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7년 2월 넷째 주일 낮 예배 대표기도문
거룩하시고 자존하시며, 계절의 주인이시고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아버지,
긴 겨울의 끝자락, 2월의 마지막 주일 아침에 저희를 주의 집으로 불러 모아 주시니 감사하옵니다. 아직 바람 끝은 차갑고, 새벽 공기에는 겨울의 결이 남아 있으나, 햇빛은 이미 봄을 준비하고 있으며, 메마른 가지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의 문장이 조용히 써 내려가고 있사옵니다. 들판은 아직 고요하나 땅속은 분주하고, 나무는 아직 침묵하나 속으로는 물오름을 준비하듯, 저희가 눈으로 다 보지 못하여도 하나님께서 이미 다음 계절을 예비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그 은밀한 섭리의 손길 앞에 저희가 오늘도 경배하며 엎드리오니, 이 예배를 기쁘게 받아 주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두 달의 시간이 어느새 저희 손등을 스치고 지나 2월의 마지막 주일에 이르렀사옵니다. 새해의 첫 문을 열며 품었던 다짐과 기도 제목들이 아직 다 이루어지지 않았고, 어떤 것은 여전히 제자리인 듯 보이며, 어떤 것은 오히려 더 무거워진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사오나, 주님, 저희로 하여금 시간의 속도로 하나님을 판단하지 않게 하옵소서. 모세는 40년의 광야를 돌아서야 약속의 문 앞에 섰고, 요셉은 꿈을 받은 뒤 오랜 세월 침묵의 우물과 감옥을 지나야 했으며, 다윗은 기름부음을 받고도 사울의 창을 피해 광야를 떠돌아야 했사온데, 저희가 짧은 기다림에도 쉽게 지치고 조급해하며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했던 어리석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
이 시간 저희가 먼저 지난날의 죄와 허물을 주님 앞에 자복하옵나이다. 새로워지기를 원하였으나 여전히 옛 성품을 벗지 못하였고, 은혜를 구하였으나 순종은 아껴 두었으며,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면서도 실제로는 자기 생각과 자기 감정과 자기 계획을 더 굳게 붙들고 살았음을 고백하옵니다. 주님 앞에 기도하겠다 하였으나 현실의 계산과 염려가 기도의 자리를 밀어내었고, 말씀을 가까이하겠다 다짐하였으나 세상의 소리와 사람의 말에 더 쉽게 흔들렸나이다. 저희는 마치 광야의 이스라엘처럼 이미 받은 은혜를 잊고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두려워하였고, 엘리야처럼 하나님의 큰일을 본 후에도 로뎀나무 아래에서 홀로 무너졌으며, 베드로처럼 사랑을 고백하면서도 두려움 앞에서 주를 모른다 하였나이다. 주님, 저희의 얕은 믿음과 무딘 양심과 쉽게 식는 열심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으로 저희를 다시 이끌어 주옵소서.
거기에서 저희의 교만이 낮아지게 하시고, 저희의 분주함이 멈추게 하시며, 저희의 완고함이 부서지게 하옵소서. 죄를 설명하는 데 머물지 않게 하시고 죄를 미워하게 하시며, 은혜를 말하는 데 머물지 않게 하시고 은혜에 빚진 자로 살게 하옵소서. 다윗이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켜 달라”고 울부짖었듯, 저희도 신앙의 표정만 남은 사람들이 아니라 구원의 기쁨을 다시 맛보는 성도 되게 하옵소서. 메마른 심령에는 봄비를 내려 주시고, 굳은 마음에는 해빙의 은혜를 허락하시며, 오래 식어 있던 첫사랑의 불씨 위에 다시 성령의 바람을 불어 넣어 주옵소서.
