용할 양식을 채우시고, 청년들에게 길을 열어 주시며, 상처 입은 이들에게 회복의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마지막으로 오늘 예배를 주께서 받으소서. 찬양은 가을 하늘처럼 맑게, 말씀은 추수의 낫처럼 분명하게, 우리의 ‘아멘’은 순종의 열매로 이어지게 하옵소서. 감사가 입술에만 머물지 않게 하시고, 일상의 자리에서 드러나는 삶의 예배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11월 추수 감사 주일 대표기도문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11월의 맑은 하늘 아래 들판의 이삭을 거두게 하시고, 나뭇잎이 붉게 물들어도 계절의 주권을 조금도 놓치지 않으시는 섭리의 주님을 찬양합니다. 씨앗을 뿌리게 하시고 비를 내리시며 햇빛을 아끼지 않으사, 우리의 손이 아니라 주의 손이 한 해의 결실을 맺게 하셨음을 고백합니다. 오늘 추수감사주일에 우리를 불러, 창고에 쌓인 곡식보다 먼저 마음의 첫 열매를 주께 드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부활의 첫 열매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의 추위를 깨뜨리고 영원한 추수의 소망을 보증하신 은혜를 경배합니다.

주님, 그러나 감사의 잔을 들기 전에 우리의 죄를 먼저 자복합니다. 풍성함 속에서도 만족을 모르고, 주신 것보다 부족한 것을 세며 원망했던 교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수고의 결과를 내 능력이라 자랑하고, 약한 이웃의 허기 앞에서 눈을 돌리며, 기도의 제단을 뒤로 미룬 우리의 게으름을 용서하옵소서. 입술로는 주께 영광을 돌린다 하면서도 마음은 세상의 안전에 기대었고, 구원의 은혜를 값싸게 여기며 거룩을 가볍게 다룬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를 씻어 주시고, 성령께서 굳은 심령을 깨뜨리사 회개의 눈물이 은혜의 밭을 적시게 하옵소서.

이제 간구하오니, 성도들의 믿음을 추수의 곡식처럼 여물게 하옵소서. 바람이 불어도 쓰러지지 않도록 말씀의 뿌리를 깊게 하시고, 형편이 흔들려도 약속의 닻을 놓치지 않게 하옵소서. 병든 자에게는 치료의 손을, 상한 마음에는 위로의 기름을 부으시며, 외로운 이들에게는 교회의 품이 따뜻한 창고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신앙이 잎사귀만 무성한 겉모양이 되지 않게 하시고, 성령의 열매가 말과 생각과 습관 속에 맺히게 하옵소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허락하옵소서. 아침의 첫 호흡을 주께 드리게 하시고, 하루의 결정마다 “주께서 기뻐하시는가”를 묻게 하옵소서. 감사가 감정의 파도에 그치지 않고, 청지기적 순종으로 이어지게 하시며, 남는 것을 떼어내는 나눔이 아니라 받은 은혜를 흘려보내는 첫 열매의 봉헌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가정이 작은 교회가 되어 식탁마다 감사가 피고, 자녀들이 언약의 말씀 안에서 자라게 하옵소서.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말씀과 성례가 바르게 세워지게 하시고, 기도가 교회의 숨결이 되게 하옵소서. 목회자와 장로와 집사와 모든 직분자에게 충성과 겸손을 주시며, 각 부서의 섬김이 사람의 칭찬이 아니라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향기로운 제사가 되게 하옵소서. 다음 세대를 진리로 양육하셔서 교리의 뼈대 위에 복음의 심장이 뛰게 하시고, 전도와 선교의 문을 여셔서 잃은 양들이 돌아오는 기쁨을 맛보게 하옵소서.

나라와 민족을 긍휼히 여기소서. 분열과 탐욕의 바람을 잠재우시고, 공의와 진리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옵소서. 지도자들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과 백성을 섬기는 책임을 더하시며, 경제의 무게로 신음하는 가정과 일터를 붙들어 주옵소서. 재난과 사고로 상한 이들을 위로하시고, 이 땅의 교회가 세상의 불안을 닮지 않게 하시며 복음의 빛으로 이웃의 어둠을 밝히게 하옵소서.

