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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5장 강해

 창세기 15장 개요

  • 햇불언약

그돌라오멜 연합군에게서 롯을 구한 아브람은 오는 길에 살렘왕 멜기세덱을 만나 축복을 받고 십의일조를 바칩니다. 이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환상 가운데 나타나십니다. 하나님은 자식이 없음을 말하자 하나님은 다시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고 약속하십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은 이것을 의로 여기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제물을 바치소도록 하고 제물 사이로 햇불 모양으로 지나가십니다. 사백년 동안 이방에서 객이 되어 다시 돌아올 것이라 예언하십니다.

창세기 15장 구조

  • 1-6절 아브람을 찾아온 여호와
  • 7-11절 땅을 약속하신 하나님
  • 12-21절 횃불언약


창세기 15장 강해


1-6절 아브람을 찾아온 여호와


환상 중에 찾아오신 하나님


'이후에'는 시간의 흐름을 말하기도 하지만 이전 사건이 어느 정도 경과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하나님을 아브람을 환상 가운데 찾아오십니다. '환상(히, 마하제)'이란 이 표현이 참으로 이상하게 들리지만 선지자들에게 종종 사용하시던 계시의 한 방법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위엄과 능력을 그대로 드러내시는 직설적인 계시입니다. 


그런데 하난미은 왜 찾아왔을까요?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두려워 말라'하십니다. 무엇이 두려운 걸까요? 우리는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지만 몇 가지에서 추측할 수 있습니다. 먼저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복수를 당할까 두려워한 것일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많은 시간이 걸렸음에도 여전히 아들에 대한 소식이 들리지 않자 걱정이 많아져 낙심해 있을 수 있습니다.  뒤 이어 나오는 '방패'와 '상급'이라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는 이 두 가지가 미묘하게 섞여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더디 이루어질 때,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오지 않을 때 우리는 낙심하며서 두려움이 함께 찾아오기도 합니다. 어떤 큰 일을 했지만 그 뒤에 따라오는 낙심은 더욱 무섭습니다.


자식 없음은 한탄하는 아브람


하나님의 말씀에 아브람은 즉각적으로 자신에게 아들이 없음을 말합니다.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약속을 하셨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자 하나님께 왜 아들을 주시지 않느냐고 투덜거리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자신에게 아들이 없어 자신이 기른 자가 상속자가 될 것이라 말합니다. 고대 세계에서 종이지만 어릴 때부터 자식처럼 기르기 때문에 그가 자식을 대신해 상속자가 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결국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약속을 이행하지 않음을 불평하고 있는 것입니다.


후손을 다시 약속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절대 종이 상속자가 될 것이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4절) 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반드시 아브람을 통해 자식이 태어나고, 그가 아브람을 장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장막 밖으로 끌고 나가 하늘의 많은 별을 보여주시고, 뭇 별을 셀 수 없듯 네 자손도 이와 같을 것이라 약속하십니다. 13:16에서 땅의 티끌처럼 많게 하시고, 이제는 하늘의 별처럼 많게 될 것이라 약속하십니다. 비유는 다르지만 같은 말입니다.


아브람의 의


아브람은 참으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 하신 것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6절은 앞으로 신약에서 중요한 문제로 대두 될 의인의 믿음에 관한 것입니다.

  • 6절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의는 체데크인데, 옳다 바르다의 뜻이지만 구약에서는 율법적으로 흠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신약에서는 그리스도의 피로 죄사함으로 통해 죄가 없는 완전한 상태를 말합니다.


  • 하박국 2장 4절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 로마서 1장 17절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 갈라디아서 3장 11절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 히브리서 10장 38절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믿음의 능력이자 위대함입니다. 믿음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믿는 아브람을 의로 여기시는 분이십니다.


7-11절 땅을 약속하신 하나님


이 땅을 네게 주어


하나님은 후손으로 그치지 않도 다시 땅의 약속으로 이어집니다. 7절에서 하나님은 아브람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신 이유를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라고 말씀하십니다. 땅이 없이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는 인생이 아니라 땅을 주심으로 평화로이 지낼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삼 년 된 제물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무엇으로 알리이까?' 다시 묻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요구하십니다. 이러한 제물들은 후에 성전에서 드려지는 제물들입니다. 수컷은 오직 속죄의 의미지만 암컷의 경우 화목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삼 년'일까요?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때가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들어온지 삼 년 되 해라 생각합니다. 16:3에서 사래가 하갈을 아브람에게 첩으로 줄 때가 가나안에 거주한지 10년이 되던 해입니다. 그러니까 적어도 이 제물을 드리는 시기는 10년이 지나지 않은 것은 분명합니다.


제물을 쪼개고


이 제물은 그냥 제물이 아닙니다. 아브람은 제물들을 비둘기를 제외하고 모두 반으로 쪼갭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방법이 아닙니다. 그럼 뭘까요? 의식입니다. 소위 언약식으로 불리는 것으로 국가와 국가가 서로 동맹이나 불가침 조약을 맺을 때 동물을 쪼개고 두 왕이 그 사이를 지나감으로 만약 이 약조를 어길 경우 이 찢어진 동물처럼 찢겨질 것이라는 엄중한 약속인 것이죠. 히브리어로 '베릿트'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아브람이 보인 행위는 하나님과 아브람이 상호조약(베릿트)를 맺는 것이죠.


12-21절 횃불언약


흑암 중에 임하신 여호와


밤이 깊어가지만 하나님은 오시지 않습니다. 아브람은 제물을 지키다 깊은 잠에 빠져들어갑니다. 흑음과 두려움이 아브람에게 임합니다.  이 부분은 마치 흑암 위를 운행하는 하나님의 영과 같고, 시내산 구름 속에서 흑암 가운데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닮았습니다.


미래에 대한 예언


하나님은 아브라함에 나타나 아브람의 자손들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사백 년을 객으로 지내다 사대 만에 돌아올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자손들을 괴롭히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징벌할 것이라 하십니다. 이것은 앞으로 일어날 출애굽 사건을 말씀합니다. 

우리가 창세기를 읽을 때는 반드시 출애굽기의 관점에서 읽어야 합니다. 창세기를 기록한 모세는 왜 출애굽을 해야하는 지, 가나안으로 가야하는지를 가르쳐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냥 괴로워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가나안으로 가는 것은 운명이며, 하나님의 약속이며, 이스라엘의 정체성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직은 아니다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16절)이라 말합니다. 하나님의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대로 이루실 그 때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의 방법으로 되지 않습니다. 참고 기다리는 것도 믿음입니다. 믿음은 소망이 전제 되어야 합니다. 소망은 약속에 근거합니다. 약속 없는 소망은 자기 속임수에 불과합니다.


횃불 사이로 지나시는 하나님


이 말씀을 마치시고 하나님은 횃불 사이를 지나가십니다. 정식적인 언약식은 두 왕이 함께 그 사이를 지나갑니다. 두 사람이 같이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 아브람은 쪼개 동물 사이로 지나가지 않습니다. 하나님만 지나가십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께서 만약 자신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시 자신이 쪼개지겠다는 확증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실현되지만 인간은 어리석은 늘 불신하고 불안해 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인간의 관점에서 확실한 약속임을 보여주시기 위해 홀로 그 사이를 지나가신 것입니다. 인간의 연약함과 어리석음을 배려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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