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6장 개요
아브람은 횃불언약을 통해 약속을 다시 받게 됩니다. 사래는 아브람에게 자신의 몸종인 하갈을 첩으로 주어 아들을 낳게 합니다. 16장에서 아브라함을 통해 아들을 낳는다는 말에 사래가 자신의 몸종을 통해서도 낳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임신한 하갈은 사래를 무시하고, 사래는 화가나 하갈을 학대합니다. 결국 하갈은 핍박을 피해 도망갑니다. 하지만 도망가는 길에 여호와의 사자를 만나 하갈의 아들을 통해 많은 후손들이 일어날 것을 듣게 됩니다. 하갈은 약속을 듣고 다시 돌아가 아들을 낳고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합니다.
창세기 16장 구조
- 1-6장 하갈을 아브람 첩으로 준 사래
- 7-14절 약속을 받은 하갈
- 15-16절 이스마엘을 낳은 하갈
창세기 16장 강해
1-6절 하갈, 아브람의 첩이 되다.
사래와 하갈
1절은 참으로 묘한 기분을 느끼게 합니다 사래는 출산하지 못하고 애굽 사람 하갈이란 여종이 소개됩니다. 이 글을 읽는 출애굽한 이스라엘은 어떤 기분일까요? 하길을 아이를 낳게 됩니다. 하지만 사래는 아이를 낳지 못합니다. 이것은 하갈에게 소망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힘과 능력으로 본다면 다시 애굽은 그 어떤 나라보다 강력한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미래도 소망도 없는 그런 나라였습니다. 애굽의 노예로 살아가는 것이 훨씬 더 편하고 소망이 있습니다. 왜 사서 고생 해야 할까요? 여기에 대한 답이 바로 하나님의 언약에 있습니다.
사래의 제안
정말 놀라운 장면입니다. 사래가 아브람을 찾아가 자신의 몸종 하갈을 첩으로 주니 아이를 낳으라는 것입니다. 고대 세계에서 흔한 일이었지만 아브람과 사래 사이에서 사래의 위치를 보면 기이한 장면입니다. 지금까지 사래는 단 한 번도 아브람을 대들거나 제안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대 처음으로 사대가 아브람에게 제안합니다.
그런데 사래의 제안이 조금 이상합니다. 그녀는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2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하갈을 당신에게 준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하지만 이 말에는 사래가 15장에서 아브라함을 통해 아이를 낳을 것이라는 말에서 자신을 배제한 것이 분명합니다. 굳이 자신이 아니라도 다른 여자가 아브람의 아내가 되어 아이를 낳는다면 그 아이도 아브람의 후손이니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당시 주어진 계시, 사래의 믿음으로 보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압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잘인지를.
우리는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최선이 최악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최대한 머리를 싸매고, 가장 합리적이고, 가장 지혜로운 방법을 동원해도 그것이 가장 어리석은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언제나 부족하고 연약합니다.
가나안에 거주 한 지 십년 후
16절에서 하갈이 이스마엘을 낳을 때 아브람의 나이가 86세였으니 현재는 85세입니다. 아브람이 75세에 가나안에 도착했으니 딱 10년이 되는 해입니다. 십 년이란 참 묘한 시간입니다. 룻기에도 보면 10년이 지났을 때 나오미는 남편과 자식을 모두 잃고 홀로 남았습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닙니다. 십 년은 꽉찬 시간이고, 모든 것이 완성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성경에서 십년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십 년이 되었을 때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하갈의 임신, 그리고 멸시
하갈이 아브람과 동침하고 곧바로 임신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하갈은 자신이 임신한 것을 알고 곧바로 사래를 무시합니다. 아이도 낳지 못하는 여자를 자신의 주인이라고 생각한 것이죠. 여기에는 의미심장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모든 기준이 아이를 낳는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것이죠. 만약 이것이 아무리 착해도 가난한다면 그런 남자와 결혼할 여자가 있을까요? 애굽은 풍요롭고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가나안은 어떤가요? 아니 출애굽의 여정은 어떤가요? 아무리 미래도 답도 보이지 않고 고생만 합니다. 애굽과 가나안 어디를 선책하는 것이 옳을까요? 이것이 현실이냐 비젼이냐의 문제입니다.
사래의 학대
사래를 아브람을 찾아가 항의합니다. 아브람은 당신이 좋을 대로 하라며 미룹니다. '수중에 있다'는 말은 '하갈은 당신의 종이다'라는 뜻입니다. 사래를 하갈을 종으로 대하고 학대하기 시작합니다. 종으로 돌아갈 하갈은 그제서야 자신의 신분을 알게 됩니다. '학대하다'는 '아나(עָנָ)'는 '괴롭히다' '낮아지게 하다' '괴롭게 하다'는 뜻입니다. 출애굽기 10:3에서 '겸비하다'로 번역한 것을 보면, 사래가 하갈에게 왜 내 앞에서 스스로 낮추지 않느냐고 학대한 것입니다.
하갈은 스스로 겸비했을 때 문제가 되지 않지만 결국 강제적으로 낮아지게 됩니다. 사람은 겸손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타인들에의해 낮아지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겸비할 때 하나님이 높여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