마지막으로 오늘 드리는 예배를 받으소서. 찬양은 깊어지게, 말씀은 선명하게, 우리의 “아멘”은 순종의 열매로 이어지게 하옵소서. 감사의 계절에 우리가 가진 것만 바라보지 말게 하시고, 십자가에서 이미 주신 구원의 은혜를 가장 큰 추수로 붙들게 하옵소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12월 주일 예배 대표기도문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어둠이 짙어질수록 빛을 더 또렷이 드러내시는 “빛의 주”를 찬양합니다. 12월 대림절의 길 위에 우리를 세우시고,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교회로 부르셔서 은혜의 보좌 앞에 예배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차가운 바람이 골목을 훑어도, 주의 약속은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되어 우리의 심령을 비추시니—우리는 오늘도 소망으로 깨어 기다립니다. 오래전 선지자들의 입술에 심으신 예언을 성취하시고, 때가 차매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 우리로 하여금 “이미 오신 주”와 “다시 오실 주” 사이에서 믿음으로 서게 하옵소서.

주님, 대림의 계절에 우리 자신을 살피며 회개합니다. 기다림을 말하면서도 마음은 분주함에 빼앗겼고, 경건을 말하면서도 손은 세상의 빛나는 것들을 더듬었습니다. 입술로는 “주여 오시옵소서” 하면서도, 죄와 타협한 습관을 끊지 못했고, 기도의 불씨를 꺼뜨린 채 염려의 장작만 더했습니다. 주여, 우리의 무딘 마음을 깨우시고, 십자가의 보혈로 씻어 주옵소서. 성령께서 회개의 눈물로 굳은 심령을 적셔 주셔서, 대림절의 기다림이 장식이 아니라 거룩한 준비가 되게 하옵소서.

이제 간구하오니, 성도들의 믿음을 붙들어 주옵소서. 세상의 소음이 커질수록 말씀의 음성이 더 선명히 들리게 하시고, 흔들리는 마음마다 약속의 닻을 내려 주옵소서. 병든 자에게는 치료의 손을, 상한 마음에는 위로의 기름을 부으시며, 외로운 이들에게는 교회의 품이 마구간의 따뜻함처럼 열리게 하옵소서. 연약한 자를 정죄하지 않게 하시고, 서로의 짐을 지는 사랑이 성탄의 길을 닦는 삽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주소서. 하루의 첫 호흡을 주께 드리게 하시고, 우리의 선택이 “자기 뜻”이 아니라 “주의 뜻”에 굴복하게 하옵소서. 오실 왕을 기다리는 백성답게, 눈에 보이는 화려함보다 마음의 정결을 더 사랑하게 하시고, 작은 순종을 귀히 여기며, 은밀한 자리에서 빛 앞에 서는 정직을 배우게 하옵소서. 대림절의 촛불처럼 우리의 삶이 서서히 그러나 분명히 밝아져, 누구를 만나도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게 하옵소서.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말씀과 성례가 바르게 세워지게 하시고, 강단의 선포가 사람의 지혜가 아니라 하늘의 복음이 되게 하옵소서. 목회자와 장로와 집사와 모든 직분자에게 충성과 겸손을 더하시고, 섬김이 칭찬을 위한 일이 아니라 주께 드리는 예배의 연장이 되게 하옵소서. 대림절과 성탄의 사역 가운데 교회가 소비의 계절을 닮지 않게 하시고, 가난한 이웃을 향한 긍휼과 복음 전파의 열심으로 주님의 길을 예비하게 하옵소서. 다음 세대에게는 바른 교리의 뼈대 위에 복음의 심장이 뛰게 하시고, 성경적 진리 안에서 기쁨으로 자라게 하옵소서. 선교지와 박해받는 교회 위에도 임마누엘의 은혜를 더하셔서, 어둠 속에서도 빛이 꺼지지 않게 하옵소서.

나라와 민족을 긍휼히 여기소서. 분열과 미움의 언어를 거두시고, 공의와 화평이 이 땅에 자리 잡게 하옵소서. 지도자들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과 백성을 섬기는 책임을 주시며, 경제의 추위 속에 있는 가정들에 일용할 양식을 채워 주옵소서. 재난과 사고로 상한 이들을 위로하시고, 이 땅의 교회가 절망의 밤에 등불이 되게 하옵소서.

마지막으로 오늘 드리는 예배를 받으소서. 찬양 가운데 성령의 기름을 부으시고, 말씀 가운데 우리의 심령이 깨어나게 하옵소서. 대림절을 보내는 우리의 기다림이 헛되지 않게 하시며, 이미 오신 주님을 더 사랑하고 다시 오실 주님을 더 사모하게 하옵소서. “마라나타”—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우리를 위해 낮아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6월 첫째 주일 예배 대표기도문

6월 첫 주일 대표기도문

 거룩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

만유의 주권자 되시며 역사를 다스리시는 주 하나님 앞에 2026년 6월 첫 주일로 모여 예배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호국보훈의 달을 시작하며,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생명과 젊음을 드렸던 이들의 희생을 기억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평안이 결코 값없이 주어진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하시고, 그들의 헌신을 공적인 감사로 기억하되, 무엇보다 나라와 민족의 참된 평안이 하나님께로부터 옴을 고백하게 하옵소서.

