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23장 강해: 끝까지 여호와께 붙어 있으라

여호수아 23장 강해: 끝까지 여호와께 붙어 있으라

들어가는 말 (23:1-16)

여호수아 23장은 여호수아의 고별 설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안식을 주신 지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여호수아는 나이가 많아 늙었습니다.(수 23:1-2) 이제 그는 자신의 죽음이 가까움을 알고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지도자들과 재판장들과 관리들을 불러 마지막 권면을 전합니다.(수 23:2)

이 장은 단순한 유언이 아닙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온 백성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언약적 설교입니다. 여호수아는 과거를 회상합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이 모든 나라에 행하신 일을 너희가 다 보았다”고 말합니다.(수 23:3) 그리고 현재의 책임을 말합니다.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고 권면합니다.(수 23:6) 또한 미래의 위험을 경고합니다. 만일 남아 있는 민족들과 섞이고 그들의 신들을 섬기면, 하나님께서 주신 좋은 땅에서 멸망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수 23:12-16)

여호수아 23장의 핵심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도 하나님께 신실해야 한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선한 말씀을 다 이루셨다.(수 23:14)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여호와께 붙어 있어야 한다.(수 23:8)

안식 후에 찾아온 영적 시험 (23:1)

본문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그 사방의 모든 원수들로부터 안식을 주셨다고 말합니다.(수 23:1) 이것은 여호수아서의 중요한 주제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을 주셨고,(창 12:7) 이스라엘은 그 땅에서 안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수 21:43-44)

그러나 안식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험의 시작입니다. 전쟁 중에는 모두가 하나님을 찾기 쉽습니다. 적이 강하고 성벽이 높고 현실이 급박하면 기도하게 됩니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고 삶이 안정되면 다른 시험이 찾아옵니다. 바로 영적 방심입니다.

이스라엘은 이제 광야의 긴장도, 정복 전쟁의 절박함도 지나왔습니다. 그러나 안식의 땅에서도 하나님을 잊으면 그 안식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모세는 이미 이 위험을 경고했습니다. 아름다운 집을 짓고, 배부르고, 소유가 많아질 때 여호와를 잊지 말라고 했습니다.(신 8:11-14)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난의 때만 위험한 것이 아닙니다. 안정의 때도 위험합니다. 어려울 때는 하나님께 매달리지만, 편안할 때는 자기 힘으로 사는 줄 착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안식의 때일수록 말씀과 예배와 감사가 더 필요합니다.

늙은 여호수아의 마지막 설교 (23:2)

여호수아는 온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수령들과 재판장들과 관리들을 부릅니다.(수 23:2) 그는 이제 지도자의 마지막 책임을 감당합니다. 죽기 전에 백성에게 남겨야 할 가장 중요한 말을 전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평생 전쟁의 사람이었습니다. 모세의 수종자로 시작했고,(출 24:13) 아말렉과 싸웠으며,(출 17:9-13) 가나안 정탐꾼으로 믿음의 보고를 했고,(민 14:6-9)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했습니다.(수 1:1-9) 그러나 그의 마지막 관심은 군사적 업적이 아닙니다. 백성이 하나님께 붙어 있는가입니다.

참된 지도자는 마지막까지 사람들을 자기에게 묶어 두지 않고 하나님께로 이끕니다. 여호수아는 “내가 위대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셨다”고 말합니다.(수 23:3)

목회자와 부모와 신앙의 선배들이 마지막까지 남겨야 할 말도 이것입니다. “주님께 붙어 있으라. 말씀을 지키라. 하나님은 신실하시다.” 업적은 사라져도, 이 신앙의 유산은 다음 세대를 살립니다.

너희를 위하여 싸우신 하나님 (23:3)

여호수아는 말합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이 모든 나라에 행하신 일을 너희가 다 보았거니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는 너희를 위하여 싸우신 이시니라.”(수 23:3)

이스라엘의 승리는 이스라엘의 군사력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여리고 성은 인간의 전략으로 무너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무너졌습니다.(수 6:20) 해와 달이 멈춘 전쟁도 하나님의 개입으로 승리했습니다.(수 10:12-14) 가나안 왕들의 연합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손에 넘기셨습니다.(수 11:6-8)

여호수아는 백성이 이것을 잊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기억은 신앙의 중요한 행위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잊으면 사람은 교만해집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하신 일을 기억하면 감사와 순종이 살아납니다.

