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피조물의 관계 성경신학적 정리

 

하나님과 피조물의 관계

오늘은 하나님과 피조물과의 관계를 성경신학적으로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은 창조주이고,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관계는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알아 봅시다. 성경 공부한다 생각하시고 읽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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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피조물의 관계를 성경적으로 정리할 때 가장 먼저 붙들어야 할 명제는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께 의존하는 존재입니다. 이 말은 단순히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셨다”는 과거 사건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셨고, 지금도 보존하시며, 통치하시고, 목적을 향해 이끌어 가십니다. 피조물은 스스로 존재하지 않고, 스스로 의미를 만들지 않으며, 스스로 궁극적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피조물의 관계를 창조주와 피조물, 왕과 백성, 주인과 청지기, 아버지와 자녀, 언약의 하나님과 언약 백성, 구속주와 구속받은 자, 심판주와 책임 있는 존재의 관계로 다층적으로 설명합니다.

1. 하나님은 자존자이시고 피조물은 의존적 존재입니다

성경적 창조론의 출발점은 창세기 1장 1절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히브리어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בְּרֵאשִׁית בָּרָא אֱלֹהִים
베레쉬트 바라 엘로힘
태초에 하나님이 창조하셨다

여기서 중요한 동사는 바라(בָּרָא)입니다. 구약에서 이 동사는 특별히 하나님을 주어로 하여 사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간의 제작 행위라기보다 하나님의 주권적 창조 행위를 가리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이미 존재하던 물질을 단순히 재배열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말씀으로 세계를 존재하게 하셨다고 증언합니다.

하나님은 출애굽기 3장 14절에서 모세에게 자신을 이렇게 계시하십니다.

אֶהְיֶה אֲשֶׁר אֶהְיֶה
에흐예 아쉐르 에흐예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다

이 표현은 하나님의 자존성(aseity)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은 다른 것에 의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원인 없는 원인이시며, 존재의 근원이시며, 모든 생명의 원천이십니다.

반대로 피조물은 모두 의존적 존재입니다. 피조물은 하나님께로부터 존재를 받고, 하나님 안에서 생명을 유지하며, 하나님의 뜻 안에서 목적을 갖습니다. 사도 바울은 아테네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사도행전 17장 28절

여기서 인간은 단순히 하나님이 “처음에 만들어 놓고 떠난 세계” 안에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도 하나님을 힘입어 존재합니다. 호흡, 시간, 생명, 자연 질서, 양심, 지성, 관계, 역사 전체가 하나님의 보존적 섭리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보수적 성경신학에서 하나님과 피조물의 첫 번째 관계는 자존자와 의존자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계셔야 하는 분이고, 피조물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필연적 존재이고, 피조물은 우연적 존재입니다. 그러나 이 우연성은 무가치함이 아니라, 은혜로 부여된 존재성을 뜻합니다.

2. 하나님은 초월하시면서도 내재하십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피조세계와 구별된 분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초월성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세상 안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자연, 역사, 인간 정신, 우주 법칙이 곧 하나님은 아닙니다. 이것이 성경적 창조론과 범신론의 결정적 차이입니다.

이사야 40장 22절은 하나님을 땅 위 궁창에 앉으신 분으로 묘사합니다. 이사야 55장 8-9절은 하나님의 생각과 길이 인간의 생각과 길보다 높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피조세계보다 무한히 크시고, 거룩하시며, 자유로우십니다.

그러나 성경은 동시에 하나님이 피조세계와 무관하게 멀리 떨어져 계신 분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 가운데 거하시고, 역사를 다스리시며, 낮고 천한 자를 돌보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내재성입니다.

시편 139편은 이 긴장을 아름답게 보여 줍니다.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하나님은 모든 곳에 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것과 동일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초월적 내재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세계 밖에 계시며 동시에 세계 안에서 일하십니다. 피조물과 혼합되지 않으시면서 피조물 가까이에 계십니다.

이 점에서 기독교 신앙은 두 극단을 모두 거부합니다.

하나는 범신론입니다. 범신론은 하나님과 세계를 동일시합니다. 산도 하나님, 바다도 하나님, 인간도 하나님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성경은 창조주와 피조물을 엄격히 구별합니다.

다른 하나는 이신론입니다. 이신론은 하나님이 세상을 만들었지만 지금은 개입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이 오늘도 세상을 붙드시고, 심판하시며, 구원하시고, 섭리하신다고 말합니다.

