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16장 강해: 요셉 자손의 기업과 남겨 둔 가나안 사람

 

여호수아 16장 강해: 요셉 자손의 기업과 남겨 둔 가나안 사람

들어가는 말 (16:1-10)

여호수아 16장은 요셉 자손, 곧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가 받은 기업의 경계를 다룬다. 유다 지파의 기업이 여호수아 15장에서 길게 소개되었다면, 16장부터는 요셉 자손의 기업이 등장한다.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자기 아들처럼 받아들였고, 그들에게 이스라엘 지파의 몫을 주었다.(창 48:5) 그러므로 요셉은 한 지파가 아니라 에브라임과 므낫세 두 지파로 기업을 받는다.

요셉은 야곱의 사랑받는 아들이었고, 애굽에서 하나님의 섭리로 가족을 살린 인물이다.(창 45:5-7) 그 요셉의 후손이 약속의 땅에서 기업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이 세대를 지나 성취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요셉은 죽기 전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실 것을 믿고, 자기 해골을 그 땅으로 메고 가라고 명했다.(창 50:24-25) 여호수아 16장은 그 믿음의 약속이 실제 땅의 경계로 나타나는 장면이다.

그러나 이 장은 기쁨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마지막 구절은 에브라임 자손이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사람을 쫓아내지 않았다고 기록한다.(수 16:10) 약속의 땅을 받았지만, 그 땅 안에 불순종의 씨앗이 남아 있다. 이것이 여호수아 16장의 긴장이다. 기업은 받았으나 아직 완전한 순종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요셉 자손의 경계: 약속은 역사 속에서 구체화된다 (16:1-4)

요셉 자손이 제비 뽑아 받은 땅의 경계는 여리고 곁 요단에서 시작하여 여리고 물 동쪽 광야로 올라가고, 벧엘 산지로 이어진다.(수 16:1) 그 경계는 루스에서 아렉 사람의 경계로 나아가고, 아다롯과 벧호론 아래쪽과 게셀을 지나 바다에 이른다.(수 16:2-3) 그리고 요셉의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기업을 받는다.(수 16:4)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추상적 감동으로 머물지 않고 실제 경계와 땅으로 주어진다는 점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은 상징적 관념만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실제 역사 속에서 실제 백성에게 실제 기업을 주셨다.(창 12:7)

성도의 신앙도 그렇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막연한 영적 위로만 주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자리, 가정, 교회, 사명, 하루의 순종 속에서 믿음을 살게 하신다. 신앙은 현실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현실의 경계 안에서 순종하는 것이다.

또한 제비 뽑아 기업을 받았다는 사실은 인간의 욕심이나 정치적 힘보다 하나님의 주권이 앞선다는 뜻이다.(잠 16:33) 성도는 자기 마음대로 삶의 기업을 움켜쥐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리에서 충성하는 사람이다.

요셉의 믿음과 기업의 성취 (16:4)

요셉 자손이 기업을 받았다는 짧은 문장 속에는 깊은 구속사적 의미가 있다.(수 16:4) 요셉은 애굽에서 죽었지만, 그의 믿음은 가나안을 향하고 있었다. 그는 죽기 전에 “하나님이 반드시 너희를 돌보시리니 너희는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고 말했다.(창 50:25)

히브리서는 요셉의 이 유언을 믿음의 행위로 해석한다.(히 11:22) 요셉은 애굽의 총리였지만 애굽을 자기 영원한 집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았다. 그의 몸은 애굽에서 죽었지만, 그의 소망은 가나안에 있었다.

여호수아 16장에서 요셉 자손이 기업을 받는 것은 단순한 토지 분배가 아니다. 그것은 요셉이 믿었던 약속의 성취다. 하나님은 요셉의 믿음을 잊지 않으셨고, 세대가 지난 뒤 그의 후손에게 기업을 주셨다.

성도에게도 이것은 큰 위로가 된다. 우리가 오늘 믿음으로 심은 것이 당장 열매 맺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약속을 잊지 않으신다. 부모의 기도, 한 세대의 순종, 눈물로 붙든 말씀은 하나님의 시간 안에서 열매를 맺는다.(갈 6:9)

에브라임의 기업: 복 받은 지파의 책임 (16:5-8)

본문은 이어 에브라임 자손이 받은 기업의 경계를 설명한다.(수 16:5-8) 에브라임은 요셉의 둘째 아들이었지만, 야곱은 그에게 장자의 축복처럼 오른손을 얹어 축복했다.(창 48:14-20) 야곱은 므낫세도 큰 민족이 되겠지만, 그의 아우 에브라임이 그보다 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창 48:19)

이후 이스라엘 역사에서 에브라임은 매우 중요한 지파가 된다. 여호수아 자신도 에브라임 지파 사람이다.(민 13:8, 수 19:50) 사사 시대와 왕국 시대에도 에브라임은 북쪽 지파들 가운데 중심적 위치를 차지한다. 북왕국 이스라엘이 때로 “에브라임”으로 불릴 정도다.(호 4:17)

그러나 복은 책임을 동반한다. 에브라임은 큰 축복을 받은 지파였지만, 훗날 교만과 우상숭배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호 5:3, 호 11:1-7) 하나님께 많은 것을 받은 사람은 그만큼 하나님 앞에서 충성해야 한다. 축복은 자랑거리가 아니라 책임이다.

