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장 개요
2장은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한 사건과 그로인해 사람들이 회개하고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오순절의 성령강림은 예수의 천상통치의 시작이자, 방법이다. 성령은 각 제자들에게 임함으로 각자의 위치에서 예수의 사역을 감당하게 된다. 각자 다른 몸을 지녔지만 한 성령으로 하나 된다. 신약교회의 가장 핵심이 성령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필자는 아래와 같이 2장을 구분했다. 여기서 14-42절까지는 하나로 묶어야 하지만 분량이 너무 많이 두 부분으로 구분한 것이다.
사도행전 2장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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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오순절의 성령강림
- 14-36절 베드로의 설교
- 37-42절 회개와 세례
- 43-47절 새로운 공동체
사도행전 2장 강해
1-13 오순절의 성령강림
오순절(Πεντηκοστή)
오순절(펜테코스테, Πεντηκοστή)은 유월절 이후 7주가 지난 다음날로 만 50일이 되는 날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삼대 절기가 있는 데 유월절(Passover) 칠칠절(Pentecost 오순절) 초막절(Tabernacle day) 또는 장막절입니다. 유월절은 유대력으로 1월(태양력 3,4월경)이고, 칠칠절은 유대력으로 3월(태양력으로 5.6월)이고, 초막절은 유대력을 7월 15일(태양력 9.10월)에 있다. 이중 가장 중요한 절기를 우리나라 설과 같은 유월절이다. 3대 절기는 반드시 지켜야 할 절기들입니다.
유월절은 무교절 하루 전날이고, 무교절은 일주일동안 계속됩니다. 3대 절기에는 속하지 않지만 무교절 안에 초실절이 있습니다. 유월절은 유대력으로 1월 14일이고, 무교절은 15부터 21일까지 이어지는 초실절은 유월절을 지난 후 첫 안식후 첫 날입니다. 태양력으로 하면 월요일이 되는 것입니다. 세 절기는 8일에 걸쳐 치러지는 큰 절기인 것이다.
오순절은 첫 이삭을 드린 후 오십일일 때 되는 날이며 추수가 마무리되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오순절은 추수와 깊은 연관이 있으며, 열매를 거두는 날로 축제의 시간인 것입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오순절 사건을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초실절(Feast of Firstfruits)
초실절의 유래가 성경에는 정확히 표현되어 있지만 학자들은 초실절이 유월절의 어린양이 죽은 후 안식 후 첫날이기에 신약의 저자들은 예수님의 부활과 초실절을 연관지어 설명했습니다. 바울은 고전 15:20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바벨론 포로 이후 이스라엘의 절기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유월절은 가장 중요하게 여겼고, 귀환 이후 지켜집니다. 하지만 다른 절기는 잘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신앙심이 깊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유월절을 위해 예루살렘에 들르면 대체로 한 달반 정도를 기다렸다 오순절까지 지키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외국에 있는 사람들이 한하여. 그래서 유월절만큼은 아니지만 오순절을 다른 절기에 비해 상당히 많은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상주했습니다.
급하고 강한 바람처럼
오순절 날이 이르자 이들은 한 곳에 제자들이 한 곳에 모였다. 이들은 모인 곳은 마가의 다락방이 아니라 성전입니다. 그들은 기도하게 위하여 성전에 모인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은 성전을 배경으로 합니다. 사람들이 큰 착각하는 것의 하나가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할 때 성령이 임했다고 하고 하지만 전혀 아닙니다. 그들이 다락에 있었다면 성령 충만한 모습을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었고, 그들은 비판도 하지 못합니다.
그들이 성전에 오순절을 기념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일 때 갑자기 하늘로부터 강한 바람이 불고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들은 성령의 충만을 받고 곧바로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른 언어로’로 말하기 시작합니다. 이 소리를 천하 각국에서 모인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듣는다. 그들은 다른 언어로 말하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란다.