주 하나님,
초여름의 무더위가 시작되는 계절 속에서 우리의 육신도 쉽게 지치고 마음도 늘어지기 쉬움을 고백합니다. 날씨의 피곤함이 예배의 집중을 흐리게 하지 않게 하시고, 계절의 변화 속에서도 우리의 심령이 더욱 깨어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옵소서. 더위로 고생하는 노약자들과 연약한 지체들을 주께서 돌보아 주시고, 건강을 지켜 주옵소서.

주님,
대한민국의 정치와 사회를 주의 손에 올려드립니다. 분열과 진영의 대립이 깊어지는 현실 속에서도 질서와 정의가 무너지지 않게 하시고, 권세를 맡은 자들이 사사로운 이익이 아니라 공공선을 구하게 하옵소서. 말이 앞서 진실이 무너지는 일이 없게 하시고, 법과 제도가 약자를 외면하지 않게 하시며, 지도자들에게 책임과 절제, 그리고 두려운 마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경제의 어려움 속에 있는 국민들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물가와 금리, 불안정한 시장 속에서 가정의 살림이 무겁고, 내일에 대한 염려가 커진 이들을 주께서 위로하여 주옵소서. 특별히 자영업자들과 소상공인들을 긍휼히 여겨 주시고, 장사의 문이 막히고 매출이 줄어 마음이 무너진 이들에게 길을 열어 주옵소서. 정직하게 수고한 손길이 헛되지 않게 하시고, 불의한 경쟁과 탐욕이 아니라 공정함과 상생의 질서가 회복되게 하옵소서. 우리 교회 안에 사업과 일터를 가진 성도들에게 지혜를 주셔서 두려움에 묶이지 않게 하시고, 현실을 외면하지 않되 믿음으로 책임 있게 결정하게 하옵소서.

주 하나님,
성도들의 삶과 믿음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6월의 시작이 분주함과 피로로만 채워지지 않게 하시고, 믿음의 질서가 무너지지 않게 하옵소서. 바쁠수록 기도의 자리를 지키게 하시고, 흔들릴수록 말씀에 더 가까이 가게 하옵소서. 우리의 믿음이 형편이 좋을 때만 드러나는 신앙이 아니라,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고백하는 신앙이 되게 하옵소서. 가정 가운데 화평을 주시고, 부부와 부모 자녀의 관계가 무너지지 않게 하시며, 경제의 압박이 믿음의 공동체를 갈라놓지 않게 하옵소서.

한국교회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교회가 시대의 소음에 끌려 다니지 않게 하시고, 복음의 본질을 굳게 붙들게 하옵소서.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되, 교회가 정치의 도구가 되지 않게 하시고, 복음의 양심으로 진실하게 서게 하옵소서. 강단이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지게 하시고, 목회자들과 직분자들이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종으로 서게 하옵소서. 한국교회가 권력과 인기, 숫자와 외형을 추구하기보다, 말씀과 기도, 거룩함과 사랑으로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게 하옵소서.

주님,
호국의 계절을 맞아 우리 안의 평안이 당연한 권리가 아니라 은혜임을 다시 배우게 하옵소서.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안정이 우리를 교만하게 하지 않게 하시고, 오히려 감사와 책임, 섬김으로 열매 맺게 하옵소서. 이 땅에 참된 화해와 치유를 허락하시고, 서로를 미워하는 마음이 아니라 이웃을 살리는 마음으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이 예배를 통하여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6월의 모든 날을 주께 맡기게 하옵소서. 무더위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게 하시고, 시대의 불안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게 하시며, 교회와 가정과 일터에서 주의 이름을 높이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를 구원하시고 지금도 다스리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호국보훈의 달 기념 주일 대표기도문