성도는 자기 인생의 승리를 자기 능력으로 해석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것은 하나님께서 싸우시고 지키셨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고전 15:10) 이것이 성도의 바른 기억입니다.

아직 남아 있는 땅과 계속되는 순종 (23:4-5)

여호수아는 아직 남아 있는 나라들과 이미 멸한 나라들을 기업으로 나누었다고 말합니다.(수 23:4) 그리고 하나님께서 남은 민족들을 쫓아내시고, 이스라엘이 그 땅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수 23:5)

여기에는 “이미”와 “아직”의 긴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큰 승리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아직 쫓아내야 할 민족들이 남아 있습니다. 기업은 이미 주어졌지만, 그 기업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 계속 순종해야 합니다.

성도의 구원도 이와 비슷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구원받았습니다.(엡 2:8)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요 1:12) 그러나 아직 죄와 싸워야 합니다. 아직 성화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빌 2:12-13) 이미 하나님의 나라에 속했지만, 아직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기다립니다.(롬 8:23-25)

그러므로 신앙은 과거의 은혜만 붙들고 멈추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 위에서 오늘의 순종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남겨 둔 죄, 남겨 둔 불순종, 남겨 둔 두려움과 싸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싸우시지만, 백성은 순종해야 합니다.

율법책을 지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23:6)

여호수아는 강하고 담대하여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수 23:6)

이 말씀은 여호수아 1장과 연결됩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처음 부르실 때도 율법책을 주야로 묵상하고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고 하셨습니다.(수 1:7-8) 여호수아의 사역 시작과 끝이 말씀 순종으로 묶여 있습니다.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을 지킬 힘은 군사력이 아니라 말씀입니다. 땅을 얻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땅에서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말씀 없는 기업은 곧 우상의 땅이 됩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말은 균형 잡힌 순종을 뜻합니다. 신앙은 자기 마음에 드는 말씀만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 전체 앞에 자신을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사랑을 말하며 거룩을 버리고, 어떤 사람은 거룩을 말하며 사랑을 잃습니다. 말씀의 길은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길입니다.

남은 민족들과 섞이지 말라 (23:7)

여호수아는 남아 있는 민족들 중에 들어가지 말고, 그들의 신들의 이름을 부르지 말며, 그것들을 가리켜 맹세하지 말고, 섬기지도 말고, 절하지도 말라고 명합니다.(수 23:7)

이 명령은 단순한 문화적 배타성이 아닙니다. 핵심은 우상숭배를 경계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민족과 함께 살면서 그들의 신앙과 풍속에 동화될 위험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우상의 이름을 부르고, 맹세하고, 섬기고, 절하는 단계로 나아갈 것을 경고하십니다.

죄는 한순간에 깊은 자리로 들어오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처음에는 가까이합니다. 그다음에는 이름을 부릅니다. 그다음에는 맹세하고, 섬기고, 결국 절합니다. 작은 친근함이 예배의 배반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성도도 세상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에 속해서는 안 됩니다.(요 17:15-16) 사람을 사랑해야 하지만, 세상의 우상적 가치관과 타협해서는 안 됩니다. 돈, 성공, 쾌락, 권력, 인정이 현대의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이름을 부르며 살기 시작하면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집니다.

여호와께 가까이 하라 (23:8)

여호수아는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가까이 하기를 오늘까지 행한 것 같이 하라”고 말합니다.(수 23:8)

이 구절은 여호수아 23장의 핵심 권면 중 하나입니다. “가까이 하라”는 말은 붙어 있으라, 밀착하라, 떠나지 말라는 뜻입니다. 신앙은 단순히 우상을 피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붙어 있어야 합니다.

죄를 이기는 가장 깊은 길은 단순한 금지가 아니라 더 큰 사랑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있는 사람은 우상의 매력을 상대적으로 작게 봅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고 고백했습니다.(시 73:28)

예수님도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에서 “내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5:4)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어야 열매를 맺듯, 성도는 그리스도께 붙어 있어야 생명을 얻습니다. 하나님께 붙어 있지 않으면 사람은 반드시 다른 것에 붙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중립으로 오래 머물지 못합니다.