우리는 이 부분에서 유의해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다른 언어는 우리가 교회에서 이상한 소리로 말하는 방언이 아니라 그냥 다른 지방의 언어였기 때문입니다. 즉 로마어, 아람어, 헬라어, 페르시아어를 말한다. 깜짝 놀랐던 이유는 토박이 유대인들이 외국의 언어로 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당시 로마의 식민지라 교류가 많아 다른 언어를 쉽게 구사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후에 바울이 전도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서원을 마치는 의식을 행할 때 유대인들이 바울을 발견하고 그를 죽이려 합니다. 천부장이 소동이 일어난 것을 알고 달려옵니다. 그때 바울이 천부장에게 헬라 말을 하자 천부장이 놀라 '네가 헬라 말을 아느냐'고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행 21:37 바울을 데리고 영내로 들어가려 할 그 때에 바울이 천부장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느냐 이르되 네가 헬라 말을 아느냐
이것은 유대인들이 다른 언어를 말하는 것은 굉장히 특이한 것 중의 하나였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늘로부터 오는 강한 바람과 불의 이미지는 갈멜산의 엘리야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구약 안에서 이러한 현상들은 종말론적 현상으로 하나님의 임재와 심판 등에 관련되어 하나님의 현현의 한 증상들입니다. 종말은 이전 시대의 종말이며,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큰일
11절에서 하나님의 큰일(μεγαλεῖα τοῦ Θεοῦ)을 말한다고 합니다. 구약 속에서 하나님의 큰일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를 말합니다. 그래서 ‘큰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등의 표현들은 적국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회복시키는 일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누가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역사를 ‘하나님의 큰일’로 표현했을 것입니다.
언어의 통일
사람들은 놀랐고, 어떤 사람은 새 술에 취했다고 조롱했습니다. 여기서 놀란 것은 ‘갈릴리 사람’(7절)들이 각 국 즉 외국어로 복음을 전하기 때문이다. 누가는 오순절 성령 강림이 이미 약속된 것이며, 구약에서 예언한 것임을 강조합니다. 즉 이것은 갑자기 일어난 황당한 사건이 아닌 것입니다. 그들의 조롱 속에는 말씀에 대한 무지와 형식에 치우친 외형적 신앙의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언어의 통일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를 곧장 창세기 11장으로 돌아가 '언어의 혼잡'을 일으킨 바벨탑 사건을 생각나게 합니다. 악은 흩어지게 하시고, 선은은 모아 힘을 발휘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봅니다.
14-36절 베드로의 설교
베드로가 그들의 조롱과 의구심을 풀기 위해 일어나 설교한다. 베드로의 설교 핵심은 구약의 예언들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응했다는 것이다.
첫 번째 논증 지금은 제 삼시다.
즉 오전 9입니다. 그러니 이들이 아침부터 술을 마시고 성전에 온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술은 인간의 이성을 마비 시키고 잘못된 행동을 유발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에 술을 마시며 중언부언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한 때 한나가 기도할 때 엘리는 술취한 여자로 보았습니다. 이처럼 성전에서 술 취하는 것은 대단히 큰 실례를 범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논증, 요엘의 예언
두 번째 논증은 요엘 2:28-32을 인용합니다. 그곳에서 마지막 날에 성령을 부어주실 것을 약속하고 있다. 바로 그 약속이 성취 것이다. 요엘은 마지막 때에 성령이 부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현현이 드러날 것임을 예고한다. 요엘서의 인용은 출애굽기의 재앙과 깊은 연관이 있으며, 세상을 심판하고 택하신 백성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속사적 계획이 시작되었음을 말한다.
사도행전 2:17-21
- 사도행전 2:17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 사도행전 2:18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 사도행전 2:19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 사도행전 2:20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 사도행전 2: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요엘 2:28-32
- 요엘 2:28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 요엘 2:29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 요엘 2:30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 요엘 2:31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 요엘 2:32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하나님의 영은 남종과 여종에게 임한다. 구약에서 여종에 성령이 임하는 경우는 없다. 사실 부분은 주의해서 독해할 필요가 있지만 문자적으로 본다며 신약에서는 구약의 차별이나 구분이 명백히 사라질 것임을 말한다. 해가 빛을 내지 못하고, 달이 피로 변한다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 파괴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현현 앞에서 모든 만물은 자신의 힘과 능력을 상실한다. 종말론적 환상은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었음을 말한다. 출애굽 재앙 때 흑암재앙은 이러한 하나님의 현현으로 인한 세상의 종말을 뜻한다. 십자가의 사건 때 잠시 동안 빛이 사라진 사건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세 번째 논증, 다윗의 예언
세 번째는 다윗이 시편 16편에서 고백한 내용을 바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미리 보았단 다윗을 통해 앞으로 일어날 일을 계시했다고 말한다. 다윗이 예언한 곳은 시편 16:8-11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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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6: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 시편 16:9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 시편 16:10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 시편 16:11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베드로는 이 본문을 통해 부활을 증명합니다.(31절) 시편 16편은 메시아 시편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시편 16편은 사실 많은 연구가 필요한 시편 중의 하나입니다. 분명한 것은 다윗은 자신의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않으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학자들마다 해석의 폭이 넓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다윗이 스스로를 지칭하는 듯한 표현은 예수에게 적용 시킴으로 다윗과 예수를 동일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고백한 내용이 곧 예수의 고백인 것입니다.