호국보훈의 달 대표기도문


호국보훈의 달 대표기도문

 거룩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

만유의 주권자이시며 역사의 주인이 되시는 주 하나님 앞에 주일을 따라 나아와 예배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생명과 젊음을 드렸던 이들의 희생을 기억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누리는 오늘의 평안이 결코 값없이 주어진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하시고, 그들의 헌신을 잊지 않는 마음과 더불어, 이 나라의 참된 안전과 평강이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옴을 겸손히 고백하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는 이 시간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와 상처를 주 앞에 올려드립니다. 전쟁의 비극과 분단의 현실 속에서 수많은 생명이 스러졌고, 남겨진 이들의 눈물과 그리움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주께서 이 땅을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인간의 죄와 탐욕, 미움과 폭력이 만들어낸 참담한 역사를 기억하며, 다시는 이 땅에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지켜 주옵소서. 우리 안에 남아 있는 분노와 증오, 편 가름의 마음을 꺾어 주시고, 진실한 회개와 책임 있는 평화를 추구하는 마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국가를 위해 기도합니다. 이 나라의 지도자들에게 지혜와 공의를 더하여 주옵소서. 진영의 이익과 순간의 인기보다, 국민의 생명과 공동체의 미래를 우선하게 하시고, 권력을 맡은 자들이 두려운 마음으로 책임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갈등을 부추기는 말이 아니라, 국민을 살리고 세우는 말이 나오게 하시며, 법과 제도가 약자를 외면하지 않게 하시고, 정의와 질서가 무너지지 않도록 붙들어 주옵소서. 우리의 안보와 외교, 국방의 모든 영역도 주의 손에 올려드립니다. 교만하거나 무모하지 않게 하시고, 두려움에 끌려 다니지도 않게 하시며, 절제와 분별로 나라를 지키는 길을 걷게 하옵소서.


보훈의 이름으로 위로가 필요한 이들을 기억하여 주옵소서. 전쟁과 분단의 상처를 안고 살아온 유가족과 참전용사들, 국가를 위해 헌신하다 상처 입은 이들과 그 가정들을 위로하여 주옵소서. 삶의 현장에서 소외와 가난, 병마와 외로움으로 고통하는 이들이 있다면 주께서 친히 돌보아 주옵소서. 우리가 감사의 마음을 말로만 고백하는 데 그치지 않게 하시고, 실제적인 섬김과 책임 있는 돌봄으로 이어지게 하옵소서. 교회가 그들의 눈물을 지나치지 않게 하시고, 사랑으로 가까이 다가가게 하옵소서.


한국교회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품되, 교회가 세상의 논리에 휩쓸려 정치의 도구가 되지 않게 하시고, 복음의 양심으로 진실하게 서게 하옵소서. 교회가 분열의 언어를 따라 말하지 않게 하시고, 십자가의 화해와 용서의 복음을 더욱 분명히 전하게 하옵소서. 강단이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굳게 세워지게 하시고, 목회자들과 직분자들이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종으로 서게 하옵소서. 교회가 위기 앞에서 더 분명히 기도의 자리로 돌아가게 하시고, 눈에 보이는 힘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사명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성도들의 삶과 믿음을 위해 기도합니다. 6월의 무더위와 분주함 속에서도 영혼이 지치지 않게 하시고, 삶의 무게가 신앙의 질서를 무너뜨리지 않게 하옵소서. 가정과 일터, 관계와 선택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직과 인내를 지키게 하시고, 불안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경제적 어려움 속에 있는 가정들을 붙들어 주시고, 특히 수고하며 일하는 이들의 손길을 기억해 주옵소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의 막막함을 주께서 아시오니, 낙심하지 않게 하시고 필요한 길을 열어 주옵소서. 우리가 어려울수록 더욱 이웃을 돌보고 나누게 하시며, 교회가 고통받는 지체들을 외면하지 않게 하옵소서.


이 나라의 미래를 다음 세대와 함께 주께 맡깁니다. 우리 자녀들과 청년들이 분노와 냉소를 배우기보다, 진리와 책임, 섬김을 배우게 하옵소서. 자유가 방종이 되지 않게 하시고, 권리가 의무를 삼키지 않게 하시며, 공동체를 세우는 시민의 양심과 성도의 양심을 함께 갖추게 하옵소서. 무엇보다 다음 세대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 위에 삶을 세우게 하옵소서.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우리가 다시 깨닫게 하옵소서. 평안은 당연한 것이 아니며, 자유는 값없이 유지되지 않으며, 공동체는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졌음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그러나 그 어떤 희생보다도 크고 근본적인 구원이 십자가에서 이루어졌음을 잊지 않게 하시고, 우리를 죄에서 건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더욱 깊이 붙들게 하옵소서. 우리의 감사가 말로만 머물지 않게 하시고, 거룩한 삶과 책임 있는 섬김으로 열매 맺게 하옵소서.