보수적 성경신학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피조물과 구별되시지만, 피조물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세계를 초월하시지만, 세계를 보존하고 통치하십니다.

3. 피조물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습니다

창세기 1장에서 반복되는 표현은 “하나님이 이르시되”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창조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피조물의 관계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세계의 근원은 우연도, 혼돈도, 폭력도, 신들의 투쟁도 아닙니다. 세계의 근원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한 소리가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씀은 하나님의 뜻, 권위, 능력, 계시가 결합된 창조적 행위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존재가 생깁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면 질서가 세워집니다.

시편 33편 6절은 말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을 그의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

여기서 “입 기운”은 히브리어로 루아흐(רוּחַ)와 연결되는 개념입니다. 루아흐는 바람, 숨, 영을 뜻합니다. 창조는 성부 하나님의 주권적 작정, 말씀의 능력, 하나님의 영의 생명 부여가 함께 드러나는 사건입니다.

신약은 이 말씀 창조를 그리스도론적으로 더 깊게 해석합니다.

요한복음 1장 1-3절은 말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여기서 “말씀”은 헬라어 로고스(λόγος)입니다. 요한복음은 창세기의 창조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합니다. 곧 성자는 창조의 중보자이십니다. 골로새서 1장 16절도 만물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위하여 창조되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과 피조물의 관계는 단순히 “하나님이 만들고 인간이 존재한다”는 수준이 아닙니다. 모든 피조물은 말씀으로 창조되었고, 말씀 안에서 의미를 가지며, 성육신하신 말씀인 그리스도 안에서 최종 목적을 발견합니다.

4. 피조물은 선하게 창조되었습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은 창조하신 것을 보시고 “좋았더라”고 하십니다. 마지막에는 “심히 좋았더라”고 선언하십니다.

히브리어로 “좋다”는 말은 토브(טוֹב)입니다. 이 말은 단순히 미적으로 보기 좋다는 뜻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에 합당하고 질서 있게 창조되었다는 뜻을 가집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성경은 물질세계를 악한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몸, 자연, 음식, 노동, 결혼, 문화, 시간, 역사 자체가 본래 악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은 선합니다.

그러므로 보수적 성경신학은 헬라적 이원론이나 영지주의적 세계관을 거부합니다. 영지주의적 사고는 물질을 낮게 보고 영혼만 고귀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이 하늘과 땅, 빛과 물, 식물과 동물, 인간의 몸까지 선하게 창조하셨다고 말합니다.

물론 지금의 세계에는 고통, 죽음, 부패, 질병, 죄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창조 자체가 악해서가 아니라, 타락으로 인해 창조 질서가 왜곡되었기 때문입니다. 창조는 선하고, 타락은 왜곡이며, 구속은 회복이고, 종말은 완성입니다.

이 구조가 중요합니다.

창조 — 타락 — 구속 — 완성

하나님과 피조물의 관계는 이 네 단계 속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선하게 창조하셨고, 인간은 죄로 그 질서를 깨뜨렸으며,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을 이루시고, 마지막에는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창조를 완성하십니다.

5.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특별한 피조물입니다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께 속하지만, 인간은 그 가운데 특별한 위치를 가집니다. 창세기 1장 26-27절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고 말합니다.

히브리어로 “형상”은 첼렘(צֶלֶם), “모양”은 **데무트(דְּמוּת)**입니다. 이 표현은 인간이 하나님과 동일한 존재라는 뜻이 아닙니다. 인간은 결코 작은 신이 아닙니다. 인간은 피조물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을 반영하고, 하나님을 대표하며,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교제할 수 있도록 창조된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여러 차원을 가집니다.

첫째, 관계적 차원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교제하도록 지음받았습니다. 기도하고, 예배하고,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존재입니다.

둘째, 도덕적 차원입니다. 인간은 의와 거룩과 진리를 따라 살도록 지음받았습니다. 에베소서 4장 24절은 새 사람을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자라고 말합니다.

셋째, 대표적 차원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피조세계를 다스리는 청지기입니다. 창세기 1장 28절의 “다스리라”는 명령은 폭군적 지배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한 통치를 반영하는 관리와 돌봄입니다.

넷째, 소명적 차원입니다. 인간은 노동, 문화, 언어, 예술, 학문, 공동체 형성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개발하고 보존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피조물 가운데 하나이면서도, 피조물을 하나님께로 이끄는 제사장적 존재로 부름받았습니다. 인간은 땅에 속했지만 하늘을 향하도록 지음받았습니다. 흙으로 만들어졌지만 하나님의 생기를 받은 존재입니다.

