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대표기도문 11월 첫째 주


경배의 기도

만물을 창조자의 주관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도 거룩한 주일을 맞아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할 수 있는 귀한 은혜를 허락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생각하고 묵상하며 묵상 할수록 찬양하지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오늘이 시간도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시고, 주님만을 바라보는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회개의 기도

 지난 한 주간 주님 앞에서 거룩하지 못한 모든 행실을 회개합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충만함에도 불구하고 늘 저희들은 부족한 것처럼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잘 왔습니다.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 걱정과 두려움이 속에서 하나님의 채우심을 열심히 있습니다.


간구의 기도


새로운 한 달을 더 얘기하라고 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주어진 11월 달도 하나님과 동행하며 늘 주님을 위하여 살아가는 삶이되기를 원합니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11월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달려 와도 모든 시간들을 중요 앞에 내려 갖고 우리의 삶을 성찰하는 시간 되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향하신 놀라운 은혜와 기적들 감사하며 찬양하는 시간들로 채워 주시옵소서. 


부족하면 원망이 보다 있는 것에 감사하며 이루지 못한 것에 갈등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이루신 것들을 감사하는 한 달이 되기를 원합니다. 계획한 것들이 이루지 못한 것들 남겨진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서 위로 가게 하시고 하나님 앞에 서울에 있던 것들을 다 갚아 나가는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11월에는 총회가 있습니다. 각 기관 총회를 주님께서 붙잡아 주시옵시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시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주 일꾼들을 잘 뽑을 수 있도록 저희들에게 믿음과 지혜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그동안 수고한 모든 기관장들과 임원들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여 주시옵시고, 그들의 수고가 하나님의 제단 앞에 상달되는 하나님의 귀한 체험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위드 코로나가 시작되었지만 아직도 많은 확진 자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자비하신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콜 나가사키 물러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비를 베풀어 주사 예배가 속히 평상시대로 진행될 수 있도록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코로나를 위하여 수고하는 위정자들과 의료진들을 붙들어 주시옵소서 그대로 정신과 육체를 강건하게 하여 주사 이번 위기 속에서 잘 이겨 나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계절이 무르익어가는 있습니다. 남겨진 시간 우리가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모든 관계와 만남을 통해 하나님께서 복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지나간 시간들을 원망하지 않고 주어진 시간들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들을 감사하며 찬양하는 시간들로 채워 주시옵소서.


 많은 것을 소유하게 보다 자기 자신을 비워내고 많은 것을 얻기보다 많은 것을 내려놓는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소유의 욕망을 버리고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예배 가운데 역하실 하나님을 기대합니다. 말씀 선포하시는 목사님께 능력을 더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씨 뿌리는 자의 비유, 마태복음 3:3-9, 18-23

씨뿌리는 비유 또는 네 밭의 비유는 마태복음 13장에 소개되는 7가지 비유 중 첫 번째 비유이며, 가장 유명한 비유이다. 비슷한 비유가 마가복음 4:1-9,누가복음 8:4-8에 기록되어 있다. 복음서마다 관점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필자는 마태복음을 중심을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본 비유를 풀이하고자 한다.


1. 비유의 개요


비유는 비유론에서 자세히 다룰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간략하게만 다룬다. 먼저 비유의 목적 두 가지다. 첫 번째는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나라을 계시하는 측면이다. 감추려는 것이 먼저가 아니다. 감추려면 말하지 않으면 된다. 말하는 것은 알리려는 것이 우선이다. 그러므로 본 비유는 알아듣지 못하는 이들이 우선이 아니라 예수를 따르는 이들을 위한 것이다. 16절과 23절은 비유의 목적이 ‘듣고 깨닫는 것’에 있음을 분명히 한다.


13:16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13:23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두 번째는 감추기 위함이다. 너무나 상반된 이야기지만 이것 역시 분명하다. 14-15절은 이사야 6:9-10을 인용하여 계시의 말씀이 감추어졌음을 말한다. 누구에게 말씀을 감출까? 당연히 완악하고 교만한 자들이다. 의도적 감춤이 아니다. 그들의 교만과 완악함이 명백히 드러나 진리에 눈감는 것이 더 옳다. 이 부분은 좀더 논의가 필요하다 후에 다시 다룰 것이다.