성도도 마찬가지다. 은사, 지식, 재물, 영향력, 신앙의 배경을 받았다면 그것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하라는 부르심이다.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된다.(눅 12:48)

성읍과 마을: 기업은 공동체적 삶이다 (16:9)

에브라임 자손은 므낫세 자손의 기업 중에서도 몇 성읍과 마을들을 받았다.(수 16:9) 이 구절은 기업 분배가 단순히 개인적 소유가 아니라 지파와 지파, 성읍과 마을이 얽힌 공동체적 질서였음을 보여 준다.

이스라엘의 기업은 고립된 개인의 땅이 아니다. 그것은 언약 공동체 안에서 받은 삶의 자리다. 하나님은 각 지파와 가문과 성읍이 함께 살도록 땅을 나누셨다. 그러므로 기업은 “내 것”이면서 동시에 “하나님 백성 안에서 맡겨진 것”이다.

오늘 성도의 삶도 개인주의적으로만 이해할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를 개인으로 부르시지만, 동시에 교회라는 몸 안에 두신다.(고전 12:27) 나의 은사와 기업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공동체를 세우고, 이웃을 섬기고,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기 위해 주어진 것이다.

에브라임이 므낫세의 기업 안에서 성읍들을 받았다는 사실은 지파 사이의 상호 연결성을 보여 준다. 하나님 백성은 서로 분리된 섬이 아니다. 한 지체가 다른 지체와 연결되어 몸을 이룬다.(엡 4:16)

게셀의 가나안 사람: 남겨 둔 불순종 (16:10)

본문은 마지막에 말한다. “그들이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사람을 쫓아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가나안 사람이 오늘까지 에브라임 가운데 거주하며 노역하는 종이 되니라.”(수 16:10)

이 구절은 여호수아 16장의 영적 핵심이다. 에브라임은 기업을 받았지만, 그 땅의 가나안 사람을 완전히 쫓아내지 않았다. 그들을 종으로 삼았다. 겉으로 보면 실용적 선택처럼 보였을 수 있다. 노동력을 얻고, 경제적 이익을 얻고, 당장 전쟁의 수고를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불순종이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족속과 타협하지 말라고 명령하셨다.(신 7:1-5) 이유는 단순한 민족적 배타성이 아니었다. 그들의 우상숭배와 악한 풍속이 이스라엘을 하나님에게서 떠나게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신 7:4) 그런데 에브라임은 그들을 쫓아내지 않고 이용하기로 했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영적 원리다. 사람은 종종 죄를 완전히 끊기보다 관리하려 한다. “이 정도는 괜찮다.” “내가 통제할 수 있다.” “오히려 유익이 된다.” 그러나 남겨 둔 죄는 결국 올무가 된다. 사사기에서 이스라엘은 쫓아내지 않은 가나안 족속과 섞이고, 그들의 신들을 섬기며 타락한다.(삿 2:1-3, 삿 2:11-13)

성도에게도 게셀이 있다. 완전히 끊어야 하지만 남겨 둔 습관, 하나님께 드려야 하지만 타협한 영역, 겉으로는 내가 통제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내 영혼을 오염시키는 죄가 있다. 죄를 종으로 삼았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죄가 사람을 종으로 삼는다.(요 8:34)

노역하는 종이 된 가나안 사람: 타협의 경제성 (16:10)

에브라임이 가나안 사람을 노역하는 종으로 삼았다는 말은 단순한 군사적 실패가 아니라 경제적 타협을 암시한다.(수 16:10) 그들을 쫓아내는 것보다 부리는 것이 유익해 보였을 것이다.

여기서 불순종은 매우 현실적인 얼굴을 가진다. 불순종은 항상 노골적인 반역으로만 오지 않는다. 때로는 효율, 유익, 편리, 비용 절감, 현실 감각이라는 이름으로 온다. “굳이 다 쫓아낼 필요가 있겠는가?”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가?” 이런 계산이 하나님의 명령보다 앞서면, 믿음은 타협으로 변한다.