베드로는 31절에서 다윗의 예언을 그리스도의 부활을 미리 본 것으로 해석합니다. 다윗은 1500년 전에 미리 예수의 부활을 환상을 통해 본 것입니다. 베드로의 이러한 해석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갖는 정통성을 옹호하고, 하나님 아버지의 의지로 실현된 것으로 주장하는 것입니다.
네 번째 논증, 다윗의 시편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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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10:1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원수가 '네 발판'이 된다는 표현은 전쟁에서 승리한 왕을 밟로 밟음으로 승리했음을 드러내는 행위입니다. 베드로는 시편 110편을 인용하여 원수를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시작된 죽음을 정복했음을 강조합니다. 부활은 죽음까지 완전히 이겨 승리한 것입니다.
37-42절 회개와 세례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마음에 찔림을 받아 ‘우리가 어찌할꼬’를 외친다.(37절) 베드로는 그들에게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고 말한다. 그 후에 성령의 선물을 받을 것이라 말한다. 그날에 세례 받은 이들이 삼천이었다.(41절)
마음의 찔림은 각성이요 완전한 생각의 전환이다. 죽었던 영혼이 살아나면 가장 먼저 고통을 느낀다. 고통은 살아 있다는 증거다. 그들이 무지에서 벗어나고 영혼이 살아나자 지금까지 느끼지 못한 고통을 느낀다. 영적으로 더 깊어 질수록 사람은 작은 죄에도 예민해지고 고통을 느낀다.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느끼는 것을 크게 느낀다.
그들이 세례를 받고 행한 것은 1)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았고, 2) 서로 교제했고, 3) 떡을 뗐고, 4) 기도했다. 하지만 원어는 떡을 떼며 교제했다고 말하나. 교제는 성만찬을 통한 교제를 말한다.
ἦσαν δὲ προσκαρτεροῦντες
τῇ διδαχῇ τῶν ἀποστόλων
καὶ τῇ κοινωνίᾳ, τῇ κλάσει τοῦ ἄρτου
καὶ ταῖς προσευχαῖς.
43-47절 새로운 공동체
오순절 이후 새로운 공동체가 된 이들을 설명합니다. 새로운 공동체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고정된 특징이 아니라 임시적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럼에도 기독교 교회가 갖는 고유한 정신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항상 주의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1) 물건을 통용
첫 번째 특징은 그들이 물건을 통용한 것입니다. 그들은 다 함께 있었고, 물건을 서로 통용하여 한 공동체로 모이게 됩니다. 자신들의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들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러한 특징들은 자신들의 목적이 소유에 있지 않고 나눔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간다는 것입니다. 주의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은 이들의 나눔과 통용은 누군가의 강요나 권유가 아니라 자의대로 했다는 것입니다. 내가 나누기에도 너도 너의 소유를 나누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자발적으로 나눔을 통해 자신의 신앙을 고백한 것입니다.
2) 마음을 나눔
46절에서는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하여 성전에 모였다고 말합니다. 이들은 여러가지 어려움과 힘듦이 있었음에도 성전에 모였습니다. 성전에 모여 찬양하며 예배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잊으면 안 됩니다. 그리스도를 믿으면 유대교를 떠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성전에서 예배하는 것은 일종의 문화로서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은 신앙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3) 집에서 떡을 떼며 음식을 먹는다.
초대교회는 성찬식과 식사가 엄격하게 구분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예는 고린도교회와 야고보서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식사를 가져와서 교회에서 함께 거내 먹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일찍 먹고, 누군가는 과하게 비싼 음식을 가져와 분쟁이 있었습니다.
초기에 예수님을 믿은 이들은 집에서 식사를 같이 함으로 한 공동체로서의 직무를 다했고, 한 몸을 이루어 갔습니다. 고대 세계에서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은 한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장별요약 및 강해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