역사의 주인이시며 교회의 머리 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6월 주일 낮 대표기도문 / 호국 보훈의 달

거룩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
역사의 주인이시며 나라와 민족의 흥망성쇠를 주권적으로 다스리시는 주 하나님 앞에 6월의 주일로 모여 예배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이 땅 대한민국의 역사 속에서 흘린 피와 눈물, 희생과 헌신을 기억하며 하나님 앞에 겸손히 서게 하옵소서. 우리가 누리는 오늘의 평안과 자유가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라, 수많은 이들의 수고와 희생 위에 놓여 있음을 깨닫게 하시고, 그 기억이 교만이나 분노로 흐르지 않게 하시며, 감사와 책임, 그리고 이웃을 향한 섬김으로 이어지게 하옵소서.

주 하나님,
대한민국의 역사를 돌아볼 때, 우리는 인간의 죄와 연약함이 만들어 낸 비극도 보지만, 동시에 그 비극 가운데서도 역사를 붙드시고 길을 여신 하나님의 섭리를 고백합니다. 분열과 갈등, 전쟁과 상실의 시대를 지나면서도 이 나라를 완전히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생명을 보존하시며 다시 일어설 길을 열어 주신 주님의 긍휼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역사를 단지 성공의 이야기로만 해석하지 않게 하옵소서. 성경은 우리에게 “힘”이 구원을 만들지 못하고, “칼”이 평화를 보장하지 못하며, 인간의 자랑이 영원하지 않음을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이 6월에 우리는 역사를 새롭게 해석하게 하옵소서. 인간의 능력을 찬양하기보다, 죄를 경계하고, 은혜를 기억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지혜를 배우게 하옵소서.

주님,
호국보훈의 달은 우리로 하여금 희생의 의미를 다시 묻게 합니다. 누군가의 희생은 공동체를 살리고, 다음 세대의 삶을 지키는 울타리가 됨을 우리는 압니다. 그러나 주님, 그 모든 희생 위에 더 크고 근원적인 희생이 있음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죄인 된 우리를 살리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친히 십자가를 지시고 단번에 속죄의 제사를 드리신 그리스도의 희생이야말로 모든 구원의 근거임을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호국의 희생을 기억할 때, 그것을 우상화하거나 분노의 연료로 삼지 않게 하시고, 오히려 십자가의 사랑을 닮아 감사와 책임, 화해와 섬김으로 열매 맺게 하옵소서.

주 하나님,
이 나라를 위해 기도합니다. 오늘 대한민국의 정치와 사회가 분열과 대립 속에서 서로를 적으로 여기며 말과 마음이 거칠어지는 현실을 주께서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권세를 맡은 자들에게 두려운 마음을 주셔서, 자신과 진영의 유익이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공동체의 미래를 먼저 생각하게 하옵소서. 거짓과 선동이 아니라 진실과 책임이 세워지게 하시고, 법과 제도가 약자를 외면하지 않게 하시며, 정의와 질서가 무너지지 않도록 붙들어 주옵소서. 우리의 안보와 국방을 지켜 주시되, 교만하게 하지 마시고, 두려움에 끌려 다니게도 하지 마시며, 분별과 절제로 이 나라를 지키게 하옵소서.

주님,
특별히 보훈의 이름으로 위로가 필요한 이들을 기억하여 주옵소서. 전쟁과 분단의 상처를 가슴에 품고 살아온 유가족과 참전용사들, 국가를 위해 헌신하다 몸과 마음이 상한 이들과 그 가정들을 위로하여 주옵소서.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 기억과 아픔을 주께서 아시오니, 그들의 남은 생애를 붙드시고 외로움과 가난, 병마 가운데 있는 이들을 친히 돌보아 주옵소서. 우리 사회가 그들의 희생을 기념하는 말에만 머물지 않게 하시고, 실제적인 돌봄과 공정한 예우로 책임을 다하게 하옵소서.

주 하나님,
한국교회를 위해 기도합니다. 교회가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품되, 교회가 세상의 논리에 휩쓸려 정치의 도구가 되지 않게 하옵소서. 오히려 교회가 십자가의 복음으로 시대를 비추는 양심이 되게 하시고, 미움의 언어가 아니라 회개와 화해의 언어를 말하게 하옵소서. 강단이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굳게 세워지게 하시고, 목회자와 직분자들이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종으로 서게 하옵소서. 기도가 약해진 교회를 다시 일으키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거룩함과 사랑을 회복하게 하옵소서.

