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27장 주해 및 묵상
이사야 27장은 이사야서 24-27장에 이르는 종말론적 연속 단락의 마지막 부분으로, 하나님의 구속과 심판, 회복이 함께 어우러진 장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원수에 대한 최후의 승리,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향한 회복의 약속, 그리고 언약 공동체로의 회귀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종말론적 희망과 함께,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인자하심이 동시에 드러나는 본문입니다.
이사야 27장 구조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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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워야단에 대한 심판 (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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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포도원 보호와 돌봄 (2–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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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에 대한 징계와 정결 (7–1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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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회복과 예배의 회복 (12–13절)
리워야단에 대한 심판 (1절)
1절은 상징적인 표현으로 시작됩니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그의 경고하고 크고 강한 칼로 날랜 뱀 리워야단을 벌하시며…” 여기서 리워야단은 고대 근동 신화에서 등장하는 혼돈과 악의 상징으로,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대항하는 영적 세력을 대표합니다.
히브리 사상에서 ‘리워야단’은 문자적 존재라기보다는 상징적·묵시적 표현으로 이해되며, 종말의 날에 하나님께서 그 권세를 꺾으신다는 승리의 선언입니다. 요한계시록 12장과 20장에서 등장하는 ‘용’과 ‘큰 용’은 바로 이 이사야 27장과 연관지어 해석됩니다.
칼빈은 이 구절을 하나님의 궁극적인 통치와 승리의 약속으로 해석하며, 신자의 믿음이 지금의 악한 현실을 넘어 하나님 나라의 최종적 승리를 바라보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교부 이레니우스는 리워야단을 사탄의 상징으로 보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승리가 바로 이 예언의 성취라고 해석하였습니다.
하나님의 포도원 보호와 돌봄 (2–6절)
2절부터는 전환되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포도원으로 비유하며 찬양의 노래가 이어집니다. 이는 이사야 5장에서 언급된 ‘실망스러운 포도원’의 이미지를 반전시키는 메시지입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직접 ‘포도주를 내는 포도원’으로 이스라엘을 일구시며, 밤낮으로 보호하신다고 하십니다.
3절에서 “나 여호와는 포도원 지기가 되어 때때로 물을 주며…”라는 구절은 하나님의 끊임없는 돌보심을 보여줍니다. 이는 하나님의 주권적 사랑과 언약의 신실함을 나타내며, 그분의 백성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4절은 흥미로운 구절입니다. “나는 노함이 없노라…” 이 말은 하나님의 분노가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라, 언약적 사랑 안에서 진노가 극복되었다는 표현입니다. 칼빈주의에서는 하나님의 진노조차도 언약 백성의 정결과 구속을 위한 도구로 해석되며, 종국에는 은혜로 귀결된다고 봅니다.
5절은 초청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과 화평하고, 그분에게 의탁하는 자는 보호받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구속사의 핵심 진리—곧 회개와 신뢰를 통한 하나님의 품으로의 회복—을 강조합니다. 6절은 열매 맺는 포도원의 비전을 보여주며, 야곱과 이스라엘이 다시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어 세계를 채울 것이라 예언합니다. 이는 교회의 확장과 선교적 사명을 포괄적으로 포함합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징계와 정결 (7–11절)
7절부터는 하나님의 징계가 설명됩니다. “그가 백성을 친 것처럼 그들을 치셨겠으며…” 이는 하나님의 징계가 단지 분노의 발현이 아니라, 정결과 회복을 위한 의로운 도구임을 나타냅니다.
8절은 하나님의 심판이 ‘떠나게 하심’과 ‘거친 숨으로 날려버리심’이라는 표현으로 묘사됩니다. 이는 바벨론 포로기의 역사적 배경을 떠올리게 하며, 징계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주권과 목적이 작동함을 나타냅니다.
9절은 “야곱의 죄악이 속함을 받는 것이 이러하니라…”로 시작하며, 우상들이 부서지고 제단들이 헐리는 장면이 묘사됩니다. 이는 진정한 회개와 정결의 상징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오직 여호와만을 예배하게 될 때 완전한 회복이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루터는 이 구절을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상징’으로 해석했습니다.
10절과 11절에서는 하나님께 불순종한 성읍이 황폐하게 되고, 여자들이 땔감을 줍기 위해 나무를 꺾는 장면이 묘사됩니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거부한 자들에게 남는 것은 심판뿐이라는 경고입니다. 교부 예로니무스는 이 장면을 통해, 진정한 이스라엘은 혈통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라고 보았습니다.
이스라엘의 회복과 예배의 회복 (12–13절)
마지막 단락은 회복과 구원의 선언으로 마무리됩니다. 12절에서 “너희 이스라엘 자손들아, 하나하나 모을 것이라”는 말씀은 흩어진 하나님의 백성이 다시 모일 것을 예고합니다. 이는 포로기 이후의 귀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인 구속의 날을 지향하는 종말론적 언약 성취의 선언입니다.
13절은 예배의 회복을 묘사합니다. “그 날에 큰 나팔을 불리니…”라는 표현은 희년, 해방, 구원의 날과 같은 중요한 신학적 개념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 나팔 소리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와 죽은 자의 부활을 상징하는 요한계시록 11장과 1데살로니가전서 4장의 메시지와 연결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거룩한 산 예루살렘에서 여호와께 예배하리라”는 마지막 구절은, 온전한 회복이 단지 정치적 독립이 아닌,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곧 예배로 완성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개혁주의 신학은 이를 종말론적 성전 회복으로 보며,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완전한 예배를 소망하게 합니다.
마무리
이사야 27장은 하나님의 종말론적 구속과 심판, 그리고 예배의 회복을 아우르는 장입니다. 리워야단의 패배, 하나님의 포도원의 회복, 이스라엘의 정결과 회개, 흩어진 백성의 귀환, 예배의 회복이라는 일련의 흐름 속에서, 하나님은 역사와 구원의 주권자이심을 분명히 드러내십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소망을 줍니다. 심판은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구속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과정임을 기억하며, 우리는 그분의 포도원에서 열매 맺는 삶으로 응답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