이제는 다른 측면에서 비유의 목적을 알아보자. 35절에서는 시편 78:2을 인용하여 창세로부터 감추어진 것을 드러내려는 목적이 있다고 말한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지금 예수가 의도한 것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다. 즉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구속 경륜이다. 너무 멀리간 것이 아니랴는 의문을 제기할지 모르나 비유의 목적 자체가 하나님의 나리의 비밀을 깨닫고 그나라에 동참하게 하려는 것임을 안다면 극단적 해석으로서 하나님의 구속, 즉 복음에 동참하라는 해석은 적절하다. 깨달음은 하나님의 나라에 이미 들어왔다는 것을 의미하며, 자라고 열매 맺음으로 비유의 목적을 이루는 것이다. 우리는 마태복음 13장을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동참의 관점에서 읽어야 하고, 씨앗은 말씀이며, 열매 맺음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는삶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비유 안으로 들어가 보자.


2. 비유 해석


예수는 집에서 나가 바닷가에 앉으신다. 큰 무리가 모여들자 예수는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무리는 해변에 앉아 듣는다. 그 첫 번째 비유가 씨 뿌리는 농부의 비유이다.


비유의 전제


농부는 씨를 뿌린다. 네 가지 형태의 땅이 소개 된다. 씨가 떨어진 곳은 길 갈, 흙이 얕을 돌밭, 가시떨기, 좋은 밭이다. 농부의 의도를 생각해 보자. 네 가지 형태의 땅은 네 밭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현대의 주석가나 목사들이 착각하는데, 농부는 길 가에 씨를 뿌리지 않는다. 돌 위에도 뿌리지 않는다. 그런 바보 같은 농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러한 일은 빈번하게 일어난다. 왜냐하면 농부가 원하지 않지만 씨를 뿌리다보면 길 가에도 떨어지고, 돌 위에도 떨어지고, 밭의 구석인 풀이 많은 곳에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그런 곳에 씨를 뿌리지 않음에 주의해야 한다. 바로 이 부분이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는 무리들이다. 


농부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이들이 좋은 땅이 아닌 다른 땅의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세 땅은 오직 마지막 ‘좋은 땅’을 설명하기 위한 보조 장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으로 말하면 좋은 땅은 세 가지 나쁜 땅의 요소를 제거한 상태 또는 가지고 있지 않는 상태라고 해야 옳다. 이렇게 생각하면 비유의 목적은 대중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나라에 동참하는 이들을 위한 것임을 직감한다. 비유는 대단히 종말론적 계시다. 비유는 종말론적으로 읽어야 한다. 씨 뿌리는 비유 외에 나머지 6개의 비유는 실제적으로 종말에 대해 말한다. 유일하게 본 비유만 결과론적이다. 그렇기에 종말론적이다. 첫 번째 비유는 나머지 6개의 비유를 이끌며, 포괄한다.


길 가에 떨어진 씨앗


씨는 말씀이다.(19절) 씨를 뿌리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계시, 즉 복음을 말한다. 그렇다면 씨를 뿌리는 자는 예수일 것이고, 이후 말씀을 전하는 전도자나 사도들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씨를 뿌림으로 시작한다. 말씀을 전함으로 시작한다.


처음 씨앗은 길 가에 떨어진다. ‘더러는’은 ‘의도치 않음’을 말한다. 어쩔 수 없이 씨앗이 길 가에 떨어진다. 그런데 길 가에 떨어진 씨앗을 새가 와서 먹어 버린다. 19절에서 길 가에 떨어진 씨앗을 설명한다.