창세기 2장 7절은 말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여기서 인간은 두 방향성을 가집니다. 하나는 입니다. 인간은 유한하고 연약합니다. 다른 하나는 생기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께로부터 생명을 받은 인격적 존재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이 아니지만, 단순한 동물도 아닙니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책임 있는 피조물입니다.

6. 피조물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존재합니다

보수적 성경신학의 핵심 명제 가운데 하나는 이것입니다.

피조물의 궁극적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이사야 43장 7절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로마서 11장 3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이 구절은 하나님과 피조물의 관계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 줍니다.

주에게서 — 창조의 근원
주로 말미암고 — 섭리와 보존의 과정
주에게로 — 목적과 완성
그에게 영광 — 피조물의 최종 이유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이 부족해서 피조물에게 찬양을 요구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피조물이 없어도 완전하십니다. 삼위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성부, 성자, 성령의 완전한 사랑과 영광 가운데 충만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결핍 때문에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선하심과 영광을 자유롭게 나타내시기 위해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뜻하는 히브리어 카보드(כָּבוֹד)는 무게, 중량감, 존귀함의 의미를 가집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그분의 존재의 무게입니다. 피조물은 하나님의 영광을 반사하도록 지음받았습니다. 태양이 빛을 내고 달이 그 빛을 반사하듯, 피조물은 스스로 영광의 근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거울입니다.

시편 19편 1절은 말합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자연은 말 없는 설교자입니다. 하늘, 별, 바다, 산, 계절, 생명의 질서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과 아름다움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 영광을 의식적으로 찬양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죄는 단순히 도덕법 위반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는 것입니다.

로마서 1장 21절은 인간의 죄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죄의 본질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피조물이 창조주의 자리에 앉으려는 것이 죄입니다.

7. 인간은 피조세계의 소유자가 아니라 청지기입니다

창세기 1장 28절에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땅을 정복하고 생물을 다스리라고 명령하십니다. 이 명령은 종종 인간 중심적 지배로 오해되지만, 성경 전체의 맥락에서 보면 인간은 피조세계의 절대 소유자가 아닙니다. 인간은 청지기입니다.

시편 24편 1절은 분명히 말합니다.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소유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것은 관리권입니다. 관리권은 책임을 동반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만드신 세계를 훼손할 권리가 없습니다. 인간은 창조 세계를 우상화해서도 안 되지만, 함부로 파괴해서도 안 됩니다.

여기서 보수적 성경신학은 두 가지 균형을 가집니다.

첫째, 자연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자연을 신격화하거나 숭배해서는 안 됩니다.

둘째, 자연은 하나님의 창조물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탐욕을 위해 무책임하게 파괴해서도 안 됩니다.

인간의 통치는 하나님의 통치를 반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선하게 다스리시듯 인간도 선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돌보시듯 인간도 생명을 존중해야 합니다.

이 점에서 인간의 노동과 문화 활동도 신학적 의미를 가집니다. 농사, 건축, 음악, 문학, 학문, 정치, 경제, 기술은 모두 창조 명령 아래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죄로 인해 문화는 우상화될 수 있고, 기술은 교만의 도구가 될 수 있으며, 경제는 탐욕의 구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문화 사명은 반드시 하나님 경외 안에서 수행되어야 합니다.

8. 타락은 하나님과 피조물의 관계를 왜곡했습니다

창세기 3장의 타락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만 깨뜨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자기 자신, 인간과 이웃, 인간과 자연의 관계 전체를 왜곡했습니다.

뱀의 유혹은 본질적으로 피조물이 창조주처럼 되려는 욕망을 자극했습니다.

너희가 하나님과 같이 되어

이 말이 타락의 핵심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지만, 하나님 자체가 되도록 지음받지는 않았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반영해야 했지만, 하나님을 대체하려 했습니다.

죄는 피조물이 자기 한계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의존해야 할 존재가 자율적 주권자가 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 아래 살아야 할 존재가 선악의 기준을 스스로 정하려는 것입니다.

그 결과 관계가 무너졌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인간 내면에는 수치가 생겼습니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는 책임 전가와 지배 욕망이 생겼습니다.
땅은 저주를 받아 노동은 고통스러운 수고가 되었습니다.
생명은 죽음 아래 놓였습니다.