은혜의 하나님,
2월의 마지막 주는 참으로 묘한 시간입니다. 완전히 떠나보낸 것도 아니고 완전히 맞이한 것도 아닌 채, 끝과 시작이 한 문턱에 함께 서 있는 시간입니다. 졸업의 아쉬움과 입학의 설렘이 교차하고, 이동과 발령과 준비와 기다림이 한꺼번에 마음을 흔드는 때이며, 겨울의 결산과 봄의 예고가 동시에 들려오는 계절이옵니다. 그러하오니 주님, 저희가 이 경계의 시간들을 믿음으로 건너게 하옵소서. 떠나보내야 할 것은 은혜 안에서 잘 보내게 하시고, 새로 시작할 것은 두려움보다 기도로 맞이하게 하시며, 아직 정해지지 않은 일들은 조급하게 움켜쥐지 않고 하나님의 때를 신뢰하며 맡길 수 있게 하옵소서.
여호수아가 요단 앞에서 발을 먼저 내디딘 후에야 길이 열렸던 것처럼,
아브라함이 목적지를 다 알지 못한 채 길을 떠났던 것처럼,
룻이 앞날을 다 알지 못한 채 보아스의 밭으로 들어갔던 것처럼,
저희도 설명이 충분하여서 순종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신실하시기에 순종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모든 문이 선명히 보인 뒤에 움직이려는 사람이 아니라, 주께서 앞서 가심을 믿기에 믿음으로 걸음을 떼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주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계절이 바뀌는 길목마다 자연이 제 옷을 갈아입듯, 교회도 습관과 타성의 옷을 벗고 다시금 복음의 중심 앞으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예배는 드리되 감격은 잃어버리고, 봉사는 많으나 기도는 메마르며, 활동은 분주하나 말씀에 대한 떨림은 약해지는 일이 우리 가운데 없게 하옵소서. 우리 교회가 사람의 수와 외적인 형편을 자랑하는 공동체가 되지 않게 하시고, 성령의 임재와 말씀의 권세와 사랑의 진실함을 더 귀하게 여기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강단을 축복하여 주옵소서.
선포되는 말씀이 단지 아름다운 해석이나 위로의 문장으로 머무르지 않게 하시고, 죄를 찌르고 잠든 영혼을 깨우며, 절망한 심령에게 하늘의 숨을 불어넣는 생명의 말씀이 되게 하옵소서. 에스라가 율법책을 펼쳤을 때 백성들이 울며 회개하였던 것처럼, 오늘도 말씀 앞에서 우리의 마음이 찔리고 무릎이 꺾이며 삶의 방향이 돌이켜지게 하옵소서. 담임목사님께 성령의 충만과 하늘의 통찰과 말씀의 담대함을 더하여 주시고, 본문 앞에서는 언제나 떨게 하시며, 강단 위에서는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전하게 하옵소서. 부교역자들과 장로님들, 권사님들, 집사님들, 교사들과 찬양대와 여러 섬김의 손길들 위에도 동일한 은혜를 주셔서, 맡은 일을 익숙함으로 하지 않게 하시고, 매번 처음 드리는 제사처럼 두렵고 감사한 마음으로 감당하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 교회를 2월의 밭처럼 가꾸어 주옵소서.
겉으로는 아직 황량하여 보여도 속으로는 이미 씨앗이 부풀고 있는 밭, 아직 꽃은 없으나 봄을 의심하지 않는 밭, 농부의 손길을 신뢰하며 조용히 때를 기다리는 밭이 되게 하옵소서. 한 사람의 눈물, 한 사람의 조용한 충성, 한 교사의 인내, 한 부모의 기도, 한 청년의 결단, 한 노성도의 신실한 예배를 가볍게 여기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바로 그런 숨은 것들을 통하여 교회의 미래를 빚어 가심을 믿게 하옵소서. 사람은 열매를 먼저 찾으나 하나님은 뿌리를 깊게 하시는 줄 알게 하시고, 저희도 속도보다 방향을, 크기보다 생명을, 화려함보다 거룩함을 귀히 여기게 하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각 가정을 주께 올려드립니다. 아직 바람 찬 저녁마다 집집마다 저마다의 염려와 사연이 있사오니, 주께서 그 문간마다 평강으로 서 계셔 주옵소서. 부모와 자녀 사이에 쌓인 오해가 있다면 녹여 주시고, 부부 사이에 오래된 침묵과 상처가 있다면 십자가의 사랑으로 풀어 주시며, 말은 함께하되 마음은 멀어진 가족들에게 다시 한 상의 기도와 한 자락의 따뜻한 마음을 회복시켜 주옵소서. 아브라함의 장막처럼 예배가 있는 집, 여호수아의 고백처럼 하나님을 섬기기로 결단한 집, 디모데의 가정처럼 믿음이 세대를 건너 흐르는 집이 되게 하옵소서.