주님,
성도들의 삶과 믿음을 위해 기도합니다. 6월의 무더위와 분주함 속에서도 영혼이 지치지 않게 하시고, 삶의 무게가 신앙의 질서를 무너뜨리지 않게 하옵소서. 가정과 일터에서 정직과 인내를 지키게 하시며, 불안한 시대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담대함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경제적 어려움 속에 있는 가정들을 붙들어 주시고, 특별히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의 한숨을 주께서 아시오니, 낙심하지 않게 하시고 필요한 길을 열어 주옵소서. 교회가 서로의 짐을 나누는 공동체가 되게 하시고, 어려운 지체들을 외면하지 않게 하옵소서.

다음 세대를 주께 올려드립니다.
우리 자녀들과 청년들이 분노와 냉소에 길들여지지 않게 하시고, 진리와 책임, 섬김을 배우게 하옵소서. 자유가 방종이 되지 않게 하시고, 권리가 의무를 삼키지 않게 하시며, 공동체를 세우는 양심을 갖추게 하옵소서.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 위에 삶을 세우게 하옵소서.

주 하나님,
6월을 맞아 우리에게 다시 지혜를 주옵소서. 과거를 잊지 않되 과거에 묶이지 않게 하시고, 희생을 기억하되 미움으로 갚지 않게 하시며, 애통함을 품되 소망을 놓치지 않게 하옵소서. 역사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시고, 십자가로 우리를 부르신 주님의 길을 따라 감사와 책임, 화해와 섬김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이 모든 기도를
역사의 주인이시며 교회의 머리 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목회칼럼] 길을 잃은 죄인들, 다시 길을 찾는 교회

 

길을 잃은 죄인들, 다시 길을 찾는 교회

1. 타락 이후의 인간은 길을 잃은 존재입니다

인간은 타락으로 인해 길을 잃어버린 존재입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잃어버린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길을 잃었다는 말은 단지 방향감각을 잃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살아갈 도리와 목적과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다는 뜻입니다.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세상은 더 많은 정보와 더 빠른 속도를 제공하지만, 길을 잃은 영혼은 속도가 빨라질수록 더 깊은 방황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붙들어야 할 질문은 하나입니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입니다.

2. 죄는 눈과 귀와 입을 막는 어둠입니다

죄는 인간의 눈을 멀게 하여 참된 것을 바라보지 못하게 했습니다. 죄는 인간의 귀를 막아 진리의 말씀을 듣지 못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또한 죄는 인간의 입을 막아 바른 말을 하지 못하도록 막아 버렸습니다. 죄는 단지 나쁜 행동의 목록이 아니라, 영혼의 감각을 마비시키는 어둠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을 보아도 보지 못하고, 말씀을 들어도 듣지 못하며, 옳은 줄 알면서도 옳게 말하지 못하는 존재가 됩니다. 이 마비가 지속되면 삶은 점점 자기 합리화로 굳어지고, 결국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는 착각으로 버티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인간의 이성은 죄로 인해 하나님을 이해하지도 깨닫지도 못하는 상태입니다.

3. 시편 기자의 기도는 길 잃은 영혼의 기도입니다

길을 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지혜로운 일은, 자신을 길로 인도하실 분께 도움을 구하는 일입니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자신을 지도해 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4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5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바라나이다

그리고 그는 주의 가르침을 기대합니다.

8 여호와는 선하시고 정직하시니 그러므로 그 도로 죄인을 교훈하시리로다
9 온유한 자를 공의로 지도하심이여 온유한 자에게 그 도를 가르치시리로다
12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뇨 그 택할 길을 저에게 가르치시리로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지도와 교훈입니다. 길을 잃은 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정보가 아니라 인도함입니다. ‘내가 길을 찾겠다’가 아니라 ‘주께서 길을 가르치소서’라는 고백입니다. 믿음은 자기 확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붙드는 겸손입니다.

4. 왜 우리는 주의 지도와 가르침이 필요합니까

왜 우리는 주의 지도와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까. 그것은 죄로 인하여 우리의 눈과 귀가 어두워졌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이성이 하나님을 이해하지도 깨닫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길을 잃은 사람에게 나침반이 필요하듯이, 죄로 길을 잃은 영혼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세상의 조언은 상황을 정리해 줄 수는 있어도, 존재의 목적을 회복시키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을 다시 하나님께로 돌려세우며, 삶의 방향을 새롭게 설정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무엇보다 말씀으로 길을 제시하는 공동체입니다. 세상에 필요한 것은 더 큰 소음이 아니라, 길을 밝히는 빛입니다.