로마서 8장은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고 탄식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피조세계는 인간의 죄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피조세계의 대표적 관리자로 세워졌기 때문에, 인간의 타락은 창조세계 전체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러나 로마서 8장은 동시에 소망을 말합니다.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기를 기다린다고 합니다. 이것은 구원이 단지 영혼이 천국 가는 문제가 아니라, 창조세계 전체의 회복과 관련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9. 하나님은 타락한 피조물을 버리지 않고 언약으로 붙드셨습니다

하나님과 피조물의 관계에서 중요한 단어가 언약입니다. 히브리어로 언약은 베리트(בְּרִית)입니다. 언약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맺으시는 주권적 관계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모든 피조물의 주인이시지만, 특별히 언약을 통해 자기 백성을 구속의 관계 안으로 부르십니다.

타락 이후 하나님은 즉시 심판만 하신 것이 아니라 약속을 주셨습니다. 창세기 3장 15절은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흔히 원복음이라고 부릅니다. 타락한 피조물에게 주어진 첫 구속 약속입니다.

이후 성경의 역사는 언약의 흐름으로 전개됩니다.

노아 언약에서는 하나님이 홍수 이후 창조 질서를 보존하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아브라함 언약에서는 한 사람과 한 가문을 통해 모든 민족이 복을 받을 것을 약속하십니다.
시내산 언약에서는 이스라엘이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으로 부름받습니다.
다윗 언약에서는 왕권과 메시아 약속이 주어집니다.
새 언약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죄 사함과 성령의 내적 갱신이 주어집니다.

언약은 하나님과 피조물의 관계가 기계적이거나 추상적이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으로 말씀하시고, 약속하시며, 신실하게 이루십니다.

특히 보수적 성경신학에서 중요한 것은 언약의 중심이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라는 점입니다. 인간은 언약을 깨뜨리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언약을 이루십니다. 구속사는 인간의 충성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의 역사입니다.

10. 그리스도는 창조와 구속의 중심이십니다

하나님과 피조물의 관계는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깊이 드러납니다. 성경은 그리스도를 단순히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중에 오신 분으로만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는 창조의 중보자이시며, 구속의 중보자이시고, 새 창조의 머리이십니다.

골로새서 1장 15-17절은 말합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여기서 세 가지 표현이 중요합니다.

그에게서 창조되었다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다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다

그리스도는 창조의 도구가 아니라 창조의 주권적 중보자이십니다. 모든 피조물은 그리스도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세계는 그리스도 없이 해석될 수 없습니다.

또한 그리스도는 성육신을 통해 피조세계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은 말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여기서 “거하시매”는 헬라어 스케노오(σκηνόω)로, 장막을 치다, 거주하다는 뜻입니다. 이는 구약의 성막 이미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하나님이 성막 가운데 자기 백성과 함께 계셨듯, 이제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신 것입니다.

성육신은 하나님과 피조물의 관계에서 놀라운 신비입니다. 창조주가 피조물이 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피조물로 변질된 것이 아닙니다. 성자는 참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참 인간이 되셨습니다. 이것이 기독론의 핵심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피조물을 멀리서 구원하지 않으셨습니다. 피조물의 조건 안으로 들어오셨고, 인간의 몸을 입으셨고, 고난을 받으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물질세계의 폐기가 아니라, 피조세계의 회복을 향합니다.

11. 십자가는 피조물의 반역에 대한 하나님의 구속적 응답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창조주를 거역했습니다. 피조물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고 우상을 섬겼습니다. 성경에서 우상숭배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질서가 뒤집힌 상태입니다.

로마서 1장 25절은 말합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죄의 본질은 피조물 숭배입니다. 인간은 하나님 대신 돈, 권력, 성, 국가, 자아, 자연, 이념, 종교 체계, 성공, 인간 관계를 절대화합니다. 피조물을 사랑할 수는 있지만, 피조물을 하나님처럼 섬기면 우상이 됩니다.

십자가는 이 반역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사랑이 동시에 나타난 자리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가볍게 넘기지 않으셨습니다. 죄는 심판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시고, 그리스도께서 대신 저주를 담당하게 하셨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말합니다.

헬라어로 “새로운 피조물”은 카이네 크티시스(καινὴ κτίσις)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심리적 변화가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 창조가 시작되었다는 뜻입니다. 구원은 개인의 죄 사함이면서 동시에 창조 회복의 시작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새 창조의 중심 사건입니다. 첫 창조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작되었다면, 새 창조는 성육신하신 말씀의 죽음과 부활로 시작됩니다.