마 13:19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


한 구절을 공식화할 필요는 없지만 이 비유 안에서 의미있게 해석할 부분이 있다. 먼저는 길 가는 의도치 않는 사람들이고, 그들은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하는 자들이다. 이때 그들 안에 뿌려진 말씀이 깨닫지 못하도록 곧바로 악한 자가 와서 말씀을 가져가 버린다. 이것은 말씀에 대한 망각이다. 말씀을 보존하지 않음으로 결국 깨닫는 기회까지 박탈당한다. 이 비유의 전체 결론이기도 하지만, 이곳에 드러난 것은 말씀이 자라는 첫 번째 적합성인 감추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천국의 비밀은 감추어져야 한다. 오직 그것을 아는 사람만이 그것을 은밀하게 간직한다. 감추어짐은 보호 또는 보존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첫 번째 길 가와 같은 사람은 말씀을 간직하지 않고 방치한다.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진 씨앗


씨앗이 두 번째 떨어진 곳은 돌밭으로 알려진 곳이다. 마태는 ‘흙이 얕은’을 추가하며 돌밭의 의미를 도드라지게 한다. 그러니까 이곳은 씨앗이 발화해도 잘 자랄 수 없는 땅이란 뜻이다. 실제로 팔레스타인의 많은 밭은 돌밭이다. 흙이 많지 않아 종종 씨앗이 빨화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새싹이 말라 죽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이른 비가 적절한 시기에 내리지 않으면 그 해 농사는 거의 망쳤다고 과언이 아니다.


이 씨는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 곧 넘어지는 자다.(20-21절) 흔하게 냄비 신앙이라고 부른다. 이 해석의 중심은 ‘뿌리’다. 농부의 관점에서 보면 뿌리가 내리는 흙의 부재다. 흑은 씨앗이 발화하도록 온도와 습도를 제공하며, 자라면 흔들리지 않도록 지탱하게 한다. 결국 돌밭은 계속하여 신앙을 지속할 수 없는 외부적 환경을 말한다. 정리되지 않는 외부적 환경으로 인해 신앙이 무너진다.


가시떨기 위에 떨어진 씨앗


가시 떨기는 명확하게 세상에 대한 염려와 재물에 대한 유혹이다.(22절) 개간되지 않은 밭이나 잡초가 제대로 제거되지 않을 경우 이러한 일이 발생한다. 처음 씨앗이 뿌려지고 발화될 때는 무리가 없다. 오히려 다른 곳보다 빠르다. 하지만 계속해서 자라지 못한다. 돌밭이 외부적 요인에 대한 것이라면 가시 떨기는 내부적 요인을 말한다. 발화는 했으나 더 이상 자리지 못한다. 이 씨앗은 발화되고 자라는 것은 그리 문제가 없으나 ‘결실’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결국 아무런 의미가 없는 발화이고, 자람이다.


이들은 삶의 우선순위가 절대적으로 잘못되어 있는 사람이다. 좋은 땅 이외의 모든 땅이 그렇지만 특히 이 땅은 더욱 그렇다. 항상 생각하는 것이 성공과 재물이다. 걱정하고 근심하고, 초초해 한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뢰가 없다는 것이 드러난다. 겉으로는 신앙이 좋은 것 같고 겸손해 보이지만 열매 맺지 못한다. 수많은 핑계와 이유가 있다. 결국은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까지 피곤하게 하고 넉더운 시킨다.


좋은 땅에 뿌려진 씨앗


좋은 땅은 농부가 의도한 땅이다. 적당한 습기가 있고, 흙이 있고, 영양분이 있는 땅이다. 돌이나 잡초가 없는 순수한 땅이다. 이 땅은 오직 씨앗을 위해 존재하고, 씨앗이 발화하고 자라는 데 최적화된 땅이다. 이런 땅에 떨어진 씨앗은 최적의 상태에서 잘 자라고 열매를 맺는다. 이 비유의 목적은 바로 열매다. 열매는 백 배, 육십 배, 삼식 배 맺는다.


고린도전서 장별 요약 및 강해

고린도전서 1장

교회 안에 분쟁이 있다. 누구는 바울에게, 누구는 아볼로에게, 누구는 게바에게 소속했다고 한다. 나는 세례를 베풀려고 한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다. 십자가의 구원 얻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고린도전서 2장

나는 십자가에 못 박힌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전하지 않는다. 우리가 전하는 지혜는 세상의 지혜가 아니라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다. 이 지 혜는 세상의 통치자들이 알지 못했다. 성령으로 하나님의 깊은 것을 통달하고, 우리는 성령께서 가르치신 지혜로 한다. 욕에 속한 사람은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 한다.