사울도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좋은 짐승을 남겼다.(삼상 15:9) 그는 그것을 여호와께 제사하기 위한 것이라고 변명했다.(삼상 15:15) 그러나 사무엘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다”고 했다.(삼상 15:22)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실용적 성공이 아니라 순종이다. 성도는 “이익이 되는가”보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에브라임의 미완성 순종과 우리의 성화 (16:10)

여호수아 16장은 성도의 성화 과정을 생각하게 한다.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요 1:12, 롬 8:15) 그러나 여전히 삶 속에는 싸워야 할 죄가 남아 있다. 이미 기업을 받았지만, 아직 쫓아내야 할 가나안이 있는 것이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이미와 아직”의 긴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성도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새 피조물이다.(고후 5:17) 그러나 아직 완전한 영화에 이르지는 않았다. 그래서 날마다 죄와 싸우고, 성령을 따라 행해야 한다.(갈 5:16-17)

에브라임의 실패는 우리에게 말한다. 남겨 둔 죄를 가볍게 여기지 말라. 작은 타협이 큰 타락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죄는 노역하는 종으로 머물지 않는다. 결국 주인이 되려 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죄와 타협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싸워야 한다. 바울은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고 말한다.(골 3:5) 이것은 죄를 관리하라는 말이 아니라 죽이라는 말이다. 성화는 죄와 평화협정을 맺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죄를 죽이는 싸움이다.(롬 8:13)

여호수아 16장의 구속사적 의미 (16:1-10)

여호수아 16장은 첫째, 요셉의 믿음이 성취되는 장이다. 요셉은 가나안 약속을 바라보며 죽었고, 그의 후손은 실제로 기업을 받았다.(창 50:25, 히 11:22)

둘째, 하나님의 약속은 세대를 지나 이루어진다. 야곱이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축복한 일이 가나안 땅 분배 속에서 현실이 된다.(창 48:5, 수 16:4)

셋째, 기업은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 것이지만, 그 기업을 살아내는 데에는 순종이 필요하다. 에브라임은 땅을 받았지만, 게셀의 가나안 사람을 쫓아내지 않았다.(수 16:10)

넷째, 남겨 둔 불순종은 사사기의 비극으로 이어지는 씨앗이다. 여호수아의 정복과 분배가 있었지만, 불완전한 순종은 훗날 우상숭배와 혼합주의로 연결된다.(삿 2:11-13)

다섯째, 이 장은 완전한 구원자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한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의 순종은 불완전했지만, 그리스도는 완전한 순종으로 자기 백성에게 영원한 기업을 주신다.(히 4:8-9, 벧전 1:3-4)

그리스도 안에서 보는 여호수아 16장 (16:1-10)

요셉 자손이 받은 기업은 성도에게 주어질 영원한 기업을 바라보게 한다. 구약의 기업은 땅이었지만, 신약의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기업을 받는다.(벧전 1:4)

그러나 여호수아가 준 안식은 완전한 안식이 아니었다. 히브리서는 여호수아가 참된 완성의 안식을 준 것이 아니기에 하나님의 백성에게 아직 안식이 남아 있다고 말한다.(히 4:8-9) 그 안식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쉬게 하시는 분이다.(마 11:28)

에브라임은 가나안 사람을 완전히 쫓아내지 못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죄와 사망과 사탄의 권세를 완전히 이기셨다.(골 2:15, 고전 15:55-57) 그러므로 성도는 자기 힘으로 죄를 이기려 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성령의 능력으로 싸워야 한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참 여호수아다. 그는 우리에게 기업을 주실 뿐 아니라, 그 기업을 누릴 수 있도록 우리를 끝까지 붙드신다.(요 10:28)

오늘의 적용 (16:1-10)

첫째,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믿음으로 받아야 한다. 요셉 자손은 오래전 약속의 성취로 땅을 받았다. 성도도 하나님이 맡기신 삶의 자리를 은혜로 받아야 한다.

둘째, 세대를 지나 이루시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 요셉의 믿음은 그의 생전에 다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그 약속을 후손에게 이루셨다.

셋째, 축복은 책임이다. 에브라임은 큰 복을 받은 지파였지만, 그만큼 하나님 앞에서 순종해야 했다.

넷째, 죄를 관리하려 하지 말고 끊어야 한다. 게셀의 가나안 사람을 종으로 삼은 것은 실용적으로 보였지만, 영적으로는 위험한 타협이었다.

다섯째, 참된 안식과 기업은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땅의 기업은 그림자이고, 그리스도 안의 영원한 기업이 실체다.

결론: 기업을 받았으나 끝까지 순종해야 한다 (16:1-10)

여호수아 16장은 요셉 자손이 기업을 받는 장이다. 하나님은 요셉의 믿음을 잊지 않으셨고, 야곱의 축복을 세대 속에서 이루셨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약속의 땅에서 실제 기업을 받았다. 하나님은 신실하시다.

그러나 이 장의 마지막은 경고로 끝난다. 에브라임은 게셀의 가나안 사람을 쫓아내지 않았다.(수 16:10) 기업은 받았지만, 순종은 완전하지 않았다. 바로 그 남겨 둔 불순종이 훗날 이스라엘의 영적 올무가 된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기업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받은 기업에 합당하게 살아야 한다. 남겨 둔 죄와 타협하지 말아야 한다. 내게 유익해 보인다고 해서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을 곁에 두어서는 안 된다.

요셉은 약속을 바라보며 죽었고, 하나님은 그 약속을 이루셨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더 큰 약속을 바라본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기업을 주셨으니, 우리는 그 기업을 받은 사람답게 거룩과 순종으로 살아가야 한다.