12. 성령은 피조물 안에서 새 창조를 이루십니다

성령은 창조 때부터 활동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 2절은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에 운행하셨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운행하다”는 표현은 히브리어 라하프(רָחַף)로, 새가 날개 치듯 움직이는 이미지를 가집니다. 성령은 혼돈 위에 생명과 질서를 준비하시는 분으로 나타납니다.

신약에서 성령은 새 창조의 영으로 역사하십니다. 죄로 죽은 인간을 거듭나게 하시고,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하십니다.

요한복음 3장에서 예수님은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성령은 단순한 감정적 능력이 아니라, 새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영입니다.

로마서 8장에서는 성령이 신자의 몸의 부활과 피조세계의 회복까지 연결됩니다. 성령은 개인의 내면만 바꾸시는 분이 아니라, 종말론적 새 창조의 첫 열매를 주시는 분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과 피조물의 관계는 성령 안에서 현재적으로 회복되기 시작합니다. 성령은 신자로 하여금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하시고, 피조물을 우상으로 섬기지 않게 하시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도록 인도하십니다.

13. 피조물은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후 방치하지 않으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섭리로 다스리십니다. 섭리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을 보존하시고, 통치하시며, 자신의 목적을 이루시는 사역입니다.

마태복음 10장 29절에서 예수님은 참새 한 마리도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가 큰 사건에만 미치는 것이 아니라 작은 피조물에게도 미친다는 뜻입니다.

섭리는 세 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 보존입니다. 하나님은 피조물이 계속 존재하도록 붙드십니다. 히브리서 1장 3절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신다고 말합니다.

둘째, 협력입니다. 하나님은 피조물의 행위와 자연 법칙을 사용하여 자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고 비가 내리고 땅이 열매를 내지만, 그 모든 과정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습니다.

셋째, 통치입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목적을 향해 모든 것을 이끄십니다. 인간의 악도 하나님의 주권 밖에 있지 않습니다. 요셉의 고백이 대표적입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창세기 50장 20절

이 말은 악이 선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인간의 악은 여전히 악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악보다 크시며, 악을 사용해서도 자신의 선한 목적을 이루십니다.

보수적 성경신학은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을 동시에 붙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스리십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죄에 책임이 있습니다. 이 둘은 인간 이성으로 완전히 풀기 어려운 신비이지만, 성경은 둘 다 분명히 가르칩니다.

14. 피조물은 자율적 존재가 아니라 책임 있는 존재입니다

현대인은 자유를 “아무에게도 매이지 않는 자율성”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피조물의 자유는 창조주와의 관계 안에서 이해됩니다. 피조물은 하나님 없이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자유는 결국 죄의 종노릇이 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 아래 있을 때 참으로 자유롭습니다. 물고기가 물 밖에서 자유롭지 않고, 나무가 뿌리 없이 자유롭지 않듯,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창세기 2장의 선악과 명령은 인간의 피조물성을 확인하는 표지였습니다. 인간은 에덴의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었지만, 하나의 금지 명령을 통해 자신이 창조주가 아니라 피조물임을 기억해야 했습니다.

선악과는 단순한 과일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주권의 문제입니다. 선과 악을 결정하는 권리가 누구에게 있는가? 하나님인가, 인간인가? 타락은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 대신 자기 판단을 최종 기준으로 삼은 사건입니다.

오늘날에도 죄의 구조는 동일합니다. 인간은 하나님 말씀보다 자기 감정, 시대정신, 욕망, 여론, 이념, 경제적 이익을 더 높은 기준으로 삼으려 합니다. 그러나 피조물은 창조주의 말씀 아래 있을 때 가장 인간답습니다.

15. 피조물은 예배하도록 지음받았습니다

하나님과 피조물의 관계에서 예배는 중심입니다. 예배는 단순한 종교 행위가 아닙니다. 예배는 피조물이 창조주를 창조주로 인정하는 존재의 질서입니다.

요한계시록 4장 11절은 천상의 예배를 이렇게 보여 줍니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예배의 근거는 창조입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지으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예배받기에 합당하십니다.

인간은 예배하지 않는 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인간은 반드시 무엇인가를 예배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으면 피조물을 예배합니다. 돈, 사랑, 성공, 자아, 국가, 지식, 미모, 건강, 권력, 종교적 업적이 예배의 대상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상숭배는 인간이 종교적이어서 생기는 부작용이 아니라, 인간이 예배하는 존재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생기는 왜곡입니다. 올바른 예배는 인간을 회복시키고, 잘못된 예배는 인간을 파괴합니다.