고린도전서 3장

너희가 아직 육신에 있어서 서로 분쟁한다. 서로 나는 누구에게 속했다 하는 것은 육신에게 속한 것이다. 나는 심고 아볼로는 물을 주나 자라게 하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일한대로 상을 받을 뿐이다. 우리는 터 위에 세우는 사람들이다. 마지막 날에 불로서 공적이 드러난다. 너희는 하나님의 성진인 것과 성령이 너희 안에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이 세상의 지혜는 어리석은 것이다. 너희는 다 그리스도의 것이다.


고린도전서 4장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알아라. 맡은 자의 구할 것은 충성이다. 너희는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우리에게 배운 것으로 대적하지 말라. 하나님은 사도인 우리를 수많은 고통에 빠지게 했고,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게 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가 많지 않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으로 너희를 낳았다.


고린도전서 5장

너희 안에 음행이 있다 들었다.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어 주었다. 작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진다. 유월절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 되셨다. 유월절을 지킬 때는 악한 누룩으로 하지 말고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


고린도전서 6장

성도가 세상 앞에서 서로 고발하지 말라. 왜 교회가 세상에서 경히 여김을 받느냐. 교회가 세상의 판단을 받아서는 안 된다. 너희는 서로 속이고 불의를 행한다. 불의 한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 창녀와 합한 자는 창녀와 한 몸이 된다. 너희는 그리스도께서 사신 하나님의 것이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린도전서 7장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결혼한다. 남편은 아내에게 의무를 다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의무를 다하라. 기도할 틈 외에는 분방하지 마라. 미혼이나 과부는 결혼하지 마라.  믿지 아니한 자를 갈라서도 되나 남편이 같이 살기를 원하면 버리지 마라. 각각 부르심을 입은 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하지만 결혼하면 서로에게 얽매인다. 결혼을 하든 안 하든 주안에서 하라.


고린도전서 8장

우상 제물에 대해 지식으로 하지 말고 사랑으로 행하라. 오직 하나님만 신이라고 생각하는 지식이 있다 하지만 연약한 자들이 있다. 우상에 대한 습관으로 양심이 더러워진다. 너의 자유가 연약한 자를 넘어지게 하지 마라.


고린도전서 9장

일한 자는 먹을 권리가 있다. 성전을 섬기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온 것으로 먹는다. 사도로 영의 것을 심고 육의 것으로 거둘 수 있다. 하지만 나의 권한을 쓰지 않을 것이다. 


고린도전서 10장

조상들은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를 지났다. 모세에 속하여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았다. 신령한 반석에서 음료를 마셨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광야에서 죄를 짓고 죽었다. 이런 일들은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를 깨우치기 위함이다.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우상 숭배는 귀신과 교제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1장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듯 너희는 나를 본 받으라.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다. 여자는 머리를 가려 남자를 욕되게 하지 말라. 만찬을 나눌 때 서로 나누지 말라.


고린도전서 12장

교회에 안에 많은 은사가 있다. 하지만 모두 성령에게 온다. 한 성령으로 다양한 은사가 나온다. 그러니 다른 은사라고 서로 헐뜯지 말고 무시하지 말라. 교회는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영광을 얻는다.(26절) 너희는 더 큰 은사를 사모하라.


고린도전서 13장

사랑의 우월성을 역설한다.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해도 사랑이 없으면 의미 없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고 시기하지 않고 자랑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사랑이 제일이다.


고린도전서 14장

예언하기를 힘쓰라. 일만 방언보다 한 마디의 예언이 교회에 덕을 세운다. 교회는 질서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 아니다. 모든 것을 질서 있게 하라.


고린도전서 15장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 나셨다. 수많은 증인들이 있다. 게바에게 보였고, 열두 제자와 오백여 형제에게 보였다.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였다. 부활이 없으면 우리의 믿음도 헛것이다.


고린도전서 16장

연보에 대한 가르침.

매주 첫날에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 따로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마케도냐를 지나 고린도에 가고 싶다. 하지만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머물 계획이다. 너희는 남자답게 강건하라. 아굴라와 브리스가에게 문안한다. 바울은 친필로 편지한다. 그리스도의 은혜가 함께 하기를


성경의 정의와 목적

 1. 정의, 성경이란?