5. 회개는 길을 다시 여는 열쇠입니다

시편 기자는 불가피하게 자신의 죄악을 여호와 앞에 고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7 여호와여 내 소시의 죄와 허물을 기억지 마시고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을 인하여 하옵소서
11 여호와여 나의 죄악이 중대하오니 주의 이름을 인하여 사하소서
18 나의 곤고와 환난을 보시고 내 모든 죄를 사하소서

시인은 분명 큰 어려움과 고통 가운데 있습니다. 그는 원수들로부터 조롱과 비웃음의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 고난의 이유가 무엇이든, 시편 기자는 문제를 환경 탓으로만 돌리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자기 죄를 직면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성숙입니다. 인간의 비참함은 고난 그 자체에 있지 않고, 죄를 죄로 인정하지 못하는 완고함에 있습니다. 회개는 자기를 부수는 절망이 아니라, 하나님께 돌아가는 소망의 문입니다.

6. 용서는 다시 인도하시는 은혜입니다

용서는 단지 죄책감을 덜어 주는 감정적 위로가 아닙니다. 용서는 하나님께서 다시 우리를 인도하시고 지도해 주시는 은혜입니다. 길을 잃은 자에게 용서가 기쁜 이유는, 그 용서가 방황을 끝내는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덮어 버리고 방치하시는 분이 아니라, 죄를 사하시고 다시 길로 부르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용서를 구할 때 단지 과거의 문제 해결만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삶의 방향을 새롭게 해 달라고 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의 핵심입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면 길이 다시 열리는 것입니다.

7. 말씀은 길 위의 빛이며, 그 빛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됩니다

하나님의 인도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단순히 설교를 듣는 수준이 아니라, 말씀이 들리는 은혜입니다. 성경은 이를 빛으로 증언합니다.

시 119 : 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잠 6 : 23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
사 60 : 19 다시는 낮에 해가 네 빛이 되지 아니하며 달도 네게 빛을 비취지 않을 것이요 오직 여호와가 네게 영영한 빛이 되며 네 하나님이 네 영광이 되리니
요 1 :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 12 : 36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서 숨으시니라

말씀의 빛은 결국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됩니다. 길을 잃은 죄인에게 하나님은 단지 지도만 주시는 분이 아니라, 길 자체가 되어 오시는 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생명이 있었고 그 생명이 사람들의 빛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씀을 가까이 한다는 것은 곧 그리스도를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빛을 믿으라는 주님의 말씀은, 단지 지식의 동의가 아니라 삶의 방향을 빛으로 옮기라는 부르심입니다.

8. 오늘 교회와 성도가 붙들 실천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그분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날마다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묵상하고 또 묵상해야 합니다. 말씀이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말씀이 우리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길을 잃은 시대일수록, 교회는 더 많은 기술보다 더 깊은 말씀으로 성도를 세워야 합니다. 가정은 더 많은 대화보다 더 바른 말씀으로 중심을 잡아야 합니다. 개인은 더 많은 결심보다 더 꾸준한 순종으로 발을 내딛어야 합니다. 오늘도 주께서 가르치시는 길을 구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선하시고 정직하심으로 그 도를 가르치십니다. 길을 잃은 죄인을 부끄럽게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다시 길로 이끄시는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종일 주를 바라보는 자에게 길이 열리는 은혜입니다.

주일 오후 찬양 예배 대표기도문 2026년 2월 첫째주

2월 첫째주 주일 오후 대표기도문

만왕의 왕이시며 영원히 변치 않으시는 주님의 이름을 높여 찬송합니다. 2026년 2월의 첫 주일, 또 주일 오후 찬양예배로 우리를 다시 불러 모아 주시니 감사합니다. 한 주의 시작을 예배로 열게 하시고, 낮의 햇살이 기울어가는 이 시간에도 우리의 심령을 주님께로 향하게 하셔서, 찬양 가운데 임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오늘 이 예배가 우리의 감정을 만족시키는 시간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영광을 높이는 거룩한 제사가 되게 하옵소서.