특별히 이 시기
졸업과 입학, 취업과 이직, 발령과 이사, 군 입대와 새로운 훈련을 준비하는 자들을 기억하여 주옵소서. 어떤 이는 오래 머물던 자리를 떠나야 하고, 어떤 이는 낯선 자리로 들어가야 하며, 어떤 이는 기다리던 소식을 아직 받지 못한 채 불안 속에 서 있사오니, 주님, 그 모든 경계의 자리마다 먼저 하나님을 찾게 하옵소서. 다니엘이 바벨론의 화려함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았던 것처럼, 요셉이 애굽의 낯선 권력 속에서도 하나님과 동행했던 것처럼, 에스더가 두려움 속에서도 “죽으면 죽으리이다”의 믿음으로 나아갔던 것처럼, 저희의 자녀들과 청년들도 새로운 환경 속에서 믿음의 중심을 잃지 않게 하옵소서. 세상이 빠름을 강요하여도 바름을 택하게 하시고, 높아짐을 좇기보다 하나님께 붙들린 사람 되는 것을 더 큰 영광으로 여기게 하옵소서.
긍휼의 하나님,
연약한 지체들을 특별히 기억하여 주옵소서. 병상에서 계절의 변화를 창문으로만 느끼는 성도들이 있사오니, 그들에게 임마누엘의 주님께서 친히 가까이 계셔 주옵소서. 몸의 병보다 더 깊은 마음의 병으로 무너져 가는 이들, 사람들 앞에서는 괜찮은 척하지만 홀로 있을 때 깊은 외로움과 공허 속에 빠지는 이들, 새해를 시작했으나 여전히 슬픔을 마무리하지 못한 이들, 오래 기도하였으나 아직 응답의 문이 열리지 않아 지쳐 가는 이들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하갈의 눈물을 들으셨던 하나님, 로뎀나무 아래 엘리야를 어루만지시던 하나님, 엠마오 길의 낙심한 제자들과 함께 걸으시던 주님께서 오늘도 이들의 마음 곁에 서 주옵소서. “괜찮다”는 말보다 더 깊은 위로, “기다려라”는 말보다 더 확실한 임재, 사람의 손보다 따뜻한 하나님의 손으로 만져 주옵소서.
또한 생업의 현장에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2월의 마지막 주는 한 달의 계산과 다음 달의 염려가 함께 겹치는 때이오니, 먹고 사는 문제 앞에서 눌린 성도들을 붙들어 주옵소서. 새벽 어둠을 가르며 일터로 향하는 발걸음, 자영업의 무게를 홀로 견디는 어깨, 가정의 필요를 감당하려 밤늦게까지 수고하는 손길, 한숨 섞인 장부와 계산기 앞에 앉은 부모들의 마음을 주께서 기억하여 주옵소서. 광야의 만나처럼 날마다 필요한 것을 공급하여 주시고, 사르밧 과부의 통처럼 마르지 않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며, 밤새 수고하던 어부들의 배에 아침의 기적을 주셨듯이, 오늘도 주의 백성들의 수고를 헛되이 두지 말아 주옵소서. 형편이 어려울수록 정직을 잃지 않게 하시고, 수입이 넉넉지 않아도 감사와 나눔의 통로가 막히지 않게 하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이 나라와 민족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겨울 끝의 하늘은 맑아도 바람은 차갑듯, 우리 사회도 겉으로는 익숙한 질서를 가진 듯하나 속으로는 냉소와 분열과 불신의 바람이 여전히 거세게 불고 있사옵니다. 위정자들에게 공의와 진실과 절제의 마음을 주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권세를 쓰지 않게 하시며, 백성의 삶을 짐처럼 여기지 않고 책임처럼 여기게 하옵소서. 약한 자의 울음이 묻히지 않게 하시고, 정의가 소리 없는 단어로 남지 않게 하시며, 이 땅 가운데 진실과 자비가 함께 흐르게 하옵소서. 무엇보다 한국교회가 먼저 회개하게 하시고, 바깥 어둠을 꾸짖기 전에 안의 등불이 꺼져 있지는 않은지 살피게 하옵소서. 무너진 제단을 다시 쌓고, 잊힌 무릎을 다시 꿇으며, 십자가의 복음을 다시 중심에 두는 교회 되게 하옵소서.
