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1:4 바람에 나는 겨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자

시편 1편은 성경 전체의 문을 여는 시로서,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이라는 두 갈래 인생의 대조를 통해 하나님의 복과 심판을 선명하게 제시합니다. 그중 4절은 악인의 실체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구절입니다. “악인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이 말씀은 단순한 도덕적 비판을 넘어서, 하나님 앞에서 악인의 운명이 얼마나 덧없고 무가치한지를 드러냅니다. 본문을 깊이 들여다보며, 우리 삶이 어떤 길을 따르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바람에 나는 겨, 그 본질적 공허함

“악인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시 1:4)

1절부터 3절까지는 복 있는 사람의 삶을 자세히 그려줍니다. 말씀을 즐거워하며 주야로 묵상하는 자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시절을 따라 열매를 맺고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4절에 이르러 시인은 완전히 다른 길을 걷는 자들의 모습을 단 한 문장으로 단호하게 요약합니다. “악인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이 짧은 문장은 원문 히브리어로 보면 더욱 강한 대조를 표현합니다. “로 켄 하레샤임”(לֹא־כֵן הָרְשָׁעִים), 직역하면 “악인들은 그렇지 않다”라는 표현인데, 이는 앞서 말한 의인의 풍성한 삶과는 전혀 다른 길임을 선언적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로 켄’이라는 부정 표현은 단호한 분리, 뚜렷한 차이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표현이 바로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여기서 ‘겨’는 히브리어로 ‘모츠’(מֹץ), 곡식을 타작한 후 남는 껍데기입니다. 겨는 본질이 아니라 부산물이며, 바람에 쉽게 날아가 버릴 정도로 가볍고 가치 없는 존재입니다. 이는 곧 악인의 삶이 아무리 화려하고 번영하는 듯 보여도, 하나님의 기준 앞에서는 본질이 없고 무게가 없는 삶이라는 뜻입니다.

바람에 날리는 겨는 결코 뿌리를 내릴 수 없습니다. 방향성도 없고, 지속성도 없으며, 결국 흩어져 사라질 운명입니다. 시편 기자는 악인의 삶을 이렇게 규정합니다. 인간적인 눈으로는 성공처럼 보일 수 있으나,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의미도, 존재감도 없다는 선언입니다. 이 얼마나 두려운 말씀입니까.


악인의 길, 뿌리 없는 생명

바람에 나는 겨는 그 자체로 생명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이는 단지 가벼운 존재일 뿐만 아니라, 스스로 생명을 만들어낼 수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시편 1편이 말하는 악인은 단지 도덕적 실패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자기 중심적인 길을 택한 자들입니다. 즉, 생명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은 존재입니다.

3절에 묘사된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 내린 자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악인은 뿌리가 없습니다. 땅에 심겨져 있지 않기에 생명을 받지도, 열매를 맺지도 못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자는 결국 자기 안에서 생명을 찾으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생명의 공급 없이 말라가는 겨와 같습니다.

개혁주의 신학은 인간이 본성적으로 죄 아래 있고, 자력으로는 결코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 악인은 단지 윤리적으로 악한 사람이 아니라, 전적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의 뜻과 생명에서 떠나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삶은 열매가 없고, 본질이 없으며, 결국은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아무것도 내어놓을 수 없는 상태로 서게 됩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깊은 경고를 줍니다. 신앙의 외형만을 갖춘 채 내면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고,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가 없다면, 우리는 뿌리 없는 신앙, 곧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상태가 될 수 있습니다. 바람이 불면 쉽게 흔들리고, 세상의 유혹과 시류 앞에 무너지는 그런 삶입니다.


바람, 하나님의 심판과 진리의 기준

본문에서 ‘바람’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닙니다. 이는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의 심판이나 진리를 상징하는 상징적 요소로 자주 사용됩니다. 이사야 17장 13절은 “민족들이 많은 물의 소리 같이 떠들 것이나 주께서 그들을 꾸짖으시리니 그들이 멀리 도망하며 산에서 겨 같이, 바람 앞에 떠다니는 티끌 같이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처럼 바람은 하나님께서 악을 심판하실 때 사용하는 도구로 묘사됩니다.

시편 1편에서도 이 바람은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의 작용을 뜻합니다. 하나님 앞에 선 모든 생명은 바람 앞에 놓인 겨처럼 평가받게 됩니다. 무엇이 무게 있는 생명인지, 무엇이 헛된 삶인지가 그 앞에서 드러납니다. 악인은 바람 앞에서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흩어질 뿐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결코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의인은 주의 인도하심을 받지만, 악인은 결국 그 길이 망하게 됩니다(시 1:6). 심판의 날이 오면, 겨는 추수의 대상이 아닙니다. 겨는 불에 던져지며, 창고에 들지 못하는 존재입니다(마 3:12). 이는 요한이 예수님의 사역을 예언하며 했던 말이기도 합니다. “손에 키를 들고 자기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그러므로 악인의 운명은 본질상 파멸입니다. 이 땅에서의 평안과 형통이 결코 그들을 하나님의 심판에서 구원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의 삶은 영원한 무게를 지니지 못하며, 결국은 바람 앞에 흩어지는 겨처럼 사라지고 맙니다.


결론

“악인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이 한 구절은 인생의 근본적 방향을 바르게 정립하게 해주는 말씀이며,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존재를 성찰하게 만드는 거울과도 같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삶은 결국 겨와 같습니다. 무게가 없고, 뿌리가 없으며, 방향이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 안에 뿌리 내리고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삶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시절을 따라 열매를 맺습니다. 악인의 길은 결국 망하게 되지만, 의인의 길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 순간 어떤 길을 걷고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겉보기에는 번듯한 삶일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바람 앞의 겨처럼 무너질 수 있습니다.

오직 말씀 앞에 서서,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안에서 뿌리내리길 구합시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뿌리이며, 심판의 바람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반석입니다. 세상은 바람에 흔들리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며, 그 말씀 안에 뿌리 내린 자는 결코 겨처럼 날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 안에 있는 자는 시절을 따라 열매 맺고, 하나님 앞에 무게 있는 존재로 서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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