자비로우신 주님, 먼저 우리의 죄를 고백하오니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입술로는 주님을 사랑한다 말하면서도 마음은 세상의 염려와 욕심에 붙들렸고, 감사보다 불평이 앞섰으며, 순종보다 편안함을 선택하였습니다. 찬양의 가사를 부르면서도 삶으로는 주님의 뜻을 거스른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씻어 주시고, 성령께서 우리의 중심을 새롭게 하셔서, 찬양이 소리로 끝나지 않고 삶의 변화로 이어지게 하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2월 첫 주를 시작하며 우리의 마음을 다시 정돈하게 하옵소서. 새해의 결심이 흐려지고, 바쁨 속에 신앙의 열심이 식기 쉬운 이때에, 주님께서 우리를 다시 예배로 불러 세우심을 감사합니다. 주님, 우리의 하루를 주께 드리게 하시고, 가정과 일터와 학교와 관계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인정하게 하옵소서. 특별히 2월은 새 학기와 새 출발을 준비하는 시기이오니, 우리의 계획이 주님의 뜻보다 앞서지 않게 하시고, 먼저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믿음의 질서를 세워 주옵소서.

주님, 오늘 “찬양예배”로 모였사오니 찬양의 의미를 깊이 깨닫게 하옵소서. 찬양은 형편이 좋아서만 드리는 노래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선포하는 믿음의 고백임을 알게 하옵소서. 마음이 무너진 자에게는 찬양이 다시 숨을 불어넣는 은혜가 되게 하시고, 낙심한 자에게는 하늘 소망을 붙드는 줄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 안의 두려움과 비교와 자책이 찬양 가운데 무너지게 하시고, 성령께서 임재하셔서 묶인 마음이 풀어지고 상한 심령이 회복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찬양이 천상의 예배에 닿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향기로운 제물이 되게 하옵소서.

교회를 위해 기도합니다. 주께서 피로 사신 몸 된 교회를 사랑으로 붙들어 주옵소서. 담임목사님과 모든 교역자들에게 성령의 충만함과 말씀의 권능을 더하셔서, 진리가 타협되지 않게 하시고, 선포되는 말씀마다 회개와 소망과 순종을 일으키게 하옵소서. 장로님들과 제직들, 각 부서의 리더들에게 겸손과 충성을 주셔서, 직분이 높아짐이 아니라 섬김의 자리임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오후 예배를 섬기는 찬양팀과 찬양대, 악기와 음향과 방송, 안내와 봉사로 수고하는 모든 손길을 기억하사, 준비 과정의 피로를 덜어 주시고, 섬김이 부담이 아니라 기쁨이 되게 하옵소서. 사람의 박수보다 하나님의 칭찬을 바라보게 하시고, “주께 하듯” 정결한 마음으로 섬기게 하옵소서.

다음세대와 청년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합니다. 2월의 준비와 3월의 시작 앞에서 불안해하는 마음들을 주께서 붙들어 주옵소서. 세상의 기준과 경쟁에 휩쓸리지 않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굳게 세우게 하옵소서. 우리 자녀들의 입술에도 찬양이 회복되게 하시고, 찬양이 취미가 아니라 신앙의 고백이 되게 하옵소서. 교사들과 교육부서 섬김이들에게도 사랑과 인내를 더하셔서, 다음세대를 말씀과 기도로 세우는 사명이 흔들리지 않게 하옵소서.

연약한 지체들을 기억하여 주옵소서. 병상에 있는 성도들에게 치유와 회복을, 마음의 병으로 신음하는 이들에게 위로와 평강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경제적 어려움과 관계의 갈등으로 눈물 흘리는 가정들, 외로움 속에 있는 성도들을 주께서 친히 찾아가 주옵소서. 우리 교회가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의 사랑으로 함께 짐을 나누게 하시고, 찬양의 고백이 돌봄과 나눔으로 이어지게 하옵소서.

이 나라와 열방을 위해 기도합니다. 갈등과 불의가 가득한 시대에 주님의 공의와 자비가 이 땅에 임하게 하옵소서. 위정자들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과 지혜를 주셔서 공동선을 이루게 하시고, 약한 자를 보호하게 하옵소서. 전쟁과 재난 가운데 있는 열방을 긍휼히 여기시고, 선교지와 선교사들을 지켜 주셔서 복음의 문이 넓게 열리게 하옵소서.

주님, 이제 이 찬양예배 가운데 우리 마음의 왕좌에서 자아가 내려오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로 높임 받으시게 하옵소서. 우리의 찬양이 예배당 천장에 머물지 않고, 한 주간의 삶으로 흘러가게 하시며, 월요일의 일상에서도 “주님은 선하시다” 고백하며 살게 하옵소서. 2월 첫 주의 시작을 은혜로 붙드신 하나님, 남은 날들도 예배자로 살게 하시고, 찬양하는 교회, 찬양하는 성도로 세워 주옵소서.

모든 영광을 홀로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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