한 사람이 천 명을 쫓는 이유 (23:9-10)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크고 강한 나라들을 쫓아내셨고, 지금까지 이스라엘을 당한 자가 없었다고 말합니다.(수 23:9) 한 사람이 천 명을 쫓을 수 있었던 이유는 여호와께서 친히 싸우셨기 때문입니다.(수 23:10)

이것은 신명기 말씀의 성취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면 한 사람이 천을 쫓고 두 사람이 만을 도망하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신 32:30) 이스라엘의 힘은 숫자에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적은 수로도 큰 승리를 얻습니다.

성도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한 사람은 세상의 숫자보다 강합니다. 다윗은 골리앗 앞에서 군사 장비보다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했습니다.(삼상 17:45) 기드온의 삼백 용사도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기 위한 적은 수였습니다.(삿 7:7)

그러나 이 말씀은 교만의 근거가 아닙니다. “우리가 강하다”가 아니라 “여호와께서 싸우신다”가 핵심입니다.(수 23:10) 하나님을 떠난 한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하나님께 붙은 한 사람은 하나님의 도구가 됩니다.

스스로 조심하여 여호와를 사랑하라 (23:11)

여호수아는 말합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조심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수 23:11)

신앙의 핵심은 사랑입니다. 율법을 지키고, 우상을 멀리하고, 남은 민족들과 섞이지 말라는 모든 명령의 중심에는 여호와 사랑이 있습니다. 모세도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명했습니다.(신 6:5) 예수님도 이것을 가장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라고 하셨습니다.(마 22:37-38)

흥미로운 것은 “스스로 조심하여 사랑하라”는 표현입니다. 사랑은 감정만이 아닙니다.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관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방심하면 사랑은 식습니다. 마음은 저절로 하나님께 뜨거워지지 않습니다. 말씀과 기도와 순종 안에서 사랑을 지켜야 합니다.

성도는 자기 마음을 방치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우상은 하나님을 전혀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의 마음에도 슬며시 들어옵니다.

섞이고 혼인하면 올무가 된다 (23:12-13)

여호수아는 만일 이스라엘이 남아 있는 민족들과 친근히 하고 혼인하며 서로 왕래하면, 하나님께서 그 민족들을 다시는 쫓아내지 않으실 것이라고 경고합니다.(수 23:12-13) 그들은 올무와 덫이 되고, 옆구리에 채찍과 눈에 가시가 되어, 결국 좋은 땅에서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수 23:13)

이 경고는 매우 강합니다. 우상숭배는 갑자기 오지 않습니다. “친근히 함”에서 시작됩니다. 그다음 혼인하고, 서로 왕래합니다. 관계가 깊어지고, 가치관이 섞이고, 예배가 무너집니다.

하나님은 이방인을 미워하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라합과 룻처럼 여호와께 피하는 이방인은 하나님의 백성 안으로 들어왔습니다.(수 6:25, 룻 1:16) 문제는 우상숭배의 세계와 신앙적으로 결합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사람을 사랑하되, 죄와는 친근해지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 속에 살되 세상의 신에게 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은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고 말했습니다.(고후 6:14) 이것은 교만한 분리가 아니라, 예배의 중심을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도 틀리지 않은 하나님의 선한 말씀 (23:14)

여호수아는 자신의 죽음이 가까움을 말하며 고백합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 대하여 말씀하신 모든 선한 말씀이 하나도 틀리지 아니하고 다 너희에게 응하여 그 중의 하나도 어김이 없음을 너희 모든 사람은 마음과 뜻으로 아는 바라.”(수 23:14)

이것은 여호수아 21장 45절과 같은 신앙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 것을 이루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 모세에게 주신 말씀, 광야에서 붙드신 언약이 모두 성취되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죽음을 앞두고 하나님을 변호합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셨다. 하나님은 한 말씀도 어기지 않으셨다.” 이것이 믿음의 노년이 남기는 고백입니다. 인생을 오래 산 사람에게서 나올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말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셨다.”