이제 2월의 마지막 주일을 지나며 저희는 곧 다가올 봄의 문턱 앞에 서 있사오며, 동시에 경건의 길을 더 깊이 걸어가야 할 시간을 앞두고 있사옵니다. 계절이 바뀔수록 겉옷만 가볍게 하는 자가 아니라 마음의 짐도 벗어 버리는 자가 되게 하시고, 새봄을 준비하듯 영혼의 밭도 다시 갈아엎게 하옵소서. 겉으로만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 데서 그치지 않게 하시고, 내면의 우선순위가 하나님 앞으로 다시 정렬되게 하옵소서. 기도하지 못한 것을 애통하게 하시고, 말씀을 등한히 여긴 것을 부끄러워하게 하시며, 예배를 당연히 여겼던 교만을 회개하게 하옵소서. 겉으로는 분주한데 속으로는 비어 있는 신앙이 아니라, 말은 적어도 하나님 앞에서 깊어지는 신앙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오늘 드리는 이 주일 낮 예배 가운데 친히 임재하여 주옵소서.
찬송은 겨울 하늘을 가르는 새떼의 날갯짓처럼 보좌를 향해 오르게 하시고, 기도는 얼음 아래 흐르던 물줄기가 드디어 햇빛을 만나 터져 나오듯 진실한 부르짖음이 되게 하시며, 말씀은 마른 가지 끝에 맺히는 새순처럼 조용하나 분명한 생명의 능력이 되게 하옵소서. 어떤 이는 책망을 받고, 어떤 이는 위로를 얻고, 어떤 이는 결단하게 하시며, 어떤 이는 오랜 침묵을 깨고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옵소서. 예배가 익숙한 일상의 일부가 아니라, 하늘이 땅에 닿는 거룩한 사건이 되게 하옵소서.
2월의 마지막 주일에 저희가 다시 고백하옵니다. 꽃은 아직 없으나 봄은 오고 있고, 응답은 아직 보이지 않아도 약속은 살아 있으며, 길은 아직 다 드러나지 않았으나 주께서 앞서 가고 계심을 믿습니다. 그러하오니 저희가 눈앞의 풍경만으로 판단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오늘을 해석하게 하옵소서. 겨울 끝의 햇빛처럼 조용하나 따뜻한 믿음을 주시고, 땅속의 씨앗처럼 보이지 않아도 살아 있는 소망을 주시며, 새순을 준비하는 가지처럼 침묵 속에서도 생명을 잃지 않는 순종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저희의 삶을 겨울을 지나 봄을 맞는 들판처럼 넓고 깊게 하시고, 얼음이 풀린 강물처럼 막혔던 마음이 다시 흐르게 하시며, 오래 참은 농부의 손처럼 조급하지 않고, 새순을 기다리는 나무처럼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옵소서. 화려한 신앙보다 견디는 신앙을, 많은 말보다 깊은 순종을, 사람의 박수보다 하나님의 미소를 더 사모하게 하옵소서.
저희의 시작과 끝이 되시며, 겨울의 끝에서도 먼저 봄을 준비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