하나님과 피조물의 바른 관계는 예배에서 회복됩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무엇을 보태는 행위가 아니라, 피조물이 자신의 자리를 되찾는 행위입니다.

16. 하나님과 피조물의 관계는 언약적 사랑 안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하나님은 단지 창조주로서 피조물을 지배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이 사랑은 감상적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거룩한 사랑이고, 언약적 사랑이며, 자기희생적 사랑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을 뜻하는 중요한 단어가 헤세드(חֶסֶד)입니다. 헤세드는 인자, 자비, 신실한 사랑, 언약적 충성을 포함하는 매우 풍부한 단어입니다. 하나님은 헤세드로 자기 백성을 붙드십니다.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가장 분명히 드러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요한복음 3장 16절

여기서 “세상”은 헬라어 코스모스(κόσμος)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코스모스는 종종 하나님을 거역하는 타락한 세계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사랑받을 만한 세상을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반역한 세상을 사랑하셨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피조물은 하나님께 반역했지만,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주심으로 피조물을 구속하셨습니다. 구속은 창조보다 작은 일이 아닙니다. 어떤 면에서 구속은 창조의 목적을 완성하는 하나님의 더 깊은 계시입니다.

17. 종말에는 피조세계가 폐기되지 않고 새롭게 됩니다

기독교 종말론은 단순히 영혼이 육체를 벗어나 천상으로 올라가는 사상이 아닙니다. 성경의 최종 소망은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1절은 말합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여기서 “새”는 헬라어 카이노스(καινός)입니다. 이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새로움이라기보다, 질적으로 새롭게 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창조세계를 쓰레기처럼 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죄와 죽음과 저주를 제거하시고 새롭게 하십니다.

이것은 부활 신앙과 연결됩니다. 예수님은 영혼만 살아나신 것이 아니라 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몸은 이전 몸과 연속성이 있으면서도 영광스럽게 변화된 몸입니다. 이것이 피조세계의 미래를 보여 줍니다.

로마서 8장의 피조물의 탄식은 요한계시록 21-22장에서 응답됩니다. 더 이상 저주가 없고,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함께 거하십니다.

성경의 결말은 인간이 피조세계를 탈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새롭게 하신 피조세계 가운데 거하시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창조와 종말은 연결됩니다.

창세기에는 하늘과 땅이 창조됩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합니다.
창세기에는 생명나무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생명나무가 회복됩니다.
창세기에는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 계십니다.
요한계시록에는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습니다.
창세기 3장에는 저주가 들어옵니다.
요한계시록 22장에는 다시 저주가 없다고 선언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피조물의 관계는 창조에서 시작하여 새 창조로 완성됩니다.

18. 정리하면, 하나님과 피조물의 관계는 다섯 가지로 압축됩니다

첫째, 존재론적 관계입니다. 하나님은 자존자이시고 피조물은 의존자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계시고, 피조물은 하나님에게서 존재를 받습니다.

둘째, 통치적 관계입니다. 하나님은 왕이시고 피조물은 그의 통치 아래 있습니다. 자연 법칙, 역사, 인간의 삶, 나라의 흥망까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습니다.

셋째, 언약적 관계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과 언약을 맺으시고, 신실하게 그 언약을 이루십니다. 인간은 불성실하지만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넷째, 예배적 관계입니다. 피조물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예배하도록 창조되었고, 참 예배 안에서 자신의 존재 목적을 회복합니다.

다섯째, 구속사적 관계입니다. 피조물은 타락했지만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창조를 시작하셨고, 마지막 날에 만물을 회복하실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과 피조물의 관계는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거대한 주제입니다. 하나님은 피조물의 일부가 아니시며, 피조물과 경쟁하는 한 존재도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존재의 근원이시며, 피조물은 그분에게서 나오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유지되며, 그분께로 돌아갑니다.

인간의 비극은 피조물임을 거부하고 창조주의 자리에 서려는 데 있습니다. 인간의 구원은 다시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피조물의 자리를 회복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굴욕이 아니라 은혜입니다. 피조물이 창조주 앞에 설 때 비로소 인간은 인간다워지고, 세계는 세계다워지며, 예배는 예배다워집니다.

보수적 성경신학의 관점에서 최종적으로 말하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피조물은 그의 영광을 위하여 지음받았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으나 죄로 타락했고,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타락한 피조물을 구속하시며, 성령 안에서 새 창조를 시작하시고, 마지막 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창조의 목적을 완성하십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과 피조물의 관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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