성경을 대할 때 무엇보다 우리는 성경이 무엇이냐라는 정의부터 내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만약 성경이 논문이라면 논문 읽기 방식으로 읽어야하고, 소설이라면 소설을 읽듯 읽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어떻게 정의해야할까요? 저는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 성경은 역사이다.

극도로 보수적인 사람이라면 역사라는 표현을 싫어합니다. 무조건 '하나님의 말씀이다'로 정의하고 싶어합니다. 물론 맞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 동시에 역사입니다. 그 역사는 이스라엘의 역사이며, 또한 세상의 역사이며, 또한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구속사입니다. 성경에는 세상의 창조와 인간의 타락, 그리고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2)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이다.

두 번째는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라는 점입니다. 계시는 드러낸다라는 뜻이죠, 성경은 종종 계시를 묵시라는 단어로 번역하는데 모두 동일한 의미입니다. 계시로 번역된 헬라어 아포카립시스(Ἀποκάλυψις)는 베일을 벗기다는 뜻입니다. 숨겨진 것이 드러난다는 뜻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긔 계시로서 숨겨진 하나님의 뜻과 의도, 목적 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은 계시입니다.

3) 성경은 문학이다.

'성경은 문학이다'라는 정의보다는 하나님의 계시가 '문학'의 장르를 통해 계시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문학이란 말속에는 인간의 사유와 사고의 방식이 담겨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성경에 대한 정의는 이 정도만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성경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것이며, 하나님은 역사와 문학적 방법으로 성경을 기록하게 함으로 하나님의 숨겨진 의도를 드러낸 계시입니다.


2. 성경의 목적

그렇다면 우리는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다양한 방법 또는 관점에서 읽을 필요가 있지만 몇 가지의 관점으로 대할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기

가장 먼저 갖어야할 마음의 자세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편지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자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의 모든 부분을 우리가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편지를 보냈다는 사실을 가지고 읽어야 합니다. 즉 부정적인 마음이 아니라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2) 구원의 목적

성경을 우리에게 주신 목적 중의 하나는 바로 구원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을 알고 구원에 이르게 되는 지혜를 얻게 될 것을 말합니다.

  • 디모데후서 3장 15절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3) 경건의 목적

성경은 구원 뿐 아니라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을 통해 의를 교육하려는 목적이 있습니다. 의는 바름과 공의를 뜻합니다. 즉 이 땅에서 무엇이 바르고, 무엇이 옳은 지를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담긴 성경을 통해 우리는 진정한 경건에 이르게 됩니다.

  • 디모데후서 3장 16절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4) 지혜의 목적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지혜를 얻게 됩니다. 성경의 많은 곳에서 성경을 통해 지혜를 얻는다 말합니다.

  • 잠언 1:1 다윗의 아들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잠언이라
  • 잠언 1:2 이는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
  • 잠언 1:3 지혜롭게, 공의롭게, 정의롭게, 정직하게 행할 일에 대하여 훈계를 받게 하며
  • 잠언 1:4 어리석은 자를 슬기롭게 하며 젊은 자에게 지식과 근신함을 주기 위한 것이니
  • 잠언 1:5 지혜 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할 것이요 명철한 자는 지략을 얻을 것이라
  • 잠언 1:6 잠언과 비유와 지혜 있는 자의 말과 그 오묘한 말을 깨달으리라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며, 하나님은 지혜로 세상을지으셨고, 또한 주의 계명을 따를 때 지혜로운 삶을 삽니다.

  • 시편 111장 10절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라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훌륭한 지각을 가진 자이니 여호와를 찬양함이 영원히 계속되리로다
  • 시편 119장 98절 주의 계명들이 항상 나와 함께 하므로 그것들이 나를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나가면서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묵상함을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참된 지혜를 얻게 됩니다. 우리이 삶은 오직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지혜를 얻습니다.

내 블로그 목록

추천 게시물

2024년 9월 29일, 주일 대표기도문

주일 낮 예배 대표기도문 믿는 자들의 위로와 희망이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9월의 마지막 주일, 저희를 주님의 거룩한 존전 앞에 불러 주셔서 예배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변화하는 계절 속에서도 변함없이 저희를 지키시고 인도하시는 주님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