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들레헴으로 돌아가는 나오미
룻기 1:6-14절
여호와께서 - 듣고
십 년 동안 모압에서 살면서 모든 것을 잃은 나오미는 고향의 소식을 듣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기사 징계를 푸시고 다시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사 시대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 숭배하며 죄를 지으면 기근과 적군을 통해 징계하시고, 회개하면 사사를 보내 구원하시는 과정이 연속됩니다.
구원은 들음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긍휼히 여기시는 소식을 들을 때 가려는 마음이 생깁니다. 바울은 '믿음은 들음에서'에서 난다고 말합니다.
- 롬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일어나
나오미는 들었고, 일어나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을 합니다. 이 또한 매우 중요합니다. 듣는 것으로 나지 않고 실천합니다. 구원 얻는 자는 결국 행함으로 드러납니다. 행하지 않고 얻을 수 없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서 탕자는 아버지를 떠나 머나먼 곳에서 유희를 즐기지만 소유가 바닥나자 모두가 돌아섭니다. 그때서야 아버지의 집을 기억합니다. 그는 생각합니다. 아버지의 집이 얼마나 풍요로운지.. 그리고 '일어나' 아버지의 집으로 향합니다.
우리는 복음을 들을 때 그냥 좋아할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일어나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
나오미는 한참을 걸어가다 뒤 따라오는 두 며느리 오르바와 룻을 향해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 말합니다. 성경에서 '어머니의 집'으로 사용될 경우 여성의 재가를 뜻합니다.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 다시 다른 남성과 결혼하라는 말입니다.(예 창 24:28) 하지만 둘은 가지 않고 나오미를 따릅니다.
어머니는 여성성을 상징하며 성경에서는 종종 생명의 잉태의 의미로 사용합니다. 번역된 성경에서는 드러나지 않지만 히브리어에는 단어가 남성과 여성, 중성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성의 구별은 그 물건이나 존재가 갖는 독특한 특성 때문입니다. 다시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 가라'는 다시 태어나라는 의미이며, 지금의 삶과 인연을 끊으라는 말입니다.
뜨거운 입맞춤
그리고 한 참을 더 갑니다. 하지만 다시 나오미는 둘을 향해 어머니에게 돌아가라 말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아이를 낳을 수도 없기에 너희에게 소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관점으로 보면 이상한 표현이지만 당시는 형수취수제와 같이 아내의 형제나 남편의 형제와 결혼할 수 있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결국 아무런 소망이 없음을 말하니 오르바는 나오미와 입을 맞추고 고향 땅 암몬으로 되돌아갑니다. 15절에서 나오미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갔다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오르바는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그곳은 하나님이 없는 곳입니다. 우상과 헛된 신들이 있는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