성도도 인생의 마지막에 이렇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은 다 이해되지 않는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한 말씀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사 55:11) 하나님은 시작하신 일을 반드시 이루십니다.(빌 1:6)

선한 말씀이 응한 것처럼 경고도 응한다 (23:15-16)

여호수아는 마지막으로 강하게 경고합니다. 하나님께서 선한 말씀을 이루신 것처럼, 만일 이스라엘이 언약을 범하고 다른 신들을 섬기면 모든 불길한 말씀도 임할 것입니다.(수 23:15-16)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좋은 땅에서 속히 멸망할 것입니다.(수 23:16)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축복의 약속에만 적용되지 않습니다. 경고의 말씀에도 적용됩니다. 하나님이 선한 말씀을 이루셨다면, 불순종에 대한 경고도 반드시 이루십니다. 이것이 언약의 엄중함입니다.

오늘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은 좋아하지만 하나님의 거룩한 경고는 불편해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둘을 분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시지만 거룩하십니다. 긍휼이 풍성하시지만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십니다.(출 34:6-7)

복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정죄함이 없습니다.(롬 8:1) 그러나 그 은혜를 방종의 기회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갈 5:13) 참된 은혜는 우리를 거룩으로 부릅니다.(딛 2:11-12)

여호수아 23장의 구속사적 의미 (23:1-16)

여호수아 23장은 첫째,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과 안식을 주신 신실하신 분임을 보여 줍니다.(수 23:1, 23:14)

둘째, 약속의 성취 이후에도 성도에게 순종의 책임이 있음을 가르칩니다.(수 23:6)

셋째, 우상숭배와 혼합주의의 위험을 경고합니다.(수 23:7, 23:12-13)

넷째, 하나님께 붙어 있는 것이 언약 백성의 생명임을 선포합니다.(수 23:8)

다섯째, 여호수아의 안식은 최종 완성이 아니라 더 큰 안식을 바라보게 합니다. 히브리서는 여호수아가 완전한 안식을 준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백성에게 아직 안식이 남아 있다고 말합니다.(히 4:8-9) 그 참 안식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집니다.(마 11:28)

그리스도 안에서 보는 여호수아 23장 (23:1-16)

여호수아는 백성에게 하나님께 붙어 있으라고 권면했습니다.(수 23:8) 신약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라는 부르심을 듣습니다.(요 15:4)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열매 맺듯이, 성도는 그리스도께 붙어 있어야 삽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셨다고 말했습니다.(수 23:3, 23:10)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죄와 사망과 사탄의 권세와 싸우시고 십자가와 부활로 승리하셨습니다.(골 2:15, 고전 15:57)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선한 말씀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고 고백했습니다.(수 23:14)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예”가 됩니다.(고후 1:20) 구약의 땅과 안식과 승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더 깊고 영원한 기업과 안식으로 완성됩니다.(벧전 1:3-4)

그러므로 성도는 자기 힘으로 언약을 지키려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거하며 성령의 능력으로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우리 신실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에 있습니다.

오늘의 적용 (23:1-16)

첫째, 안식의 때에 더욱 깨어 있어야 합니다. 고난만 시험이 아니라 평안도 시험입니다. 편안할 때 하나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이 하신 일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싸우셨다고 고백했습니다.(수 23:3) 성도는 자기 인생의 은혜를 자주 기억해야 합니다.

셋째, 말씀에서 좌우로 치우치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은 자기 취향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전체에 순종하는 삶입니다.(수 23:6)

넷째, 하나님께 가까이 붙어 있어야 합니다. 우상을 피하는 것만으로 부족합니다.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분께 붙어 있어야 합니다.(수 23:8, 23:11)

다섯째, 작은 타협을 경계해야 합니다. 친근히 하고 섞이고 혼인하는 과정이 결국 우상숭배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수 23:12-13)

결론: 선한 말씀이 다 이루어졌으니 끝까지 붙어 있으라 (23:1-16)

여호수아 23장은 늙은 지도자의 마지막 설교입니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자기 업적을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셨다.”(수 23:3) “그분의 선한 말씀이 하나도 틀리지 않고 다 이루어졌다.”(수 23:14)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붙어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지키고, 우상을 멀리하고, 여호와를 사랑해야 합니다. 은혜를 받은 백성은 은혜에 합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큰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싸우셨고, 십자가에서 죄와 사망을 이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세상의 우상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주님께 붙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한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 말씀에 기대어 삽시다. 그리스도 안에 거합시다. 그리고 마지막 날 우리도 여호수아처럼 고백합시다. “주께서 말씀하신 선한 말씀이 하나도 남김없이 다 이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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